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란 무엇인가
by 송화은율수필의 이해
[1] 수필의 본질
1. 수필의 정의
수필은 인생이나 자연에 대하여 느낀 바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부담 없이 산문으로 쓰는 글이다.
2. 수필의 어원
(1) 중국에서의 어원 : 남송시대의 홍 매(洪邁; 1123~1202년)가 ‘수필(隨筆)’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썼다고 한다. 그의 저술‘용재수필(容齋隨筆)’의 서문에서, 저술 제목에 ‘수필’이란 말은 붙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습성이 게을러서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였으나, 뜻하는 바를 따라 앞뒤를 가리지 않고 썼기 때문에 수필이라고 한다.”
(2) 서양에서의 어원
①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수필이라는 용어는 영어 ‘에세이(essay)'를 번역해서 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essay'는 ‘assay'에서 비롯된 말인데, ’assay'는 ‘시금(試金)하다’, ‘시험하다’등의 뜻을 가진 말이다.
또 이 ‘assay'는 프랑스 어’essai'에서 왔으며, ‘essai'는 ’계량하다‘,’음미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exigere'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② 이러한 뜻의 ‘에세이’라는 용어를 실제 작품에 처음 쓴 사람은 몽테뉴다. 몽테뉴는 1580년 ‘Les Essais(수상록)’라는 수필집을 출판하였다. 현재 사용하는 에세이라는 용어는 몽테뉴로부터 비롯된다.
3. 수필의 역사
(1) 서구
① 근대 이전 : 고대에는 플라톤의 ‘대화’,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명상록’등에서 수필 형식을 찾을 수 있으며, 본격적인 수필은 16세기에 들어와 몽테뉴의 ‘수상록(隨想錄 Les Essais)'에서 시작되어서 베이컨으로 이어진다.
② 근대 : 18세기에 영국의 수필가 차알스 램의 ‘엘리아 수필’과 해즐리트의 ‘탁상담화(卓上談話 : Tavle Talk)'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2) 우리 나라
① 고려 시대 : 이제현(李霽賢;1287~1367)의‘역옹패설(轢翁稗設)’,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백운소설(白雲小說)’ 중의 일부에서 수필 형식의 글을 찾을 수 있다.
② 조선 시대 : 조선 시대에는 수필 형식의 글이 문집속에 잡설(雜說), 만필(漫筆)등의 용어로 많이 쓰여졌는데, 문헌상 ‘수필’이란 용어가 보이는 것은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열하일기(熱河日記)>속에 ‘일신수필(일신수필)’이란 말이 들어 있는 것이 최초이다.
4. 수필의 특성
(1) 자유로운 형식 : 형식이 다양하다는 뜻
(2) 다양한 소재 : 인생이나 자연 등 소재를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다.
(3) 개성적·고백적인 글 : 글쓴이의 개성과 적나라한 심성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문학이다.
(4) 심미적·철학적인 글 : 흔히 글쓴이의 심미적 안목과 철학적 사색의 깊이가 드러나는 글이다.
(5) 유우머·위트·비판 의식이 요구되는 글 : 때론 글쓴이의 유우머와 위트와 비판 의식이 나타난다.
(6) 간결한 산문의 문학 : 수필은 간결한 것이 특색이며 산문으로 씌어진다.
(7) 비전문성의 문학 : 생활인이면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개성이 드러나야 한다.
5.수필의 요건
(1) 수필은 자연 발생적이고 지속적인 관찰력을 필요로 한다.
(2) 사색과 명상의 깊이가 있어야 한다. 사색의 체계이다.
(3) 가치 감각과 느낌, 공감력을 가져야 한다.
(4) 개성의 발로이되, 겸허하고 품위 있는 개성의 반영이다.
(5) 수필은 문학성을 지녀야 한다.
[2] 수필의 내용
1. 수필의 내용
(1) 일상 생활, 자연 및 사회 현상에 관한 관찰과 생각, 느낌 등.
(2) 독자는 위의 것들에 관한 정보(지식)와 교훈, 정서를 얻는다.
(3) 수필의 내용에는 감동과 해학이 따른다.
2. 수필의 소재
(1)체험(體驗) : 생활해 가면서 특별히 겪은 일. 예) 여행, 사랑, 직업, 학업 등.
(2)관찰(觀察) : 무엇에 대하여 유심히 살핀 일이나 대상. 예)사회, 자연, 환경 등.
(3)독서(讀書) : 책을 읽고 느낀 내용이나 방법. 예) 독서론, 독후감(독서 감상문) 등.
(4)사고(思考) : 인생이나 가치관에 대하여 생각해 낸 일. 예)죽음, 인생, 종교 등.
[3] 수필의 갈래
1. 수필 문학의 분류
한 마디로 수필 문학이라고는 해도, 관점에 따라 여러가지로 세분해서 말하게 된다. 중국이나 우리 나라의 옛 한문 수필 작품에 있어 기(記), 록(錄),문(聞), 화(話)등,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의 말이 쓰인 것도, 이를테면 수필 작품을 세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서구에서는 흔히 경수필(輕隨筆:informal essay 또는 miscellany)과 중수필(重隨筆:formal essay)로 구분하였다.
2. 수필의 종류
(1) 태도상의 종류
① 경수필
인포멀 에세이(informal essay),미셀러니(miscellany). 감성적, 주관적 성격을 지니되, 일정한‘주제보다 사색이 주가 되는 서정적 수필이다. 비정격 또는 비격식 수필이라고도 한다.
예) 정비석의 ‘들국화’ 등.
② 중수필
포멀 에세이, 에세이, 지성적, 객관적성격을 지니되, 직감적, 통찰력이 주가 되는 비평적인 글로서, 논리적, 지적인 문장이다. 정격 또는 격식수필이라고도 한다.
예) 조연현의 ‘천재와 건강’ 등.
※ 경수필과 중수필의 대비
경 수 필 |
중 수 필 |
① 문장의 흐름이 가벼운 느낌을 준다. ② 연문장적(軟文章的)이다. ③ 몽테뉴적인 수필이다.
④ 개인적, 주관적인 표현이다. ⑤ ‘나’가 겉으로 드러나 있다. ⑥ 개인적인 감성, 정서로써 짜여져 있다. ⑦ 시적(詩的)이다.
⑧ 정서적, 신변적이다.
|
① 문장의 흐름이 무거운 느낌을 준다. ② 경문장적(硬文章的)이다. ③ 베이컨적인 수필이다. ④ 사회적, 객관적인 표현이다. ⑤ ‘나’가 드러나 있지 않다. ⑥ 보편적인 논리, 이성으로써 짜여져 있다. ⑦ 소논문적(소논문적)이다. ⑧ 지적(知的), 사색적이다. |
(2) 내용상의 종류
① 사색적 수필(思索的隨筆) : 인생의 철학적 문제를 다룬 글이나 감상문 따위.
② 비평적 수필(批評的隨筆) : 작가에 관한 글이나, 문학·음악·미술 등 예술작품에 대한 글쓴이의 소감을 밝힌 글.
③ 기술적 수필(記述的隨筆) : 주관을 배제하고 실제의 사실만을 기록한 글.
④ 담화 수필(譚話隨筆) : 시정(市井)의 잡다한 이야기나 글쓴이의 관념 따위를 다룬 글.
⑤ 개인적 수필(個人的隨筆) : 글쓴이 자신의 성격이나 개성, 신변 잡기 등을 다룬 글.
⑥ 연단적 수필(演壇的隨筆) : 실제의 연설 초고는 아니나, 연설적, 웅변적인 글.
⑦ 성격 소묘 수필(性格素描隨筆) : 주로 성격의 분석·묘사에 역점을 둔 글.
⑧ 사설 수필(社說隨筆) : 개인의 주관이나 의견이긴 하지만, 사회의 여론을 유도하는 내용의 글.
[4] 수필의 구성
1. 수필의 구성
(1) 3단 구성 : 서두(도입, 起)+본문(전개,敍)+결말(結)[중수필의 경우]
(2) 4단 구성 : 기(起)+승(承)+전(轉)+결(結)[중수필의 경우]
(3) 자유구성 : 자유로운 구성[경수필의 경우]
2 수필의 짜임
(1) 직렬적(直列的)인 짜임
'A→B→C···→주제‘와 같이 수필의 각 부분인 A,B,C··· 등이 인과(因果)나 시간적 순서, 공간적 순서 등의 유기적인 관계에 놓이는 짜임이다.
이 짜임의 전형은 ‘서두·본문·결말’로 짜이는 3단 구성인데, 가운데 부분인 ‘본문’은 또 몇 부분으로 분화되기도 한다.
A |
→ |
B,C |
→ |
D |
→ |
주제 [직렬 구성] |
(서두) |
|
(본문) |
|
(결말) |
|
|
(2) 병렬적(竝列的)인 짜임
‘A+B+C···→주제’와 같이 수필의 각 부분인 A,B,C··· 등이 서로 유기적 관계가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면서 주제에 봉사하는 짜임이다.
이 짜임은 연시조의 짜임과 같은 것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그 자리를 바꾸어 놓아도 주제에 봉사하는 기능은 마찬가지가 된다.
A |
+ |
B |
+ |
C |
+ |
D |
→ |
주제 [병렬구성] |
(때로는 위치를 바꾸어 놓아도 상관없다.) |
(예) 피 천득의 ‘나의 사랑하는 생활’, 안톤 시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등.
(3) 혼합적(混合的)인 짜임
‘A→B+C→D···→주제’나 ‘A→B+C→D→E + F→G···주제’와 같이 직렬적인 짜임과 병렬적인 짜임이 한 편의 수필에 섞여 있는 짜임이다.
이 짜임은 전체적으로는 직렬 구성이나 일부는 병렬 구성으로 된 경우와 전체적으로는 병렬 구성이면서 그 부분 하나하나는 직렬 구성으로 된 경우 등이 있다.
(예) 이 양하의 ‘나무’ : 전체-직렬 구성, 부분-병렬 구성
이희승의 ‘청추 수제’ : 전체-병렬 구성, 각 부분-직렬 구성
※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기본 구조를 이해하고 나서 다른 짜임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5] 수필의 진술 방식
진술 방식의 면에서 보면, 수필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구분된다. 즉, 교훈적(敎訓的) 수필, 희곡적(戱曲的) 수필, 서정적(抒情的) 수필, 서사적(敍事的) 수필로 나눌 수 있다.
1. 진술 방식에 의한 수필의 종류
(1) 교훈적 수필
필자의 오랜 체험이나 깊은 사색을 바탕으로 하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수필.
<특징>
수필로서는 그 내용이라든가 문체가 다 같이 중후하며, 필자 자신의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는 신념과 삶의 태도 등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유의점>
수필 문학에 있어서의 교훈적인 경향은 이른바 교훈주의를 생각하게 한다. 즉, 문학 예술은 독자에게 쾌락보다는 교훈을 주려는 의도로 창작된다고 보는 일종의 공리설(功利設)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시나 소설에서처럼 수필에 있어서도 이런 교훈적인 경향에 있어서는 자칫 예술성을 소홀히 하게 되는 예가 많다.
<교훈적 수필의 예>
○ 소(牛)의 덕성을 찬양하면서, 그것을 우리 인간들이 본받을 것을 권장한 이 광수의 ‘우덕송(牛德頌)’.
○ 일제 치하라는 30년대의 암담한 시점에서 우리 나라 젊은이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일깨우고 있는 심 훈(沈熏)의 ‘대한의 영웅’
○ 나무의 덕성을 찬양하면서 인간이 그것을 배울 것을 강조한 이 양하(李敭河)의 ‘나무’
○ 혼란한 사회에서 우리가 바르게 살아가는 태도를 제시한 이 희승(李熙昇)의 ‘지조(志操)’ 등.
<예시 1>
적지아니 탈선이 되었지만, 백 가지 천 가지 골이 아픈 이론보다도 한 가지나마 실행하는 사람을 숭앙하고 싶다. 살살 입술발림만 하고, 턱 밑의 먼지만 톡톡 털고 앉은 백 명의 이론가, 천 명의 예술가보다도, 우리에게는 단 한 사람의 농촌 청년이 소중하다. 시래기죽을 먹고 겨우내 ‘가갸거겨’를 가르치는 것을 천직이나 의무로 여기는 순진한 계몽 운동자야말로 참다운 대한의 영웅이다.
나는 영웅을 숭배하기는 커녕, 그 얼굴에 침을 뱉고자 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 농촌의 소영웅들 앞에서는 머리를 들지 못한다.
그네들을 쳐다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심훈, ‘대한의 영웅’에서>
<예시 2>
의욕(意慾)이 있어도 되기가 어려운 것이 세상사거든, 하물며 당초부터 의욕도 없음이랴! 가능, 불가능의 수판만 따져 가지고야 어디서 용기가 생길 것이냐. 그렇다. 의욕과 신념과 용기를 가지자. 희망으로 맞아야 할 신춘(新春)에 ‘수천석두(水穿石頭, 물이 돌을 뚫는다)’의 희망을 가지자. 얼마나 어려운 일인고! 그러나,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고!
<설 의석, ‘수천석두’에서>
(2) 희곡적 수필
필자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체험한 어떤 사건을 생각나는 대로 서술하되, 그 사건의 내용 자체에 극적인 요소들이 있어서, 대화나 작품의 내용 전개가 다분히 희곡적으로 이루어지는 수필.
<특징>
사건의 전개가 소설에서처럼 유기적, 통일적인 진행을 이룬다. 그리고,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문장에 있어 극적 현제의 시제가 흔히 쓰인다. 즉, 현제 시제를 사용한다.
필자가 어떤 곤란을 겪게 될 때나 슬픈 일을 겪게 될 때,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보여 주는 점에서 각별한 흥미를 끈다.
<희곡적 수필의 예>
○ 자신의 구두 발자국 소리가 기이했던 탓으로, 어떤 낯 모르는 여인에게 자칫 불량배로 오해받을 뻔한 수모를 당한 체험담을 쓴 계 용묵(桂鎔黙)의 ‘구두’.
○ 낯선 산에서 길을 잃고 죽을 뻔한 조난의 체험을 쓴 이 숭녕(李崇寧)의 오봉산 등산기 ‘너절하게 죽는구나’.
○ 김 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 등.
<예시 1>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일원짜리를 줍니까? 각전(角錢) 한 닢을 받아 본 적이 없읍니다. 동전 한 닢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 한 푼 얻은 돈에서 몇 닢씩 모았읍니다. 이렇게 모은 돈 마흔 여덟 닢을 각전 닢과 바꾸었읍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다양(大洋)’ 한 푼을 갖게 되었읍니다. 이 돈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읍니다.”
<피 천득, ‘은전 한 닢’에서>
<예시 2>
내 구두 소리가 또그닥또그닥, 좀더 재어지자 이에 호응하여 또각또각, 굽 높은 뒤축이 어쩔 바를 모르고 걸음과 싸우며 유난히도 몸을 일어 내는 그 분주함이란, 있는 마력(馬力)은 다 내 보는 동작에 틀림없었다. 그리하여, 한참 석양 놀이 내려퍼지기 시작하는 인적 드문 포도 위에서 또그닥또그닥, 또각또각 하는 이 두 음향의 속 모르는 싸움은 자못 그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나는 이 여자의 뒤를 거의 다 따랐던 것이다. 2,3보만 더 내어디디면 앞으로 나서게 될 그럴 계제였다. 그러나, 이 여자 역시 힘을 다하는 걸음이었다.
<계 용묵, ‘구두’에서>
(3) 서정적 수필
일상 생활이나 자연에서 느끼고 있는 감상을 솔직하게 주정적,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수필.
<특징>
문장은 흔히 서정문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서정의 내용은 정서, 즉 희(喜)·노(怒)·애(哀)·낙(樂)·애(愛)·오(惡)·욕(欲) 이라고도 설명된다.
교훈적 수필에 공리성이 강하다면, 서정적 수필에는 예술성이 강하다. 그것은 작자의 의도가 자기의 정서적 경험을 독자에게 전달해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으므로 표현에서 주로 기교에 유의하는 것과도 관련된다.
<서정적 수필의 예>
이 효석의 ‘청포도(靑葡萄)의 사상(思想)’, ‘화초(花草)’, 이 양하의 ‘신록 예찬(新綠禮讚)’, 김 진섭의 ‘백설부(白雪賦)’, 이병기의 ‘백련(白蓮), ’난초(蘭草)‘ 등.
<예시 1>
초라한 내 집이 오늘은 조금도 욕되지 아니하다. 산허리에 외롭게 서 있는 일간 두옥(一間斗屋). 아니, 내집도 이렇게 아담하고 아름다왔던가. 여기도 눈이 쌓이고 달빛이 찼다. 문은 으례 굳게 닫혀 있고, 나를 기다릴 개 한 마리 없다. 그러나, 이것도 오늘 밤에는 나를 조금도 괴롭히지 않는다.
<이 양하, ‘조그만 기쁨’에서>
<예시 2>
어려서 나는 꿈에 엄마를 찾으러 길을 가고 있었다. 달밤에 산길을 가다가 작은 외딴집을 발견하였다. 그 집에는 젊은 여인이 혼자 살고 있었다. 달빛에 우아하게 보였다. 나는 허락을 얻어 하룻밤을 잤다.
그 이튿날 아침, 주인 아주머니가 아무리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러 봐도 대답이 없다.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거기에 엄마가 자고 있었다. 몸을 흔들어 보니 차디차다. 엄마는 죽은 것이다. 그 집 울타리에는 이름 모를 찬란한 꽃이 피어 있었다. 나는 언젠가 엄마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생각하고 얼른 그 꽃을 꺾어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하얀 꽃을 엄마 얼굴에 갖다 놓고 “뼈야 살아라!”하고, 빨간꽃을 가슴에 갖다 놓고 “피야 살아라!” 그랬더니 엄마는 자다가 깨듯이 눈을 떴다. 나는 엄마를 얼싸안았다. 엄마는 금시에 학이 되어 날아갔다.
<피 천득, ‘꿈’에서>
(4) 서사적 수필
인간 세계나 자연계의 어떤 사실에 대하여 대체로 필자의 주관을 개입시키지 않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수필.
<특징>
그 내용이 얼마나 사실 또는 현실에 가까운 것인가, 서술이 얼마나 정확한가 하는 문제가 따르게 된다. 이런 작품을 쓰려면 평소의 날카로운 관찰, 세심한 조사, 올바른 지식이 필요하다.
<서사적 수필의 예>
유명한 작품으로 최 남선의 ‘백두산 근참기(白頭山覲參記)’·‘심춘순례(尋春巡禮)’ 이 광수의 ‘금강산 유기(金剛山遊記)’, 이 병기의 ‘낙화암을 찾는 길에’. 김 동인의 ‘대동강’, 노 천명의 ‘묘향산 기행기’ 등이 있다.
이 밖에 필자 자신의 학문에 대해 다양하게 술회하고 있는 양 주동의 ‘연북록(硏北錄)’, 옛날의 선비들에 대해서 뛰어나게 묘사한 이 희승의 ‘딸깍발이’등이 서사적 수필로 분류된다.
<예시 1>
나의 선친은 내게 호(號)는 지어 주지 않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호라는 것은 나이깨나 먹고 인간으로 틀거지가 잡혀서 사람다운 일을 좀 입내라도 낼 만한 시기가 되어야 하나 가져 보는 것이 그럴 듯하고, 또 이런 나이가 되면 친구끼리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 보다는 피차간에 호를 부르는 것이 점잖다 할까, 고상하다 할까, 정답다 할까, 풍류적이라 할까, 무어라고 꼭 때려서 말할 수는 없지마는 그저 그럴 듯하다고 하여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희성, ‘호변(號辨)’에서>
<예시 2>
두 볼은 야윌 대로 야위어서, 담배 모금이나 세차게 빨 때에는 양볼의 자국이 입 안에서 서로 맞닿은 지경이요, 콧날은 날카롭게 우뚝서서 꾀와 이지(理智)만이 내발릴 대로 발려 있고, 사철 없이 말간 콧물이 방울방울 맺혀 떨어진다. 그래도 두 눈은 개가 풀리지 않고 영채가 돌아서 무력이라든지 낙심의 빛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아래위 입술이 쪼그라질 정도로 굳게 다문 입은 그 의지력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
<예시 3>
궁궐을 쫓겨나온 공주는 온달네 집을 찾아갔다. 눈이 어둡고 늙은 온달 어머니에게 며느리가 되겠다고 하였다. 내 아들은 가난하고 추하므로 귀인이 가까이 할 바가 못 된다고 하면서, 온달은 지금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나무 껍질을 벗기러 산에 가 있는 처지니, 온달과는 혼사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공주가 산 밑에 이르러 온달을 만나, 속 이야기를 했더니, 온달은 성난 모양으로, 이는 여우가 변하여 나를 홀리느라고 그러는 줄 알고 가까이 하지 말라고 소리 지르며 집으로 도망쳐 왔다. 공주는 할 수 없이 뒤 따라, 온달네 집 사립문 밑에서 자고, 다음 날 어머니에게 간청하여 뜻을 이루었다. 그 후, 남편을 출세하게 하여, 나중에는 노하였던 왕도 내 사위, 내 딸이라고 반겼던 것이다.
<서 정범, ‘평강 공주’에서>
[6] 수필의 감상과 해석
<예시 1>
사제애(師弟愛)는 부자애도 아니요, 우애도 아니요, 부부애와도 다르면서 지극히 아름다운 인간애의 세계이다. 누구나 이 사제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제애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스승과 제자의 마음 속에 다 같이 진리에 대한 사랑과 정열의 불길이 타올라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사제애가 성립하지 않는다. 저마다 준엄한 절차 탁마(切磋琢磨)의 정신을 지녀야 한다. 서로 부단히 향상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스승은 준엄한 마음으로 책하고, 제자는 그것을 고맙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요즈음은 옛 사람들이 누렸던 아름다운 사제애를 찾아보기 드문 세상이다. 고인(古人)들의 순수 무잡(純粹無雜)한 사제애의 정신이 못내 부럽다.
<안 병욱, ‘사제애’에서>
<예시 2>
조용한 산중에 그리 단순하지 않은 화강석을 재료로 썼을 뿐, 특별히 사람의 눈에 자극을 주는 기발한 규각 있는 선이나 면이 있는 것도 아니다. 화강석 위에 이루어진, 종이보다도 엷고 부드러운 천의에 가리어, 입상의 보살들이 영겁의 명상에 잠긴 석가여래를 둘러선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이 때마다 뻐꾹새가 운다. 그저 그것뿐이다. 참배인들을 보고 어서 오라는 듯이 야단법석하는 나마의 불도 아니고, 해골 같은 형상을 하고 사람을 멀리하는 인도의 고행상의 불도 아니다. 그저 본존은 앉고, 보살은 서고, 뒤에는 제자가 있고, 문에는 인왕이 지키고, 앞에서는 감로수가 흐르는 조용한 산암의 석불이다.
<김 원룡, ‘한국의 미’에서>
<예시 3>
나무는 덕(德)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分數)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는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은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도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후박(厚薄)과 불만족(不滿足)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處地)에 눈떠 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진달래를 내려다보되 깔보는 일이 없고 진달래는 소나무를 우러러보되 부러워 하는 일이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足)하다.
<이 양하, ‘나무’에서>
<예시 4>
그와 동시에 또, 이 세상에는 당장은 사소한 일, 대수롭지 않은것 같이 보이는 일도, 그것이 자라서 나의 일생의 의의를 좌우할 만한 어마어마하게 중대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가장 보람 있는 생의 첫걸음을 트는 것일 수도 있으려니와, 때때로 다시 만회(挽回)할 수도 씻을 수도 없는 치욕이 될 만한 일도 있을 수 있다. 모처럼 한번 태어난 인생이라면 보람 있다고 생각되는 길을 걸어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가다가 쓰러진들 거기에 무슨 유한(遺恨)이 있으랴. 그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인생으로서 사는 도리밖에 없다. 그럴수록 다시는 만회할 수 없는 치명적인 치욕, 그것에 대하여서는 목숨을 내걸고 싸우지 않을 수 없다.
<박 종홍, ‘신념을 기르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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