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삼부자의 곰잡기 / 동화 / 방정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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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부자의 곰잡기

 

옛날 옛적 아주 오랜 옛날 이야기올시다. 동산에 병풍을 치고 앞산 뒷산

담을 둘러서 불어오는 찬 바람도 길이 막혀 돌아서고, 밝은 해와 달도

발돋음을 하고서야 넘겨다보는 두메 산골 한 동리에서 아버지 김 서방과

맏아들 영길이, 둘째 아들 수길이, 세 식구가 날마다 재미있게 살아가는

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이 세 식구는 땅이 없어서 농사도 못 짓고, 밑천이 없어서

장사도 못하고, 오직 산짐승 사냥하여 겨우 그 날 그 날을 지내갔습니다.

사냥을 한다고 해도 총이나, 칼이나, 창 같은 것이 없어 맨주먹에 몽둥이

한 개씩을 들고 무슨 짐승이든지 만나는 대로 때려잡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노루, 사슴, 토끼 같은 작은 짐승은 말할 것도 없고, 산돼지나 곰

같은 무서운 짐승이라도 만나기만 하면 영락없이 때려잡곤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여러분이 혹 수길이네 삼부자를 모두 기운이 무척 센

천하 장사인 줄로 생각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이 세 사람은 결코

장사도 아무것도 아니요, 그저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동리 사람들은 모두 수길이 삼부자가 아무 무기도 없이

커다란 곰을 잡아 오는 것을 이상스럽게 여기었습니다.

수길이네 삼부자가 총도 없이 어떻게 그 날쌔고, 무서운 곰을 잡는지 참

신기한 노릇이야!”

글쎄 한 번 따라가 보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다가 산짐승이 달려들어 골통을 깨물면 어떻게 하나

동리 사람들은 모여 앉기만 하면 이런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두

겁이 앞을 서서 따라가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직 그

동리에서 제일 기운이 세고 겁이 없는 칠성이가 한 번 따라가서 수길이

삼부자의 곰 잡는 양을 먼 빛에서 구경하였을 뿐입니다.

수길이 삼부자가 몽둥이로 곰을 때려잡을 때는 끔직끔직하게 무섭고도

우스웠습니다.

삼부자가 몽둥이 한 개씩을 들고 줄렁줄렁 곰의 굴 앞으로 몰려가서는,

웅손아! 웅손아!”

하고, 소리를 지르면 황소 같이 커다란 곰이,

어흥!”

소리를 치며 쏜살같이 달려 나옵니다.

그 때에 한 사람이 날쌔게 달려들어 곰의 골통을 몽둥이로 내려갈기면

곰은 골이 잔뜩 나서 앞발을 번쩍 들어 그 사람을 깔고 앉았습니다. 이대로

가만 내버려 두면 곰에게 깔린 사람은 할퀴어 죽을 것이지만 이 때에 다른

사람이 또 번개같이 달려들어 몽둥이로 골통을 갈기면, 곰은 먼저 깔고

앉아 할퀴려던 사람을 내버리고, 둘째 번에 달려든 사람을 깔고 앉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또 달려들어 골통을 갈깁니다.

이렇게 번갈아서 불이 번쩍 나도록 달려들어 내리갈기고, 깔리우고,

내리갈기고, 깔리우고 하는 동안에 깥리웠던 사람이 또 일어나서

내려갈기고……, 이와 같이 한참 동안 싸우면 곰은 골통이 빠개져서 피를

흘리고 죽어 넘어집니다.

이야기로 해서는 대단히 쉬워 보이지만, 수길이 삼부자가 곰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서 목숨을 내던져 한바탕 싸울 때에는 그야말로 눈코 뜰 사이가

없이 나쁘게 덤비는 것입니다. 까딱 잘못하면 먼저 들어가 깔리운 사람의

목숨이 끊어질 터이니, 어찌 아슬아슬한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생각만

하여도 온몸에 소름이 쭉 끼치고 두 손에 찬 땀이 꼭 쥐어집니다.

이 모양으로 곰을 잡아다 팔곤 해서, 처음에는 더할 수 없이 구차하던

수길이의 집 살림이 점점 넉넉하여지는 것을 보고 제일 먼저 부러워하고

욕심을 낸 사람은 칠성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도 한 번 곰 사냥을 하여 보고야 말리라.’ 고 속으로 부르짖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어떤 때, 수길이의 형님이 가 볼 일이 있어서 어디를 갔으므로, 수길이와

그 아버지도 할 수 없이 며칠 동안을 놀고 있었습니다. 이 때에 칠성이가

달려와서,

요사이는 어찌해서 곰 사냥을 하지 않습니까?”

고 수길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영길이가 어디를 가서…….”

수길이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저하고 같이 가시지요! 이 주먹으로 내려갈기면 그까짓 곰 한

마리쯤이야 단 한 번에 죽어 넘어지지요.”

칠성이는 이렇게 말하며 무섭게 커다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습니다.

안 돼! ── ! 아무리 기운이 세더라도 곰만큼 기운이 세지 못할 것은

사실인데, 그 기운을 믿어 가지고는 안 돼.”

수길이 아버지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칠성이는 그래도 가만히 있지 않고,

어째서 안 됩니까? 제가 영길이만큼 사냥을 못하리라는 말씀입니까?”

, 대어들어 물으니까, 수길이 아버지는,

사냥이야 잘 하든지 못하든지, 이 노릇은 삼부자가 해야 되는 것이지,

남과 같이 하지는 못 하는 것이야! 꼭 삼부자라야 돼!”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칠성이는 아직도 알아듣지 못하고,

왜요? 삼부자가 아니면 곰이 때려도 죽지 않습니까?”

또 물었습니다.

아니 딴 사람이 때린다고 곰이 죽지 않을 리야 없지! 때리기만 하면

물론 마찬가지지! 그렇지만 우리가 하는 사냥은 목숨을 내놓고 죽기 살기를

함께 하기로 하고 달려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야! 친부자간이나

형제간에서는 아무리 내 몸이 위급하더라도 나 하나만 살 생각을 두지

않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기로 자꾸 달려드니까 나중에는

곰을 잡지만 다른 사람이야 어디 그런가? 그래서 안 된다는 것이야! 이제는

알아들었나?”

수길이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며 칠성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칠성이는,

! 알아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결단코 내 몸이 급하다고 먼저

도망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꼭 친부자간, 친형제간같이 마지막까지

싸우지요! 제가 이 전에 한 번 가만가만 따라가서 먼빛에서 곰 잡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꼭 영길이와 같이 하지요. 어서 같이 갑시다.”

하며, 당장 손목을 끌 듯이 서둘렀습니다. 수길이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면서,

정말 그렇다고 하면 가지! 그런데 앉아서 생각하고 말하기와 실지와는

딴판이야!”

! 염려 마십시오!”

칠성이는 결심한 듯이 부르짖었습니다.

이리하여 세 사람은, 산으로 올라가서 어떤 커다란 곰의 굴 앞까지

갔습니다. 가서는 전과 같이,

웅손아! 웅손아!”

소리를 지르니까, 송아지 같은 곰 한 마리가 달려 나왔습니다. 칠성이가

남보다 먼저 달려들어 몽둥이로 곰의 골통을 갈기니까, 곰은 조그만 눈을

흡뜨고 달려들어 칠성이를 깔고 앉았습니다. 이 때에 수길이 아버지가

달려들어 골통을 내려 갈기니까, 곰은 칠성이를 놓고 수길이 아버지를 깔고

앉습니다.

또 수길이가 달려들었지요.

그런데, 칠성이가 두 번을 배 밑에 깔리고 나니까, 어떻게 급하던지

그야말로 온몸이 송편처럼 납죽하여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떠나올 때에 먹은 마음은 다 어디 가고, 죽을까 보아 겁이 앞을 서서

다시는 달려들어 싸우지 못하고 한편 모퉁이에 피하여 서서 치를 덜덜 떨며

수길이 부자가 싸우는 양을 보기만 하였습니다.

수길이와 그 아버지는 칠성이가 빠져 나갔는지 않았는지 생각할 여가가

없이, 불이 번쩍 일도록 달려들어 내려 패고 갈기었다가는 일어나서 내려

패고, 내려 패고는 또 깔리고 하며 얼마 동안 싸워서, 그 곰을 때려

죽였습니다.

온몸이 땀으로 목욕을 하다시피 된 수길이 아버지는 숨이 턱에 닿아서,

이번에도 죽이기는 죽였다마는 어째서 차례가 이다지 잦으냐.”

하며, 수길이를 돌아보았습니다.

글쎄요. 오늘은 전보다 더 급한걸요!”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든지 칠성이의 행동을 더럽게 여기시리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의 말로는,

힘을 합치자! 한몸이 되자!”

하고, 떠들지만 정작 곰 배 밑에 깔리는 것 같은 위급한 경우를 당하면

슬그머니 빠져 나와서 모르는 척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와 반대로

만일 수길이의 삼부자처럼 아무리 위급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처음에 먹은

마음이 변치 않고 끝까지 싸우는 사람이 단 천 명, 백 명 아닌 단 열 명,

단 세 명만 엉키면 천하에 무서운 것과, 못 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곰도 잡고, 호랑이도 잡지요.

여러분! 우리는 다 같이 수길이 삼부자처럼 한몸이 됩시다. 그리고

속담에,

삼부자 곰 잡듯 한다.”

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의 뜻도 이 이야기를 읽으셨으니까 잘 아셨을

것입니다.

 

〈《어린이8 6, 1930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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