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 해설 / 윤오영
by 송화은율달밤 - 윤오영
내가 잠시 낙향(落鄕)해서 있었을 때 일이다.
어느 날 밤이었다. 달이 몹시 밝았다. 서울서 이사 온 윗마을 김 군을 찾아갔다. 대문은 깊이 잠겨 있고 주위는 고요했다. 나는 밖에서 혼자 머뭇거리다가 대문을 흔들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
<하략>
작가 : 윤오영(尹五榮, 1907~1976)
수필가 윤오영은 소년 시절부터 독서와 면학을 통해, 우리 선현들이 세워놓은 한글과 한문의 문장 전통을 체득하였다. 우리의 새롭고 건전한 문장의 전통을 쌓아올리는 데 있어 그 장단(長短)과 소재(所在)의 뛰어남을 규명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깨달음과 규명됨에 입각점으로 하여 우리 문장의 방향을 설정해 가지고, 그 방향에 따라 직접 문필 활동을 펴 우리에게 그 모범을 보여 주었다.
그는 내간체(內簡體)를 주축으로 해서 성숙, 발전한 한글에 의한 문장의 전통에 깊은 애착을 느끼면서, 거기서 우리 문장의 체질상의 법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우아한 품위를 지니면서도 그 나름의 독특한 멋을 잃지 않고 일상적인 표현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인정(人情)의 기미(幾微)를 슬기롭게 드러내는 내간체의 문장이 우리 체질에 가장 적합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 특징을 자기 글에서 살리고자 많은 수련을 쌓았다.
73년에 나온 그의 제1 수필집 <고독의 반추>는 그가 10여 년간에 걸쳐 조심스럽게 써온 것으로서, 우리 수필 문학의 새로운 이정표(里程標) 구실을 하고 있다. 첫째로 전통에 연결되는 우리 글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의의가 크다. 그의 글이 전통을 살려낸 것이라고 해서 결코 고색이 창연하고, 행문이 난삽(難澁)한 것이 아님은 그의 글을 읽어 본 사람은 누구나가 알고 있다. 그의 글은 우리의 향수를 풀어주면서도 청신할대로 청신하고, 유려할대로 유려하다.
둘째로 수필 문학이 잡문(雜文)이나 만록(漫錄)과 어느 점에서 구별되어야 하는가를, 충분한 표본을 제시하여 알려준 의의를 간과(看過)할 수 없다. 그는 저서 <수필 문학 입문>에서 수필 문학관을 피력하여 수필 문학에 뜻을 둔 우리를 크게 질책(叱責)하고, 편달하면서 진심에서 우러난 격려를 보내주고 있다.
셋째로 수필의 생명인 자아(自我)의 경지(境地)를 살려나가는 점을 뚜렷하게 하고, 그 의의를 재인식시켜 주고 있다. 그는 수필을 고독에 시달리고 고독을 음미하고, 고독을 사랑하기도 하는 품위와 기골(氣骨)과 통찰력을 갖춘, 그러면서도 정감(情感)의 순박함을 지닌 지성인으로서의 보금자리로 생각했다.
이 같은 그의 문학 세계는 <수필 문학의 특성>이라는 글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어휘 풀이
낙향(落鄕) :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로 거처를 옮김.
사랑(舍廊) : 바깥 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곳.
툇마루 : 칸살 밖에 좁게 달아 낸 마루.
소반(小盤) : 음식을 놓고 먹는 상.
무청김치 : 무의 잎과 줄거리로 담근 김치.
농주(農酒) : 막걸리. 농가에서 빚은 술.
사발(沙鉢) : 사기로 만든 밥그릇, 국그릇.
어구 풀이
내가 잠시 낙향해서 있었을 때의 일 : 서술격 조사 ‘-이다’를 생략했을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 등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생략한 표현법.
웬 노인이 ~ 달을 보고 있었다. : 모르는 한 노인이 잠도 오지 않고, 어디 놀러 갈 곳도 없고 해서인지 밝은 달을 친구 삼아 바라보고 있었다. 막연한 생각에 잠겨 있는 노인의 자연스러움과 은근한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나는 그런 ~ 마셔 버렸다. : ‘버렸다’라는 말에 함축된 의미가 담겨 있는 구절이다. 노인이 마시는 바람에 나도 따라 마셨다기보다는 달밤이 주는 분위기와 노인의 과묵한 인정 등이 어우러져 일어난 일이라 보는 것이 좋다.
얼마쯤 내려오다 ~ 그대로 앉아 있었다. : 달밤의 정경과 혼연 일체가 되어 있는 노인의 자태를 볼 수 있었다. 이미 노인의 심경은 물아 일체의 경지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감상의 길잡이 1
이 작품은. 달빛이 비치는 시골 풍경을 바탕으로 하여 독특하며 향토적인 분위기와 정감을 그려낸 서정 수필로, 꽁트를 닮은 대화가 은근한 함축성을 지니고 있다.
필자가 김군을 찾아갔다 못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도입 부분이고, 우연히 노인을 만나 따뜻한 인정을 체험하는 부분이 분위기의 정점, 작별하는 부분이 결말로 되어 있다.
가장 큰 감동은 역시 달빛의 밝음. 밤의 고요함, 노인의 정이 어우러진 둘째 부분이다. 극단적이라 할 만큼 말수를 줄이면서 마치 한 폭의 정물화처럼 제시한 시골의 풍경에서, 무르익은 인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글을 감상하는 데 있어 유기적인 글의 짜임새와 같은 요소는 부수적이라 할 수 있다. 우선은 소재들 자체--‘달빛’의 밝음, 밤의 고요함. 노인의 정 등--가 연출하는 분위기와 정서에 초점을 두어 서정적 분위기와 주제를 음미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주제에 집착하다 보면 감상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그만큼 이 글은 의미의 전달보다는 정서의 환기에 뜻을 두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달밤의 고요한 정경, 노인의 따뜻한 인정, 달밤의 정취. 그러면서도 이러한 분위기와는 달리, 달을 보고 있는 노인의 외로움과 측은함이 이루는 대조의 묘미는 우리의 메마른 정서에 촉촉하게 스며들어 푸근함을 느끼게 한다.
감상의 길잡이 2
이 작품은 달빛이 비치는 시골 풍경을 바탕으로 향토색과 서정성이 짙은 분위기와 정감을 빚어 내고 있다. 달빛의 밝음, 밤의 고요함, 노인의 정(情)이 나에게까지 전해져 온 멋스러움과 여유는, 물아일체(物我一體), 물심일여(物心一如)의 경지에서 맛볼 수 있는 미적 감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무청 김치 한 그릇과 막걸리 두 사발은 더없이 풍요로운 성찬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간결한 필치로 극단의 응축과 간략함으로 마치 담백한 정물화를 보듯이 그려 낸 이 작품은 생의 한 순간에 대한 묘사로 자연과 인간 사이의 아름다운 교감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감상의 길잡이 3
이 작품은 길이가 짧고, 담고 있는 이야기도 간단하다. 낙향하여 있던 어느 날 밤 친구를 찾아갔다가, 친구는 만나지 못하고 맞은편 집 사랑 툇마루에 앉아 있던 노인을 만나 농주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집으로 돌아온 이야기다. 시골의 밝은 달밤과 그 정적을 전체 배경으로 한 서정적인 분위기는 이 수필의 압권이다. 또한 응축되고 생략된 문장을 사용하여 담백한 문체를 이루면서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짧은 길이의 담백한 문체는 장황한 의미의 전달을 노리기보다는 독특한 정서를 환기하고 깊은 여운을 남기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은은한 달빛을 배경으로 시골 노인의 인정이 건네 준 농주 한 사발과, 짤막한 몇 마디의 대화가 인상적으로 남는다. 달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 노인의 무심한 듯한 아름다운 모습을 짧은 대화와 묘사로 그리면서 극적 구성의 한 면을 보여준다.
달의 이미지
‘달’은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동양에서 강하게 나타나는데, 중국에서는 이태백이 달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지만 한국에서도 향가 이래로 수많은 시조를 비롯한 문학 작품에 달이 등장하고 있다. 이 작품의 달은 ‘그리움’의 이미지나 ‘충신’의 비유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정감어린 인간적인 달로 비쳐지고 있다.
달밤의 구조
이 작품은 달빛이 비치는 시골 풍경을 바탕으로 하여 독특한 분위기와 정감을 빚어 내고 있다. 작자가 김군을 찾아 갔다 못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도입 부분이고, 우연히 노인을 만나 따뜻한 인정을 체험하는 부분이 분위기의 정점이며 작별 부분이 결말로 되어 있다. 가장 큰 감동은 역시 달빛의 밝음, 밤의 고요함, 노인의 정이 어우러진 둘째 부분이다. 극단적이라 할 만큼 말수를 줄이면서 마치 한 폭의 정물화(靜物畵)처럼 제시된 시골의 풍경에서 무르익은 인정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글을 감상하는 데에서 유기적인 글의 짜임새와 같은 요소는 부수적이라 할 수 있다. 우선은 소재들 자체가 연출하는 분위기와 정서에 초점을 두고 음미해 나가야 한다. 또 지나치게 주제에 집착하여서도 감상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그만큼 이 글은 뜻의 전달보다 정서의 환기에 목적을 두고 있다.
핵심 정리
작자 : 윤오영
갈래 : 서정적 수필, 경수필
성격 : 회고적, 주정적, 담화적, 회화적. 질박성
표현상 특징
단출한 배경 제시와 최대한의 간략한 묘사
생략적 표현과 극도의 압축에 의한 은근한 미적 효과
향토성 짙은 서정성의 부각
함축미를 지닌 간결체 문장의 적절한 사용
주제 : 달밤의 정취와 향토적인 아름다운 인정. 달밤에 노인과 만나 느끼는 따뜻한 인정. 아름다운 자연 속에 한순간 우연히 이루어진 아름다운 인간의 정.
출전 : <고독의 반추>(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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