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隨筆) / 전문 및 요점정리 / 피천득
by 송화은율
수필(隨筆)은 청자 연적(靑瓷硯滴)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淸楚)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女人)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平坦)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포도(鋪道)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住宅街)에 있다.
수필은 청춘(靑春)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中年)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情熱)이나 심오한 지성(知性)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隨筆家)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散策)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餘韻)이 숨어 있다.
수필의 빛깔은 황홀 찬란(恍惚燦爛)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頹落)하여 추(醜)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 우미(溫雅優美)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빛이거나 진주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무늬는 사람 얼굴에 미소(微笑)를 띠게 한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懶怠)하지 아니하고, 속박(束縛)을 벗어나고서도 산만(散漫)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수필의 재료는 생활 경험, 자연 관찰, 인간성이나 사회 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등 무엇이나 좋을 것이다. 그 제재(題材)가 무엇이든지 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個性)과 그 때의 심정(心情)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
또 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필자(筆者)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行路)이다. 그러나 차(茶)를 마시는 것과 같은 이 문학은, 그 차가 방향(芳香)을 가지지 아니할 때에는 수돗물같이 무미(無味)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수필은 독백(獨白)이다. 소설이나 극작가(劇作家)는 때로 여러 가지 성격(性格)을 가져 보아야 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도 되고 오필리아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찰스 램은 언제나 램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率直)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독자(讀者)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 받은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덕수궁(德壽宮)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硯滴)은 연꽃 모양으로 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整然)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均衡)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 잎을 옆으로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餘裕)를 필요로 한다.
청자연적
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다가, 그런 여유를 가지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 하여, 나의 마지막 10분의 1까지도 숫제 초조(焦燥)와 번잡(煩雜)에다 주어 버리는 것이다.
작자 : 피천득(皮千得 )
형식 : 수필(평론적 성격)
성격 : 주관적. 설득적. 주정적, 평론적. 비유적. 단정적.
문체 : 간결체, 우유체, 화려체
표현 : 참신하고 기발한 위트가 돋보이는 문장. 생활에 얽힌 서정적이고 주관적·명상적인 것을 소재로 삼으며 섬세하고 다감한 문체로써 서정의 세계를 보여 줌. 수필의 성격을 설명하면서도, 독특한 문체와 단정적인 표현을 구사하여 문학적인 수필문의 성격을 살림
제재 : 수필
주제 : 수필의 본질과 특성
출전 : <산호와 진주>(1969)
구성 : 병렬식 구성
수필의 우아함-느낌(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 주택가에 있다.)
수필의 단순함-내용(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 단순한 글이다.)
수필의 내용과 맛(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 향기와 여운이 숨어 있다.)
수필의 온아 우미한 멋-미감(수필의 빛깔은 - 미소를 띠게 한다.)
수필의 산뜻함(수필은 한가하면서도 - 산뜻한 문학이다.)
수필의 제재와 형식(수필의 재료는 - 무미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수필의 개성(수필은 독백이다. -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수필을 쓰는 자세-균형 속의 파격(덕수궁 박물관에 - 필요로 한다.)
수필을 쓰는 자세-마음의 여유(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 끝.)
수필(隨筆)은 청자 연적(靑瓷硯滴)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淸楚)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女人)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平坦)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포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住宅街)에 있다.
- 수필의 성격
수필은 청춘(靑春)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中年)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情熱)이나 심오한 지성(知性)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오, 그저 수필가(隨筆家)가 쓴 단순한 글이다.
- 수필과 삶과 연륜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散策)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餘韻)이 숨어 있다.
수필의 빛깔은 황홀 찬란(恍惚燦爛)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頹落)하여 추(醜)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 우미(溫雅優美)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 빛이나 진주 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무늬는 사람 얼굴에 미소(微笑)를 띠게 한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懶怠)하지 아니하고, 속박(束縛)을 벗어나고서도 산만(散漫)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 수필의 미감
수필의 재료는 생활경험, 자연관찰, 인간성이나 사회 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등 무엇이나 좋을 것이다. 그 제재(題材)가 무엇이든지 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個性)과 그때의 심정(心情)에 따라, '무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
또 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필자(筆者)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行路)이다. 그러나 차(茶)를 마시는 것과 같은 문학은, 그 차가 방향(芳香)을 가지지 아니할 때에는 수돗물같이 무미(無味)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 수필의 제재와 표현
수필은 독백(獨白)이다. 소설가나 극작가(劇作家)는 때로 여러 가지 성격을 가져 보아야 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도 되고 오필리아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찰스 램은 언제나 램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率直)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독자(讀者)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 수필의 고백성
덕수궁(德壽宮)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硯滴)은 연꽃 모양으로 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整然)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均衡)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 잎을 옆으로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餘裕)를 필요로 한다.
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다가, 그런 여유를 가지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 하여, 나의 마지막 10분의 1까지도 숫제 초조(焦燥)와 번잡(煩雜)에다 주어 버리는 것이다.
- 쓰는 이의 자세
연적(硯滴) : 벼룻물을 담는 조그만 그릇
청초(淸楚) : 말쑥하고 조촐함
퇴락(頹落) : 낡고 보기 흉함
온아 우미(溫雅優美) : 따뜻하고 우아하며 빼어난 아름다움
나태(懶怠) : 게으르고 느림
액(液) : 물이나 기름 따위와 같이 흘러 움직이는 물질
플롯 : 소설, 희곡 따위의 이야기를 형성하는 줄거리. 또는 줄거리에 나오는 여러 가지 사건을 얽어 짜는 일과 그 수법
클라이맥스 : 최고조. 절정
방향(芳香) : 아름다운 향기
햄릿 :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의 주인공
오필라이 : 햄릿의 약혼자로 등장하는 인물
번잡 : 머리가 아플 정도로 복잡함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 수필은 청자 연적의 느낌처럼 고결하면서도 우아한 멋을 지닌다는 뜻
수필은 난이요, -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 담담하고 그윽하며 한가로운 여유를 지닌 한편, 산뜻한 감성과 기지(機智)가 있다는 뜻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 삶의 여유를 가지고 사색하는 기분으로 쓰여지는 것이 수필임을 드러낸 말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 주택가에 있다. : 수필은 깨끗하고 우아한 멋을 보여 주지만, 사람들의 생활 현실의 체험을 바탕으로 함을 나타냄
수필의 빛은 - 진주빛이다. : 수필은 진주처럼 우아하고 윤기가 있고 은은한 글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 있는 것이다. : 수필은 담백한 가운데 유머와 위트를 통해 그윽한 미감(美感)을 주는 것임을 드러낸 말
누에의 입에서 - 고치를 만들 듯이' : 수필은 작자의 심정에 의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임을 비유한 표현
수필이나 플롯이나 - 하지는 않는다. : 수필은 소설이나 희곡을 쓸 때처럼, 사전에 어떤 틀을 짜고, 그 플롯에 맞추어 사건을 전개하며 위기를 조정하거나 절정을 설정하는 문학은 아니다.
차(茶)를 마시는 것과 같은 이 문학 : 한가로이 앉아서, 그 향기와 맛을 음미하면서 차를 마시는 것과 같은 모양으로 감상하며 읽게 되는 수필 문학
수필가 찰스 램은 언제나 램이면 되는 것이다. : 수필의 고백성을 드러내는 비유적 표현. 여기에서의 '램'은 개인으로서의 '램'으로 자기 고백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이 균형(均衡) 속에 - 파격이 수필인가 한다. : 수필은 전체적으로는 짜임새 있고 각 부분이나 요소 사이에 균형이 잡히고 조화가 되어 있으나, 그 가운데 살짝 변화를 일으켜, 여느 사람의 상식과는 어긋나 관점이나 견해를 제시한다거나, 독자의 예상을 뒤엎는 결론을 내리거나 하는 수가 있는데, 그것이 독자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유쾌한 인상을 주게 된다. 바로 그런 글이 수필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마지막 10분의 - 주어 버리는 것이다. : 수필을 쓰려면 우선 마음이 한가로워 인생을 관조하고 사색하고 음미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세속적인 일에 시달리다 보면, 그와 같은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는 것이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스럽고 황송한 일 같기도 하여, 24시간을 모두 그런 번거롭고 어수선한 일에 다 써 버리고 만다.
이 글은 원래 수필의 특성을 이해시키기 위한 설명문으로서의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개념적 지식에 해당하는 내용을 정서적이고, 함축적인 언어로 바꾸어서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창조적인 문학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비유의 원관념을 해석하는 데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그 표현이 만들어 내는 문학으로서의 미적(美的) 감성을 느끼면서 글을 감상하여야 한다. 수필의 여러 가지 특징을 그야말로 자유롭게 생각나는 대로 열거한 이 글은 수필의 성격을 중심으로 수필의 제재와 형식, 수필을 쓰는 마음가짐 등 수필을 쓰는 태도를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자는 결국 수필을 쓰지 못하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없는 자신의 생활 때문이라고 반성하는 고백적 목소리로 글을 끝내고 있다.
수필을 설명하기 위해 청자 연적, 난, 학, 여인, 가로수 늘어진 포도, 서른 여섯 살 중년의 고개를 넘어선 사람, 누에고치, 차(茶) 등을 비유를 수도 없이 끌어들이고 있어 자못 상상력이 풍부하고 활력 넘치는 수필이 되었다.
또한, 이 작품은 수필이라는 문학 장르에 대한 개념적 지식을 형상적, 비유적 언어로 친절하게 서술한, 수필로 쓴 수필이론이다. 수필은 원숙(圓熟)한 생활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고아(高雅)한 글이고 독특한 개성과 분위기가 있어야 하며, 균형(均衡) 속에서도 파격(破格)을 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귀결점이다. 작가의 내적 호흡을 따라가며 글을 읽다 보면 수필이 갖는 예술적 성격을 어느 정도 이해함은 물론, 수필을 쓰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과 자세를 배울 수 있는 글이다.
이 글은 개념적 지식에 해당하는 내용을 정서적이고, 함축적인 언어로 치환(置換)해서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창조적인 문학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단순히 비유의 함축성을 해독하는 데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표현이 만들어 내는 수필로서의 미감(美感)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첫 구절의 수필에 대한 정의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필자가 생각하는 수필이란 강렬하고 뚜렷한 무엇이 아니라 연륜과 여유 속에서 약간의 파격과 개성을 통해 우러나온 삶에 대한 조용한 반성이다. 여기서 수필이 문학으로서 수행하는 예술적 기능을 이해할 수 있다. - 구인환·김흥규 공저 문학 교과서에서
'수필'에 대한 윤오영(尹五榮)의 평가
필자(筆者) 피천득(皮天得) 자신의 수필론이다. 논이라면 학술 논문이나 논술문을 생각할지 모르나 수필가가 쓴 것은 문장론, 작품론, 문화론, 시사론이 다 수필인 것이다. 지금까지 하나의 수필관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수필은 논한 글이 없다니 점에서도 귀중한 글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라고 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피요, 눈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라고 했지만 때로는 남성적(男性的)일 수 도 있다. '수필은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라고 했지만, 모든 것이 신기하고 청신하게 느껴지는, 때 안 묻은 소년의 글일 수도 있고, 인생을 회고하며 생을 거의 체념한 노경(老境)의 글일 수도 있다. 이 수필론(隨筆論)으로 포섭할 수 없는 그 밖의 수필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수필론을 뒷받침하는 수필이 따르지 않는 수필론 들은 우리에게 아무 흥미도 없다. 오직 이 글의 작가의 수필 세계가 알고 싶고, 듣고 싶을 때 이 글은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이것은 한 작가로서 자기의 문학 세계를 말해 준 것이요, 스스로의 수필 문학을 탐색하는 과정의 기록인 것이다.
피천득의 수필 세계 - 작은 것들의 세계
금아 피천득의 수필의 본질은 '세계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사랑의 공간이라는 데 있다.'는 그의 세계관에 근거한다. 따라서, 그는 일상의 삶에서 겪는 작은 일들, 그 중에서도 아름답고 작은 일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 의미를 재발굴해 내어서 자신의 수필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아름다운 것들은 결코 협소한 세계는 아니면서 독자적인 세계를 이룬다. '나의 사랑하는 생활'에 든 많은 것들은 깨끗하고 부드럽고 조촐한 느낌에 대응하며 조그맣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세계의 이미지들이다. 거기서 요란하고 외형적인 아름다움은 배제된다. 즉, 바이올린 소리보다는 피아노 소리, 병든 장미보다는 싱싱한 야생 백합, 신비스러운 모나리자보다는 맨발로 징검다리를 건너가는 시골 처녀, '11월 어느 토요일 오후는 영혼이 되어 가고 있었다.'라는 소설의 배경보다는, '그들은 이른 아침, 바이올렛빛 또는 분홍빛 새벽 속에서 만났다. 여기에서는 일찍이, 그렇게 일찍이 일어나야 되었기 때문이다.'라는 시간적 배경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의 수필 세계가 아름답고 작은 것으로만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의 수필 세계가 아름답고 작은 것으로만 이루어진다 할 때, 그것은 인생의 참 값이 그러한 것들 속에만 있다는 편협한 주장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전제되어 있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 주어진 대로의 삶이 근본적으로 제약 속에 있는 삶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약 속에서일망정 평범한 삶도 그 나름으로 보람있는 삶이어야 한다는 의식이다. 즉, 그의 아름답고 작은 세계는 시대의 험악함에 도망해 가는 피난처가 아니라 너무나 험한 시대를 살아감에 절실히 요구되는, 강한 긍정에의 의지의 표현, 또는 적어도 그 표현의 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김우창, 궁핍한 시대의 시인)
내용상의 분류
① 사색적 수필 : 인생의 철학적 문제를 다룬 글이나 감상문 따위.
② 비평적 수필 : 작자에 관한 글이나,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 작품에 대한 글쓴이의 소감을 밝힌 글
③ 기술적 수필 : 주관을 배제하고 실제의 사실만을 기록한 글.
④ 담화 수필 : 시정의 잡다한 이야기나 글쓴이의 관념 따위를 다룬 글.
⑤ 개인적 수필 : 글쓴이 자신의 성격이나 개성, 신변 잡기 등을 다룬 글.
⑥ 연단적 수필 : 실제의 연설 초고는 아니나, 연설적이고 웅변적인 글.
⑦ 성격 소묘 수필 : 주로 성격의 분석. 묘사에 역점을 둔 글.
⑧ 사설 수필 : 개인의 주관이나 의견이긴 하지만 사회의 여론을 유도하는 내용의 글.
수필의 성격
① 형식이 자유롭다 : 어떤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쓴다. 이 말은 형식이 다양하다는 뜻이지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② 소재가 다양하다 : 일상적인 생활 체험, 풍속, 인간성, 정치 문제, 사회현상, 자연 현상 등 다양한 소재를 작품화할 수 있다.
③ 작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문학이다 : 형식적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씀으로써, 작자의 진솔한 심성과 개성이 잘 드러나는 문학이다.
④ 간결한 산문 문학이다 : 형식이 비교적 짧고 간결한 산문 문학이다.
⑤ 비판 의식과 유머. 위트가 요구되는 문학이다 : 날카로운 비판, 위트와 풍자, 독자의 웃음을 자아내는 흥미 등이 담겨 있다.
⑥ 심미적, 철학적인 문학이다 : 인생과 자연에 대한 관조(觀照)에서 체득한 삶의 의의, 가치 등에 대한 철학적인 사색은 수필의 품격을 높여 준다.
⑦ 비전문적인 문학이다 : 누구나 쓸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문학이다.
경수필과 중수필의 차이점
경 수 필 |
중 수 필 |
① 문장의 흐름이 가벼운 느낌을 준다. |
① 문장의 흐름이 무거운 느낌을 준다. |
② 연문장적(軟文章的)이다. |
② 경문장적이다. |
③ 몽테뉴적인 수필이다. |
③ 베이컨적인 수필이다. |
④ 개인적, 주관적 표현이다. |
④ 사회적, 객관적 표현이다. |
⑤ '나'가 겉으로 드러나 있다. |
⑤ '나'가 드러나 있지 않다. |
⑥ 개인적인 감성, 정서로 짜여져 있다. |
⑥ 보편적인 논리, 이성으로 짜여져 있다. |
⑦ 시적이다 |
⑦ 소논문적이다. |
⑧ 정서적, 신변적이다. |
⑧ 지적, 사색적이다. |
램 (Lamb, Charles) [1775.2.10~1834.12.27]
런던 출생. 필명 엘리아. 크라이스트 호스피틀이라는 빈민자제(貧民子弟)를 위한 학교를 마치고, 남해상회 및 동인도회사의 회계원으로 근무하면서 밤에는 동창인 S.T.콜리지를 포함한 다른 시인들과 교류를 맺으며 시단(詩壇)으로의 야망을 키워 나갔다.
가정적으로는 매우 불행하였는데, 특히 1796년 누이인 메리가 정신병의 발작으로 어머니를 살해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는 자신에게도 이러한 유전(遺傳)이 있음을 알고, 평생 독신으로 누이를 간호하며 생활하였다. 1796년 콜리지의 시집에 4 편의 시를, 1798년 C.로이드와 함께 1권의 시집을 내면서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여기에 유명한 단시(短詩) 《옛날의 낯익은 얼굴들 The Old Fami1iar Faces》이 실려 있다.
그 후 계속해서 몇 편의 평범한 작품을 내다가 1807년 누이와 합작으로 《셰익스피어 이야기 Ta1es from Shakespeare》를, 1808년 《율리시스의 모험 The Adventures of Ulysses》을 발표하였다. 이 책들은 소년 ·소녀들을 위한 명저로 오늘날에도 널리 읽혀지고 있다.
30세경부터 그의 집은 문단 사교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셰익스피어 시대의 극시인 명작초(劇詩人名作抄)》(1808)가 발행되었을 때는 일약 문필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를 불후(不朽)의 문필가로 일컬어지게 만든 것은 1820년 그가 45세 때 《런던 매거진》에 실리기 시작하여 1823년 제1집, 1833년 제2집으로 간행된 《엘리아의 수필 Essays of Elia》이다. 이것은 그의 신변 관찰을 멋진 유머와 페이소스(pathos)를 섞어가며 훌륭하게 문장화한 것으로, 영국 수필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만우절》이라는 수필에서 그는 “나는 어리석은 자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인간이란 본래 어리석다고 말하는데, 여기에 그의 인생철학이 있다. 이들 작품에는 이미 인생의 큰 고비를 넘긴 한 인간의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너그러움이 실감나는 유머와 함께 넘쳐 흐른다.
이 밖에도 《찰스램 서간집》(1935) 등이 있다. 그의 만년은 어두웠다. 자신도 누이와 같은 정신병으로 괴로움을 겪으면서 런던의 거리를 아끼고 사랑하며 산책하였다. 그리고 길 한 모퉁이에서 돌에 걸려 넘어져 안면에 부상을 입고, 이로 인해 생애를 마쳤다.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수필(隨筆)
흔히 수필을 essay의 역어로 생각하나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써왔다. 중국 남송(南宋) 때 홍매(洪邁)의 《용재수필(容齋隨筆)》(74권 5집)의 서문에 "나는 버릇이 게을러 책을 많이 읽지 못하였으나 뜻하는 바를 따라 앞뒤를 가리지 않고 써 두었으므로 수필이라고 한다"라는 말이 보이고, 한국에서는 박지원(朴趾源)의 연경(燕京) 기행문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일신수필(日新隨筆)〉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보인다.
프랑스어의 에세(essai)는 시도(試圖)·시험(試驗)의 뜻이 있는데 이 말은 '계량(計量)하다', '음미(吟味)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엑시게레(exigere)'에 그 어원이 있다. 영어의 essay는 프랑스어의 essai에서 온 말이다. 에세라는 말을 작품 제목으로 처음 쓴 사람은 프랑스의 몽테뉴이며 그의 《수상록(隨想錄)》(1580)은 에세라는 제목을 붙인 서책으로서는 서양 최초의 저서이다. 어원으로 볼 때, 동서양의 수필의 개념은 거의 일치한다.
수필은 일반적으로 사전에 어떤 계획이 없이 어떠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의 느낌·기분·정서 등을 표현하는 산문 양식의 한 장르이다. 그것은 무형식(無形式)의 형식을 가진 비교적 짧고 개인적이며 서정적인 특성을 가진 산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전기(前記) 홍매의 정의나 "수필은 한 자유로운 마음의 산책, 즉 불규칙하고 소화되지 않는 작품이며, 규칙적이고 질서잡힌 작문이 아니다"라는 S.존슨의 정의나, "수필은 마음속에 표현되지 않은 채 숨어 있는 관념·기분·정서를 표현하는 하나의 시도다. 그것은 관념이라든지 기분·정서 등에 상응하는 유형을 말로 창조하려고 하는 무형식의 시도다"라는 M.리드의 정의 등도 모두 대동소이하다.
수필은 그 정의가 좀 막연한 것과 같이 종류의 분류도 일정하지 않다. 보통, 일기·서간·감상문·수상문·기행문 등도 모두 수필에 속하며 소평론(小評論)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수필을 에세이와 미셀러니(miscellany)로 나누는 이가 있는데 전자는 어느 정도 지적(知的)·객관적·사회적·논리적 성격을 지니는 소평론 따위가 그것이며, 후자는 감성적·주관적·개인적·정서적 특성을 가지는 신변잡기, 즉 좁은 뜻의 수필이 이에 속한다.
영문학의 경우를 전제로 하여 포멀 에세이와 인포멀 에세이로 나누는 이도 있는데, 인포멀이란 정격(正格)이 아니라는 뜻이므로 전자는 소평론 따위, 후자는 일반적인 의미의 수필에 해당한다. 또 중수필(重隨筆)·경수필(輕隨筆)·사색적 수필·비평적 수필·스케치·담화수필(譚話隨筆)·개인수필·연단수필(演壇隨筆)·성격소묘수필(性格素描隨筆)·사설수필 등으로 나누는 사람도 있다.
수필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다. 테오프라스토스의 《성격론》, 플라톤의 《대화편》, 로마시대의 키케로, 세네카, 그리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도 수필이라고 할 수 있으나 프랑스의 몽테뉴의 《수상록》을 수필의 원조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영국 수필의 원조는 그보다 17년 늦은 F.베이컨의 《수상록》을 꼽는데 영국에는 그 이후에 C.램, W.해즐릿, L.헌트, T.드 퀸시 등의 유명한 수필가가 배출되었다. 특히 램의 《엘리아의 수필》(1823)은 시정인(市井人)의 여유와 철학이 깃들어 있으며 신변적·개성적 표현이면서도 인생의 참된 모습이 묘사되어 있고, 영국적 유머와 애상이 잘 드러나 있다.
한국에서는 김만중(金萬重)의 《서포만필(西浦漫筆)》, 편자·연대 미상의 조선초의 《대동야승(大同野乘)》, 유형원(柳馨遠)의 《반계수록(磻溪隨錄》, 그리고 고려 때의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 등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근대 최초의 수필은 유길준(兪吉濬)의 《서유견문(西遊見聞》(1895)이며, 이어 최남선(崔南善)의 《백두산 근참기(白頭山覲參記)》 《심춘순례(尋春巡禮)》(1927), 이광수(李光洙)의 《금강산유기(金剛山遊記)》 등이 간행되었으나 이것들은 모두 기행문으로서의 수필이다.
그뒤 김진섭(金晋燮)의 《인생예찬(人生禮讚)》 《생활인의 철학》, 이양하(李敭河)의 《이양하수필집》, 계용묵(桂鎔默)의 《상아탑(象牙塔)》 등이 나왔으며, 이 밖에 조연현(趙演鉉)·피천득(皮千得)·안병욱(安秉煜)·김형석(金亨錫)·김소운(金素雲) 등의 등장으로 한국의 수필문학은 종래의 기행문적인 것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인생체험에서 우러나온 수필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수필 문학 소고(小考)
수필이란 글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다. 그러므로 다른 문학보다 더 개성적이고,심경적이며, 경험적이다. 우리는 위대한 수필 문학이, 그 어느 것이나 비록 객관적 사실을 다룬 것이라 하더라도, 심경에 부딪치지 않은 것을 보지 못했다. 강렬하게 짜내는 것이라기보다,자연히 유로되는 심경적인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이 점에서 수필은 시에 가깝다.. 그러나 시 그것은 아니다.
시나 소설이나 희곡은 동일한 작자에 의해 씌어졌다 하더라도, 그 태도가 각각 서로 다르다. 시는 심령이나 감각의 전율된 상태에서 비롯되며, 소설과 희곡은 재료의 정돈과 구성에 있어서, 과학에 가까우리만큼 엄밀한 준비로 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수필은 달관과 통찰과 깊은 이해가 인격화된 평정한 심경을 바탕으로 한다. 무심히 생활 주위의 대상에, 혹은 회고와 추억에 부딪쳐 스스로 붓을 잡을 때, 수필은 제작되는 것이다. 제작이라고 하나, 의식적 동기에서가 아니요, 결과적 현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필은 논리적 의도에서 제작된 일은 없다. 수필은 써 보려는 데서 시작되어 자연스럽게 씌어진 글이다.
시나, 소설이나, 희곡은 글을 써 보고자 하는 한가로운 마음으로 씌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의식적으로 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수필은 한가로운 심경에서의 시필(試筆)쯤에 그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필은 수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가 운율적, 정서적이요, 희곡이 조직적, 활동적이라면, 수필은 진실한 태도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격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의 형식에서 보면, 수필에는 시나 소설이나 희곡에서 보는 바와 같은 어떤 완성된 형식이 없다. 단편 소설을 제작하려면 우리는 적어도 에드거 앨런 포나 안톤 체흡이나 혹은 모파상에게 잠시라도 사숙하여야 하겠고, 시나 희곡을 지으려면 괴테나 셰익스피어나 혹은 입센등을 통해 그 완성된 형식을 한번 살펴볼 아량쯤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필에 있어서 그 형식을 구하거나 참고하려고 찰스 램이나 해즐리트를 찾을 필요성까지는 없을 것같다.
가장 아름다운 수필을 찾아 우리의 문학적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점은 찬(讚)하여 마지아니할 바이나, 그 형식의 섭취에 구속될 바는 없는 것이다. 아무것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평정한 마음으로 마치 먼 곳의 그리운 동무에게 심정을 말하듯이 붓을 잡아야 한다.
한가로운 기분을 지니면서도 진실된 마음으로 한 편의 문장을 쓸 때,그것은 곧 수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무형식이 그 형식적 특징이다. 이것은 수필의 운명이요, 또한 성격이다.
한 시대나 한 세기의 시, 소설, 희곡은 내용이나 형식으로 보아, 개괄적으로 몇 가지의 주류로 나누어 논할 수 있다. 그것은 이들 문학 형태가 모두 시대 사조나 사회 의식에 연결되어 발전, 쇠퇴하는 특징을 가진 까닭이다. 하지만 수필은 생활 단면에 부딪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렇게 커다란 조류를 따르지 않는다. 가을 밤 무심히 잡은 펜으로 가지가지의 아름다운 서정을 느끼는 대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사소하나마 매력 있는 제목을 붙잡고 시종이 없을 드한 기분으로 표현, 향락할 수도 있겠고, 야시의 풍경에서도 흥미진진한 글 한 구절은 쓸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수필은 참고서를 구하거나 지식의 정돈을 요할 바는 아니지만, 어딘가 탁마된 세련과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수필은 잡다한 모든 것이 그냥 그대로 내용이 될 수 있다다러하도, 단순한 기록에 그쳐서는 우리의 흥미를 긴장시키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는 유머가 있어야 하겠고, 위트가 있어야 한다. 전자는 무의식적 소성에서 피는 꽃 같은 미소요, 후자는 지혜와 총명의 샘과 같다. 이천성스런 유머와 보석 같은 위트는 수필의 본성과도 같은 것이다. 만일 이러한 속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수필은 그저 무미 건조한 생활적, 심경적 기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유머와 위트가 수필의 속성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소설이나 희곡에서도 솜씨 좋게 짜여서 섬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위대한 문학으로서의 수필에는 유머와 위트가 수필의 속성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소설이나 희곡에서도 솜씨 좋게 짜여서 섬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위대한 문학으로서의 수필에는 유머와 위트가 혼연히 숨어 있어서, 더욱 우리를 매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문학과 예술은 결국 사람에게서 생겨서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소설이나 희곡이라는 이름에 사로잡혀서, 그것이 수필보다 우월하며 향상성이 많다거나, 혹은 수필이라는 산만하여 보이는 어의에서 오는 선입견때문에, 그것이 발전성이 적다고 하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어떤 사회이건 그것이 인간의 사회요 인간으로 구성되는 이상, 수필은 전인격적 표현의 문학으로 어느 사회에나 존재할 것이다. 수필은 개성적 심경과 기분에 싸여서, 어떠한 대상이나 또는 문제를 간단하게 단편적으로 그리면서도, 진지하게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다. 그 내용이 정치 경제로 향하든지 사회 문제나 생활 개선으로 향하든지, 그것은 평론의 논리성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러면서도 평론이 가질 수 없는 깊은 영역을 포괄한다. 그리고 수필은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완성을 기다리지 않으면서도, 저절로 그 자체로서의 완결된 형태를 지닐 수 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모든 문학의 출발점이 인간에 있다면, 자연스럽게 인간성을 드러낼 수 있는 문학 형식은 수필을 두고 달리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수필의 맛은, 어떠한 시간에 어떠한 문제나 어떠한 대상에 작자의 기분이 부딪쳐서 표현되는 인간미에 있다. 인간의 생활이란, 요컨대 수필의 심경에서 성숙된다. 다시 말하면, 생활은 시와 산문의 조화를 통해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문학으로 볼 때 곧 수필이 된다. 그러므로 수필의 성격은 인간의 성격이라 하면 가장 타당할 것이다.- 김광섭(金珖燮) -
수필의 진술 방식
진술 방식의 면에서 보면, 수필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구분된다. 즉, 교훈적(敎訓的) 수필, 희곡적(戱曲的) 수필, 서정적(抒情的) 수필, 서사적(敍事的) 수필로 나눌 수 있다.
1. 진술 방식에 의한 수필의 종류
(1) 교훈적 수필
필자의 오랜 체험이나 깊은 사색을 바탕으로 하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수필.
<특징>
수필로서는 그 내용이라든가 문체가 다 같이 중후하며, 필자 자신의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는 신념과 삶의 태도 등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유의점>
수필 문학에 있어서의 교훈적인 경향은 이른바 교훈주의를 생각하게 한다. 즉, 문학 예술은 독자에게 쾌락보다는 교훈을 주려는 의도로 창작된다고 보는 일종의 공리설(功利設)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시나 소설에서처럼 수필에 있어서도 이런 교훈적인 경향에 있어서는 자칫 예술성을 소홀히 하게 되는 예가 많다.
<교훈적 수필의 예>
소(牛)의 덕성을 찬양하면서, 그것을 우리 인간들이 본받을 것을 권장한 이 광수의 '우덕송(牛德頌)'. 일제 치하라는 30년대의 암담한 시점에서 우리 나라 젊은이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일깨우고 있는 심 훈(沈熏)의 '대한의 영웅' 나무의 덕성을 찬양하면서 인간이 그것을 배울 것을 강조한 이 양하(李敭河)의 '나무' 혼란한 사회에서 우리가 바르게 살아가는 태도를 제시한 이 희승(李熙昇)의 '지조(志操)' 등.
<예시 1>
적지아니 탈선이 되었지만, 백 가지 천 가지 골이 아픈 이론보다도 한 가지나마 실행하는 사람을 숭앙하고 싶다. 살살 입술발림만 하고, 턱 밑의 먼지만 톡톡 털고 앉은 백 명의 이론가, 천 명의 예술가보다도, 우리에게는 단 한 사람의 농촌 청년이 소중하다. 시래기죽을 먹고 겨우내 '가갸거겨'를 가르치는 것을 천직이나 의무로 여기는 순진한 계몽 운동자야말로 참다운 대한의 영웅이다.
나는 영웅을 숭배하기는 커녕, 그 얼굴에 침을 뱉고자 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 농촌의 소영웅들 앞에서는 머리를 들지 못한다. 그네들을 쳐다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심훈, '대한의 영웅'에서>
<예시 2>
의욕(意慾)이 있어도 되기가 어려운 것이 세상사거든, 하물며 당초부터 의욕도 없음이랴! 가능, 불가능의 수판만 따져 가지고야 어디서 용기가 생길 것이냐. 그렇다. 의욕과 신념과 용기를 가지자. 희망으로 맞아야 할 신춘(新春)에 '수천석두(水穿石頭, 물이 돌을 뚫는다)'의 희망을 가지자. 얼마나 어려운 일인고! 그러나,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고! <설 의석, '수천석두'에서>
(2) 희곡적 수필
필자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체험한 어떤 사건을 생각나는 대로 서술하되, 그 사건의 내용 자체에 극적인 요소들이 있어서, 대화나 작품의 내용 전개가 다분히 희곡적으로 이루어지는 수필.
<특징>
사건의 전개가 소설에서처럼 유기적, 통일적인 진행을 이룬다. 그리고,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문장에 있어 극적 현제의 시제가 흔히 쓰인다. 즉, 현제 시제를 사용한다.
필자가 어떤 곤란을 겪게 될 때나 슬픈 일을 겪게 될 때,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보여 주는 점에서 각별한 흥미를 끈다.
<희곡적 수필의 예>
자신의 구두 발자국 소리가 기이했던 탓으로, 어떤 낯 모르는 여인에게 자칫 불량배로 오해받을 뻔한 수모를 당한 체험담을 쓴 계 용묵(桂鎔默)의 '구두'.
낯선 산에서 길을 잃고 죽을 뻔한 조난의 체험을 쓴 이 숭녕(李崇寧)의 오봉산 등산기 '너절하게 죽는구나'. 김 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 등.
<예시 1>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일원짜리를 줍니까? 각전(角錢) 한 닢을 받아 본 적이 없읍니다. 동전 한 닢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 한 푼 얻은 돈에서 몇 닢씩 모았읍니다. 이렇게 모은 돈 마흔 여덟 닢을 각전 닢과 바꾸었읍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다양(大洋)' 한 푼을 갖게 되었읍니다. 이 돈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읍니다."<피 천득, '은전 한 닢'에서>
<예시 2>
내 구두 소리가 또그닥또그닥, 좀더 재어지자 이에 호응하여 또각또각, 굽 높은 뒤축이 어쩔 바를 모르고 걸음과 싸우며 유난히도 몸을 일어 내는 그 분주함이란, 있는 마력(馬力)은 다 내 보는 동작에 틀림없었다. 그리하여, 한참 석양 놀이 내려퍼지기 시작하는 인적 드문 포도 위에서 또그닥또그닥, 또각또각 하는 이 두 음향의 속 모르는 싸움은 자못 그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나는 이 여자의 뒤를 거의 다 따랐던 것이다. 2,3보만 더 내어디디면 앞으로 나서게 될 그럴 계제였다. 그러나, 이 여자 역시 힘을 다하는 걸음이었다.<계 용묵, '구두'에서>
(3) 서정적 수필
일상 생활이나 자연에서 느끼고 있는 감상을 솔직하게 주정적,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수필.
<특징>
문장은 흔히 서정문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서정의 내용은 정서, 즉 희(喜) 노(怒) 애(哀) 낙(樂) 애(愛) 오(惡) 욕(欲) 이라고도 설명된다.
교훈적 수필에 공리성이 강하다면, 서정적 수필에는 예술성이 강하다. 그것은 작자의 의도가 자기의 정서적 경험을 독자에게 전달해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으므로 표현에서 주로 기교에 유의하는 것과도 관련된다.
<서정적 수필의 예>
이 효석의 '청포도(靑葡萄)의 사상(思想)', '화초(花草)', 이 양하의 '신록 예찬(新綠禮讚)', 김 진섭의 '백설부(白雪賦)', 이병기의 '백련(白蓮), '난초(蘭草)' 등.
<예시 1>
초라한 내 집이 오늘은 조금도 욕되지 아니하다. 산허리에 외롭게 서 있는 일간 두옥(一間斗屋). 아니, 내집도 이렇게 아담하고 아름다왔던가. 여기도 눈이 쌓이고 달빛이 찼다. 문은 으례 굳게 닫혀 있고, 나를 기다릴 개 한 마리 없다. 그러나, 이것도 오늘 밤에는 나를 조금도 괴롭히지 않는다.<이 양하, '조그만 기쁨'에서>
<예시 2>
어려서 나는 꿈에 엄마를 찾으러 길을 가고 있었다. 달밤에 산길을 가다가 작은 외딴집을 발견하였다. 그 집에는 젊은 여인이 혼자 살고 있었다. 달빛에 우아하게 보였다. 나는 허락을 얻어 하룻밤을 잤다.
그 이튿날 아침, 주인 아주머니가 아무리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러 봐도 대답이 없다.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거기에 엄마가 자고 있었다. 몸을 흔들어 보니 차디차다. 엄마는 죽은 것이다. 그 집 울타리에는 이름 모를 찬란한 꽃이 피어 있었다. 나는 언젠가 엄마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생각하고 얼른 그 꽃을 꺾어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하얀 꽃을 엄마 얼굴에 갖다 놓고 "뼈야 살아라!"하고, 빨간꽃을 가슴에 갖다 놓고 "피야 살아라!" 그랬더니 엄마는 자다가 깨듯이 눈을 떴다. 나는 엄마를 얼싸안았다. 엄마는 금시에 학이 되어 날아갔다.<피 천득, '꿈'에서>
(4) 서사적 수필
인간 세계나 자연계의 어떤 사실에 대하여 대체로 필자의 주관을 개입시키지 않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수필.
<특징>
그 내용이 얼마나 사실 또는 현실에 가까운 것인가, 서술이 얼마나 정확한가 하는 문제가 따르게 된다. 이런 작품을 쓰려면 평소의 날카로운 관찰, 세심한 조사, 올바른 지식이 필요하다.
<서사적 수필의 예>
유명한 작품으로 최 남선의 '백두산 근참기(白頭山覲參記)' '심춘순례(尋春巡禮)' 이 광수의 '금강산 유기(金剛山遊記)', 이 병기의 '낙화암을 찾는 길에'. 김 동인의 '대동강', 노 천명의 '묘향산 기행기' 등이 있다.
이 밖에 필자 자신의 학문에 대해 다양하게 술회하고 있는 양 주동의 '연북록(硏北錄)', 옛날의 선비들에 대해서 뛰어나게 묘사한 이 희승의 '딸깍발이'등이 서사적 수필로 분류된다.
<예시 1>
나의 선친은 내게 호(號)는 지어 주지 않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호라는 것은 나이깨나 먹고 인간으로 틀거지가 잡혀서 사람다운 일을 좀 입내라도 낼 만한 시기가 되어야 하나 가져 보는 것이 그럴 듯하고, 또 이런 나이가 되면 친구끼리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 보다는 피차간에 호를 부르는 것이 점잖다 할까, 고상하다 할까, 정답다 할까, 풍류적이라 할까, 무어라고 꼭 때려서 말할 수는 없지마는 그저 그럴 듯하다고 하여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이 희성, '호변(號辨)'에서>
<예시 2>
두 볼은 야윌 대로 야위어서, 담배 모금이나 세차게 빨 때에는 양볼의 자국이 입 안에서 서로 맞닿은 지경이요, 콧날은 날카롭게 우뚝서서 꾀와 이지(理智)만이 내발릴 대로 발려 있고, 사철 없이 말간 콧물이 방울방울 맺혀 떨어진다. 그래도 두 눈은 개가 풀리지 않고 영채가 돌아서 무력이라든지 낙심의 빛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아래위 입술이 쪼그라질 정도로 굳게 다문 입은 그 의지력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
<예시 3>
궁궐을 쫓겨나온 공주는 온달네 집을 찾아갔다. 눈이 어둡고 늙은 온달 어머니에게 며느리가 되겠다고 하였다. 내 아들은 가난하고 추하므로 귀인이 가까이 할 바가 못 된다고 하면서, 온달은 지금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나무 껍질을 벗기러 산에 가 있는 처지니, 온달과는 혼사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공주가 산 밑에 이르러 온달을 만나, 속 이야기를 했더니, 온달은 성난 모양으로, 이는 여우가 변하여 나를 홀리느라고 그러는 줄 알고 가까이 하지 말라고 소리 지르며 집으로 도망쳐 왔다. 공주는 할 수 없이 뒤 따라, 온달네 집 사립문 밑에서 자고, 다음 날 어머니에게 간청하여 뜻을 이루었다. 그 후, 남편을 출세하게 하여, 나중에는 노하였던 왕도 내 사위, 내 딸이라고 반겼던 것이다.<서 정범, '평강 공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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