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빈 집을 지키며 / 해설 / 조창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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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을 지키며 - 조창환

 

 

내 쓰린 늙음이 먼저 와서
빈 집의 저녁 연기 속에 앉아 있다
계단을 올라오는 낯선 사람이
아내가 잠그고 간 빗장을 푼다
홀로 마시는 술에 취하지 않는다
책상 위에 한움큼 못이 흩어져
이 집은 수십년 전과 다르지 않다
죽음이 오기 전에 반드시 이명증(耳鳴症)이 있을 것이다

 

<빈집을 지키며, 심상사, 1980>


이해와 감상

 집을 나섰다가 돌아오곤 하는 일상의 쳇바퀴를 돌다보니 어느새 나보다 시간이 먼저 내 삶을 살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는 독특한 발상이 돋보인다. 나는 낡았고, 집은 늙었으며, 이제 그만큼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시인의 깨달음이 이 시에 탄식과 체념의 빛을 서리게 한다. 이 자조 어린 분위기란 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다름이 없다. 늘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다가 갑자기 홀로 빈 집을 지킬 때의 그 허망한 기분이 우리가 문득 삶에서 떨어져 나와 내 자신을 보게 되는 때의 느낌과도 같은 것이다. 더 큰 허망함으로 다가올 시간을 `이명증'으로 예감해 보는 삶의 지혜란 자기 삶의 시간을 살피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얻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해설: 박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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