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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지(不毛地) / 본문 일부 및 해설 / 차범석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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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지(不毛地) / 차범석

 

 본문

                               제 1 막

나오는 사람들

  최 노인(60세, 혼구 대여점 주인)     아들 경재(18세, 고등 학교 3학년)

  어머니(57세)                                딸 경애 (23세, 영화 배우를 꿈꾸는 처녀)

  아들 경수(26세, 제대 군인)            딸 경운(20세, 출판사 식자공)

때 ― 현대
곳 ― 서울

 

 무대

 번화한 상가에 자리잡은 최 노인의 낡은 기와집. 정면에 유리문이 달리고 마루를 사이에 두고 방이 둘 있고, 좌편으로 기역형으로 굽어서 부엌과 장독대, 유리문 저쪽은 가게 우편으로 대문을 끼고, 헛간과 방 하나의 딴 채가 서너 평이 못 넘는 좁은 뜰을 에워싸고 웅크리고 앉았다. 해묵은 지붕에는 푸른 이끼며 잡초까지 자라나서 오랜 풍상을 겪어 내려온 이 집의 역사를 말해 주는 듯하다. 배경으로 면목이 일신해져 가는 매끈한 고층 건물의 행렬이 엿보이고 좌우편에도 역시 3, 4층이나 되어 보이는 최신식 건물이 들어서서 이 낡은 기와집을 거의 폐가처럼 멸시하고 있다. 좌편 건물은 아직도 건축 공사가 진척 중에 있는지 통나무로 얽어맨 작업 보조대에 거적대기가 걸려서 건물을 반쯤 가려진 채로다. 이처럼 대차적(大差的)인 주변의 장애로 말미암아 이 낡은 집 안팎에는 온종일 햇볕이 안 드는 탓인지 한층 어둡고 습하며 음산한 공기가 찬바람처럼 풍겨 나온다. 때는 초여름 어느 일요일 오전.

 

 막이 오르면 질주하는 전차며 자동차의 소음이 잇따라 들려온다. 뜰가에서 경운이가 함석통에 담겨진 빨래를 빨고 있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어머니의 초라한 모습이 보인다. 좌편 담 아래에 마련된 조그마한 화단 앞엔 아까부터 최 노인이 쭈그리고 앉아서 화초며 푸성귀들을 손보고 있다. 입에 물린 파이프에서 이따금 뱉어지는 담배 연기가 한가롭다. 잠시 후 경재가 물지게를 지고 좁은 대문을 간신히 빠져 나와 경운 앞에다 부려 놓는다.

 

경재 : 어유, 오늘은 웬 사람이 그리도 많아……. 공동 수도엔 난장판인걸! (하며 항아리에다 물을 붓는다.)

경운 : (여전히 빨래를 하며) 비가 개니까 집집마다 빨래하느라고 그렇겠지…….

경재 : 아버지, 우리도 다음엔 제발 물 흔한 집으로 옮깁시다. 물만 긷다가 내년 봄엔 낙제하게 생겼는걸요! 하루 이틀이 아니구…….

최 노인 : (돌아보지도 않고) 그래 …….

경운 : 애도 속없는 소리 잘 하긴 경애 언닐 닮았나봐! 누가 이따위 골목 구석에서 살고 싶어 살고 있니?

경재 : 살기 싫으면 딴 데로 옮기면 될 걸 왜 이런 게딱지 굴 속에서 산다는 거요?

최 노인 : (눈을 크게 부릅뜨며) 무슨 소리냐? 이 집이 어때서?

경재 : 아버지나 좋아하시지 우리 식구 중에서 이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최 노인 : 싫은 놈은 언제건 나가라지! 절간이 미우면 중이 나가는 법이야.

경재 : (남은 물통을 비우며) 중도 없는 절을 뭣에 쓰게요? 도깨비나 날걸…….

최 노인 : (약간 핏대를 올리며) 도깨비가 나건 노다지가 나건 제 집 지니고 산다는 걸 다행으로 알아, 이놈아!

경재 : (못마땅한 낯으로) 다행으로 알 건덕지가 있어야죠.

최 노인 : (휙 돌아서며) 뭐, 뭐야?

경운 : (재빨리 공기를 수습하려 들며) 경재야 한 번만 더 길어와! 물이 끊어지면 어떡헐랴구…….

경재 : 또야? 나 시간 약속이 있는데……

경운 : (흘겨보며) 너 그러면 나와 약속한 일 국물도 없다!

경재 : (짜증을 내며) 정식이하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기로 했는걸……. 아홉시 사십분까지 가야 돼요.

어머니 : (설거지통을 들고 부엌으로 나오며) 바쁘면 어서 가려무나, 설거지가 끝나면 내 가 길을 테니…….

경재 : (펄쩍 뛰며) 엄마가 제일야! 우리 엄마가 넘버원이지! 그 대신 내일 아침엔 식전에 다섯 지게 길을게요. 어머니!

어머니 : (웃으며) 그럼 물 항아리를 더 사놔야겠구나……. (하며 수채 구멍에다 물을 버린다.)

경재 : (손을 씻으며) 항아리 값은 우리의 재무 장관인 작은 누나가 치르구 하하……. (하며 아랫방으로 퇴장)

경운 : 깍쟁이! (빨래를 짜며) 어머니가 어떻게 물을 길으신다구 그러세요! 아직도 허리를 쓰시기가 거북하시다면서……. (방 안에서 휘파람 소리가 흘러 온다.)

어머니 : 괜찮아…….

최 노인 : 참 그 고약은 다 붙였어?

어머니 : 예, (허리를 가볍게 치며) 이제 훨씬 부드러워졌어요.

최 노인 : 뭐니 뭐니 해도 그 강 약방의 처방이 제일이야! 내 청이라면 친형제 일보다 더 알심 있게 약을 써 주거든!

어머니 : 하기야 이 동네에서 예부터 사귀어 온 집은 이제 그 강 약방하구 우리집뿐인걸요.

최 노인 : 그래,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며) 이 집에서 산 지가 꼭 사십칠 년이고 그 강 약방이 사십 년이 되니까, 그러고 보면 나도 무던히 오래 살았어……. 이 종로 바닥에서 자라서 장가들어 자식 낳고 길러서 이제는 환갑을 맞게 되었으니…….

어머니 : (마루 끝에 앉으며) 정말……, 근 오십 년 동안에 이웃 얼굴 바뀌고 저렇게 집이 들어서는 걸 보면 세상 변해 가는 모양이 환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제가 당신에게 시집왔을 때만 하더라도 어디 우리 이웃에 우리 집 담을 넘어서는 집이 있었던가요?

최 노인 : 사실이야! 빌어먹을 것! (좌우의 높은 집들을 쏘아보며) 무슨 집들이 저 따위가 있어! 게다가 저것들 등살에 우린 일 년 열두 달 햇볕 구경이라곤 못하게 되었지! 당신도 알겠지만 옛날에 우리 집이 어디 이랬소?

경운 : (웃으며) 아버지두……, 세상이 밤낮으로 변해 가는 시대인데요…….

최 노인 : 변하는 것도 좋구 둔갑하는 것도 상관치 않지만 글쎄 염치들이 있어야지 염치가!

경운 : 왜요?

최 노인 : 제깐놈들이 돈을 벌었으면 벌었지 온 장안 사람들에게 내노라는 듯이 저 따위로 층층이 쌓아올릴 줄만 알고 이웃이 어떻게 피해를 입고 있다는 걸 모르니 말이다!

경운 : 피해라뇨?

최 노인 : (화단쪽을 가리키며) 저기 심어 놓은 화초며, 고추 모가 도무지 자라질 않는단 말이야! 아까도 들여다보니까 고추 모에서 꽃이 핀 지는 벌써 오래 전인데 열매가 열리지 않잖아! 이상하다 하고 생각을 해 봤더니 저 멋없는 것이 좌우로 탁 들어막아서 햇볕을 가렸으니 어디 자라날 재간이 있어야지! 이러다간 땅에서 풀도 안 나는 세상이 될 게다! 말세야 말세! (이 때 경재 제복을 차려 입고 책을 들고 나와서 신을 신다가 아버지의 얘기를 듣고는 깔깔대고 웃는다.)

경재 : 원 아버지두…….

최 노인 : 이눔아, 뭐가 우스워?

경재 : 지금 세상에 나의 집 고추밭을 넘어다보며 집을 짓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최 노인 : 옛날엔 그렇지 않았어!

경재 : 옛날 일이 오늘에 와서 무슨 소용이 있어요? 오늘은 오늘이지. (웅변 연사의 흉을 내며) 역사는 강처럼 쉴새없이 흐르고 인생은 뜬구름처럼 변화 무상하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이 역사적인 사실을 똑바로 볼 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소 한도로 아셔야 할 것입니다! 에헴!

경운 : 호…….

최 노인 : 아니 저 자식이 아침부터 조밥을 먹었어! 웬 잔소리냐 잔소리가?

경재 : (옷을 털고 일어서며) 잔소리가 아니라요, 이건 웅변 대회 때 써먹은 원고의 한 구절이에요! 하……. (경운에게 가서 손을 벌리며) 누나 약속 이행은 해야지!

경운 : 아쉰 소리 하는 편이 더 권리가 당당하구나?

경재 :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 행사죠!

경운 : 허지만 고용주가 돈이 없다고 잡아떼면 찍 소리 못하더라?

경재 : 누가?

경운 : 우리 인쇄소에서도 두 달치나 밀린 월급을 엊그제야 받았지만…….

경재 : 그래도 우리 누나는 그런 악질 기업주는 아니신데 뭐……. (하며 언사를 떤다.)

경운 : 흠, 위험한 비행기! (물 젖은 손을 뿌리며 지갑에서 돈을 꺼내 준다.) 일찍 돌아와! 골목마다 깡패들이 득실거린다던데…….

경재 : 내가 도리어 깡패들의 덕을 봐야 할 형편인걸! 없는 놈은 그런 걱정 없어!

어머니 : 말두 말아라, 끼니 먹을 것은 없어도 도둑 맞을 것은 있단다……. 조심해라!

경재 : 염려 마세요. 다녀오겠습니다. (나가려다 말고) 아버지!

최 노인 : 왜?

경재 : 절 보기 싫으면 중이 나가죠?

최 노인 : 그래……. 왜 그건 또 묻는 거냐?

경재 : (좌우 고층 건물을 가리키며) 저게 뵈기 싫으니 우리가 떠나야죠!

최 노인 : 뭐, 뭐라구?

경재 : 시외로 가면 후생 주택이 얼마든지 있대요. 집 값도 싸고 무엇보다도 터전이 넓어서 화초며 채소는 얼마든지 심어 낼 수가 있을 거예요. 공기 좋고 조용하고 집집마다 맑은 우물이 있고 아주 멋지게 살 수 있대요.

어머니 : 참, 창용이네도 지금 들어 있는 집을 팔고 그 후생 주택으로 옮긴답데다.

최 노인 : 그렇게 가고 싶걸랑 따라가 살구려! 난 이 집에서 났으니 이 집에서 죽을 테니까!

경재 : (일부러 과장된 표현으로) 원자탄 고집 폭발이다!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급히 뛰어나간다. 이 때, 대문 안에 아침 목욕에서 돌아오는 경애 등장, 그의 손엔 목욕용 세숫대야며 화장품이 들렸고 얼굴엔 콜드 크림이 범벅되어 반지르르 기름이 흐른다. 머리는 핀칼을 감은 채로다.)

경재 : 미스 코리아가 돌아오시네!

경애 : 까불어?

경재 : 도대체 큰 누나는 언제 영화에 출연하는 거요?

경애 : 가까운 장래! (하며 마루에 앉는다.)

경재 : 혜성처럼 나타난 뉴 페이스 최경애 양인가?

경애 : 한국의 킴 노박이다!

경재 : 하나님 맙수사! 최 호박이 안되었으면…….

경애 : 아니 이 녀석이! (하며 때리려 하자, 소리를 지르며 퇴장)

최 노인 : 경재란 놈은 어디 가든 제 밥 벌이는 할 거야.(하며 만족한 웃음을 띤다.)

어머니 : 좀 경한 편이죠. (경애에게) 웬 목욕이 그렇게 오래 걸리니?

최 노인 : 그래도 밤낮 익모초(益母草) 씹는 쌍판보다는 낫지! 이 집에 그 누구처럼…….

    (어머니와 경운은 뜻 품은 시선을 서로 던진다. 경애는 손톱에 손질을 하고 있다.)

최 노인 : 경수 녀석은 어젯밤에도 안 들어왔지? (하며 험악한 시선을 던진다.)

어머니 : (변명하듯) 어디 친구네 집에서나 잤겠죠…….

최 노인 : (성을 내며) 제 집과 나의 집 분간도 못하는 놈이 어디 있어? (하며 담배를 다시 피워 문다.)

어머니 : 내버려 두시구려! 그 애에게 그런 재미도 없어서야 되겠수?

최 노인 : 재미? 지금 우리 형편이 재미를 보기 위해서 살아갈 팔자야?

어머니 : 그렇지만 마음대로 안되니까…….

최 노인 : 당신은 좀 잠자코 있어! (하고 소리를 버럭 지른다. 경운은 빨랫줄에다 빨래를 널며 눈치만 보고 경애는 재빨리 건넌방으로 들어간다.)

최 노인 : 사람이란 얌치가 있어야 하는 법이야! 제놈이 군대에 갔다 왔으면 왔지 놀고 먹으라는 법은 없어!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내일 모레 삼십 고개를 바라보는 녀석이 취직이 안 된다 핑계 치고 비슬비슬 놀고만 있으면 돼? 첫째로 경운이 미안해서도 그럴 수는 없지!

경운 : 아이 아버지두……. 오빠인들 속조차 없겠어요? 아무리 일자리를 구할려고 해도 안 써주는 걸……. 사회가 나쁘지 오빠야 무슨 잘못이에요?

어머니 : 사실이에요…….

최 노인 : 뭐가 사실이냐? 나이 어린 누이가 그 굴 같은 인쇄 공장에서 온종일 쭈그리고 앉아서 활자 줍는 노동으로 벌어들인 쥐꼬리만한 월급에만 의지하는 것이 사실이란 말이야? 나도 가게가 전과 같이 세가 난다면 이런 소리도 않지. 허지만 골목안 똥개까지 신식만을 찾는 세상이라 사모 관대나 원삼 족두리 따위는 이제 소꿉장난감으로 아니, 장사가 돼야지! 지난 봄철만 하더라도 꼭 네 벌밖에 안 나갔지 뭐야! 이럴 때 그 신식 나일론 면사포나 두어 벌 장만한다면 또 모르지만.

 

<후략>

 

 요점 정리

 

 작자 : 차범석(車凡錫 1924- )

 형식 : 희곡

 성격 : 사실적

 배경 : 1950년대 전후(戰後) 사회. 서울 종로 한복판

 경향 : 세태 고발적

 구성 : 전 2막

 제재 : 세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최 노인 일가의 삶

 주제 : 근대화 과정에서 겪는 가족의 해체와 가치관의 변화

 출전 : <문학 예술>(1957)

 내용 : 급격한 도시화의 와중에 휩쓸린 한 일가의 비극.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구세대와 적응하려는 시도를 보이지만 결국 실패하는 신세대의 모습을 대조시킴

 구성 : 세대차의 비극을 1막에서 다루고, 이로 인한 비극적 파국을 2막에서 다룸

   발단 - 집을 팔지 않으려는 최 노인의 고집과 이에 반대하는 자식들의 대립

   전개 - 실업 상태인 큰아들과 여배우를 꿈꾸는 장녀의 반발

   절정 - 최 노인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지만 뜻밖의 오해로 일이 어긋남

   대단원 - 장녀의 자살과 큰아들의 체포

 표현 : 세대차의 비극을 암시하기 위해 대사, 조명 등을 통해 도시의 새로움을 부각시키고 있다. 무대의 소도구와 자식들의 대사는 문명의 급격한 도시화를 예고함

 줄거리

 혼구 대여점을 경영하는 최 노인은 아버지가 물려준 고옥에 대해 지나칠 정도의 집착을 보인다. 신식 결혼이 성행하여 전통 혼례용 혼구를 대여하는 최 노인의 사업이 날로 쇠퇴하게 되자, 가족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집을 팔자고 권유한다. 그러나 최 노인의 고집은 꺾일 줄을 모른다. 군을 제대하고 초조하게 취업 통지서를 기다리는 큰아들 경수, 그 아들을 염려하는 어머니, 인쇄소의 식자공으로 가족의 생계를 떠맡고 있는 차녀 경운, 대학 진학을 앞둔 막내 경재 등 가족들 모두가 은근히 최 노인을 원망하며 집을 팔자고 종용한다. 결국 가족들의 성화와 큰아들의 방황을 보다못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최 노인은 집을 세 놓기로 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집을 팔려고 하는 것으로 오해한 경수가 이를 막으려 하고, 최 노인은 아들의 행동을 집을 팔지 않고 세 놓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여겨 심하게 꾸짖는다. 이에 모든 불화의 원인이 돈에 있다고 생각한 경수는 대낮에 총을 들고 나가 강도질을 하려다 경찰에 붙들린다. 한발 늦게 날아든 취업 통지서는 휴지 조각이 되고 만다. 한편, 배우를 꿈꾸던 장녀 경애는 심사 위원을 사칭한 자에게 사기를 당하고 울분과 체념 속에 자살을 선택한다. 큰아들을 형사들 손에 이끌려 보낸 뒤 얼마 후 딸의 시체를 발견한 최 노인의 비탄 어린 절규가 극을 끝맺는다.

 등장인물의 성격
 

최 노인 : 완고하고 옛것을 지키려는 세대의 전형을 보임

어머니 : 전형적인 한국 여인형. 자식을 위해 온갖 궂은 일을 하며, 남편을 거역하지 않는 인간형

경재 : 밝고 명랑하며 언변도 뛰어나 주변을 웃음으로 이끄는 긍정적인 인물

경운 : 현대판 심청. 자식이 번 돈으로 가정을 이끌어 가면서도 틈틈이 집안 일을 하며 부모를 돕는다.

경애 : 화려한 인생을 꿈꾸는 인물형

경수 : 아버지를 원망하며 파멸로 치닫는, 전통적인 맏아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인물형.

 

 

 내용 연구

 

 면목이 일신해져 가는 매끈한 고층 건물의 행렬 : 낡은 건물을 헐어내고 새로 지어진 고층 건물들의 모습을 나타낸 말.

 최신식 건물이 - 멸시하고 있다 : 무대가 되는 최 노인 집이 건물에 둘러 싸여 햇볕이 들지 않고 을씨년스러움을 나타내면서, 아울러 전체 작품의 분위기를 암시해 주기도 함.

 대차 적인 : 큰 차이가 나는

 게딱지 : 게의 등딱지. '게딱지 같은 판자집'이란 표현으로 관용적으로 쓰임.

 핏대를 올리며 : 목의 핏대에 피가 몰리도록 화를 내거나 흥분하며.

 노다지 : 한군데서 이익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곳이나 그러한 일, 원뜻은 광물이 막 쏟아져 나오는 광맥.

 국물 : (속어)어떤 일에서 생기는 얼마간의 이득.

 장안 : 서울을 수도라고 일컫는 말.

 재간 : 재주와 간능

 알심 있게 : 은근히 동정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왜 이런 ∼ 산다는 거요? : 왜 이렇게 번잡스럽고 비좁은 판자촌에서 산다는 것이요?

 핏대를 올리며 : 얼굴에 피가 올라 몰리어서 붉어지도록 성을 내며

 물이 끊어지면 어떡할려구……. : 물을 공급해 주는 시간이 지나서 물을 더 이상 길어 오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너 그러면 ∼ 국물도 없다! : 내가 시키는 대로 말을 듣지 않으면 약속한 것을 들어줄 수 없다. 경운은 경재에게 용돈을 주기로 약속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가 당신에게 ∼ 있었던가요? : 시집을 당시에는 이 근방에서 우리집보다 더 큰 집이 어디 있었던가요? 세태의 변화에 따라 주위에 많은 커다란 건물이 들어섰음을 뜻한다.

 이러다간 땅에서 ∼ 될 게다! : 도시의 근대화에 말려 삶의 터전이 상실되어 가는 것을 걱정함, 작품 제목인 '불모지'의 상징성을 나타낸다. 이 연극의 첫 장면에 질주하는 전차와 자동차의 소음이 삽입되어 있는 이유와 연관시켜 생각해 보자. 전차와 자동차의 소음은 안온한 가정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대비되면서, 이 가정의 평화가 곧 깨질 것이라는 사실이 예고된다.

 위험한 비행기 : 불필요한 아부로 추켜올리지 말라는 뜻

 후생주택 : 주택난을 덜기 위하여 입주가가 큰 부담이 되지 아니하는 지불 방법으로 살 수 있도록 지은 주택

 경한 : 경솔한

 그래도 밤낮 - 상판보다는 낫지 : 쓴 익모초라도 씹은 듯 매일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의미

 네 말은 - 안 믿겠다 : 설사 진실을 말한다해도 믿을 수 없다는 뜻.

 사바사바 : 속어. 떳떳하지 못한 수단으로 은밀히 일을 조직하는 것.

 얘가 왜 이렇게 두더지처럼 파고만 들어 : 왜 자꾸 따지듯 추궁하냐는 의미

 설상가상으로 저 - 썩게 되었으니 : 주위의 고층 건물들 때문에 햇볕이 안 들어 화초도 자라지 못하고, 물까지 스며들어 집이 썩어들어 가고 있음을 말함.

 빈손으로 - 틀린 채산이죠 : 실력보다는 돈을 중요시했던 당시 사회의 풍조를 엿볼 수 있음.

 

 이해와 감상

 이 작품에서는 두 가지 요소가 피폐한 삶의 의미로서의 '부모'라는 주제를 구체화시켜 주고 있다. 첫째는, 작품의 배경이다. 근대화되어 가는 도시의 한복판에 남아 있는 구식 한옥이 그것이다. 둘째는 작품의 등장 인물의 성격이다.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자식들과 옛것을 고집하는 노인 사이에 성격적 대립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외견상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가치관의 변화와 삶의 태도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구시대는 이미 힘을 잃었고 새로운 시대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1950년대의 이 시기는 '불모지'였던 셈이다.

 

 이 작품의 구조를 이해하려면 각 인물의 성격이 어떤 유형을 이루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대화에 대한 삶의 뿌리를 뽑힌 최 노인, 모순 된 현실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지식인 경수, 허영과 사치에 눈이 멀어 배우를 꿈꾸는 경애 등 자신의 역할과 현실 간의 갈등으로 파멸해 가는 피해 입은 인물과, 그러한 사회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는 어머니, 경재, 경운의 인물 유형이 팽팽한 긴장 관계에 있지만, 이들이 한 가족이기 때문에 작품 전체는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세대 간의 갈등이 어떠한 대사와 행동으로 나타나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갈등이 바로 현실 사회의 모순 때문에 야기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 만큼 이 작품은 사회적 현실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심화 자료

 차범석(車凡錫 1924- )

 

극작가.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밀주(密酒)"가 당선되어 등단. 한국 연극협회 이사장과 예총 부회장 역임. 사실주의의 바탕 위에서 현대적 서민 심리 추구. 희곡집에 <껍질이 깨지는 아픔 없이는>, <대리인> 등과 장편 희곡 "산불" 등이 있음

 차범석(車凡錫)의 작품 세계

 차범석은 리얼리즘을 기초로 하여 변천하는 현실을 작품에 그대로 반영한다는 자세로 작품 창작에 임하는 작가이다. 즉, 사회와 현실의 소리를 드라마로 재현시켜 대중들에게 들려 주는 것이 그의 기본 태도이다.

 

 이러한 사회와 현실의 소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만이 아니고, 오늘에 연결된 과거의 것까지도 포함된다. 따라서 포연(砲煙)이 휩쓸고 간 폐허라든가, 그 위에서의 처절한 삶의 애환과 뜨거운 인간애야말로 그의 작품의 주된 관심사가 된다. 항구나 섬사람들, 가난한 선비의 고달픈 삶으로부터, 6 25의 상흔, 문명화에 따른 인간성 상실과 소외 , 애욕(愛慾)의 갈등, 정치의 허위성과 그 비리의 고발, 구세대와 신세대의 충돌 및 그에 따른 전통적인 건의 몰락 등은 이러한 주제 의식에 의한 것이다.

 작품 '불모지'의 갈등 구조

① 최 노인과 가족 간의 갈등 :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을 지키려는 최노인과,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위해, 뿌리는 생각하지 않는 자식 간의 갈등이 중심이다. 어머니도 자식들의 의견에 동조함으로써 가족 모두와 옛것을 지키려는 최 노인과의 갈등 관계가 전개된다.

② 자식들 간의 갈등 : 영화 배우를 꿈꾸는 큰 딸과 허상의 끝을 아는 자식들 간의 갈등. 이 갈등은 영화 배우로 출세시키겠다고 꼬드긴 사기꾼에게 몸을 버리고 자살로 마감한 큰 딸에 의해 끝난다. 그리고 제대한 뒤 일정한 직업을 갖지 못하는 큰 아들과 자식들 간의 갈등. 이 갈등은 일확 천금을 노리는 큰 아들이 도둑 미수로 붙잡히면서 끝난다.

 카타르시스(katharsis)

 정화(淨化)·배설(排泄)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 제6장 비극의 정의(定義) 가운데에 나오는 용어. ‘정화’라는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는 한편, 몸 안의 불순물을 배설한다는 의학적 술어로도 쓰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진의에 대해서는 이 구절의 표현이 불명료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이설(異說)이 분분한 채 오늘에 이르지만, 요컨대 비극이 그리는 주인공의 비참한 운명에 의해서 관중의 마음에 ‘두려움’과 ‘연민’의 감정이 격렬하게 유발되고, 그 과정에서 이들 인간적 정념이 어떠한 형태론가 순화된다고 하는 일종의 정신적 승화작용(昇華作用)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정신분석에서는 무의식 속에 잠겨 있는 마음의 상처나 콤플렉스를 말·행위·감정으로써 밖으로 발산시켜 노이로제를 치료하려는 정신요법의 일종으로, 정화법(淨化法)·제반응(除反應)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마음의 상처·응어리는 상기하거나 말하기가 괴롭고, 전혀 생각나지 않는 수도 있다(抵抗). 이 방법을 처음으로 발견한 오스트리아의 생리학자 J.브로이어는 이 저항을 완화하기 위해 최면술을 사용하였으나, 오늘날에는 마취제(아미탈·펜토탈)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麻醉分析). 그러나 이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라도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어느 정도의 마음의 연결이 없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문제아의 치료에 쓰이는 유희요법(遊戱療法)도 카타르시스의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블로일러에 의한 이러한 카타르시스의 발견은 정신분석의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차범석 희곡의 현실 비판적 성격

 차범석의 희곡은 현실 비판적 계열의 작품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제시된 '불모지'를 비롯하여 '껍질이 깨지는 아픔 없이는'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따라서, 작품에 나타난 갈등 상황을 한 가족내의 문제로 국한시키기보다는 사회 전체의 양상으로 확대시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고층 건물들의 틈새에 끼어 화초가 자랄 수 있는 최소한의 햇빛도 기대하기 어려운 최 노인의  고택은 바로 당대의 한국적 상황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전근대적 보수성과 현대적인 가치 체계가 상호 대립하면서 혼란과 불안, 갈등을 야기하는 극적 전개 역시 당시의 사회적 양상을 대변하는 것이다. 요컨대, 작자는 불모지일 수밖에 없는 고옥을 배경으로 경수의 경솔한 행동, 경애의 허영심, 최 노인의 고지식함이 빚어 낸 극적 갈등을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 그 비판의 칼날은 단죄적이라기보다 피해 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휴머니즘의 온기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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