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 노천명
by 송화은율장날
- 노천명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
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송편 같은 반달이 싸릿문 위에 돋고,
건너편 성황당 사시나무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저녁,
나귀 방울에 지껄이는 소리가 고개를 넘어 가까워지면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 “여성”(1939)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이 시는 일상적인 용어를 구사하여 이해하기가 비교적 쉬운 작품이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시골, 그러나 푸근한 인정이 넘치는 고향을 눈앞에 그려 보자. 심오하고 깊은 의미만 가득 숨어 있는 시가 아님을 알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어느 시골이며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한 장면이 그려져 있다. 장날 새벽의 정경과 저녁의 풍경이 소박하고 평화롭게 펼쳐져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먼저 그 분위기나 상황을 상상해 보자. 시구마다 어떤 깊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하고 분석하거나 깊이 파고 들 것은 없다. 평범한 말뜻의 이해만으로 충분하다.
▶ 성격 : 감상적, 관조적
▶ 특징 : 동시적(童詩的) 분위기의 소품(小品)
▶ 구성 : ① 장날의 새벽 정경(제1연)
② 장날의 저녁 정경(제2연)
▶ 제재 : 시골 장날
▶ 주제 : 옛 고향에 대한 추억
<연구 문제>
1. ㉠의 뜻을 15자 내외로 풀어 쓰라.
<모범답> 내다 팔아 돈을 만들어야
2. 이 시에 관한 설명으로 바르지 않은 것은?
<모범답> ④
① 시적 대상의 구체화가 두드러진다.
② 시골 풍물의 인상적 표현이 뛰어나다.
③ 토속어의 배열이 질서를 형성하고 있다.
④ 작가의 외로운 정서가 이쁜이에게 이입(移入)되어 있다.
3. 이 작품을 소설에 견준다면 어떤 시점에 해당될까? 그렇게 보는 근거를 들어 80자 내외로 쓰라.
<모범답> 화자가 표면에 드러나 있지 않고, 주관적 감정이 노출되지 않았으며, 대상을 객관적 거리를 두고 묘사하는 점으로 보아 작가 관찰자 시점으로 볼 수 있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제1연은 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의 정경이고, 제2연은 장을 보로 돌아오는 ‘저녁’의 정경으로 되어 있다.
나귀 등에 짐을 싣고 새벽에 집을 떠나 20리나 걸어야 열하룻장을 볼 수 있는 시골. 살림이 넉넉할 리가 없다. 울 안에 한두 그루 심어 놓은 대추나무, 밤나무의 열매를 쓸 만큼 남겨 놓고 몇 됫박이라도 내다 팔아야 추석을 쇤다. 일 년 중 가장 풍성해야 할 농촌이지만 우리네 살림이 다 그렇지만은 못하다. 요리조리 재며 한 푼이라도 쪼개 써야 하는 현실을 어린 아이가 알 턱이 없다. 철모르는 막내딸 이쁜이는 내다 팔아야 할 대추를 안 준다고 운다. 딸에게 대추 한 줌을 집어 줄 수 없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마는 이 시의 아름다움은 그것을 끝까지 비참함으로 몰고 가지 않은 데 있다. 이 시의 시다운 맛은 그 비참함보다는 차라리 순박한 정경에 있다. 그것을 제대로 느끼려면 무엇보다 각 연의 마지막 행 ‘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를 놓쳐서는 안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는 장보러 가는 아버지의 가난함을 여지없이 드러나게 하지만, 우리는 그 아버지의 비참함보다는 어린 딸의 천진스러움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끝 연에서는 그것이 더 재미있게 전환된다. ‘이쁜이보다 삽살개가 먼저 마중을 나갔다.’
울던 딸의 모습을 생각하며 아버지는 내내 언짢은 기분이었으리라. 그러나 울다가 잠이 든 것일까? 딸 대신 삽살개가 먼저 나와 꼬리를 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삽살개가 주인을 반기는 정경이 이 시의 긴장된 분위기를 누그려뜨리며 읽는 이의 입 가에 엷은 웃음을 번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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