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와 거북 이야기
by 송화은율원숭이와 거북 이야기
‘마히르’라는 이름을 가진 원숭이가 살았습니다. 그는 원숭이들의 왕으로, 영리하고 재주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몸이 쇠약해지자 젊은 원숭이들이 공격을 하였고, 마침내는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마히르는 바닷가로 피신해서 한 무화과나무 위에 거처를 정했습니다. 어느 날, 마히르는 무화과를 따 먹다가 그 중의 한 개를 물에 빠뜨렸습니다. ‘퐁당’ 하는 소리가 아름다운 장단으로 들려왔습니다. 이에 흥미를 느낀 마히르는 무화과를 먹고 던지고 하면서 흥겨운 가락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마히르는 이 놀이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마히르의 이런 놀이 덕분에 포식을 하게 된 이가 생겨났으니 바로 나무 밑을 거닐던 거북이었습니다. 거북은 무화과가 떨어질 때마다 바쁘게 그것을 주워 먹었습니다. 며칠 간 배부르게 얻어먹은 거북은 원숭이한테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원숭이가 자기를 위해 애써 열매를 던져 준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원숭이와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말을 건네면서 친구로 지내자고 제안했습니다.
원숭이 역시 그의 제안에 선뜻 동의(同意)하였고, 둘은 곧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한편, 거북의 아내는 남편이 오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 옆집 아낙을 찾아가 의논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그이한테 사고가 일어났나 봐요. 누구한테 잡혀간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깜깜무소식일 리가 없어요.”
“아직 모르고 계셨소? 댁의 남편은 해변에서 아주 즐겁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원숭이를 만나서 같이 먹고 나시느라 세월 가는 줄도 모르시나 봐요. 바로 그 원숭이 때문에 댁의 남편이 외박을 하는 거라고요.”
거북의 아내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나요?”
옆집 아낙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댁의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아픈 척하고 누워 있으라고요. 그러면 병명과 증세를 물을 거 아니에요? 그 때 원숭이의 심장이 특효약이라고 말해요. 의사들이 내린 처방이라고 말이에요.”
얼마 후에 거북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몸져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물었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소? 어디가 얼마만큼 아픈 거요?”
그러자 옆집 아낙이 나서며 거들었습니다.
“지금 굉장히 위독해요. 의사들 말에 따르면 원숭이의 심장밖에는 약이 없대요.
거북이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물 속에 사는 우리들이 어디서 원숭이 심장을 구하겠습니까?”
거북은 고심에 빠졌습니다. 그 때, 바로 친구 원숭이 생각이 났습니다.
‘어떻게 하지? 친구를 이용해야 하나? 그럴 수밖에 없겠지. 친구에겐 큰 죄를 짓는 일이지만, 그래도 아내를 잃는 편보단 낫지 않은가? 어진 아내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배필,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지!’
거북은 서둘러 해변으로 나갔습니다. 원숭이가 그를 반기며 물었습니다.
“형제여, 그 동안 왜 안 나왔나?”
거북이 대답했습니다.
“염치가 없어서 그랬다네. 자네가 베풀어 준 우정에 대해 어찌 보답해야 할지 막막했다네. 오늘 자네를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은데, 어떤가? 와 주겠나? 그리한다면 더없이 고마운 일이겠네.”
그러고는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온갖 과일이 많이 나는 섬에 있다네. 무릇 친구 간에 우정을 돈독히 하기 위해선 친구네 집을 방문해서 음식을 함께 즐기며 그 가족들과도 가까이 어울리는 것이 최고라네. 자네는 아직 우리 집에 와서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지 않은가? 그 점이 항상 미안했다네.”
원숭이가 대꾸했습니다.
“친구 간에 필요한 것은 순순하게 서로를 아끼는 마음뿐일세. 그 외에 뭐가 더 필요하겠나?”
거북이 말했습니다.
“그렇긴 하네. 하지만,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 우정이 더욱 확고해질 것이네. 육지 동물들을 보게나! 그들은 함께 먹이를 먹을 때 친해지지 않는가? 여보게, 나는 자네를 꼭 우리집에 초대하고 싶네. 그렇지만 억지로 강요는 하지 않을 것일세.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지혜로운 사람은 친구에게 어떤 일을 강요하지 않느니라. 자칫하다간 어미 소의 젖을 너무 오래 빨다 세 어미한테 밀쳐 내진 송아지 꼴이 되기 때문이니라.
그러니 부담가지지 말게.“
원숭이가 말했습니다.
“자네의 뜻이 정녕 그렇다면 기꺼이 가겠네.”
거북이 반가워하며 말했습니다.
“자, 내 등에 타게나. 잘 모시리다.”
그래서 원숭이는 나무에서 내려와 거북의 등에 올라탔습니다. 거북은 원숭이를 태우고 열심히 헤엄을 쳤습니다. 그러나 얼마쯤 가더니 잠시 멈추어서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마음 속에 품은 흉계(凶計)가 떠올라 고민에 휩싸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친구를 속이다니……. 과연 이웃집 아낙의 말만 믿고 친구를 이용해야 하는가? 혹시 그 아낙이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까? 황금의 진가는 불 속에서 시험해 보고, 남정네들의 됨됨이는 돈 거래를 통해 알아보고, 말이나 당나귀의 힘은 짐을 실어 나르게 해 보면 알 수 있지만, 여인네들의 계략은 시험해 볼 방법이 없으니……….“
그 때, 원숭이가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무슨 근심이라도 있는가?”
거북이 대답했습니다.
“사실은 집사람이 병을 앓고 있네. 그 생각만 떠오르면 가슴이 저린다네. 집안에 우환이 있다 보니 그 동안 자네한테도 소홀했다네. 마음은 그렇지 않았지만 말일세.”
원숭이가 위로했습니다.
“여보게, 우리는 친구가 아닌가? 근심이나 고통이 있으면 함께 나누세.”
거북은 “고맙네. 그렇게 하겠네.” 하고 대답한 뒤, 열심히 헤엄을 쳤습니다. 그러나 약 한 시간쯤 지나자 또 멈추어 섰습니다.
그 때, 원숭이의 머릿속에는 퍼뜩 의심이 일어났습니다.
‘이유도 없이 자꾸 멈추며 천천히 가는 것이 이상해! 변심하여 우정을 저버리고 나를 해칠지도 모르겠군. 마음만큼 쉽게 변하는 것은 없으니까! 그러기에 예로부터 이러한 말이 내려오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친척, 자식, 형제, 친구의 마음을 항상 유심히 살펴야 하느니라. 어떤 일이든지, 어떤 순간이든지 그들의 말과 행동을 주시해야 하느니라.
또, 선현(先賢)들은 이렇게 말씀하셨지.
친구에게 의심이 가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계하여라. 그리고 그의 말고 행동을 날카롭게 분석하여라. 만일, 네 의심이 사실로 판명난다면 너의 위기를 모면하게 되니 다행이고, 반대로 네 의심이 괜한 걱정으로 판명난다면 너의 관찰력을 강화한 셈이니 득이 되느니라. 따라서, 의심해서 손해 볼 일은 없느니라.
아, 정말 조심해야겠군.‘
원숭이는 이런 의심을 하며 거북에게 물었습니다.
“여보게, 왜 자꾸 멈추는 건가? 또 다른 걱정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거북이 대답했습니다.
“자네를 초대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성찬을 차릴 수가 없을 듯해서 그런다네. 집사람만 아프지 않다면…….”
원숭이가 위로했습니다.
“걱정하지 말게나. 걱정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나? 부인을 낫게 할 수 있는 약이나 어서 찾게! 옛말에도 있지 않나?
돈을 써야 할 네 가지 경우가 있으니, 첫째 자선을 베풀 때, 둘째 위급 상황에 처했을 때, 셋째 자식을 기를 때, 넷째 아내들, 특히 어진 아내들을 뒤할 때이니라.
그러니 나는 괜찮네.“
거북이 말했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헤아려 주니 내 모든 걸 털어놓으리다. 사실은 우리 집사람의 병에는 원숭이 심장이 특효약이라고 하네.”
순간 원숭이는 정신이 아뜩해졌습니다.
‘아뿔사! 늘그막에 욕심을 부리다가 이런 변을 당하는군!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은 평온하고 안락하게 살지만,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고통과 곤경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옛말이 꼭 들어맞는군. 기지를 발휘해 이 함정에서 벗어나야 해!‘
잠시 후, 원숭이는 거북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나, 왜 진작 말하지 않았나? 내가 집을 나서기 전에 알려 주지 그랬나? 우리 원숭이들에게는 친구 집을 방문 할 때마다 심장을 꺼내어 가족에게 맡겨 두거나 일정한 곳에 보관해 두는 관습이 있다네. 그 이유는 말일세, 친구 집에 가서 혹시 그 집 여인네들과 마주치면 연정을 느끼게 될까 봐 그런다네. 그럴 경우엔 심장이 없어야 뒤탈이 없지 않겠는가?”
거북이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심장이 지금 어디 있단 말인가?”
원숭이가 대답했습니다.
“그거야 나무 위에 있지! 거기까지 데려다 준다면 당장 그것을 꺼내 오겠네.”
거북이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혼잣말을 했습니다.
‘굳이 속임수를 쓰지 않아도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군. 원숭이란 놈이 이렇게 순순히 응할 줄은 몰랐어.’
거북은 원숭이를 해변으로 데려다 주었고, 원숭이는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거북은 설레는 가슴으로 나무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원숭이가 내려오지 않자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친구여, 왜 이리도 오래 걸린단 말인가? 심장을 가지고 어서 내려오게나.”
원숭이가 대답했습니다.
“어림도 없는 소리! 내가 그렇게 어리석게 보이는가? 내가 얼뜨기인 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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