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바닷속 / 동화 / 방정환
by 송화은율서늘한 바닷속
― 고래와 싸우면서 바닷속에서 17년 산 사람의 경험 이야기 ―
나는(우산청장(宇産淸藏);일본 사람), 잠수부가 되어 바닷속 물 속에서 17
년 동안이나 살았으므로, 지금은 그 깊은 바닷속이 내 고향의 정든 본집과
같습니다.
그 무겁고, 퉁퉁한 잠수복을 입고, 무엇 하러 바닷속에 들어가는고 하니,
커다란 기선이 파선되어, 물 속에 잠겨 버린 것을 꺼내러 들어가는 일이 제
일 많습니다.
그 노릇을 17년 동안이나 하느라고 그 동안에 가까운 바다 치고 어느 바닷
속에 아니 들어가 본 곳이 없고 별별 놀라운 고생도 때때로 하여 왔습니다.
굉장한 큰 낙지에게 잡혀
지금으로부터 아주 먼 옛날, 1917년 때에 조선 금강산 있는 강원도 바다에
서 조선 우선 회사의 전라환(全羅丸)이라는 기선이 바닷속에 잠겼을 때, 그
것을 끌어내는 공사에 나도 참례했습니다.
그래 바닷속에 들어가서 물 속에 귀신같이 새까맣게 가라앉은 기선을 어루
만지면서 뚫어진 구멍을 조사하고 있는데, 별안간에 뒤에서 무엇인지 달려
드는 것 같으므로, 흘깃 돌아다보니까 큰일 났습니다. 낙지가, 굉장히 큰
낙지가 달려들었습니다.
“에구머니!”
소리를 지르면서 나는 깜짝 놀랐으나, 그러나 그 때 벌써 낙지는 내 다리
(정강이) 뒤에 휘휘 감기어 찰싹 달라 붙었습니다.
참말 나는 바닷속 살림을 여러 해 하였어도 그렇게 큰 낙지에게 붙들리기
는 처음이었습니다.
별안간에 붙잡힌 것이라 아무 꾀도 나지 않고……, 이러다가는 꼭 죽겠다
싶어서, 얼른 숨줄(공기 드나드는 줄)로 낙지의 둥그런 대가리를 친친 감아
놓고, 줄을 잡아당겨 물 위에 있는 배로 통지를 하였습니다.
그 통지를 보고, 배 위에서는 나를 잡아당겨 올려 주고, 그 통에 낙지도
대가리가 감긴 채로 나를 따라 올라왔습니다.
배 위에 올려 놓고 본즉, 참말로 어찌 몹시 큰지, 큰술통(네 말 들이) 하
나에 그득 차고, 무게가 10관이나 되어, 열두어 살 되는 아이만큼이나 하였
습니다. 그래 그 낙지 발, 단 두 오라기를 잘라 가지고 그 날 밤에 30명 사
람이 나눠 먹었습니다.
큰 고래가 머리 위로
잠수부에게 제일 위험하고 무서운 것은 고래입니다. 커다란 학교 집채 만
한 고래를 만나기만 하면 꼼짝 못하고 먹혀 버리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그런 일을 당해 보지 않았으나, 우리 친구 중의 한
사람이 이런 일을 당하였습니다.
일본 방주라 하는 곳 가까운 바닷속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있는데, 별안간
에 머리 위가 캄캄해지므로, 언뜻 보니까, 몇 칸 통이나 되는지 모르게 큰
고래가 머리 위로 지나가더랍니다.
“에구머니!”
하고 소리도 못 지르고 그냥 죽은 듯이 바다 바닥에 쭈그리고 있었더랍니
다. 물론,
“인제는 죽었다.”
하고 정신 잃고, 미리 죽어 앉아있었더랍니다. 그러니까 다행히 죽지는 않
고, 고래는 그냥 멀리 지나가고 말았으나, 또 다시 큰일 난 것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와 바닷속에 있는 자기와의 사이에 늘어져 있는 숨줄(공기 통하
는 줄)이 고래의 그 큰 입에 걸려서 그냥 뚝 끊어져 버렸더랍니다.
잠수부는 숨줄만 끊어지면 그만 나올 수도 없고, 숨도 못 쉬고, 금방 죽고
마는 것이므로,
“인제는 아주 죽었다.”
하고, 절망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찌된 셈인지, 자기도 모르게 그 몸이 저절로 떠올라서 물 위에
둥둥 떴더랍니다.
가라앉은 배 건지는 법
잠수부에게 제일 재미있는 일은 큰 기선을 건져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조선 전라 남도 목포 바다에서 갑주환(甲州丸)이라고 하는 2천 5백 톤이나
되는 큰 기선을 끌어올린 일이 있었는데 그 때도 퍽 재미있었습니다.
갑주환은 기선의 한편 끝을 바다 위에 쑥 내밀고, 거꾸로 박힌 듯이 물에
잠겨 있었는데, 그 배를 건져 낼 때에는 먼저 우리들 잠수부가 물 속에 들
어가서 기선 거죽을 조사하여 깨어졌거나 뚫어진 곳을 찾아내어서, 그것을
막아 다시 물이 못 들어가게 하는 방수(防水) 공사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흠집부터 막아 놓고, 다음에는 기선 밑으로 휘돌면서 기둥같이 굵
다란 쇠사슬로, 드문드문 여덟 매끼를 얽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굵은
쇠사슬 여덟 매끼의 좌우 끝, 열여섯 갈래를 물 위에 떠 있는 다섯 채의 기
선에 비끄러매고, 그 다섯 채의 기선의 힘으로 끌어서, 물 속에 잠긴 큰 기
선을 끌어올리었습니다. 물론 그 때 그 공사에는 조선 사람 노동자가 2백
명이나 끌어올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육지나 다름없는 바닷속
누구든지 우리를 보면 바닷속은 어떻게 생겼더냐고 묻습니다. 어린 사람들
은 더욱 그것을 궁금해 합니다.
바닷속은, 우리가 살고 있는 육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고 똑같습니다. 육지
위에 산이 있고, 골이 있고 벌판이 있는 것처럼, 바닷속에도 산도 있고, 바
위도 있고, 편편한 넓은 벌판도 있습니다. 그리고, 육지 위에 풀이 있고,
나무가 있는 것처럼 바닷속에도 여기저기 가는 곳마다 하얀 풀도 있고, 또
산호 같은 빨간 풀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국 끓여 잡숫는 미역도 바닷속에 있는 풀이요, 김치에 넣어 먹는
청각도 바닷속에 있는 풀이고, 값 비싼 산호는 바닷속에 있는 나뭇가지를
꺾어온 것입니다.
나는 그런 것들을 바닷속에서 늘 밟고 다닙니다.
저 - 남양 같은 곳에서는 가끔 가다가 바닷속에서 큰 생선을 만나서 넓적
다리를 잘리어 먹힌다는 말을 들었으나, 일본이나 조선 가까운 바다에서는
아직 그런 일이 없었고, 다만 고래를 만날까 봐 그것이 겁날 뿐입니다.
우리가 물 속에 들어갈 때에 입는 그 옷(잠수복)은 큰 어른의 몸무게보다
도 훨씬 더 무거워 20관이나 되므로 육지에서는 그것을 입고 마음대로 움직
일 수가 없으나, 그러나, 물 속에 들어가서는 그다지 거북하지 않으므로,
자유로 움직이어 무슨 일이든지 편히 할 수 있기가 육지 위에서 맨몸으로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잠수복도 입지 않고 공기를 통하는 숨줄도 없이, 맨머리, 맨얼굴로 바닷속
에 들어가는 해녀들은 물 속에서 숨을 못 쉬니까, 기껏 오래 있어도 10분을
못 있다 나오지마는, 우리는 잠수복에 딸린 숨줄이 있어서 물 속에서도, 바
깥 그대로 숨을 쉬므로 한 열 길 깊이 쯤 되는 속에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온종일이라도 있습니다. 그래도 조금도 거북하거나, 갑갑하거나, 피곤하지
를 않으니까요.
그러나, 한 열다섯 길쯤 되는 깊은 속이면 물이 누르는 압력이 있어서 쉬
이 피곤해지므로 그리 오래 있지 않고, 한 세 시간쯤 일하고는 곧 나와서
쉽니다.
그리고, 바닷속은 희한하게도 육지 위와 똑같이 밝고 환하여서 무엇이든지
잘 보입니다. 바닥에는 푸른 풀, 하얀 풀, 빨간 풀이 아름답게 피어 있어서
바람에 나붓거리듯이 물결에 나부끼고 있는데, 그 위로 금붕어보다도 어여
쁘고 깨끗한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어떻게 시원하고 어
떻게 아름다운지 그만 내 몸이 용궁의 용왕이 된 것 같습니다.
바깥 세상에 해가 지면 바닷속도 어두워집니다. 육지 위에서 희미하게 보
일 때면, 바닷속에서도 희미하게 보입니다. 어쨌든지 밝기나 어둡기가, 모
두 육지 위와 같습니다.
다만 열다섯 길, 열여섯 길씩 깊이 들어가는데, 잘 안 뵈는 때도 있으므로
백 촉이나, 이백 촉 되는 수중 전기등을 들고 들어갑니다.
한 번 저 조선 함경 북도에서 더 북쪽으로 가서 아라사(소련) 땅 해삼위에
갔었을 때에 네 치 두께나 되는 얼음을 깨고 그 물 속에 들어가 일할 때에
는 어찌도 추운지 물 속에서 벌벌 떨면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곳이라도, 깊고 깊은 바닷속은 몹시 몹시 말할 수 없이 찹
니다.
일본 야마구지껜은 항상 따뜻한 곳이건마는 나일 호라는 큰 배가 가라앉은
것을 건져내려고 바닷속에 들어간즉 어찌도 깊은지 40길이 더 되는 곳에까
지 들어갔는데, 어떻게나 추운지 몸이 당장에 얼어붙는 것 같고, 이가 딱딱
떨려서, 참말 죽을 뻔하였습니다. 그 때에 같이 일하던 친구 중에 세 사람
이 얼어 죽었습니다.
무섭고도 재미있는 바닷속 생활도 벌써 17년이 되니까, 나는 지금의 아무
것도 무서운 것이 없고, 한이 없이 재미있을 뿐이고, 지금은 바닷속이 내
집 같아서 어두운 밤에라도 손으로 더듬어서 물 속에서 아무리 작은 것이라
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어린이》1926년 9월 1일〉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