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삼태성 / 방정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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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성

 

옛날 옛적, 아주 시골에 이상한 노인이 한 분 있었습니다.

얼굴 빛과 수염 빛이 똑같이 하얘서, 얼른 보기에 보통 사람과 같지 않은

이였으나, 인정 많게 생긴 눈과 어린 사람 입같이 어여쁜 입 모습이 웃음을

띠고 있어서, 퍽 사람 좋아 보이는 이였습니다. 노인은 한 번도 얼굴을 찡

그린 일이 없었습니다.

아무나 보고 반가워하고 아무나 만나면 좋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노인은 날마다 파아란 피리를 입에 대고 불었습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안 부는 날이 없었습니다. 피리 소리는 더할

수 없이 곱고 아름답고도 멀리멀리 퍽 멀리까지 들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

게도 그 소리를 들으면 아무나 저절로 마음이 좋아지고 즐거워지는 것이었

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피리 소리를 들으면서, 좋은 마음으로 자기 할 일을 부

지런히 하였습니다. 남의 것을 욕심내거나 남의 것을 도둑질하는 사람도 없

었습니다. 집집마다 먹을 것이 넉넉하고, 곳곳마다 꽃이 활짝 피어서, 아무

걱정도 없고 근심도 없어, 편안하게 지냈습니다.

그 이상한 피리 소리를 들으면 짐승들도 좋아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사람들

이 가깝게 와도 놀래 달아나지도 아니하고, 꽃나무 사이에서 어여쁜 소리로

노래만 부르고 지냈습니다.

참말로 그 노인이 피리를 불지 아니하면, 어떻게 쑥스럽고, 어떻게 시끄러

워질지 모르므로, 사람마다 진정 참마음으로 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습

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그 동네 동장 한 분이 노인을 싫어하였습니다. 동장은

아는 것이 많으니만큼 좀 거만한 이였는데, 노인은 동장보다 더 많이 알 뿐

아니라, 동장의 할아버지의 또 할아버지도 나기도 더 이전 일까지 잘 알고

있으므로, 동장에게는 그것이 미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인이 부는 피리

소리도 싫어하여, 그 노인이 하는 일이면 모두 미워하였습니다.

더군다나 노인은 어린 사람들을 귀여워하고 이야기를 잘 하므로 날마다 날

마다 점심 때부터는 파란 잔디밭에 앉아서 어린이들을 데리고 재미나는 이

야기를 해 주는데, 이것이 더 미운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동장의 외아들 효득이가 다른 아이들 틈에 끼어서, 날마다 노인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점점 노인과 친해지는 것을 아는 까닭이었습니다.

왜 요놈아, 그까진 피리만 불고, 쓸데없는 얘기만 하는 늙은이에게 자꾸

가느냐?”

하고, 갔다 올 적마다 동장은 아들을 꾸짖었습니다.

아니어요. 그 어른은 재미나고 좋은 이야기만 해 주시는데요!”

하고, 효득이가 대답하니까, 더 한층 화를 버럭 내면서,

듣기 싫다. 좋은 소리가 무슨 좋은 소리냐? 밤낮 거짓부렁이 얘기만 들

으면 뭣이 좋으냐? 다시는 가지 마라!”

하고, 성을 내면서, 몹시 꾸짖었습니다.

효득이는 영악한 애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왜 그렇게 사람 좋은 노인

을 미워하는지? 그것만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몹시 우리를 귀여워해 주시고, 좋은 유익한 이야기를 해 주시는 노

인을 아버지는 왜 미워할까……. 어른들마다 하는 말이 그 노인 때문에 우

리가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아버지만 혼자 노인을 미워하시나? 그것

을 아무리 생각하여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효득이는 울었습니다. 다시는 노인에게 가지 못할 생각을 하

, 효득이는 자꾸 울었습니다.

그 날 밤이었습니다. 깊은 밤에 쓸쓸한 산 밑에 노인이 혼자 사는 집의 대

문을 흔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두운 밤중에 노인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은 이 때껏 없었습니다.‘이 밤

중에 누가 왔을까하고 노인이 문을 열고 내다보니까……, 천만 뜻밖에

어린 효득이가 섰었습니다. 놀래면서도 반가워 벌떡 안고 안으로 들어와 보

니까, 효득이의 어여쁘던 두 눈이 통통하게 부었습니다. 그리고 노인에게

안기더니, 하소연이 터져서 흑흑 느껴가면서,

우리 아버지가 그까짓 늙은이한테 가지 말라고 그래요!”

하고, 바른대로 말했습니다.

, 너의 아버지가 나를 미워하든?”

, 퍽 미워해요!”

노인은 그 말을 듣고 얼굴빛이 아주 좋지 못해졌습니다.

노인은 그 좋은 얼굴에 좋지 못한 빛이 돌기는 참말 처음이었습니다. 효득

이는 걱정스럽게 그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좋아하는데, 왜 우리 아버지만 그렇게 미워합니

?” 고 물었습니다.

그것은 너의 아버지에게 묻지 않으면 모른다. 그러나 그런 말을 아버지

보고 묻지는 말아라.”

하시면서, 노인의 얼굴은 더욱 말할 수 없이 슬픈 빛을 띠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효득이는 , 참다 못하여 또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지 마라 효득아, 자아 옜다. 내가 이 피리를 줄 것이니, 다른 사람에

게보이지 말고 가져라.”

하고, 노인은 날마다 불던 그 파아란 피리를 효득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너의 아버지가 나를 미워하는 것은 아직 내 정성과 힘이 부족한 탓이다.

이 세상 한 사람에게서라도 미움을 받는 사람은 이 피리를 불 자격이 없는

사람이니, 그런 사람은 아무리 불어도 소리가 나오지 않는단다. 자 더 늦기

전에 가지고 가서 남에게 보이지 말고 가지고 있거라. 나는 아주 갈 터이

.”

하고 노인은 효득이를 돌려 보냈습니다.

그 이튿날부터 노인의 그림자는 영영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 밑에 조그만

집도 휑하니 비어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것을 본 사람도 없었습

니다.

집과 집 뒷산을 뒤져 찾아도 노인의 간 곳은 알 수 없었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도 노인의 소식은 도무지 없었습니다. 피리 소리도 노인이

없어지는 날부터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온 동리가 몹시 쓸쓸해지

, 새와 짐승 들도 벙어리가 된 것처럼 노래를 부르지 않고, 꽃과 나무도

풀이 죽어서 축 늘어졌습니다.

그렇게 좋던 사람들의 마음이 거칠어져서, 싸움이 생기고, 남의 먹을 것을

빼앗아 가는 놈이 생기고 하여,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도 노인이 없어진 것을 제일 슬퍼하는 사람은 어린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사랑하는 어머니가 돌아가 버린 것처럼 슬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더 슬퍼하는 어린이는 효득이였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늙은이 생각을 하고, 아버지 몰래 울고 지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겨울이 되었습니다. 차디찬 북풍이 하얀 함박눈을 몰아다 퍼부어서,

동네와 산이 온통 하얗게 눈 속에 덮여 버렸습니다.

눈 오신 새벽에 효득이는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일찍이 일어나서 파아란

피리를 꺼내 가지고, 눈 쌓인 산으로 자꾸 올라갔습니다.

그 날 아침에 처음으로 동네 사람들은 피리 소리를 들었습니다. 피리 소리

가 들릴 제 온갖 새들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마다 마음이

다시 좋아져서,

피리 소리가 들린다.”

노인이 다시 왔나 보다.”

하고, 기뻐들 하였습니다. 동장은 그 때에야 노인이 어떻게 감사한 사람이

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 그리고 그 피리 소리를 듣고 얼굴에 이상한 새 빛이

돌면서,

아아, 노인이 오셨다. 그 거룩한 노인이 다시 오셨다.”

하고, 기쁜 소리를 지르면서, 피리 소리 나는 산으로 뛰어갔습니다. 산 밑

까지 가서 보니까, 산 둔덕에는 하얗게 덮인 눈 위에 조그만 발자국이 움폭

움폭 남아 있었습니다.

에그, 효득이 신발 자국이다. 분명히 효득이다.”

하고, 이상해 하면서, 그 신발 자국을 따라서 산 위로 자꾸 올라갔습니다.

한참이나 올라가서 산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 피리

소리는 아니 나고, 조그만 발자국만 산을 넘어서 저쪽 숲 속까지 외줄기로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동장은 발자국만 따라서 자꾸 뛰어갔습니다. 어디

까지든지 한없이 뛰어갔습니다.

그 날 밤이 되어서 하늘에 별이 반짝일 때에 동장은 눈 위에 쓰러져 있었

, 그의 혼은 효득이 뒤를 따라 하늘로 올라가서 반짝반짝하는 별이 되었

습니다.

오래간만에 다시 들리는 피리 소리를 듣고, 기뻐서 좋아하던 동네 사람들

은 노인을 찾으려고 산 위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산 위에도 노인은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조그만 효득이 발자국이 두 줄기로 저 편 숲 사이로

사라졌을 뿐이고, 곱고 아름다운 피리 소리는 별 반짝이는 하늘에서 흘러

내려 오는 것이었습니다.

높게 낮게 흘러 내리는 피리 소리는, 동네의 구석구석까지 흘러 퍼졌습니

.

그래서, 그 소리를 듣는 사람마다 마음이 시원해지고 좋아져서, 태평하게

즐겁게 살게 되었습니다.

동장과 효득이는 영영 다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피리 소리는 끊이

지 않고, 날마다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피리 소리는 별이 되어 하늘

로 올라간 효득이가 불고 있는 것이라 합니다.

구름없이 하늘이 맑게 개인 날 밤에, 저 남쪽을 쳐다보면 셋이 나란히 있

는 별이 있지 않습니까. 제일 위에 것이 수염 하얀 노인이요, 그 다음이 효

득이요, 맨 끝의 것이 동장이라고 합니다.

 

〈《어린이,1924 5소파 전집(박문 서관 간) 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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