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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논쟁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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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안락사 논쟁에 대한 여러 기초자료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20여 년 전의 글이라 디테일한 부분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운영자


안락사

 

어원 및 정의

 

안락사의 영문 표기는 Euthanasia로서 'Eu'는 영어로 'Good'이고 thanasia는 영어로'Death'의미를 가지는 고대 그리스어이다. 우리 나라의 고려장이나 유대 민족이 노인을 벼랑으로 떨어뜨리는 풍습 등이 동양의 유교 문화나 서양의 기독교 사상으로 배척 당한 이후, 서양에서는 르네상스와 함께 새로운 안락사의 개념이 형성되었다. Euthanasia는 이때부터 쓰이기 시작했으며, 라틴어로는 '아름다운 꽃,' 희랍어로는 '쉬운 죽음'의 의미이다.

 

그리고, 현재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안락사의 의미를 살펴보면 살아날 가망이 없는 환자가 통증으로 무척 괴로워할 때 독물이나 기타의 방법으로 빨리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와주거나, 의식을 잃고 인공 호흡 장치로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 식물 인간과 뇌사로 판명된 사람에게 인공 호흡기를 제거함으로써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 속에는 안락사의 필요성과 방법도 함께 언급되고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환자는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죽음의 약을 주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자문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 사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안락사 논쟁의 역사도 꽤 긴 것으로 보인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함께 포괄할 수 있는 논의 대상임과 동시에 병사, 아사, 익사 등과 같이 '죽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이유에서든 간에 '죽이는 것'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안락사의 분류 및 '삶의 의지(living will)'

 

안락사는 크게 3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1. 생명 주체 자신의 의사에 따른 분류

 

2. 시행자(의사)의 행위에 따른 분류,

 

3. 생존의 윤리성에 따른 분류

 

 

생명 주체가 자발적이든 소극적 승낙이든, 자신의 의사가 표시된 상태에서의 안락사를 '자의적 안락사'라 한다. 그에 비해 환자가 의사를 표시할 수 없는 상황의 행위를 '비임의적 안락사,' 환자가 적극적으로 반대함에도 실시하는 경우를 '타의적 안락사'라 하며 '강제적 안락사'라고도 명명한다.

 

또한 시행자의 행위에 따른 분류를 보면 죽음의 진행을 지연시키지 않고 방치하는 '소극적 안락사'와 자기의 의도적 행위가 결과적으로 환자의 죽음을 이끈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간접적 안락사,' 행위자가 처음부터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킬 것을 의도하여 이루어지는 '적극적 안락사'가 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생존의 윤리성에 따른 안락사 구분은 그것의 또 다른 명칭과도 관계된다. 우선 '자비사(慈悲死)'가 있다. 치유 가능성이 없으며 인내하기 힘든 격렬한 육체적 고통을 지닌 인간 생명은 무의미하므로 삶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식이 없어 정신적인 활동이 불가능하여 생존의 가치를 잃어버려 인격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생명 단축은 '존엄사(尊嚴死)'라 일컫는다. 또한 '도태사'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환자의 삶의 의지와도 상관없이 사회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 질병이나 상해로 심신의 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어 공동체에 주는 부담과 희생을 인내할 수 없는 경우 생존 의미를 거부하는 경우이다.

 

이처럼 안락사는 여러 경우를 포함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환자가 '삶의 의지'를 지니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삶의 의지의 문제는 치료를 중단하고자할 때 필요한 최소한의 구비 조건이다. 즉 스스로가 의사 표시 능력이 있을 때, 이후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시행될 의료의 내용에 있어서 사전에 자신의 희망을 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연명적 의료 거절의 의사가 있는 것을 사전에 표시하는 生前有效遺言(생존유효유언)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참고로 1969년 미국 안락사교육협의회에 의해 처음으로 발의, 기안되어 캘리포니아 주 외에 미국 21개 주에서 입법화한 '삶의 의지'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정상적인 정신 및 자유 의사로 다음과 같은 사항에 있어서는 나의 죽음을 인위적으로 연장하지 않기를 원한다. 만일 내가 두 사람의 의사에 의해 말기 상태라는 것이 확인된 불치의 질병에 있으며 단지 연명 장치가 나의 죽음을 인위적으로 연장하고 있을 뿐으로 나의 죽음이 임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그 연명 장치를 사용하지 말 것이며 또는 철거하고 단지 약물과 간호만으로 나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하여주기 바란다."

 

가장 어려운 일은 안락사 판정에 있다. 아직 우리 나라는 문화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안락사 문제에 대해 공개적, 구체적으로 언급하기에 척박한 환경이며 특정 대안을 갖추지도 못한 상태이지만 외국의 예들을 통해서 안락사 판정 조건을 살펴 볼 수 있겠다.

 

안락사와 관련하여 미국은 물론 호주, 유럽과 아시아까지 세계가 논쟁의 열풍에 휩싸여 있다. 안락사에 대한 찬반의견은 분분하지만 식물 인간이나 뇌사 상태의 사람에 대한 안락사는 자연사(외상이나 병에 의하지 않고 노쇠하여 자연히 죽는 것)로 보는 흐름이 우세하다. 그러나 육체적인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환자를 독물이나 기타 방법으로 안락사 시키는 것을 거의 살인에 가깝다고 하여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찬반 양론을 거치며 안락사에 대해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는 가장 대표적인 곳은 미국의 오리건 주와 오스트레일리아의 노던 주이며 그곳에서의 법제화 노력은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에 비해 유럽과 아시아는 종교적인 신념과 윤리, 도덕적 관점으로 폐쇄성이 짙다.

 

 

각 국의 사례

 

 

<미 국>

 

현재 세계적으로 안락사 법을 공식 입법화해 시행하고 있는 곳은 미국의 오리건 주 뿐이다. 3년간의 논란 끝에 오리건 주는 1997년 11월 주민 투표를 통해 인간에게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규정한 '존엄사법'을 제정했다.

 

법 제정 4개월 뒤인 1998년 3월 26일 80대 중반의 말기 유방암 여성 환자가 안락사를 선택해 마지막 숨을 거두었는데 이 여성이 오리건주의 합법적인 첫 안락사로 기록됐다. 오리건주의 피터 콕스웰 법무장관은 이 법에 대해 "환자에게 안락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권을 주는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이와 함께 오리건 주를 제외한 미국의 40개 주에서는 환자 가족의 동의 아래 생명 보조 장치를 제거하는 수준의 소극적인 안락사 행위만 허용하고 있으나 최근 안락사 허용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뉴욕주와 워싱턴주,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대법원에 안락사 금지법에 대한 위헌 제청을 해놓고 있는 상태이다.

 

또한 1998년 11월 미국 CBS방송이 방영한 잭 케보키안 박사의 안락사 장면으로 인해 안락사에 대한 논쟁은 더욱 거세어졌다. 그는 '죽음의 의사'로 알려진 안락사 옹호주의자이며 오히려 기소되기를 바란다고 말할 만큼 안락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물로서 1998년 3월 13일로 그가 안락사 시킨 불치병 환자는 100명을 넘어섰다. 그의 100번째 안락사 주인공은 말기 폐암환자인 왈도 허먼(66)으로 "당신 같은 의사가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케보키안 박사를 '의사 가운을 걸친 살인자'라고 외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죽어가고 있는 환자들의 입장에서 그는 가장 절실한 구원자가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네바다 주에 사는 재니스 머피는 "하나뿐인 자식을 잃고 싶진 않았지만 병마에 고통받는 딸을 지켜보는 것은 더 못할 일이었다"고 말하면서 완치의 희망도 없는 상태에서 현대 의학의 노예로 남아 더 고통을 겪기보다는 스스로 죽음을 찾아 비행기로 3시간 이상 떨어진 케보키안 의사에게 달려온 사실을 인정했다.

 

케보키안은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희생 불능의 환자가 스스로 죽음을 원한다면 이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의 이러한 안락사 허용론은 어디까지나 중환자에게만 해당되므로 단순한 자살 방조와는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안락사 입회 때문에 무려 3차례나 살인 및 자살 방조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미국의 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 중 73%가 안락사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케보키안과 같은 안락사 운동가들의 입지가 개선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의 데이빗 에쉬 박사가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간호사 85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20%에 달하는 간호사들이 환자를 안락사시킨 경험이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환자나 가족의 요청에 따라 안락사를 시행했지만 가족이나 환자의 요청 없이 안락사시킨 일이 있다고 대답한 간호사도 58명이나 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합리주의와 실용주의가 주된 철학 사상으로 뒷받침된 미국 사회에서는 안락사에 대해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죽음에 대한 의지를 실천할 수 있는 권리라는 측면을 부각시켜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안락사를 實政化 하기 위해 계몽 활동을 벌이는 단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헴톡협회는 미국 전역에 38개 주 6만 여명의 회원을 가져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호 주>

 

안락사법 적용 이후 호주 사회에서는 자의적 안락사와 타의적 안락사간의 경계의 모호성을 둘러싸고 첨예한 찬반 논쟁이 벌어져 왔는데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용한 노던 테리토리 주 법을 호주 상원은 1997년 3월 25일 폐기함으로써 '죽을 권리'에 대한 논란이 더욱 거세어졌다. 호주에서는 안락사 법이 채택된 후 말기 환자들이 특수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안락사 했는데 이들은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안락사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환자 자신이나 의료진이 '예스'라는 엔터키를 누르면 자동으로 주사약이 몸 속에 흘러 들어와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법이 실시된 지 반년도 못되어 다시 백지화되자 필립 니츠키 박사 등 안락사 운동을 주도해 온 찬성론자들은 고통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개인의 선택 자유를 국가가 제한하는 데 대항하여 투쟁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호주의 나머지 주에서는 안락사가 여전히 불법으로 남아있으나 사람들이 비공식적으로 행하는 경우가 많으며, 8개의 주 중 3개의 주가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의료 행위를 법으로 허용하고 다른 주도 관습법상으로는 인정하는 현실이다. 노던 주의 의사 필립 니츠키는 안락사법의 합법화를 주장하고 스스로 앞장서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1997년 1월 2일 노던 주의 안락사법에 따라 재닛 밀스(52)라는 말기암 환자의 안락사를 도왔다.

 

또한 인터넷에 <구제>라는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자동 안락사 장치의 구조와 사용 방법 및 안락사 신청 양식 등 안락사 관련 정보를 공개하며 자동 안락사 장치의 시뮬레이션까지 소개하고 있다. 한계를 넘어선 지나친 자치권의 행사라는 이유로 무효화된 노던 주의 안락사 법에 대해서도 그는 뒷골목 안락사를 조장한다고 비난한다.

 

실제로 노던 주 사망 환자의 3분의 1은 알게 모르게 안락사의 도움을 받았다는 통계가 나타나 있고 안락사를 국민 투표에 부치자는 움직임도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각종 여론 조사 결과 오스트레일리아인의 65~80%가 안락사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찬성의 목소리가 더욱 큰 것이 입증되고 있다. 反안락사 법에 대해서도 안락사를 기다려온 환자는 "죽을 수 있는 권리의 선택은 불치병을 앓는 말기환자들의 고통을 없애기 위한 의사의 무더기 몰핀 처방이 결코 제공할 수 없는 인간다운 권위와 평화를 가져다준다"면서 몸이 성한 사람들이 이러한 권리를 논해도 되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유 럽>

 

기독교적 전통이 강한 유럽에서 안락사는 거의 허용되지 않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뇌사 상태라 하더라도 심장 박동이 완전히 멎지 않는 한 생존 상태로 간주하며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 대해서도 인위적으로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된다. 프랑스의 보건성 장관을 지내기도 한 암 전문의사 스춰왓젠베르그 박사는 안락사 시행으로 의사 자격을 박탈당했는데 이로 인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이 다시 안락사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또한 독일은 형법으로 '어떠한 이유에서도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규정하여 그것이 고의에 의한 경우에는 5년에서 종신형까지의 징역에 처한다. 독일이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대해 예외를 두지 않는 것은 특히 나치 시대의 뼈저린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스페인의 경우, 29년 동안 반신불수로 지내오다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자살한 한 장애인의 비디오가 TV에서 방영되어 안락사 논쟁이 재연되었다. 35세인 라몬 삼페드로는 카톨릭 신자인 가족들이 극구 반대하자 집을 옮겨 자살을 준비해왔으며, 그 동안 죽기 위한 법정 투쟁까지 벌였으나 자신의 죽을 권리를 스페인 법정이 인정하지 않자 급기야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죽은 육체 위에 얹혀진 머리로 존재하고 싶지 않다. 노예와 같은 모욕적인 삶을 끝내고 싶다"고 남긴 그의 말속에서 죽음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안락사에 대해 가장 빨리 수용하고 있는 기독교 국가 네덜란드에서는 1993년 2월 9일 안락사 허용 법안을 91의 찬성, 45의 반대표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반대표 중 39표가 안락사를 반대하는 의사 표시가 아니라 안락사 죄를 무조건 폐기해야 한다는 보다 적극적인 법안 요구로서 실제 표결 결과는 140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법안에서도 28개 조항이 충족된 경우에만 허용하도록 엄격히 제한하고는 있으나, 실제로 네덜란드의 사망자 50명중 1명 정도로 안락사가 이루어지고 있고, 1991년 네덜란드 보건부 조사에 의하면 한해에 약 2천 7백명이 의사의 도움으로 안락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유럽 국가 중 안락사 허용을 제일 먼저 입법화한 네덜란드는 종교계에서 큰 반발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교황청에서는 네덜란드 의회를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까지 비유하고 있다.

 

 

<일 본>

 

일본은 1950년부터 안락사 문제가 표면화되었다. 불치병에 걸린 모친(한국인이며 이름은 신길순)이 고통에 겨워 자신의 죽음을 부탁하자 그녀의 아들이 모친의 고통을 덜어드리는 것이 효라 생각하여 모친의 자살을 도운 사례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이후 6차례의 안락사에 관한 재판이 있었으나 아직까지도 일본에는 안락사 관련법이 없고, 다만 안락사 행위의 유죄 여부에 관한 1995년 요코하마 법원의 판례가 안락사에 관한 준거의 틀을 제공할 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본의 안락사에 관한 재판에서 피고인들은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1992년 7월 환자 가족의 요청으로 말기암 환자를 염화칼륨으로 안락사 시킨 대학 병원 의사 도쿠나가 마사히토를 살인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것은 이의 대표적 예이다. 또한 일본의 한 지방병원장이 말기 위암 환자에게 근육 이완제를 투여해서 안락사 시킨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야마나카 원장은 "가능한 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의료 처치라고 생각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가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안락사를 행하였음을 인정했기 때문에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에 대해 니시오카 변호사는 "근육 이완제 투여는 권한 없는 의사가 환자의 호흡을 끊는 행위"라고 하나 의료 관계자들의 반론 내용은 말기암 환자에게 의사를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안락사에 대한 법정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긴 파문이어서 판결이 어려운데 지난 1991년 일본 가나가와현 지방 법원이 안락사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환자 자신의 의사 확인 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각 종교의 입장

 

 

<불교>

 

안락사가 현 사회에서 문제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윤리 체계에서 안락사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있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호흡, 심장기능, 뇌기능(의식 작용)의 세 가지가 살아있지 않은 상태로 정의 내린다. 그리고 모든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인간 뿐 아니라 동물이나 초목의 생명까지도 죽이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세상사 일체를 괴로움으로 보고 있고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교에서의 중요한 과제로 보며, 괴로움은 생로병사의 네 가지 고통으로 나눈다. 그러나 죽음이 삶의 과정 속에 속해 있다는 불교의 높은 경지에 이르면 생로병사는 본래 없는 것으로서 이것이 바로 참다운 안락사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극소수의 고승들만이 이룰 수 있다. 이에 비해 현재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안락사는 死苦와 病苦 중에서의 선택 문제인 것이다. 즉 본인 자신의 문제이며 본인의 뜻과는 관계없이 제3자의 결정에 의한 죽음은 곧 살생으로 본다. 결국 '삶의 의지'의 문제로 돌려진다. 불교에서는 카톨릭과 달리 아직까지 뇌사나 안락사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는 없으나 안락사가 불교의 救苦의 목적과 일치될 수만 있다면 불교는 안락사의 제도를 거부하지 않고 수용할 수 있으리라고 예살할 수 있다.

 

 

<카톨릭>

 

카톨릭에서는 안락사나 낙태 등의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고, 안락사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호스피스 운동을 일관되게 실천하며 교육한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라는 사도 바울로의 서간만이 바로 생명에 대한 카톨릭 교회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또한 죽음 또한 그 순간에서 겪는 고통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고, 고통은 그리스도 수난에의 동참이며, 성부의 뜻에 순종하며 그리스도께서 바친 구원 희생과 일치를 이루는 일이라고 한다. 죽을 권리는 결국 인간적이며 그리스도적인 존엄성을 지니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것을 뜻하며, 삶과 죽음과 그 속에서의 고통은 자체로 숭고한 것이다. 이런 배경 안에서 안락사는 죽음에 대한 가장 부정적인 대응이지만 전통적 카톨릭 국가인 남미 지역에서는 낙태와 안락사가 종종 이루어지고 있다. 즉 의사는 환자를 죽이지 말아야 하지만 환자를 평안하고 고통스럽지 않게 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 고통을 덜어주어 좋은 결과를 의도할 수 있는 상황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Not Dead Yet)>라는 장애인들로 구성된 이 단체는 안락사 합법화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집단이다. 이들이 안락사 문제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지금도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터에, 안락사까지 합법화되면 자신들의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위기 의식 때문이다. 이 단체의 회원인 앨리너 스미스씨는 "정상인이 자살을 원한다면 제정신이 아닌 것으로 취급하겠지만, 심한 장애인들이 자살을 생각한다면 '좋은 생각'이라고들 말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3살 때부터 1급 소아마비 장애자로 55세까지 살아오고 있는 스미스씨는 생명의 고귀함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며 안락사라는 발상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의 우려는 많은 종교인이나 지식인들의 반대 의견과 그 내용이 같다. 1996년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잭 켐프는 "안락사가 합법화되면 병원이나 보험 회사에서는 치료비가 많이 드는 영세민이나 난치병 환자들이나 중증 장애인들을 안락사라는 이름 아래 무더기로 죽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장애인이나 영세민들에게는 안락사가 환자의 선택권 문제가 아니라 생과 사가 갈리는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다른 입장으로 "환자에게 죽을 권리를 허용하는 것과 의사들에게 이를 도울 권리를 허용하는 것은 전혀 별개"라는 주장도 있다. 즉 의사들에게 타인의 생명을 좌우하는 법적 권리를 부여할 경우에 이를 남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나타나리라는 것이다. 또한 자살을 원하는 결정이 환자의 고통 그 자체 보다 치료비 부담이라는 이유에 의해 좌우될 수도 있어 아직 회생의 가능성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음도 또 다른 측면의 우려의 목소리이다.

 

 

국내의 상황

 

 

국내에서는 안락사 문제에 대해 아직은 공개적으로 거론하기를 꺼리는 분위기이다.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큰 사건이 적은 데다 선진국과의 사회 문화적 차이로 안락사를 공개토론에 올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나라는 정부 차원의 정책적 접근도 거의 없고, 의료법 등의 관련법에도 안락사에 대한 규정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대한의사협회 등의 의료 단체에서도 이 문제는 주된 논의의 대상으로 올리지 않는데 병원 현장에서 말기 암환자 등 고통이 심하고 소생 가망성이 희박한 환자를 치료하는 일부 의사들만이 심정적 갈등을 겪고 있을 뿐이다. 우리 나라는 불치병 진단이 내려진 경우에도 의사들이 이를 환자에게 직접 알려주기보다 가족을 거치는 예가 많을 정도로 질병 문제에 폐쇄적인 경향이 강하며 환자들 자신도 자신의 병에 대해 드러내어 이야기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들도 안락사를 적극 찬성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의료계 일각에서는 안락사가 허용될 때의 우려되는 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즉 환자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불치병 환자를 뒷바라지하는데 따르는 가족들이 심리적 고통과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나라도 안락사에 찬성하는 입장이 서서히 거세지고 있다. 최근 통신을 통한 설문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총 2782명의 인원 중 77.6%에 이르는 인원이 안락사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PC통신에서는 생명은 그 자체로 존귀하며 누구도 손대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의미 없는 목숨의 억지 연장이 더욱 잔인하다는 입장이 맞서며 안락사 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는데, 이는 열악한 우리의 의료 환경을 상기시키며 안락사에 대한 재인식의 기회를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퍽 고무적인 일이다. 이제 겨우 사회주의를 무너뜨린 중국에서조차 안락사에 대해 심각히 고려하는 상황에서 우리 나라도 인구의 고령화 추세에 접어든 만큼 준비된 죽음의 문제에 대해 대안을 마련해놓을 것이 요청된다.

 

 

안락사를 지지하는 대표적 의사 케보키언

 

 

<케보키언>

 

종교적 이유에서 또는 의료 윤리와 사회적 정서 등의 문제로 우리 사회에선 쉽게 납득되거나 허용되지 않는 안락사. 이제 겨우 '뇌사' 판정 시비의 문턱을 넘은 것이 엊그제인 우리의 의료 환경이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죽을 수 있는 권리'가 '죽어야 할 의무'로까지 의료 정서가 급변하고 있으며, 미국 미시간주의 병리학자 잭 케보키언(Jack Kevorkian)은 이제껏 말기 환자 수십 명의 죽음을 도와주었기에 '죽음의 의사(Doctor Death)'로 널리 알려져 있다.

 

케보키언은 1980년대 말의 네덜란드 방문 때 영향을 받아 말기 환자가 자살하는 것을 도와주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1989년에 자신의 첫 번째 자살기계 (Thanatron : 타나트론, 그리스터로 '죽음 기계'를 칭함)를 제작했다. 이 기계는 환자가 방아쇠를 잡아당기게 고안되었다. 먼저 식염수가 정맥에 주사되면서 환자는 서서히 식염수 대신에 60초 타이머가 부착된 마취제 주사가 작동되는 장치로 바꿀 단추를 누르도록 되어있다. 그 이후 케보키언식 치료법은 적어도 45명을 해치웠다. 그 가운데는 말기 환자가 아닌 사람도 많았다. 한 검시관의 조사결과 몇몇에게서는 아무런 질병의 징후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가 자살을 도와 달라고 할 경우, 이에 대한 판단은 의사들만이 결정해야 할 의료 절차입니다." 케보키언은 1993년에 말했다.

 

 

<케보키언의 행적>

 

인터넷을 통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행적을 좇으면서 가끔 케보키언과 같은 유형의 사람들을 더러 만날 때가 있다. 각자의 홈페이지에서 '튀는 사람'으로 부각되지 않으면 그곳을 찾는 네티즌도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외토픽에서 자주 거론된 케보키언 같은 이는 그 행적을 얼핏 보아도 어찌 되었든 한시대를 앞서가는 그런 부류의 인간임에는 틀림없다.

 

"무엇이 그를 '죽음의 의사'로 몰고 갔을까?" 하는 문제의 해답은 그의 행적을 좀더 들여다봄으로써 찾을 수 있지 않을까. Kevorkian Verdict 내의 Chronology of Dr. Kevorkian's Life and Assisted Suicide Campaign을 간략히 옮겨보자.

 

 

1928년 : 아르메니아 이민계로 미시건주 폰티악에서 출생

 

1952년 : 미시건 의과 대학에서 병리학 전공으로 졸업

 

1956년 : "안구 검사로 죽음 판정"에 관한 기사를 기고, 죽음의 의사란 별명을 얻음

 

1961년 : 死體로부터 환자에게 직접 수혈 시도에 관한 보고서 발표.

 

1970년 : Saratoga 종합 병원 병리 과장이 됨.

 

1980년 : 수 차례에 걸쳐 독일 신문에 '안락사와 의료 윤리'에 관한 생각을 기고.

 

1989년 : 30불 정도의 가격으로 차량부품 시장에서 부품을 조달하여 미시건주 아파트 부엌에서 '자살기계' Suicide Machine를 제작함.

 

1990년 4월 : Oregon 출신의 여성 알츠하이머 환자 자넷 애드킨의 죽음을 도움. 자살기계를 사용한 그녀의 죽음은 미시건주 Oak 공원내, 케보키언의 1968년형 폭스바겐 밴 안에서 이뤄짐.

 

1990년 : 오클랜드 카운티 Alice Guilbert 순회판사는 케보키언에게 어떠한 자살도 도울 수 없게 금지함. 이러한 금지 명령은, 그후 한 번도 강요되지 않았으나, 현재도 유효함.

 

1990년 : G. Mcnally 지방 판사는 Adkin 씨 죽음에 관한 케보키언의 살인 혐의를 기각함.

 

1991년 : Marjorie Wantz(58세, 여, 골반 통증 환자)와 Sherry Miller(43세, 여, 다발성 경화증 환자)의 죽음을 도움. 죽음은 미시건주 bald Mountain Recreation Area지역 주립 공원 내 렌트된 통나무집에서 시행됨. Wantz는 자살기계의 치사량의 약물로 죽고 Miller는 안면 마스크를 통해 일산화탄소를 흡입함으로써 죽음.

 

1994년 11월 8일 : 오레곤주는 위엄있게 죽을 권리 법안을 통과시켜 자살 협조를 합법화한 첫 주가 됨. 그러나 법안 실행은 보류됨.

 

1995년 : 케보키언은 미시건주 스프링필드시에 '자살병원 suicide clinic'을 개설함. 미주리주의 애릭카씨 (60세, 여, 알츠하이머 환자)가 첫 고객이 됨. 며칠 후 건물 소유주가 케보키언을 쫓아냄.

 

1995년 : 미시건주 일단의 의사들과 의료 전문가들이 케보키언 지지를 선언하며 "자비로운, 위엄있는, 의료적 도움의 죽음"을 위한 일련의 가이드 라인을 만들 것을 제안.

 

1996년 4월1일 : 케보키언의 고향인 폰티악에서 Miller와 Wantz 죽음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다. 그의 세 번째 형사 재판을 시작하면서 케보키언은 마치 구시대 법에 따라 재판을 받고 있는 사실을 항의하듯 식민지풍의 딱 붙는 의상과, 분칠한 흰가발 그리고 커다란 버클 슈즈를 신고 나타났다. 만약 유죄가 인정된다면 최고 5년형과 1만불의 벌금형을 받게 될 수도 있었다.

 

1996년 5월 14일 : 배심원은 그의 무죄를 평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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