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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 신석정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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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 신석정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인제야 저녁 안개가 자욱이 내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 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국 소리도 들려 오지 않습니다. 

 

<후략>

 


<핵심 정리>

감상의 초점

신석정은 시대적 흐름에 따른 시 세계의 변모를 보이면서도 일관된 시 정신을 견지한 시인이다. “시와 더불어 이순(耳順)이 넘었다. 그 동안 역사의 흙탕물 줄기가 무참하게도 내 정신 세계를 여러 번 짓밟고 달아났다. 그러나 아직껏 허튼 속정(俗情)에 몸을 굽히거나 한눈 팔기에 나를 크게 소모한 점이 없음을 자위한다.”고 시인은 말한다.

성격 : 관조적, 목가적

어조 : 간절한 호소적 어조

특징 : 무위 자연(無爲自然)의 노장 사상(老莊思想), 도연명(陶淵明)의 자연 귀의, 도로우의 자연 친화, 타고르의 명상적인 정서의 조화

구성 : 황혼 무렵 전원의 아름다운 정경(1)

전원에 대한 새로운 인식(2)

이상향에의 동경(3)

제재 : 소박한 전원의 순수한 아름다움

주제 : 이상향에의 동경. 황혼녘의 아름다운 정경에 대한 애착. 이상적인 전원 세계의 동경. 자유로운 삶에의 소망

 

<연구 문제>

1. 이 시에서 주제 의식이 함축되어 있으면서 자아의 단호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는 시구를 찾아 쓰라.

그러나 어머니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2. 이 시에서 전원에서의 안식과 평화를 함축하고 있는 비유를 찾아 두 어절로 답하라.

녹색 침대

 

3. 이 시는 어떠한 방법으로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는지 150-180자 정도로 쓰라.

저녁 해, 언덕, 푸른 하늘, 명상의 새새끼, 능금, 어린 양, 녹색 침대, 남은 햇빛, 조용한 호수, 저녁 안개, 명상하는 늙은 산, 기인 둑, 물결 소리, 작은 별 등의 찬사적 심상에 화평과 안식과 생명의 모태인 어머니의 심상을 결합하여 이상향에의 동경을 노래하였다.

 

4. 이 시와 같이 자연 귀의를 노래한 고시조 몇 수를 외워 쓰라.

말 업슨 청산이요, 태 업슨 유쉬로다.

갑 업슨 청풍이요, 임자 업슨 명월이라.

이 중에 병 업슨 이 몸이 분별 업시 늘그리라. <성혼>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녜 듯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 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겨셰라.

아희야, 무릉(武陵)이 어듸오. 옌가 노라. <조식>

 

산촌(山村)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무쳐셰라.

시비(柴扉)를 여지 마라, 즈리 뉘 이시리.

밤즁만 일편명월(一片明月)이 긔 벗인가 노라. <신흠>

 

 

< 감상의 길잡이 1 >

신석정의 시는 대체로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이 주는 강한 인상을 동양적 서정, 노장(老莊)적 초탈의 자세로 노래하여 독특한 미감(美感)을 아로새긴다.

 

저녁 해, 언덕, 푸른 하늘, 명상의 새새끼, 능금, 어린 양, 녹색 침대, 남은 햇빛, 조용한 호수, 저녁 안개, 명상하는 늙은 산, 기인 둑, 물결 소리, 작은 별 등의 찬사와 낙원의 표상에 화평과 안식과 생명의 모태인 어머니의 심상을 결합하여 엮어내는 명상의 노래가 바로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이다.

 

이 시의 전체적인 구조는 단순하지만, 심상의 통일, 긴 호흡의 명상적 리듬, 차분한 정서 등으로 자연 친화의 심정이 아름답게 표출된 전형적인 목가시다. 쉽고 자연스럽게 읽히는 가운데 조화를 이룬 시적인 가락, 자연의 색채가 빚어내는 친밀감과 타고르다운 환상과 동화적 낭만의 세계, 노장(老莊)의 무위 자연(無爲自然)의 사상을 함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감상의 길잡이 2 >

신석정의 시 세계는 목가적 전원의 서정이 안식과 생명의 모체인 어머니와 결합되어 이상향을 동경하는 것으로 표출된다. 이 작품도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와 같이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통하여 이상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의 전체적 구조는 단순하지만, ‘불의고난의 현실을 상징하는 진실자유평화를 상징하는 촛불새새끼어린 양을 대립시켜 이상향에 대한 갈망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또한 저물녘의 황혼에 인위적인 것(촛불)이 가미됨으로써 아름다움이 훼손될 것을 두려워하는 시인의 여리고 순결한 감정이 어머니,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의 반복을 통해 간절히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어머니는 특별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기보다는 호소의 시형이 자연스레 갖게 되는 정신적 위안자로서의 어머니이고, ‘촛불은 어둠을 위한 광명이나 희생과 같은 긍정적, 적극적 개념이 아니라 인위적, 작위적인 유한한 광명이다. 각 연의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연은 황혼녘의 아름다움, 둘째 연은 황혼녘의 물상(物象)에 대해 시적 자아가 갖는 새로운 인식, 셋째 연은 어머니 품속같이 포근한 이상향에의 동경을 표현하고 있다. 생명의 요람이요, 구원(久遠)한 그리움의 정서를 환기시켜 주는 어머니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자기의 꿈을 들려 드리는 아들의 이야기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시인의 자연에 대한 무한한 경애심을 느낄 수 있다.

 

< 감상의 길잡이 3 >

전원적, 자연적, 목가적인 탈속의 이상향을 그린 신석정의 초기시에 속하는 이 시는 그의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에게 건네는 진술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해질녘에 일어나는 산, 언덕, 호수, 햇빛, 물결소리, 바람, 별 등의 자연적 변화와 이를 지켜 보는 화자의 서운함과 명상이 이 시를 구성하고 있다.

 

해가 질 때 불을 켜는 어머니에게 화자는 아직 때가 이르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1연에서는 아직 남아 있는 `저녁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한다고 또 자신의 `명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2연의 `우리의 어린 양들'은 화자와 어머니가 기르는 것 즉 자연일 것이다. 여기서 독자는 `어머니'가 단순한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신석정의 시에 `어머니'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로 어머니의 돌연한 죽음을 드는 평자들이 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변변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고향인 부안에서 농부로 살아갈 뻔한 신석정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하고 문학활동을 후원해준 어머니의 죽음은 시인에게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 때부터 신석정 시에 자주 등장하는 `어머니'는 혈족으로서의 어머니의 의미를 넘어 `자연의 어머니', `마음의 어머니'로 확대하여 생각할 수 있다. 이 시에서 보여준 다양한 자연의 모습은 모두 어머니가 주재하는 것이며 그 변화 또한 어머니가 주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연의 `낡은 녹색 침대'란 이미 오랜 세월을 자연의 변화와 법칙을 지켜온 들판이며 생명들의 보금자리이다. 이 시는 들판, `하늘', `호수'`멀리 있는 기인 뚝'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의 변화를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 보며 살피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때에 이루어지는 화자의 명상은 `새새끼'처럼 자유롭고 발랄하며, `늙은 산의 고요'한 얼굴처럼 엄숙하기도 하다. 4연에서는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는 애기의 잠덧'이 있다고 한다. 해질녘 풍경이, 자연의 커다란 법칙아래 하루의 운행을 마친 만물들이 해가 진 후 `어머니'의 등에서 `잠덧'을 하며 `자장가'를 기다리는 아기의 평화로 표현되어 있다. `어머니'`촛불'을 켜는 행위는 태양의 일과 즉 낮의 일과를 마감한다는 의미일 것이지만, 다분히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촛불 켜는 행위를 구체적인 의미로 확정하기보다는 대자연의 어머니에게 돌아 오는 온갖 생명들이 보여주는 해질녘의 풍경과 그 것을 보며 `잠덧'`자장가'를 연상하는 시인의 명상이 어우러진 혼곤한 평화의 저녁 풍경을 상상하는 것이 이 시를 읽는 즐거움이다. [해설: 이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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