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동산 / 체호프 (A. P. Chekhov)
by 송화은율벚꽃 동산 / 체호프 (A. P. Chekhov)
작품의 아우트 라인
라네프스카야 부인은 일찍 남편을 여의고, 어린 자식을 강에서 익사시킨 후부터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외국으로 도망가, 정부나 다를 바 없는 사내와 파리며 만턴에서 타락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내에게 돈을 몽땅 털리고 피로로 지치자, 자기를 데리러 온 딸 아냐와 함께 무능한 오빠 가에프가 사는 영지(領地) 「벚꽃 동산」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백과 사전에도 실려지고 있는 조상 대대의 이 유명한 토지도 빚의 담보로 잡혀지고 있는 데다가, 오는 여름에는 경매에 붙여지게 되어 있다. 부인을 경애(敬愛)하는 상인 로파힌은, 옛날 이 저택에서 일하고 있던 농노의 아들이지만, 지금은 신흥 자본가가 되어 있고, 일가의 곤경(困境)을 마음으로부터 염려하여, 이 벚꽃 동산의 벚나무들을 모두 잘라 버리고 별장지로 조성하도록, 현실적인 권고를 한다. 별장지로 만들어 빌려주면, 적게 어림잡아도 연 2만 5천 루불의 수입은 되니까 부채 따위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는 열심히 설득한다. 그러나 라네프스카야 부인이나 가에프는 그 충언을 별로 귀담아 듣지도 않고, 옛날 습관대로 거리의 레스토랑에서 고급 식사를 즐기고, 돈도 없으면서 통행인에게 금화를 던져주면서. 허송 세월을 하고 있다. 죽은 자식의 가정 교사였던 만년 대학생 트로피모프는, 결단적으로 낡은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로 뛰어 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젊은 아냐도 그러한 그에게 공명한다.
곧, 8월의 경매일이 다가온다. 라네프스카야는 그런 속에서도 유태인의 악단(樂團)을 불러 무도회를 열고 즐긴다. 가에프는 야로슬라브리에 있는 조모가 아냐 앞으로 보내온 1만 5천 루불을 가지고 경매에 참가하러 간다. 가에프는 로파힌과 함께 돌아오지만 입을 열 기운도 없다. 경매의 결과를 묻는 라네프스카야에게, 로파힌이 취한 듯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벚꽃 동산은 제가 샀습니다. 벚꽃 동산은 저의 재산이 된 것입니다!」
옛날의 농노의 자식이, 마침내 이 광대한 토지를 소유로 만든 것이다. 라네프스카야는 비통하게 울부짖는다.
일가가 헤어지는 날이 온다. 라네프스카야는 다시 파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내한테로 간다. 가에프는 은행에 취직한다. 양녀 와리야는 이웃 지주의 집의 가정부로 들어갔다. 젊은 아냐만이 아무런 미련도 없이 낡은 집, 낡은 생활에 이별을 고하고 , 지금부터 공부를 하여 여학교에 들어가겠다고 희망에 불타고 있다. 새로운 생활로 뛰어 들어가려는 것이다.
모두가 사라진 뒤의 텅 빈 방에, 혼자 남은 병난 늙은 하인 필스가 나타나, 벚나무를 자르는 도끼 소리를 들으면서, 힘없이 소파에 드러눕는다.
주인공 하이라이트
라네프스카야 부인은 매력있는 용모를 하고 있으며, 마음씨가 좋아 누구한테서나 호감을 산다. 옛날의 농노의 아들 로파힌이, 경매에 붙여지는 벚꽃 동산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도, 라네프스카야를 마음으로부터 경애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감정의 기복이 지극히 예민한 여성으로서, 웃음에서 눈물로, 심각한 명상에서 쾌활한 즐거움으로 마음이 순식간에 변하여 간다. 오빠 가에프의 말을 빌리면, 라네프스카야에게는 「배신적인 데가 있고, 그것으로 일종의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같이 여겨진다」는 것이다. 귀족도 아닌 변호사와 결혼하고, 지나친 과음으로 남편이 죽자, 곧 다른 사내와 친해지고, 벚꽃 동산을 버리고 외국으로 도망가서는, 뒤쫓아온 사내와 함께 싸구려 아파트에서 동거 생활을 즐겨 왔다. 그녀는 과거의 생활에 사는 여자이고, 주위의 현실에 똑바로 보지 못한다. 그러니까 1천 헥타아르(약 3백만평)의 영지를 가지면서도, 로파힌의 구체적이자 현실적인 계획을 귀담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상실하고는 다시 파리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벚꽃 동산』의 라네프스카야 부인을 단순히 「몰락해 가는 러시아 귀족 계급의 상징」으로서 감상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좁은 일면적인 관찰이고, 체호프는 그녀를 좀더 냉철한 새로운 면에서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작자의 생애
안톤 파브로빗치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 러시아의 작가. 1860년에 남부 러시아의 항구 도시 타간로그에서, 잡화상의 3남으로 태어났다. 16살 때에 집안이 파산하였기 때문에,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에 입학함과 동시에, 일가를 부양하기 위하여 유우머 잡지에 콩트며 단편을 써서 팔았다. 안토샤 체혼테 기타의 이름으로 7년간에 쓴 작품은 400편을 넘으며, 문명(文名)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안이한 명성에 만족하지 않고, 원로 작가 그리고로비치로부터 재능을 낭비하지 말라는 충고도 있고, 해서 본격적인 문학을 지향하게 되어, 『광야』『초원』『등불』『지루한 이야기』등으로 확고한 지위를 확립하였다. 이어 그는 신경지를 개척하고자,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걸린 폐결핵도 아랑곳 없이, 90년에는 단신으로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사할린섬을 여행하고, 유형수들의 실정을 샅샅이 조사하였다. 이 여행은 방대한 르포르타지(기록문학)『사할린섬』을 낳았고, 그밖에도, 그 후의 그의 작품에 사회적인 무게와 깊이를 주게 되었다. 여행 후에는 멜리호보에 별장을 짓고, 『6호실』『3년』『나의 인생』『다락이 있는 이층집』등, 사회 문제를 테마로 한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기근에 의한 난민구제라든지 콜레라에 대한 방역(防疫)등에, 의사로서도 크게 활약하였고, 나아가서 국민학교며 도서관의 건설 등 사회 활동도 열심히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무리가 원인이 되어 병이 차츰 악화하여, 98년에는 얄타로 전지하였다. 이러한 속에서도 『상자에 든 사나이』『이노누이찌』『귀여운 여인』『개를 거느린 아주머니』『약혼자』등, 주옥과 같은 작품을 써서 단편 소설의 명수로서 세계적인 지위를 구축하였다.
그는 젊어서부터 단막 짜리「보드빌」(Vaudeville ; 쾌속적인 템포로 상연되는 풍속 희극)을 즐겨 썼으나, 만년에는 극작에 주력하였다. 특히『갈매기』『바냐 아저씨』『세 자매』, 그리고 『벚꽃 동산』은 체호프의 4대 희곡으로 불리어지고 있는데, 스타니쓰라프스키의 모스크바 예술좌(藝術座)가 주요 레퍼토리로 삼을 만큼, 연극사에 신시대를 이룩한 작품이다.
다른 작가와 달리, 체호프에게는 화려한 로맨스는 거의 없으나, 1902년 모스크바 예술좌의 주연 여우(女優) 올리가 크니페르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지병인 결핵이 악화하여 결혼 2년, 후인 1904년, 요양지인 남부 독일의 온천지 바아덴와이래르에서 4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명문구 낙수
「인류는, 자신의 힘을 더 한층 완전한 것으로 하면서 전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인류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도, 언젠가는 이해가 되는 가까운 것이 될 것입니다. 다만, 그렇기 위하여서는 능동적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진실을 탐구하는 인간을 전력으로 도와 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벚꽃 동산』 제 2막에서의 토로피모프의 말이다. 체호프가 밝은 인류의 미래를 믿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입으로만 이상을 떠들어 대고, 현실적으로는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 인텔리겐차를 가장 싫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눈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자기의 발과 손으로 「흉내가 아닌」자기의 인생을 곧바로 걸어 가는 것을 사람들에게 호소하였다.
심화 자료
체호프는 한때 톨스토이의 사상에 심취하여, 전후 7년 동안 열렬한 톨스토이 신봉자가 되었으나, 나중에는 『무제(無題)』『유형지』『6호실』등의 작품에서, 톨스토이 주의를 하나의 반동이라고 혹평하고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애처가였던 체호프는, 여행 길에서 아내 올리가에게 434통의 편지를 띄었는데, 그는 그 속에서 아내를 「나의 뚱뚱이」「나의 빈대」「나의 귀여운 콧등」등, 여러 가지 애칭으로 부르고 있다.
세계문학의 명작과 주인공 총해설에서 - 소봉파편- (일신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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