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사슴- 노천명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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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시집 산호림(珊瑚林)”(1938)


<핵심 정리>

 

시작(詩作) 배경

사슴과 5월과 고독의 시인으로 불리는 노천명의 대표작. 현실에 타협하지 못하고 결혼도 않고 고독과 빈궁으로 일생을 마친 시인의 자화상(自畵像)이다.

감상의 초점

노천명 시인의 대표작으로 널리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작품이다. “공소한 감정의 유희와 허영된 언어의 과장을 발견할 수 없다고 평할 만큼 감정이 절제되어 있고, 언어의 낭비가 없는 작품이다. 정결한 몸가짐, 흐트러지지 않은 매무새를 지니려 애를 쓴 흔적이 배어 있다. 그러나 일제하 잘못된 현실 인식으로 자초한 불명예, 6·25 전란시의 부역으로 인한 고초 등등 시인의 작품 외적(外的) 생애를 알면 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 마리의 사슴을 스케치한 소품으로 보이는 이 시는 감정 이입의 수법으로 사슴을 시인의 분신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슬픈 짐승은 시인의 어떠한 모습을 투영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잃었던 전설높은 족속이 향수의 근원을 나타낸 것이라면 먼 데 산의 상징 의미는 무엇인지 시인의 시심을 헤아려 보자.

성격 : 감상적, 관조적

특징 : 절제된 언어를 통한 감상(感傷)의 극복

표현 : 의인법, 감정 이입법

사슴을 의인화하여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사슴으로 하여금 작자의 분신(分身)이 되게 하였고, 표현이 여성답게 간결.섬세하며, 내용이 고독하고 회고적(回顧的)이나 여성이 빠지기 쉬운 지나친 감정의 노출은 극복되었다.

구성 : 사슴의 외모(속성)귀족적 품위(고고함)(1)

사슴의 내면향수, 애수, 동경(2)

제재 : 사슴

주제 : 이상향에 대한 동경. (이상적 생명에의 향수)

시어의 풀이

* 1-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고독한 시인의 모습(감정이입,의인법)

* 5- 내면적 성찰을 통해 자기의 참모습을 응시함. Narcissism과 통함.

* 잃었던 전설 - 높은 족속이었던 지난날(고고한 마음의 본향)

* 먼 데 산 - 향수에 젖은 모습(동경과 자유의 세계 상징)

 

 

<연구 문제>

1. <보기>에 나오는 청노루와 이 시의 사슴을 비교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100자 이내로 쓰라.

 

<보기>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

()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 박목월 ()노루

<모범답> 시적 관심이 현실이 아닌 자연에 두어진 점은 같지만, 박목월의 청노루는 풍경의 일부이며 단순한 정물(靜物)로서 그려진 반면, 노천명의 사슴은 감정 이입을 통해 인격화되어 있다.

 

2. 은 화자의 어떤 모습을 어떤 이미지로 표현한 것인지 이 시에 나오는 주제어를 넣어 한 문장으로 쓰라.

<모범답> 향수에 젖어 있는 모습을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였다.

 

3. 이 시의 화자가 제재에 대하여 가지는 태도를 4자의 한자 성어로 쓰라.

<모범답> 동병상련(同病相憐)

 

 

< 감상의 길잡이 1 >

이 시는 세속에 휩쓸리지 않고 조용히 다스려온 삶의 자세를 사슴에 투영시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먼저 이 시가 제시하는 정경을 떠올려 보자. 여기에 사슴 한 마리가 있다. 그 사슴은 긴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보고 있다. 아무래도 사슴이 지금 서 있는 자리는 그것이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온전한 자연은 아니다. ‘먼 데 산은 사슴이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과거의 영토이다. 과거에 대한 향수가 사슴의 모가지를 길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과거가 향수의 대상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잃어버린 전설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전설은 바로 그가 높은 족속으로서 고고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시절을 의미한다.

 

이렇게 문맥을 짚어갈 수 있는 이 시는, 겉으로는 사슴을 가볍게 스케치한 한 폭의 작은 그림 같지만, 사슴에게 인격을 불어 넣고 감정을 이입(移入)시켜 어느덧 사슴은 시인 자신의 모습으로 변모되어 독자 앞에 나타난다. 불행한 현실은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이는 사람에게 하나의 질곡(桎梏)일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거기에 바로 노천명 시인의 슬픔이 자리잡고 있다.

 

 

< 감상의 길잡이 2 >

이 시는 흔히 사슴과 5월과 고독의 시인으로 불리며 30년대 여류 시단을 모윤숙과 함께 이끈 노천명의 대표작이다. 시사적 측면에서 현대시다운 시를 쓴 최초의 여류 시인으로, 가장 여성다운 시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 그녀는 여류 시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센티멘탈리즘을 철저히 억제하고, 절제된 언어에 의해 탁월한 비유법을 구사하였다.

 

시인은 세속의 흐름에 휘말리지 않고 조용히 안으로 자신을 다스려 온 삶의 자세를 사슴에 비유함으로써 단아하고 고고한 풍모를 나타내고 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사슴관이 향기로운 / 높은 족속으로자신을 인식하게 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잃었던 전설을 생각하먼 데 산을 쳐다보는 사슴은 바로 각박한 현실 세계와 영합하기를 거부하며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젖어 일생을 독신으로 살다 간 시인 자신의 자아 투영으로 볼 수 있다.

 

잃었던 전설높은 족속과 관련되어 향수의 근원을 밝힌 것으로, 사슴은 먼 산이라는 이상(동경) 세계를 바라보며 세속과 타협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자아 성찰을 통해 마침내 어찌할 수 없슬픈 모가지를 하는나르시시즘(narcissism)적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 감상의 길잡이 3 >

오래된 이야기지만 대학입시에 노천명의 시사슴이 출제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의 시구가 무슨 짐승을 가리킨 것이냐는 물음에 대부분의 수험생들이기린이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그 충격은 젊은 세대들의 시적 독해력 부족에서가 아니라 전통의 단절감에서 오는 것이었다

 

사슴은 학거북이와 함께 십장생의 하나로 한국인과는 참으로 오랫동안 친숙하게 지내온 짐승이다불로초를 입에 물고 있는 사슴의 그림은 신선도가 아니라도 시골 농가의 베갯모에서도 곧잘 찾아 볼 수 있다

 

()를 숭상하는 영웅형 문화에서는 사자독수리와 같은 힘센 생물이 찬양되고 문장같은 상징물로 등장하고 있지만문을 숭상하는 성자형 문화에서는 사슴학처럼 힘없는 짐승들이 오히려 고귀하고 신령한 것으로 대접받는다그리고 그러한 짐승들은 웬일인지 목이 무방비 상태로 길다쫓기고 잡혀먹히는 그 약한 짐승들을 오히려 장수의 상징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여간한 역설이 아니다그런점에서 사슴은 약하기 때문에 강하다는 도교적 논리의 모범답안라고 할 수 있다목이 긴 짐승이라고 금시 기린을 생각하는 세대들에게 있어서는 사슴만이 아니라 목이 긴 것과 슬픈 것의 상관성 역시 모르는 문제의 하나 일 것이다순수한 한국말로는 생명을 목숨이라고 한다

 

생명이라고 하면 추상적으로 느껴지던 것이 목숨이라고 하면 손으로 만질 수 있듯이 가깝게 느껴진다.「목숨은 곧모가지라는 육체성을 지니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이 경우만은 국어 순화가 통하지 않는다만약목이 길어서 슬픈 동물이여라고 한다면 우리는 아무런 감흥을 받지 못할 것이다

 

노천명의 시만이 아니다.「모가지여 모가지여 모가지여 모가지여라고 네번 되풀이한 서정주의 시행진곡에서 우리가 처절한 생명의 절규를 듣게 되는 것도 그것이이 아니라 모가지이기 때문이다

 

모가지라는 말 속에는 인간과 동물이 다같이 공유하고 있는 원 초적이고 본능적인 생명의 알몸뚱이가 들어 있다목이 짧으면 오히려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공격적 존재로 보이지만 목이 길면 수동성과 생명의 무력성이 드러나게 된다모딜리아니가 그린 여인들의 초상이 조금씩 슬퍼 보이는 이유는 예외없이 그 목이 길게 그려져 있는 탓이다

 

슬픔은 짐승이든 인간이든 간에 그 존재를 내면화한다노천명의 시적 시각으로 보면 초상집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목은 누구나 다 길어보이고 슬퍼보이고 조금씩은 정신적으로 보일 것이다실제로 노천명은 사슴의 목침묵 그리고 그 뿔의 순서로 묘사대상을 이행해가면서 슬픔에서 점잖음으로점잖음에서 고귀함으로 그 내면화과정을 심화해가고 그 차원을 높여 간다

 

그러나 이러한 사슴의 속성은높은 족속이었나보다의 과거형으로 묘사하고또 다음 연에서는먼데 산을 본다라고 하여 사슴의 본래성과 현존성의 괴리를 나타내고 있다직설적으로 말해서 노천명의 사슴은 십장생도에 등장하는 심산유곡의 사슴이 아니라 동물원에서 사육되고 있는 문명 속의 사슴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동물원이 아니라면 사슴목장 속의 사슴이거나 일본 나라내량에 가축처럼 기르고 있는 그런 사슴인 것이다많은 평자들이 이점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작가의 자아니 자화상이니 하는 어려운 말들을 붙여서 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사슴이 먼데 산을 본다는 것은 곧 그 사슴이 지금 산에 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며 잃었던 전설이나 향수라는 말은 그 먼산」(불로초가 있는 전설의 공간인간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연에 있었던 때의 사슴을 가리키는 것으로 현존하고 있는 그 사슴과는 시간도 공간도 모두 멀리 떨어져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이 시에서 먼데라는 말은 지리적인 거리만이 아니라 내면적인 거리의식 속의 거리를 가리키는 것이며 사슴의 본래성과 그 현존성의 괴리를 보여준다사슴만이 아니라 본래의 나현존하는 나의 괴리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은 모두가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바라보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슴을 노천명 시인의 자화상이라고 말하는 평자들 은 그야말로 사슴을 동물원에 가둔 사육사와 다를 것이 없다왜냐하면 이 시가 지닌 보편적 감동을그 전설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동물원 속의 사슴은 세속화한 사회물질 문명속에서 사육되고 있는 모든 시인의 모습이고 동시에 목에 갈기를 세우고 돌진해오는 권력자나 실리자 앞에서 슬픈 모가지를 내밀고 있는 무력한 지식인들의 초상화이기도 한 것이다. 이 천박한 시대 속에서상상력이 없는 목 짧은 그 사람들이 생존의 땅을 독점하고 있는 이 도시에서 몰락해 가는 모든 정신주의자에게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과거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향기로운 관 뿐이다.

 

사슴 뿔은 해마다 떨어졌다가는 다시 새뿔이 돋아나는 재생의 힘을 지니고 있다옛날 임금들이 사슴 뿔 모양의 왕관을 썼던 것도 바로 이 거듭나는 신비한 재생력과 그 영원성을 동경하였기 때문이다이제 누가 향기로운 관을 쓰려고 하는가손과 발이 머리를 압도하는 행동의 시대에 누가 머리를 장식하려하는가누가 재생의 신비한 의식의 가지치기를 믿으려 하는가사슴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먼데 산을 보는눈이 있는 한 그 향기로운 관은 거듭태어 나는 재생의 전설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슴의 슬픈 모가지는 먹이를 물어뜯고 포효하는 늑대의 그 이빨보다 더 오랜 세월을 시 속에서 그리고 십장생의 베갯모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어령 교수>

 

 

< 감상의 길잡이 4 >

두 연만으로 된 단순한 구도의 이 작품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된다. 목이 긴 것과 슬픈 것과는 대체 어떤 관계가 있길래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 것일까? 이런 물음에 논리적으로 분명하게 답하기에는 어렵지만, 우리는 긴 목이 어떤 고고(孤高)함과 관계 있다는 데서 실마리를 풀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과 어울리게 사슴은 언제나 점잖은 편이어서 말이 없다고 한다. 그는 다른 동물들과 어울리지 않고 쓸쓸하다. 여기서 시인의 상상력은 사슴이 지나쳐 온 어떤 먼 과거로 돌아간다. 향기롭고 우아한 관()이 있는 것을 보건대 그는 아마도 예전에는 무척 고귀한 족속이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사슴은 때때로 물 속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면서 잃어버린 전설 그가 예전에 누렸을 고귀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생각해 낸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향수(잃어버린 옛날에 대한 그리움)를 어찌할 수 없어서 사슴은 먼 산을 바라본다. 그의 긴 목은 그럴수록 더욱 가냘프고도 슬프다.

 

이렇게 보아 오는 동안 우리는 이 작품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고귀한 꿈을 지키며 외로이 살아가는 사람의 체험을 노래한 것임을 알게 된다. 사슴은 그것을 노래하기 위한 하나의 은유 내지 상징일 따름이다. [해설: 김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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