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바리데기 바리 공주야
by 송화은율바리데기 바리데기 바리 공주야
옛날, 우리 나라에 삼나라라고 있었다. 이 나라에는 어비 대왕이라는 훌륭한 임금님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었는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낮에는 나랏일로 시간을 보낸다지만 밤이면 무척 고독하였으니, 바로 중전이 계시지 아니한 것이다.
“안 되겠다. 내 나이 이제 이팔청춘이니 중전을 맞이해야겠다. 전국에 간택령을 내려라. 여러 신하들은 왕비감을 찾아오라.”
이런 바람에 전국이 술렁이었다. 누가 왕비가 될 것인가? 한 번 뽑고, 두 번 뽑고, 세 번 뽑고……. 속속 진행이 되는 중에 길대 부인이라는 중전감이 등장하였다.
어여쁘기도 할싸, 너그럽기도 할싸,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왕비감이로다. 어비 대왕은 대만족이었다. 한시바삐 중전과 함께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이전 풍습대로 유명한 점쟁이에게 가서 물어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아서, 세상을 오래 산 궁녀에게 나라가 잘 되고 못 됨을 점칠 만한 점쟁이를 알아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천하궁이라는 궁전에 갈이 박사가 있사옵니다.”
“오, 그러냐? 그러면 갈이 박사를 찾아가거라.”
이리하여서 상궁이 진주 석 되 서 홉과 금돈 닷 돈, 자금 닷 돈을 간추려서 천하궁에 사는 갈이 박사를 찾아갔다. 갈이 박사는 백옥 쟁반에 흰 쌀을 흩어 놓고 점을 치기 시작하였다.
“음, 대왕마마께서 금년에 십칠 세요, 중전마마는 십육 세라……. 금년에 혼사를 치르면 일곱 공주를 볼 것이고, 내년에 혼사를 치르면 세 나라를 다스릴 왕자를 볼 것이오.”
이러하자 상궁이 즉시 돌아와서 대왕에게 아뢰니, 대왕이 껄껄 웃으신다.
“하하하, 아무리 점이 용하다 한들 제 어찌 다 알쏘냐? 나는 장가 가기가 일각이 여삼추니 어찌 내년까지 참으랴? 하루가 열흘 맞잡이다. 속히 거행하여라.”
이러니 누가 반대할 것인가? 즉시 혼사를 위한 준비가 속속 진행되었다. 날을 정할진대 어느 날인가? 칠월 칠석이었다. 바로 견우와 직녀가 만나서 그 동안의 온갖 마음을 다하는 날이다. 길례, 대례, 바로 임금님의 혼사가 실로 휘황찬란하게 치러졌다.
세월은 흘러 흘러가기만 한다. 신혼의 세월이란 무엇인가? 아이가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잔뼈가 녹는 듯하구나. 굵은 뼈가 휘는 듯하구나. 수라에서 생쌀내가 나는구나. 장국에서 날장내가 나는구나. 물에서 해감내가 나는구나. 나물에서 풋내가 나는구나. 왜 이리 음식이라는 것이 모두모두 입맛을 떨구느냐?”
중전께서 입덧이 심하구나. 보통 심한 것이 아니구나. 저 비위를 누가 맞출꼬?
우선 태몽(胎夢)이 궁금하구나. 품 안에 달이 돋았나이다. 오른속에 파란 복숭아 꽃 한 가지를 꺾어들과 있었나이다. 이러한 태몽은 누가 해석하여 줄 것인가? 처음 찾아갔던 천하궁에 사는 갈이 박사를 찾아가니, 산호로 만든 상이며 백옥의 밥상에 흰 쌀을 던지더니 이리저리 덜어 가며 점을 치누나.
“아하, 태기는 분명하오나 공주 태기로소이다.”
이러자 상궁이 즉시 임금께 아뢰니,
“점이 용하다 하나 제 어찌 다 알 것이냐?”
이렇게 웃어넘겼다. 이리저리 열 달이 되어서 떡 낳고 보니 과연 공주로다.
“허허허, 공주를 낳고 보면 세자인들 아니 못 낳겠느냐? 귀하게 길러라.”
석 달이 지나서 다리당씨라는 이름과 청대 공주라는 별호를 내려주었다. 젊은 임금과 중전이 어찌 그냥 있을 것인가? 또다시 배가 불러 온다.
“이번 꿈을 이를진대 칠성별이 떨어지고 오른손에 빨간 복숭아꽃 한 가지를 들고 있었나이다.”
어서 가서 천하궁의 갈이 박사에게 점을 보라 하니, 궁녀가 갔다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공주를 낳을 것이라고 한다.
임금님이 허허 웃고 말았는데, 허허허가 진담이로구나. 둘째도 공주로구나.
“허허, 공주를 낳았으니 세자인들 못 낳겠느냐?”
머지않아서 또 중전마마의 배가 불러 온다. 이제 태몽이고 점이고 무엇이고 알아볼 것도 기다릴 것도 없이 빨리 이야기를 하자꾸나. 아니, 노래를 하자꾸나.
“셋째 공주가 나왔나이다.”
“허허허, 다음엔 세자겠지. 참아보자.”
“넷째 공주가 나왔나이다.”
“다섯째 공주가 나왔나이다.”
“여섯째 공주가 나왔나이다.”
“허허허허, 또 기다려 보자. 세자가 왜 아니 나오겠느냐?”
일곱째를 잉태하셨나이다.“
“아직 안 나왔다면 어디 태몽이나 들어 보자.”
그리하여 중전을 불러 물어보니 아뢰는 말씀이 이러하다.
“대명전(大明전殿) 대들보에 청룡과 황룡이 엉켜 보이고, 오른손엔 보라매, 왼손엔 백마를 받아 보고, 왼무릎엔 흑거북을 안아 보고, 양 어깨에 일월이 돋았나이다.”
아, 그렇다면 이것은 십장생에 들어가는 것들이요, 군왕을 비유한 것들이니 이번에는 필시 세자일 것이오.“
대왕은 기뻐하였다. 중전도 그럴 것 같아서 기뻐하였다. 그러나 어찌 마음대로 남녀 생산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못 할레라, 못할레라, 아들 낳고 딸을 낳고 골라 낳기는 인력(人力)으로 못 할레라. 누가 딸만 낳고 싶어서 오 공주, 칠 공주만 낳을 것인가? 못 할레라, 마음대로 아들딸 골라서 못 낳을레라.
자, 중전마마는 장차 어찌될 것인가?
석 달, 넉 달, 다섯 달, 여섯 달, 준비 준비 해산 준비. 일곱 달 팔딱팔딱 아기 노네. 여덟 달 조심조심. 아홉 달 조마조마. 열 달 으잉으잉. 아기 나왔네.
“아이구! 으응, 흑흑, 아이구.”
갑자기 중전이 계신 후원에서 무슨 울음소리인가? 대왕이 놀라 뛰쳐나가려 하니 상궁이 벌벌 떨며 아뢰는구나.
“아뢰나이다, 아뢰나이다, 아뢰…….”
“어허, 조급하다. 어서 일러라. 세자냐! 응? 세자겠지. 그런데 왜 우느냐? 죽었더라는 말이냐?
“일곱째, 일곱째, 아이구 말을 어찌하오리까?”
이미 다 하지 아니했느냐? 그래 칠 공주라는 말이냐? 허허허, 허허허허. 세상에 이런 일이 있더란 말이냐?“
아, 이를 어찌하라는 말인가? 이 사직을 어찌하라는 말인가? 중전이 평생 딸자식만 생산하다가 말라는 말인가? 왕이라도 이리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인가?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그리 많았기에 나라를 끊으며 신하를 맡기지 못한다는 말인가? 야속하구나, 원망스럽구나, 아니 답답하구나. 에잇 이제 난 어쩌란 말인가?
왕은 한참 탄식을 하다가 이 자식을 버리기로 하였다. 서해 용왕에게 진상품으로 싸 보내기로 하였다. 옥함을 짜서 아이를 넣고 ‘국왕 공주’라 써서 바다로 띄우기로 한 것이다.
“대왕마마, 모질기도 합니다. 어찌 내 핏줄을 버리십니까? 이 핏덩이를, 젖 한 번 물리지 아니한 이 어린 자식을 그리 매정하게 버리신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죽이는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신하 중에서 자식이 벗는 집에 양녀라도 주시옵소서.”
“중전은 딸만 낳고도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는 말이오?”
“그러면 이름이라도 지어서 보내소서. 부모가 무정하게 버렸다고 하여서 ‘버린 자식’이라고 하소서. 버려도 버리고 던져도 버린 ’버리버리 버리데기, 바리바리 바리데기, 바리 공주‘하고 하소서.”
그것까지 어찌 못 한다고 할 것인가? 대왕마마와 중전마마가 아이 이름을 ‘바리공주’라 짓고, 쓰고, 함에 넣어서 강에 버렸다. 암, 버린 자식이 완연하구나.
한 번 물에 들어간 함이 솟아난다. 다시 집어 넣었더니 또 솟구친다. 나중에 던져 버리니 이번에는 금거북이 등에 지고 나온다. 신하들이 이제 더 있지 아니하고 떠나가 버린 그 자리를, 조금 후에 석가세존이 제자를 데리고 자나가다가 궁금하게 여기고 다가가서 그 돌함을 꺼내 열어 보나. 어헛 여자 갓난아이가 들어 있구나.
이리하여서 바리 공주는 바리공덕할멈과 바리공덕할아비의 수양딸이 되었던 것이다.
이 할아비와 할멈은 세상에서 훌륭한 공덕이라고 하는 절을 지어 주는 공덕, 다리를 놓아 주는 공덕, 숙소를 지어서 행인에게 잠자리를 마련하여 주는 공덕, 그리고 헐벗은 사람에게 자기 옷을 벗어 주는 시주보다도 젖 없는 자손에게 젖을 먹여 주는 공덕이 제일이라고 여기며 그렇게 실천하고 산 노인들이었다.
“한때 젖 주기보다 평생을 길러 주는 공덕이 진짜 공덕이니까 그리하여라. 그러면 이 아이가 복이 있어서 옷도 주고 밥도 주고 집도 줄 것이니 걱정 말고 데려다가 길러라.”
어허, 이러한 부처님의 간청으로 바리공덕할멈 내외가 길렀던 공주는 무럭무럭 잘도 자라며, 영리하기가 짝이 없고 덕성스럽기가 그지없이 잘 크는구나. 주워 기른 천둥(賤童)이냐, 굴러 온 업둥이냐? 네 신세를 네가 알고 절로 크고 절로 살이 찌는구나.
한편, 큰일이 생겼으니, 임금님과 중전이 병이 들어서 이제 오늘만 내일만 하게 되었다. 그런데 임금의 굼 속에 청동자가 나타나 서역국에 있는 삼신산에 가서 불사약과 약수를 얻어다가 잡수시면 젊음을 되찾으리라고 말하고는 떠나 버린다. 거기는 ‘무장승’이라는 무시무시한 괴한이 지키고 있고, 멀기는 엄청나게 멀어서 여느 사람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는 곳이었다.
“신하 중에 누가 삼신산에 갈 사람이 있느냐?”
“거기는 육신은 못 가고 혼백이나 간다는 곳이니, 굳이 보내시려면 차라리 죽여 주소서.”
“첫째 공주여, 이 애비를 위하여 삼신산에 가려느냐?”
“산천 궁녀 못 가는 곳, 일등 신하 못 가는 곳을 바깥출입해 본 적 없는 아녀자인 제가 어찌 가오리까? 차라리 죽으라고 하소서.”
“둘째 공주가 가려느냐?”
“언니가 안 가는 곳, 못 가는 곳을 제가 어찌 가오리까?”
“셋째 공주가 가려느냐?”
“둘째 공주 못 가는 곳…….”
“에라 망할 것아. 그만두어라. 넷째 공주야, 네가…….”
“셋째 어니 못 가는…….”
“다섯째 공주야.”
“넷째 언니…….”
“여섯째야.”
“다섯째…….”
“아서라, 말아라. 아비 어미가 죽는다는데 핑계 대고 저만 살겠다는구나. 말아라. 그런 불효 말아라. 아, 꿈에 불거나 내가 버린 바리공주야, 일곱째 내 자식아, 너라면 가겠느냐? 아아…….”
신하 하나가 자진해서 고생해서라도 바리공주를 찾겠다고 궁중을 나선다. 막막하다, 안타깝다. 바리공주는 어디 있을까? 이 때 까막까치가 인도한다. 바람이 불자 마치 이게 길이라고 가리키는 듯이 풀이 한족으로 쓰러진다. 그리 가다 보니 해와 달을 지키는 사자가 어느 누가 사람 냄새를 피우고 나타났느냐고 호통을 친다.
신하가 공손하게 바리공주를 찾는다고 하니 한 곳을 지시한다. 거기를 갔더니 바리공덕할멈이 나와서 말한다.
“귀신이냐, 사람이냐? 여기는 날짐승도 길짐승도 못 들어오는데 어찌하여 왔는가?”
“바리공주를 찾으러 왔소이다.”
“표적이 있는가?”
“아기의 칠일 안저고리를 갖고 왔고, 바리공주의 출생 날짜와 양전마마의 생년생시를 다 가져왔으니 맞추어 보소서.”
이 때, 바리공주가 나타나서 자기가 갖고 있던 옷과 맞춰 보고 생년일시를 맞추니 맞기는 하다만, 이것만으로 안 되니까 다시 궁중에 돌아가서 대왕마마의 무명지를 베어 피를 받아 가져와서 바리공주의 무명지의 피와 섞어 보자고 하는구나.
그리하였다, 그리하였다. 이 때 걸린 시간은 묻지 마라.
어허, 대왕마마 피하고 바리공주 피하고 엉키는구나, 합치는구나, 혈육이 분명하구나. 그렇다면 어서 가자. 아버지 어머니 병환이 위중하다니 어서 가자, 바삐 가자. 걷고 걷고 달리고 달려서 어서 가자, 어서 가자. 바리공덕할멈도 바리공덕할아비도 어서 어서 가사이다.
이리하여서 바리공주는 몇 날 며칠을 걸어 대궐에 들어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대왕마마를 아버지로 보고, 중전마마를 어머니라고 보는구나.
“내 자손아, 내 자식아. 비리바리 일곱째야. 미안하다, 미안하다. 부모 노릇 못 한 우리가 이제 와서 무슨 할 말 있다 하랴? 그 동안 너는 어디서, 봄 삼월은 어찌 살고, 겨울 삼삭(三朔)은 또 어찌 살았느냐? 배가 고파 어찌 살았느냐? 네 마음을 왜 모르랴? 용서해라, 이 무정한 아비 어미를.”
“산중에서 그럭저럭 살았나이다. 호강 호강 금지옥엽 여섯 언니 어디 두고 바리공주 천덕꾸러기, 이 버린 자식을 찾나이까. 지나간 일은 돌아보지 않고 제가 가겠나이다. 서천 서역의 삼신산에 불사약이며 약수며 제가 구하러 가겠나이다.”
“아가 아가 우리 아가, 네가 무슨 덕을 우리에게 입었다고 죽을 자리로 간다는 말이냐?”
“뼈를 받고 살을 받고 혼을 받은 뱃속 열 달, 복중 은혜 감격하여 머나먼 저 삼신산에 보은(報恩)하러 가겠나이다. 제발 제발 바라노니 제가 올 때까지 살아 계소서. 이만 갈 길이 바빠 하직하나이다.”
허 참, 세상에 이러한 딸도 다 있구나. 만든 정, 낳은 정, 기른 정, 그 부모 정을 다 찾아가며 효도하는 바리바리 바리공주로다. 사실, 기른 정은 해당이 없다만…….
남장을 하고 떠나는 대궐 밖, 까막까치가 인도한다. 바리공주가 쇠지팡이를 한 번 짚으니 천 리를 가누나. 두 번 짚으니 이천 리를 간다. 세 번 짚으니 삼천 리를 날아간다. 가다가 가다가 산중에서 바둑을 두는 석가모니와 지장보살을 만나서 낭화와 금주렁 세 개를 얻어서 다시 가니 지옥도 만나고 바다도 만난다. 그러다가 낭화를 흔들어서 철성(鐵城)을 깨뜨려서 그 안에서 고생하는 지옥 죄인을 풀어 주고, 염불을 외어 극락에 가도록 천도하고, 금주렁을 바다에 던져 무지개를 만들어 건너서 드디어 삼신산에 도달하였다.
“네가 사람이냐 귀신이냐? 이 곳에 어찌 왔느냐? 나는 키가 하늘에 닿고 눈이 등잔만하고 얼굴이 쟁반 같은 무장승이다. 내가 무섭지 아니하냐? 어찌 왔느냐?”
“나는 국왕의 일곱째 왕자로, 부모님 병환을 낫게 하려고 여기에 약수를 구하러 왔소.”
“하하하하, 그럼 길값으로 나무 삼 년 하고, 다음에 삼값으로 불 삼 년 때고, 물값으로는 물 삼 년 길어 오너라.”
어찌할 것인가? 이렇게 다 해 주다 보니 석삼 년, 합쳐서 구 년이 지나갔는데, 이 번에는
“그 동안 그대를 지켜보니 여자가 분명하다. 하마터면 남자인 줄 알았다만, 오줌 누는 것을 보고 알았다. 자, 나하고 부부 인연을 맺어 살면서 아이 일곱을 낳아 다오. 그리 안 하면 약을 주지 아니하리라.”
바리공주는 허락하여서 아이를 일곱까지 낳아 주었다. 그 동안의 긴긴 세월은 묻지 마라.
“여보 낭군, 우리 낭군, 이제 나를 풀어 주오. 부부 정도 귀하지만 애당초 부모님 병을 구하러 온 이내 몸이니 어서 나를 풀어 주오. 약을 주어 보내 주오.”
이렇게 간청을 하니까 눈을 뜨는 개안초도 주고, 숨도 살고 뼈도 살고 살도 살아나는 숨살이꽃이랑 뼈살이꽃이랑 살살이꽃도 주고, 또 약수도 떠 준다. 약수는 입에 머금고, 개안초는 눈 속에 넣고, 꽃을 들어 품에 넣고 나서려니까, 무장승이 하는 말,
“나를 어찌 두고 가오, 자식들을 어찌 두고 가오? 무정한 아내요, 무심한 어미로다. 딸 노릇만 제일인가? 아내, 엄마 다 중하지. 가자 가자 우리도 가자. 내 각시 바리공주 따라 궁궐로 가자. 아가 아가, 네 엄마를 따라 어서 어서 나서거라.”
이렇게 무장승이 따라 나선다. 그 흉한 낭군이 인간 세상에 나온다는 것이다. 도중에 여러 사연이 있는데 다 그만두고, 궁중 가까이 도달하여 보니 들려오는 저 상엿소리,
“북망산이 멀다더니 문 밖에 나서면 북망이네. 어어노, 어허노, 어화라 넘차 어어노오, ”
바리공주가 저 소리를 들으니 십 년 공부가 하루 아침이요, 십 년 쌓은 공이 와르르 무너지는구나. 기가 막혀서 상여에 달려가 대왕마마와 중전마마의 시신을 내리게 하고, 양전마마 입에다가 약수를 넣고, 감은 눈에는 개안초를 넣고, 뼈살이꽃은 뼈에 대고, 살살이꽃은 살에 대고, 숨살이꽃은 코에 대니까,
“휴우우.”
양전마마가 일어나신다. 살아나신다. 깜짝 놀라신다. 엉엉 우신다. 바리공주는 기뻐서 우는가, 신통해서 우는가? 사람이 하도 기쁘면 말도 나오지 아니하고 울음이 도리어 나온다더라. 허허허, 인산(因山)이라고 울던 곡성(哭聲)이 이제는 소생(蘇生)이라고 웃음일 것인데, 어찌 이리 울음인가? 이런 울음은 백 번 천 번 많아도 좋을시고, 고마워라 바리공주, 신통해라 우리 딸아.
“이 나라 절반을 너를 주랴?”
“싫습니다.”
“천하 제일 신랑감에게 시집을 보내주랴?”
“싫습니다. 다만 제 죄를 용서해 주시기만 하소서.”
“아니, 천하의 효녀, 네가 무슨 죄를 졌다는 말이냐? 어서 말해라. 다 용서해 주고말고.”
“이 사람이 제 신랑인 무장승이고, 이 아이가 제 일곱 아들입니다. 그런데 부모 허락없이 만나고 아이를 낳고 하였나이다.”
허허허허, 벌써 네가 할 일을 그것까지 다 했구나. 다 네 복이다. 일곱 아들 네 복이요, 그러고 보니 일곱 딸도 내 복이구나. 하하하하.“
“아바마마, 소원이 있나이다. 남편 무장승은 무덤 팔 때 산신제(山神祭)와 평토제(平土祭)를 먹고 살게 하소서. 저를 길러 준 바리공덕 할아비는 동네에서 상여가 나올 때 드리는 노제(路祭)를 먹게 해 주시고, 바리공덕할멈은 지노귀굿할 때, 영혼이 저승문에 들어설 때 대문에서 내는 별비(別備)를 받아먹게 하시고, 저의 자식은 저승의 십대왕(十代王)이 되게 하소서.
“그럼, 너는 무엇이 되고자 하느냐?”
제가 지옥에 가 보니 실로 안타가운 죄인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이라도, 천하고 못나고 가난한 사람도 다 저승에 가면 마찬가지로 염라 대왕의 심판을 받는 것을 보았는데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이런 세상의 미련한 사람이나 죄인을 저승에 데려갈 때 이 죄인의 소행을 보면 괘씸하여 마땅히 지옥에 보낼 일이지만, 저의 체면과 사정을 보아서 제발 지옥에 보내지 말아 달라는 보증인 겸 인도자 겸 구원자 노릇을 하겠나이다. 제가 비록 여자지만 그런 큰일을 하겠나이다. 결국, 무당이 되겠나이다.“
“어허, 이 아비가 못다 한 일을 네가 하는구나. 나는 이승을 다스리는데 너는 저승을 다스리는구나. 아니, 이승과 저승의 멋진 다리 노릇을 하는구나. 나는 힘과 재물로 세상을 다스리는데, 너는 사랑과 자비와 윤리 도덕과 효성, 바로 인간됨 그 하나로 이 우주를 감동시키는구나.
나는 너를 버렸는데
너는 나를 찾았도다.
나는 너를 죽였는데
너는 나를 살렸도다.
나는 부모 아니건만
너는 자식이로구나.
나는 임금 못 되건만
너는 백성이로구나.
나는 사람이 아니건만
너는 사람이로구나.
나는 한 때 살건만
너는 영원히 살겠구나.
나는 이승 왕이지만
너는 저승까지 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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