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 윤오영
by 송화은율
까치 소리는 반갑다. 아름답게 굴린다거나 구슬프게 노래한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고 기교 없이 가볍고 솔직하게 짖는 단 두 음절 '깍 깍'. 첫 '깍'은 높고 둘째 '깍'은 얕게 계속되는 단순하고 간단한 그 음정(音程)이 그저 반갑다. 나는 어려서부터 까치 소리를 좋아했다. 지금도 아침에 문을 나설 때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 날은 기분이 좋다.
반포지은(反哺之恩)을 안다고 해서 효조(孝鳥)라 일러 왔지만 나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좋다. 사랑 앞마당 밤나무 위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짓더니 그것이 길조(吉兆)라서 그 해 안변 부사(安邊府使)로 영전(榮轉)이 되었다던가, 서재(書齋) 남창 앞 높은 나뭇가지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짓더니 글 재주가 크게 늘어서 문명(文名)을 날렸다던가 하는 옛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까치 소리는 반갑고 기쁘다.
아침 까치가 짖으면 반가운 편지가 온다고 한다. 이 말이 가장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왜냐 하면, 그 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반가운 소식의 예고같이 희망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나는 까치뿐이 아니라 까치집을 또 좋아한다. 높은 나무 위에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다가 엉성하게 얽어 논 것이, 나무에 그대로 어울려서 덧붙여 논 것 같지가 않고 나무 삭정이가 그대로 떨어져서 쌓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소쇄한 맛이 난다. 엉성하게 얽어 논 그 어리가 용하게도 비가 아니 샌다. 오직 달빛과 바람을 받을 뿐이다.
나는 항상 이담에 내 사랑채를 짓는다면 꼭 저 까치집같이 소쇄한 맛이 나도록 짓고 싶었다. 내가 완자창이나 아자창을 취하지 않고 간소한 용자창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정서에서다. 제비집같이 아늑한 집이 아니면 까치집같이 소쇄한 집이라야 한다. 제비집은 얌전하고 단아한 가정 부인이 매만져 나가는 살림집이요, 까치집은 쇄락하고 풍류스러운 시인이 거처하는 집이다.
비둘기장은 아무리 색스럽게 꾸며도 장이지 집이 아니다. 다른 새 집은 새 보금자리, 새 둥지, 이런 말을 쓰면서 오직 제비집 까치집만 집이라 하는 것을 보면, 한국 사람의 집에 대한 관념이나 정서를 알 수가 있다. 한국 건축의 정서를 알려는 건축가들은 한 번 생각해 봄 직한 문제인 듯하다. 요새 고층 건물, 특히 아파트 같은 건물들을 보면 아무리 고급으로 지었다 해도 그것은 '사람장'이지 '집'은 아니다.
지금은 아침 여덟 시, 나는 정릉 안 숲 속에 자리잡고 앉아 있다. 오래간만에 까치 소리를 들었다. 나뭇잎들은 아침 햇빛을 받아 유난히 곱게 푸르다. 나뭇잎 사이사이로 파란 하늘이 차갑게 맑다. 그간 비가 많이 왔던 관계로 물소리도 제법 크게 들려 온다. 나는 어느 날 이른 새벽에 여길 와 본 적이 있었다. 보건 운동을 하러 온 사람, 약물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붐비어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와 보니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윽한 숲 속이 한없이 고요하다. 지금이 제일 고요한 시간이다. 까치들이 내 앞에 와서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이른바 까치 걸음이다. 귀엽다. 손으로 만져도 가만히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사람이 옆에 앉아 있다는 데는 아무 관심이나 의구심도 없이 내 옆에서 깡충깡충 뛰놀고 있다.
<후략>
작자 : 윤오영
형식 : 경수필, 서정적 수필
성격 : 전통적, 교훈적, 관조적, 서정적, 사색적
문체 : 우유체, 간결체, 생략과 비약이 많은 문체
제재 : 까치
주제 : 소쇄(瀟灑)하고 담박(澹泊)한 자유로운 삶의 희구(자연과 일체가 되는 공존적인 삶의 가치)
출전 : 〈방망이 깍던 노인〉(1977)
까치 소리는 반갑다. 아름답게 굴린다거나 구슬프게 노래한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고 기교 없이 가볍고 솔직하게 짖는 단 두 음절 '깍 깍'. 첫 '깍'은 높고 둘째 '깍'은 얕게 계속되는 단순하고 간단한 그 음정(音程)이 그저 반갑다. 나는 어려서부터 까치 소리를 좋아했다. 지금도 아침에 문을 나설 때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 날은 기분 좋다.
반포지은(反哺之恩)을 안다고 해서 효조(孝鳥)라 일러 왔지만 나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좋다. 사랑 앞마당 밤나무 위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짓더니 그것이 길조(吉兆)라서 그 해에 안변 부사(安邊府使)로 영전(榮轉)이 되었다던가, 서재(書齋)남창 앞 높은 나뭇가지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짓더니 글 재주가 크게 늘어서 문명(文名)을 날렸다던가 하는 옛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까치 소리는 반갑고 기쁘다.
아침 까치가 짖으면 반가운 편지가 온다고 한다. 이 말이 가장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 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반가운 소식의 예고같이 희망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 까치 소리의 반가움
나는 까치뿐이 아니라 까치집을 또 좋아한다. 높은 나무 위에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다가 엉성하게 얽어 논 것이, 나무에 그대로 어울려서 덧붙여 논 것 같지가 않고 나무 삭정이가 그대로 떨어져서 쌓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소쇄(瀟灑)한 맛이 난다. 엉성하게 얽어 논 그 어리가 용하게도 비가 아니 샌다. 오직 달빛과 바람을 받을 뿐이다.
나는 항상 이담에 내 사랑채를 짓는다면 꼭 저 까치집같이 소쇄한 맛이 나도록 짓고 싶었다. 내가 오나자창이나 아자창을 취하지 않고 간소한 용자창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정서에서이다. 제비집같이 아늑한 집이 아니면 까치집같이 소쇄한 집이라야 한다. 제비집은 얌전하고 단아한 가정 부인이 매만져 나가는 살림집이요, 까치집은 쇄락하고 풍류스러운 시인이 거처하는 집이다.
비둘기장은 아무리 색스럽게 꾸며도 장이지 집이 아니다. 다른 새집은 새 보금자리, 새 둥지, 이런 말을 쓰면서 오직 제비집 까치집만이 집이라 하는 것을 보면, 한국 사람의 집에 대한 관념이나 정서를 알 수가 있다. 한국 건축의 정서를 알려는 건축가들은 한번 생각해 봄 직한 문제인 듯하다. 요새 고층 건물, 특히 아파트 같은 건물들을 보면 아무리 고급으로 지었다 해도 그것은 '사람장'이지 '집'은 아니다. - 맑고 깨끗한 까치집
지금은 아침 여덟 시, 나는 정릉 안 숲 속에 자리잡고 앉아 있다. 오래간만에 까치 소리를 들었다. 나뭇잎들은 아침 햇빛을 받아 유난히 곱게 푸르다. 나뭇잎사이로 파란 하늘이 차갑게 맑다. 그간 비가 많이 왔던 관계로 물소리도 제법 크게 들려 온다. 나는 어느 날 이른 새벽에 여길 와 본 적이 있었다. 보건 운동을 하러 온 사람, 약물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붐비어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와 보니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윽한 숲 속이 한없이 고요하다. 지금이 제일 고요한 시간이다. 까치들이 내 앞에 와서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이른바 까치걸음이다. 귀엽다. 손으로 만져도 가만히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사람이 옆에 앉아 있다는 데는 아무 관심이나 의구심도 없이 내옆에서 깡충깡충 뛰놀고 있다. - 오랜만에 들어 본 까치소리
나는 일찍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민화(民畵) 하나를 생각한다. 한 노옹(老翁)이 나무 밑에서 허연 배를 내놓고 낮잠을 자는데, 그 배 위에 까치 한 마리가 우뚝 서 있었다. 나는 신기한 그 상상화에 기쁨을 느꼈다. 민화란 어린아이와 자유화(自由畵)같이 천진하고 기발한 데가 있어서 저런 재미있는 그림도 그려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저 까치들을 보고 그것은 기발(奇拔)한 상상이 아니요,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 이지봉(李芝峯)이 정호음(鄭湖陰)의 "산과 물이 바람에 소릴 치며, 강물은 거세게 울먹이는데, 달은 외로이 비쳐 있다."는 시를 보고 '강물이 거세게 이는데 달이 외롭게'란 실경(實景)에 맞지 않는다고 폄(貶)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달이 고요히 밝은 밤중에는 물결이 잔잔한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김백곡(金栢谷)이 황강역(黃江驛)에서 자다가 여울 소리가 하도 거세기에 문을 열고 보니 달이 외롭게 걸려 있었다. 그래서 비로소 그 구가 실경을 그린 명구(名句)인 것을 알았다는 시화(詩畵)가 있다. 나도 그 민화가 실경인 것은 모르고 기상(寄想)으로만 여겼던 것이다.
그 태고연(太古然)한 풍경의 민화 한 폭이 다시금 눈앞에 뚜렷이 떠오른다. 나무 밑에서 허연 배를 내놓고 누워서 잠자는 노옹(老翁), 그 배 위에 서 있는 까치 한 마리. - 까치와 관련된 민화
반포지은(反哺之恩) : 자식이 어버이에게 보은하는 일
길조(吉兆) : 좋은 일이 생길 조짐
영전(榮轉) : 지금보다 더 좋은 지위로 전임하는 일
문명(文名) : 글에 잘하여 드러난 명성
삭정이 : 산 나무에 붙어 있는 말라 죽은 가지
소쇄(瀟灑) : 깨끗하고 시원함. 기운이 맑고 깨끗함
어리 : 덩어리. 덩치를 이룬 모습
용하게도 : 재주가 남달리 뛰어나게도. 기특하고 장하게도
완자창(卍字窓) : 창살을 卍자 모양으로 만든 창. 만자(卍字)의 변한 말
아자창(亞字窓) : 아(亞) 글자 모양으로 된 문살의 창
용자창(用字窓) : 용(用) 글자 모양으로 된 문살의 창
단아(端雅): 단정하고 아담함
보건 운동(保健運動) : 보건 체조. 건강 증진을 꾀하는 체조
약물 : 약수물. 먹어서 몸에 약이 된다는 샘물
까치걸음 : (흔히 아이들이 기뻐할 때) 두 발을 모두어 뛰어노는 종종 걸음
의구심(疑懼心) : 의심하여 두려워하는 마음
까치 소리는 반갑다 : 글이 처음 시작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간결한 도입은 독자의 흥미를 일으키는 동시에 글 전체의 주제와도 긴밀하게 관련된다.
사랑 앞마당 - 기쁘다. : 까치의 길조라는 의미와 관계 없이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소리이기에 반갑고 기쁘다는 뜻. 자연에 대해 느끼는 순수한 친밀감의 표현
엉성하게 얽어 - 받을 뿐이다. : 까치집은 엉성하게 얽어 놓았지만 신기하게도 비가 새지 않는다는 것의 문학적 표현
비둘기장은 아무리 색스럽게 꾸며도 장이지 집이 아니다 : 비둘기장은 아늑하고 소쇄한 맛이 나질 않아 집이랄 수 없고, 다만 새장으로서 생각할 수밖에 없음을 표현한 구절이다. 앞의 '까치집은 쇄락하고 ~ 거처하는 집이다'의 구절과 연관시켜 생각한다.
까치들이 내 앞에 와서∼귀엽다 : 까치들이 작자의 앞에서 뛰어 다니는 모습을 표현한 구절로 까치에 대한 작자의 반가움이 드러난다.
제비집같이 - 집이라야 한다. : 아늑하되 소쇄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집이라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저 까치들을∼깨달았다 : 인간과 친근한 까치의 모습을 기발한 상상이라고 생각했다가 체험에 의해 사실임을 깨닫는 부분이다.
이 글은 까치가 지닌 생리를 살피고 그와 관련된 여러 일화를 서술화함으로써 자연과 교감하는 삶의 가치를 말하고 있다. 자연의 사물에 대한 관찰을 통해 인생을 거울에 비추어 보는 전형적인 수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은이의 주장을 두드러지게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이야기의 전개 속에 자연스럽게 인간과 자연이 조화되어야 함을 설득한다. 인간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까치의 존재가 인생에 주는 교훈과 함께 자연과 일체가 되는 이상적인 삶의 양태를 제시하고 있다.
수필의 주제 제시 방법
수필은 논설문이나 설명문 등 실용적 산문이 아닌 문학적 산문이므로, 여러 가지 면에서 이들과 다르다.
(1) 제재 선택면에서 : 심리적 관심과 주관이 작용한다.
(2) 주제 제시면에서 : 주제의 제시가 미해결 상태로 제시된다.
(3) 해석 방식면에서 : 주관적, 개성의 방식에 의존한다.
(4) 표현 동기면에서 : 주제가 직접적으로 제시되기보다 암시적, 함축적으로 제시된다.
(5) 표현 기술면에서 : 과학적 논증보다는 비유적, 심정적 논리 체계가 허용된다.
윤오영의 수필 세계
1973년에 나온 제 1수필집 〈고독의 반추(反芻)〉는, 그가 조심스럽게 써낸 첫 10 년간의 글에서 추려 낸 것들로,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우리 수필 문학의 획기적인 이정표(里程標)의 구실을 하고 있다.
첫째로, 그는 전통에 연결되는 우리글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싫증적으로 보여주었고, 한편 그의 글은 우리의 향수를 풀어 주면서도 청신하고 유려(流麗)하다.
둘째로, 그는 수필이 문학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여타의 글과 엄격히 구별되어야 하고, 다른 장르의 작가 이상의 수련과 습작이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몸소 실천했다.
셋째로, 수필의 생명인 자아(自我)의 경지(境地)를 살려 나가는 점을 뚜렷하게 한 의미를 인식하게 한다. 그의 수필 속에는, 고독에 시달리고, 고독을 음미하고, 고독을 사랑하기도 하는 품위와 기골(氣骨)과 통찰력(洞察力)을 갖춘, 그러면서도 정감(情感)의 순박함을 지닌 지성인으로서의 그의 인간이 투영되어 있다.
윤오영에 대한 피천득의 평가
그의 수필이 소재는 다양하다. 그는 무슨 제목을 주어도 글다운 글을 단시간 내에 써낼 수 있다. 이런 것을 작자의 역량이라고 하나, 보다 평범한 생활에서 얻는 신기한 발견, 특히 독서에서 오는 풍부하고 심각한 체험이 그에게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 소득은 그가 타고난 예민한 정서, 예리한 관찰력, 놀랄 만한 상상력, 그리고 그 기억력이 산물이다.
이지봉(李芝峯)
조선 선조 때의 실학자 이수광을 일컫는다. 우리 나라 에서 최초로 서학을 도입했으며, 〈지봉유설(芝峯類說)〉이란 책을 지어 어원(語源)에 관한 기록과 천주교 지식을 소개했다.
정호음(鄭湖陰)
조선 성종∼선조 때의 문신 정사룡(鄭士龍)을 일컫음. 시문(時文), 음률(音律)과 글시에 뛰어났음.
김백곡(金栢谷)
조선 선조∼숙종 때의 시인 김득신(金得臣)을 일컫음.
'까치'라는 대상에 대한 작자의 관조적 접근
소재(까치)에 대한 작자의 관조적 접근은, 까치와 우리의 전통적 정서와 사유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라는 데서 시작하고 있다. 아울러 까치와 관련된 우리의 풍속, 의식 등 작자 특유의 동양적 정신 세계속에서 조명하면서 자연과 교감(交感)하던 우리 선인들의 지혜와 넉넉함의 정신을 새롭게 음미하고 있다.
(1) 까치 소리에 대한 통찰 : 까치 소리의 음정(音程)에 대한 반가움의 감정과 작자의 주관적 정서를 고백하고 까치에 얽힌 전통적 길조(吉兆) 의식을 소개하였다.
(2) 까치집에서 느끼는 의미 : 소쇄하고 담박한 느낌의 까치집은 별다른 장식이 없고, 자연 그 자체의 일부로서 작자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주거관(住居觀)과 일치됨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인의 집에 대한 관념이나 정서와 상통하고 있음을 관조하고 있다.
(3) 정밀한 새벽 산길에서 까치를 만나는 정감의 의미 : 새벽 정릉 숲 속에서 만났던 까치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킴으로써 그 귀엽고 다정한 까치의 모습과 함께, 인간과 자연이 꾸밈없이, 거리감 없이 교유(交遊)할 수 잇는 경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4) 민화(民화)속에서 보았던 까치의 모습 : 우리 민화에 나타나 있는 까치의 모습을 통해 속화(俗化)되지 아니한, 극히 자연스러운 자연과 인간의 합일의 경지를 생각하고, 그것이 과장된 그림이 아니라 하나의 실경(實景)으로 존재할 수 잇음을 밝히면서, 선인들의 의식 세계가 그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음을 스스로 깨닫고 있다.
'까치'의 주제 의식
(1) 까치에 관련된 덕스러운 고사(古事)들을 배경으로 까치의 생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솔직함, 담박스러움, 자연의 본성에 충실할 수 있는 삶의 지혜 등을 각박하고 허영에 넘치는 현대인들에게 교훈적으로, 그러나 암시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잇다.
(2) 낮잠 자는 노옹(老翁)의 허연 배 위에 우뚝 서 있는 까치를 그린 민화 한 폭의 이야기를 결말 부분에 삽입, 제시함으로써 그것이 단순한 상상화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합일된 경지를 꿈꾸고 실천했던 선인들의 모습이 실경(實景)으로 나타난 것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진술 과정을 통해 작자는 삶의 이상적 경지로서 인간이 자연속에 합일(合一)되어 조화를 이루는 상태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까치'의 표현상의 특징
(1) 간결하고도 부드러운 문체를 구사하고 있는데, 이는 소쇄하고 담백한 삶의 모습을 추구하는 작자의 주제 의식과 잘 조화를 이룬다.
(2)예스러운 고사와 인용을 적절히 동원함으로써 이 작품의 저변에 관류하는 동양적 정신 세계의 대한 지향을 잘 이끌어 나가고 잇다.
(3)작자 자신의 일상적 경험이나 감회, 소망 등을 별다른 수사학적 기교를 부리지 않고, 차분히 제시함으로서 안정된 친근감을 불러일으킨다.
수필과 다른 문학 장르와의 비교
시 : 운문, 이미지만으로 이루어짐. 창조적 표현
수필 : 산문, 설명이 필요함. 구성적 표현
소설 : 허구(虛構)의 세계
수필 : 사실(事實)의 세계
희곡 : 객관적 진술의 문학
수필 : 주관적 진술의 문학
수필의 표현 방법
(1) 설명(說明) :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알기 쉽게 풀이하여 일러주는 진술 방식.
(2) 묘사(描寫) : 모습이나 소리, 특징 등을 그림으로 그리듯이 자세하고도 구체적으로 그려 보이는 진술 방식.
(3) 서술(敍述) : 어떤 사물의 움직임이나 사건의 진행 상태를 그려 보이는 진술 방식. 서사(敍事)라고도 한다.
(4) 설득(說得) : 글쓴이가 독자로 하여금 믿거나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하여 논리적 근거를 보이거나 감정에 호소하는 진술 방식.
까치
까마귀과에 속하는 새. 가치·가티·갓치·가지라고도 하며, 한자어로는 작(鵲)·비박조(飛駁鳥)·희작(喜鵲)·건작(乾鵲)·신녀(神女)·추미(芻尾)라고도 한다. 학명은 Pica pica sericea GOULD.이다.
〔생 태〕
까치는 유라시아대륙의 온대와 아한대, 북미주 서부 등지에서 번식하며, 우리 나라에서는 제주도와 울릉도를 제외한 전지역에서 볼 수 있는 텃새이다.
몸길이는 45㎝ 정도로 까마귀보다 작으나 꼬리는 길다. 어깨·배와 첫째 날개깃 등은 흰색, 나머지 부분은 녹색이나 자색, 광택이 있는 검은색이며, 부리와 발도 검다. 인가 부근 활엽수에 둥우리를 틀며, 한배에 5, 6개의 알을 낳아 17, 18일간 포란, 부화한다.
부화된 뒤 22∼27일이 지나면 둥우리를 떠난다. 다 자란 까치는 거의 번식된 곳에서 생활하나, 어린 새는 무리지어 잡목림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먹이는 새알과 새새끼, 쥐·뱀·개구리·올챙이·작은 물고기 등의 동물성과 쌀·보리·콩·감자·사과·배·복숭아·포도·버찌 등을 가리지 않고 먹는 잡식성이다. 1964년 한국일보 과학부의 ‘나라새 뽑기 운동’에서 까치가 영예로운 나라새로 뽑혔으며, 그 뒤 까치를 보호조로 지정하고 포획을 규제하고 있다.
〔민속과 상징〕
까치는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과 친근하였던 야생조류로서 일찍부터 문헌에 등장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기록된 석탈해신화 ( 昔脫解神話 )에는 석탈해를 담은 궤짝이 떠올 때 한 마리의 까치가 울면서 이를 따라오므로 까치 ‘작(鵲)’자의 한 쪽을 떼어가지고 석(昔)으로써 성씨를 삼았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신라 효공왕 때 봉성사 ( 奉聖寺 ) 외문 21칸에 까치가 집을 지었다고 하였고, 신덕왕 때에는 영묘사(靈廟寺) 안 행랑에 까치집이 34개, 까마귀집이 40개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보양이목조(寶壤梨木條)에도 보양이 절을 지을 때 까치가 땅을 쪼고 있는 것을 보고 그곳을 파서 예전 벽돌을 많이 얻어 그 벽돌로 절을 지었는데, 그 절 이름을 작갑사(鵲岬寺)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까치는 상서로운 새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까치를 죽이면 죄가 된다.’는 속신이 전국에 퍼져 있으며, ‘아침에 까치가 울면 그 집에 반가운 사람이 온다.’고 한다.
경기·충청 등 중부지방에서는 까치가 정월 열나흗날 울면 수수가 잘 된다고 믿고 있으며, 까치가 물을 치면 날이 갠다고 한다. 또한, 호남지방에서는 까치둥우리가 있는 나무의 씨를 받아 심으면 벼슬을 한다는 속신이 있다.
충청도에서는 까치집을 뒷간에서 태우면 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까치집 있는 나무 밑에 집을 지으면 부자가 된다는 속신도 중부지역 일원에 널리 퍼져 있다. ≪동의보감≫에는 오래된 까치집은 전광(癲狂:미친 병)·귀매(鬼魅)·고독(蠱毒:뱀·지네·두꺼비들의 독기)을 다스리는데, 이를 태워 재로 만들면서 숭물(崇物)의 이름을 부르면 낫는다고 하였다.
이처럼 까치는 반가운 사람이나 소식이 올 것을 알리는 새로서, 그리고 부자가 되거나 벼슬을 할 수 있는 비방을 가진 새로서 우리 민족에게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시풍속 중에 칠월칠석은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놓은 오작교(烏鵲橋)를 건너서 만나는 날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칠석에는 까마귀나 까치를 볼 수 없다고 하며, 칠석날을 지난 까치는 그 머리털이 모두 벗겨져 있는데, 그것은 오작교를 놓느라고 돌을 머리에 이고 다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전설에서 오작교는 남녀가 서로 인연을 맺는 다리로 알려졌다. 남원의 광한루에 있는 오작교는 바로 이도령과 성춘향이 인연을 맺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경상북도 경기도 서면에는 ‘까치성’이라는 작은 토성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신라의 김유신이 백제를 공격할 때 군사를 이끌고 그곳에 이르자 이상한 까치가 날아와 진영을 돌다가 대장기 끝에 앉았다.
김유신(金庾信)이 칼을 빼어들고 까치를 향하여 호통을 치자 까치는 한 절세미녀로 변하여 땅에 떨어졌다. 그 여자는 백제의 공주인 계선(桂仙)으로 신라군의 동정을 염탐하러 왔던 것이다. 김유신은 계선의 항복을 받은 뒤 진군을 계속했는데, 그 뒤로 그 성을 ‘까치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 이외에도 까치에 관한 설화는 많다. 〈까치의 보은〉으로 조사된 설화는 과거보러 가는 한량이 한 수쿠렁이한테 잡아먹히게 된 까치를 그 구렁이를 죽이고 살려주었는데, 나중에 한량이 죽인 구렁이의 암컷의 보복으로 죽게 되었을 때 머리로 절의 종을 받아 종소리 세 번을 울려 한량을 구하고 까치는 죽었다는 이야기로서 전국 각지에 전승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까치는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새로 되어 있다. 경상북도 영주에 있는 부석사는 까치가 나무껍질을 물어다 떨어뜨린 곳에 세운 절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한, 뱀에게 잡아먹히게 된 까치를 구해준 사람이 뒤에 뱀의 독이 있는 딸기를 먹고 죽었는데, 까치가 온몸을 쪼아 독을 제거하여 살아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와 같이 설화에는 까치가 은혜를 알고 사람의 위기를 구해주는 새로 나타난다. 민요에도 까치가 등장한다. 아이들이 이를 갈 때 빠진 이를 지붕에 던지며 “까치야, 까치야, 너는 헌 이 가지고, 나는 새 이 다오.”라는 동요를 부르기도 한다.
아이들의 눈에 티끌이 들어갔을 때도 그것이 나오도록 할 때 노래를 부르는데, 거기에도 까치가 등장한다. “까치야, 까치야, 내 눈에 티내라, 안 내주면 네 새끼 발기발기 찢겠다.” 이 밖에도 까치는 민요와 유행가의 소재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東醫寶鑑, 芝峯類說, 物名考, 閨閤叢書, 韓國民間傳說集(崔常壽, 通文館, 1958), 韓國民謠集(任東權, 東國文化社, 1960), 한국의 禁忌語·吉兆語(金聖培, 正音社, 1981), 한국동식물도감 25(元炳旿, 文敎部, 1981).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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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