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힐 / 해설 / A.S 니일
by 송화은율A.S 니일 `서머힐'
최 상 진 〈경희대 국문과교수〉
중학교 교실을 살짝 들여다보자.얼핏 보면 사십여명 남짓한 학생들이 조용히 수업에 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더 찬찬히 살펴보자.수학 교사는 지금 3차방정식 문제를 풀고 있지만 교사의 설명을 제대로 듣는 학생은 몇 명 되지 않는다.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이,수학 교과서 밑에 소설책을 숨기고 보는 아이,빈 노트에 만화를 그리고 있는 아이,소년 가수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는 아이,스티커 사진첩을 정리하고 있는 아이,손 안의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있는 아이,용기있게 도시락을 먹고 있는 아이,야구 글러브를 수리하고 있는 아이,한글을 깨치지 못해 멍하니 있는 아이,영어는 능숙하지만 우리말이 서툴러 미국에서 구해온 수학책으로 공부하는 아이,고등학교 수학 참고서를 가지고 따로 공부하는 아이 등등.극단적인 예처럼 보이지만 엄연한 우리 교육의 현장이다.
도대체 학교란 무엇인가.우리 민족의 장래를 짊어진 사랑스런 우리의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허수아비처럼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온다면 학교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서머힐'의 저자 닐은 이렇게 말한다.아이들은 본성적으로 이해력을 가지고 있고 현실적이다.그냥 그대로 스스로에게 맡겨두고 어른들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 아이들은 자기의 능력에 맞게 발전한다.서머힐의 목표는 아이가 학자가 될 자질을 타고나서 학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학자가 되는 그런 학교이고,반면 전차 운전사에 알맞게 태어난 아이들은 전차 운전사가 되는 그런 학교다.나는 학교가 노이로제에 걸린 한 사람의 학자를 배출하는 것보다 차라리 한 사람의 행복한 전차 운전사를 배출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서머힐은 학생을 학교에 알맞게 하는 곳이 아니라 학교가 학생에게 알맞도록 하는 곳이다
`서머힐'은 1921년에 설립된 영국의 한 실험학교의 보고서다.학교 서머힐은 초․중등학교 과정을 이수하는 학교로서 현재도 운영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이 책의 저자이자 서머힐의 초대 교장인 닐은 오랫동안 일반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사람이다.그는 일반 학교의 교육과정과 제도에 대해 큰 실망감을 가지고 있었다.어른들의 일방적인 교육,권위주의에 의해 이뤄지는 학교교육이 학생들의 행복한 삶을 짓밟고 있다는 생각을 한 그는 기존의 교육제도와는 완전히 다른,자유주의 교육이념을 바탕으로 한 실험학교를 설립하게 된다.`서머힐'에는 닐의 자유주의 교육관에 의한 교육제도,교과과정,교육환경,학생생활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에리히 프롬은 `서머힐'의 머리글에서 닐의 교육적 용기를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닐의 아동교육 방법은 급진적이다.닐은 이 책에서 교육의 참된 원리를 겁없이 묘사하고 있다.서머힐에는 권위가 배후에서 조종하는 그런 제도가 숨겨져 있지 않다.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문제아'란 없다.다만 `문제부모'`문제인류'가 있을 뿐이다 이 말 속에서 우리는 이 시대에 `서머힐'을 왜 읽어야 하는가를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다.
최근 새정부의 중등교육정책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은 개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이다.중․고등학교에서 강요된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없애고 획일적인 입시위주 학습을 지양하며 특별활동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교육개혁의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 같아 보인다.그러나 이 개혁이 진정한 개혁이 되기 위해서는 `서머힐'의 자유주의 교육이념을 상당부분 도입해야 한다.만일 이러한 개혁을 권위주의적 발상으로 일선학교에 강요한다면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요즘들어 자율화라는 말이 교육계의 유행어처럼 되어 있다.자율이라는 용어는 자유과 규율의 합성어다.자유와 규율의 근본은 스스로 누리고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자유란 누가 누구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다.남에 의해 부여된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남에 의해 강요된 규칙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스스로 지키고자 노력할 때 지켜지는 것이다.스스로 하고 싶을 때 하고,하고 싶지 않을 때 하지 않는 것이 곧 자율화다.만일 특별활동 교육이 또다시 숨겨진 권위주의에 의해 강요되는 것이라면 학생들은 특별활동을 하면서 꾸벅꾸벅 졸 것이다.
교육은 이 시대 우리나라의 모든 가정이 안고 있는 가장 절실한 문제다.새정부마다 그렇게도 교육개혁을 부르짖었건만 개혁은 개혁하는 자의 몫일 뿐 교육현장은 달라진 게 없었다.그동안 우리 교육은 학교의 스케줄에 학생들을 꿰어 맞추는 숨겨진 권위에 의해 학생들을 다루고 있었다.이제 학생들은 그러한 권위에서 자유로워야 하고 스스로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억지로 꿰어 맞춘 교실에서 졸고 있지 말고 자기의 능력에 따라 살아 움직여야 한다.`서머힐'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의 교육적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서머힐'에서 주장하고 있는 자유주의 교육이념은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교육환경과 교육여건이 영국과는 현저히 다른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교육이념을 실천해 보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그러나 `교육의 문제가 바로 내 탓이었구나'하는 것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가지는 교육적 의미는 탁월하다.
이 책의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아 청소년들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특별히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분들이 있다.아직도 교육에 대해 닫힌 사고를 지니고 있는 교육 현장의 교사들,우리 아이가 반장을 하고 일등만 하기 바라는 젊은 엄마들,교육은 학교에서 하고 돈만 벌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젊은 아빠들,중등학교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정책 입안자들이 읽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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