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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서 / 분석 / 유치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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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서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百日)이 불사신 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후략>


1.  작가
  유치환(1908~1967) : 경남 충무에서 출생. 연희전문 문과에 재학 중 중도하고 도일한 바 있으며, 1931년 <문예윌간>에 ‘정적’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 주로 생의 본질 탐구에 전념하여 생명파 혹은 인생파 시인으로 불림. 해방 후 부산에서 교편 생활을 하다, 1967년 교통사고로 별세. 서울시 문화상(1949), 아시아 자유 문학상(1958), 예술원상(1961)을 수상한 바 있응. 대표작으로는 ‘생명의 서’, ‘울릉도’, ‘바위’ 등이 있고, 저서로는 <청마시초>, <생명의 서>, <울릉도>, <보병과 더불어>,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미루나무와 남풍>, <유치환시선> 등이 있음. 

2.  유치환의 작품 세계 
  생명의 본질 파악에 궁극의 목표를 둔 유치환의 시풍은 초기엔 낭만적, 상징적 경향을 띤 허무주의를 표방했으나, 후기에는 범신론적(汎神論的) 자연애를 바탕으로 동양적 허정무위(虛靜無爲)의 세계와 강인한 원시적 생명력의 추구를 보여 준다.


  그의 시는 시어의 조탁을 무시하고  개념에 충실함으로써 생경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무기교의 기교 속에 시심(詩心)과 사유(思惟)를 잘 조화시켜 관념과 직관, 그리고 논리로써 지탱되는 독자적인 시의 영역을 구축하였다. 김종길은 <청마 유치환론>에서 '거시적(巨視的)인 사유(思惟)나 당당하고 때로는 늠렬한 어조와 기상(氣象)과 풍격(風格)의 시인', 또는 '그는 한국 현대시에서 가장 거대하고 꾸준하고 열렬한 도덕적인 시인'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청마(靑馬), 그는 거센 해풍과 파도 속에서 자란 거인(巨人)답게 어떠한 비인격(非人格)의 비정적 무정에서도 오만한 시인이었고, 강직과 정직으로 버틴 뛰어난 의지(意志)의 시인이었다. 그것은 여성적 편향에 기울어진 한국시에 보기 드문 남성적 이미지로 나타났고, 그 관념적인 수사학은 특출한 위세를 보여 주었다. 근원적이고도 본질적인 양심에 가장 철저했던 시인으로서 청마는 예언자적 시인이었다고 할 만하다. 

 

 



3.  유치환(柳致環)의 삶과 문학
청마(靑馬)와 이상(李箱)은 여러모로 대조되는 시인이다. 청마는 건강한 몸을 지녀서 고래 술을 평생 마시고도 끄떡없었는데 이상(李箱)은 20대 중반에 얻은 폐결핵을 극복하지 못하고 28세로 요절했다.


이상(李箱)이 생(生)의 의미를 찾지 못해 절망하고 자기 모멸에 빠져 몸부림치고 있을 때 청마는 「생명의 서(書)」 같은 시집을 내놓으며 삶의 정열에 들끓었다. 이상(李箱)이 인간의 삶 자체를 거부하고 저항하면서 의식적으로 ‘애욕의 진흙탕’에 뛰어든 반면 청마는 「깃발」, 「바위」 등을 발표하면서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를 바라보며 일생을 살았다.


이렇게 다르면서도 둘은 친하게 지냈다. 이상(李箱)은 신상에 이상이나 변화가 있을 때는 꼭 청마에게 엽서를 띄워 알려주곤 했다. 이상(李箱)이 절망을 극복해 보려고 일본으로 건너갈 때 마지막으로 찾은 사람이 청마였다. 청마는 그러므로 국내에서 이상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다. 


이상(李箱)은 어느 날 일본으로 간다면서 느닷없이 청마를 찾아왔다. 둘은 항구의 싸구려 술집에서 엉망진창이 되도록 마셨다. 생명력이 충천한 시인 청마와 생명력을 찾아 얻어 보려는 이상(李箱)이 만난 술자리이니 그 순간만은 의기투합 ‘비슷한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그날밤, 지금은 불타고 없는 부산 우체국 건너편에 있는 조선 여관이란 삼류 여인숙에서 지내고 이튿날 저녁 둘은 관부연락선 부두에서 영원한 작별의 손을 마주 흔들었다. ‘이상(李箱)은 까마귀 같은 퀭한 눈에 커다랗게 입을 벌려 흥소했다.’ 이것이 청마가 기록한 이상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청마는 친계(親系)로부터는 강직한 성품을 이어받고 모계(母系)로부터는 후덕한 덕성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청마의 성격 규정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와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로 대표되는 양면성에서 찾아져 왔고, ‘의지와 사랑의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청마는 타고난 저항 정신을 피 속에 용해시켜 놓고 있었다. 그는 우선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래고보 학적부를 보면 조선어, 영어, 한문은 늘 갑(甲;9점)인데 국어(일본어), 화학 등은 병(丙;4점)을 면치 못했다. 또 그는 결석을 잘 했다. 병이 났다고 결석계를 내고 학교엘 잘 빠졌는데 학적부에 기록된 ‘체격란’에는 항상 ‘갑(甲)’으로 되어 있다. 가기 싫은 학교를 꾀병 내고 안 갔음이 분명한데 그러고도 석차는 27명중 7등이었다.


청마는 학교하고는 연분이 적었던 모양으로 연희 전문 문과에 입학했으나 마음에 안 들어서 1학년도 다 못 채우고 걷어치웠다. 그러고는 다시는 학교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일본에 건너가서 사진 학원에 들어가 사진 기술을 배운다. 사진관을 열어서 먹고 살 요량으로 한 것인데 사실상 그는 평양에서 그후 사진관을 차렸다. 그러나 그것도 서너 달만에 다 털어먹고 부산에 내려와 백화점 점원 노릇을 했다. 이것이 청마의 20대 모습이다.
30대 시절 청마는 만주 등지로 방황하게 되는데 거기서 그는 외아들 ‘일향(日向)’을 잃게 된다.    
얼어붙은 땅에 외아들의 시신을 파묻고 마음이 여린 청마는 종래 그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다.

사람도 나도 접어주지 않으려는 이 자학(自虐)의 길에
내 열번 패망(敗亡)의 인생(人生)을 버려도 좋으련만
아아 이 회오(悔悟)의 앓음을 어디에 호읍(號泣)할 곳 없어.

「황야에 와서」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만주 연수현에서 농장 관리인 노릇을 6년간 하다가 청마는 해방을 맞아 40대의 나이로 귀국하게 되고 그때부터 문화 활동과 교육자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청마의 저항성이 가장 돋보일 때가 자유당 말기 정치적 부정 부패가 극에 달했을 때였다. 타고난 반골(反骨) 기질이 3·15 부정선거를 도저히 묵과하지 못한다.

그 환도를 찾아 갈라
비수를 찾아 갈라
식칼마저 모조리 시퍼렇게 내다 갈라
그리하여 너희들 마침내 이같이
기갈들려 미치게 한 자(者)를 찾아
손에 손에 그 시퍼런 날들을 들고 게사니같이 덤벼
남 나의 어느 모가지든 닥치는대로 컥컥 찔러….

  청마가 얼마나 통분 격분했으면 이런 살기 등등한 시(詩)를 썼을까. 그는 그때 여기저기 신문 잡지에 정치 부패를 저주, 성토하는 시를 발표했다.
그 시절이 바로 청마의 경주(慶州) 시절이다.


55년부터 59년까지 그는 경주중고등학교 교장으로 있었고 그 기간동안 그는 ‘나는 시인이 아니다’면서 자유당 정치와 그 불의를 단죄하는 투사의 칼날을 휘둘렀다. 59년 9월 10일 그는 강요에 의해서 교장직을 물러나게 되고 그후 2년간 심한 신경통을 앓으며 낭인 생활을 하게 된다. 그 기간동안 그는 대구매일신문과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 정치권을 질타하는 시를 계속 발표했다. 그 시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이다.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보라
저 거짓의 거리에서 물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를 땅에 묻는다.  ― 1960년 3월 13일 ‘동아일보’

이 시가 나온 지 1개월 6일만에 4·19가 일어났고 그가 그 동안 발표한 시편들을 묶은 시집들이 다투어 나왔다. 61년 5월 청마는 마침내 경주여자중고등학교 교장이 되어서 그리워하던 경주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학생들을 선동한다는 ‘죄목’으로 직장에서 쫓겨난 청마는 바로 그 ‘덕목’으로 높은 추앙을 받게 되고 그후 문단에서나 교육계에서 크게 기림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투사’의 일을 떠나 곧 ‘시인(詩人)’의 자리로 돌아왔다.

4. 구성
 (1연) : 극한 상황의 설정, 괴로운 현실로부터의 초극을 모색
 (2연) : 극한 상황의 구체화
 (3연) : 시적 자아의 결의, 본연의 자아에 대한 추구(3연)

 

 



5.  작품 감상 (1)
   남성적, 독백적인 어조로 관념적 진술을 하고 있는 이 시는 우선 ‘열사의 끝’, ‘아라비아 사막’이라는 사멸과 허적의 터전 위에서 오히려 자신의 생을 붙잡고 그것과 진지하게 대결하려는 3연의 구조로 되어 있다. 


  첫째연에서는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 제시된다. ‘병든 나무’로 표현된 내가 사는 현실은 애증으로 생명이 부대끼는 어려운 현실이다. 자신의 지식이나 현실적 생활만으로는 생존의 의미나 생명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음을 느낀다.


  둘째연에서는 사막을 극한 상황으로 설정하고 구체화하고 있다. 이 사막은 일상적 자아가 본래적 자아를 찾기 위해 선택된 공간이다. 즉, 사막은 일상적 자아를 본래적 자아로 바꾸어 주는 매개물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열사의 끝’이고 허무의 공간인 사막에서 신(神)도 고민한다. 사막은 해, 바람, 어둠과 모래로 인해 모든 존재가 소멸하고 잉태(생성)하는 원초적 공간이다. 서정적 자아가 그곳에서 본질적인 생명의 모습을 찾으려는 것도 사실은 이런 사막의 속성을 파악한 것이다.
  셋째연에는 사막과의 대결을 통해서 본래적 자아를 찾으려는 서정적 자아의 굳센 의지가 나타나고 있다. 그 대결은 고독하고 치열한, 운명과 같은 것이다.  자기 학대를 통해서 원초적 공간인 사막에서 화자는 일상적인 모습을 버리고 본질적인 모습을 찾는 것이다. 만약 본질적인 모습을 찾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덧붙이면서 말이다. 비장한 결의는 ‘백골’이라는 강렬하고 절대적인 이미지로  나타난다. 이 시로 인해 유치환을 생명파라고 규정하는 이유를 우리는 확연히 알 수 있는 것이다. 


  표현면에서 보면 이 시는 의지적·남성적·사변적(思辨的) 문체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여러 한자어의 사용, 강한 어감을 지닌 어휘 등의 사용이 이 시의 중요한 문체적 특징을 이룬다.
  
6.  작품 감상 (2)
  이 시는 추상적 관념의 세계를 노래한 관념시(觀念詩)의 일종이다. 
  청마(靑馬)가 대체로 서술적 진술을 통해 사상성을 바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관념어가 남발되고 추상적 한자말이 지나치게 많은 면을 여러 평자(評者)들이 지적해 왔다. 이것은 얼핏 보기에는 표현의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으나, 한국 시에 있어서 관념성의 제고, 치열한 철학성, 윤리 의식의 시화(詩化)에 기여한 바가 크며, 이 특징적 언어 표출 형식은 청마로 하여금 특수한 영역의 시인으로 남게 하는 자질이 됨도 사실이다. 


  이 시의 의미 구조는 시적 자아가 현실의 삶을 떠나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가서 삶의 본질을 치열히 추구하겠노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이며, 왜 사막으로 가는 것일까? 여기서 현실과 사막은 대조적 의미를 지니는 공간일까? 아니면 어떤 유기적 관계를 가지는 것일까?


  우선 사막 이미지가 풍기는 의미를 살펴보자. 거기(사막)는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사멸한 영겁의 허적만이 존재하는 열사의 끝이다. 모든 존재를 무화(無化) 시키는 공간으로서 시련의 극이며, 절대의 절망과 고독의 혹독한 공간이다. 시적 자아는 그 절대 고통의 공간으로 가자는 내밀한 결의를 보이고 있다. 현실적 삶에 있어서의 의미나 가치, 또는 생명의 본질을 찾지 못했을 때, 이 현실 공간을 떠나 더 가열한 절망 속으로 가자는 것은, 자기를 부수어 버리겠다는 자포 자기가 아니다. 더 큰 시련으로 영육(靈肉)의 고통이 극에 달할 때 자기 희생을 통한 득도(得道)가 가능해진다는 비장함이 보인다. 이 시가 의지파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1연. 알음알이〔知識〕만으로는 내가 품고 있는, 삶의 본질에 대한 지독한 회의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사랑과 미움 등의 온갖 고뇌를 다 감당할 수 없어 지칠 대로 지쳐 파리한 생명으로 병들 때는 차라리 그보다 더 가혹한 절대 고통의 사막으로 가자는 내밀한 결의 표명이다. 


  2연. 사막의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사막은 무화의 공간, 절대 고독, 절대 고통의 공간이다. 그 속에는 삶의 본질을 추구하기 위해 짙은 고민으로 방황하는 알라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는 곳이다. 이때 밤은 절망과 고통, 고독을 더욱 심화시키는 이미지로 제시되고 있다. 사막 지대와 알라는 자연스레 연관되며, 번민하는 알라와 ‘나’가 또 연결된다. 그리하여 나는 은연중 알라로 변신하는 심리적 체험을 맛보게 된다. 따라서 시적 자아는 영웅 이미지로 화하여 고고한 정신의 추구자인 구도자(求道者)로 우뚝 서게 된다. 위대한 단독자로서 호올로 옷자락을 나부끼고 서 있는 의연함의 이미지를 통해 내면적으로는 초인(超人)으로 상승하게 된다. 


  황량한 사막에 거칠게 불어오는 매운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으로 우뚝 서서 대결하는 시적 자아의 굳건함은 바로 초인 의지의 표상인 것이다. 그러한 절대의 시련 속에서 운명적으로 맞이하는 생명의 본질 탐색에 대한 투쟁은, 가열하고 혹독한 자기 대면으로 진행되어 간다. 현상적 자아가 본질적 자아의 본연의 실체를 찾지 못할 때, 차라리 사구(砂丘)에서 죽음을 맞겠노라는 비장함으로 그 열렬한 생명 탐구의 가열성을 노정하고 있다. 사막의 절대 허무에서 삶의 본질을 추구하겠다는 것에서 사막이 역설의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이 신의 이미지가 주는 구도는 수직 수평의 구도이다. 황막한 사막의 , 끝간데 없는 지평선에서 불어오는 강풍을 홀로 맞고 서 있는 존재는 의지의 표상이며, 단독자로서 세계와 대결하고 있는 치열성을 보여 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1연의 ‘병든 나무’는 수직성의 강건한 의지를 지니지 못한 나약과 허무의 표상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병든 나무에서 꼿꼿한 구도자로 서려 생명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 된다. 

7.  작품 감상 (3)
이 시는 <일월(日月)>과 함께 생명파 시인으로서의 유치환의 시정신을 극명히 보여 주는 작품이다. 전 3연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본연(本然)의 생명을 추구하여, ‘출발’ → ‘수련’ → ‘성취’의 과정을 통하여 강인한 남성적 어조로 극한적 의지를 표현함으로써 청마시의 전형을 제시한다.


1연은 본질적인 삶을 추구하다 발견한 지식의 한계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에 절망하여 ‘아라비아 사막’으로 상징된 구원의 세계로 떠나가자고 스스로 다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곳은 작열하는 태양과 고뇌와 방황의 알라신만이 계신 ‘영겁의 허적’으로 혹독한 고행과 절대적 고독의 현장일 뿐이다.  2연은 모든 것이 사멸하고 뜨거운 태양만이 내리쬐는 열사의 땅에서, 시적 화자가 구도자의 기도하는 자세로 오랜 고행과 수련의 고통을 겪은 다음, 마침내 진실된 자아, 생명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내용이다. 3연은 참된 자아가 허위와 위선에 물들지 않은 원시 그대로의 순수한 생명체의 삶을 되찾지 못할 때는, 차라리 그 곳에서 미련없이 목숨을 버리겠다고 절규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시적 화자가 떠나가는 아라비아 사막은 ‘허적(虛寂)’이 주는 하강력(下降力), 곧 온통 허무뿐인 죽음의 세계이며, 역설적으로 ‘열사’가 갖는 상승력(上昇力), 곧 뜨거운 생명이 샘솟는 세계이기도 하다.


고통의 극한, 극도의 고독에서만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유치환의 논리는 범을 잡으려면 범의 굴을 찾아야 한다는 이치와 동일하다. 이렇게 죽음 속에서 생명을 찾아내는 유치환의 생명 탐구 방법은 청마 특유의 허무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은 도리어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선택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노장 철학(老莊哲學)의 허무 사상과도 그 맥락이 닿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는 비교적 많은 관념어를 사용하고 있고, 각 연의 1․2행이 모두 진술(陳述)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적 구체성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8.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주의시 
 (성격) : 의지적, 관념적, 상징적 
 (율격) : 내재율 
 (어조) : 남성적, 독백적, 직설적 
 (제재) : 생명 
 (주제) : 생명의 본질 추구 
 (출전) : <동아 일보>(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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