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 알퐁스 도데
by 송화은율별 / 알퐁스 도데
- 프로방스 지방 어떤 목동의 이야기 -
내가 뤼르봉 산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몇 주일씩이나 사람이라고는 통 그림자도 구경 못하고, 다만 양떼와 샤냥개 검둥이를 상대로 홀로 목장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이따금 몽들뤼르의 은자가 약초를 찾아 그 곳을 지나가는 일도 있었고, 또는 피에몽에서 온 숯굽는 사람의 거무데데한 얼굴이 눈에 띄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도 외로운 생활을 해 온 나머지, 좀처럼 입을 여는 일이 없는 순박한 사람들이어서 남에게 말을 거는 취미도 잃어버렸거니와, 도무지 무엇이 지금 산아래 여러 마을이나 읍에서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는지를 통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두 주일마다 보름 치의 양식을 실어다 주는 우리 농장 노새의 방울 소리가 언덕길에서 들려올 때, 그리고 꼬마 미아로(농장 머슴)의 그 또랑또랑한 얼굴이나 혹은 늙은 노라드 아주머니의 다갈색 모자가 언덕 위에 남실남실 떠오를 때면, 나는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때마다, 나는 어느 집 어린이가 영세를 했고 누가 결혼을 했는지, 그 사이 산밑에서 일어난 소식을 연해 캐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관심이 쏠리는 것은 주인댁 따님, 이 근처 백 리 안에서 가장 예쁜 우리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아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과히 관심을 가지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아가씨가 자주 잔치에 참석하며 저녁 나들이를 하는지, 또는 지금도 새로 나타난 멋쟁이들이 잇달아 아가씨의 환심을 사러 오는지, 이런 따위를 넌지시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일 "네가, 산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일개 목동인 네가, 그런 건 알아서 무엇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나대로 지금도 대답할 말이 있습니다.-그때 내 나이 스무 살이었다고, 그리고, 스테파네트는 지금까지 한평생 내가 보아 온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고.
그런데, 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보름 치의 식량이 오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는데, 식량은 그 날 따라 아주 늦게야 겨울 도착하였었습니다. 아침나절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큰 미사를 보고 오기 때문일 테지.' 그러자, 점심때쯤 되어 소나기가 퍼부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길이 나빠서 노새를 몰고 떠날 수가 없었으리라고 생각하며 초조한 마음을 달래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세 시쯤 해서 말끔히 씻긴 하늘 밑에 온 산이 비에 젖고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일 때였습니다. 나뭇잎에 물방울 듣는 소리와 개천에 물이 불어 좔좔 넘쳐흐르는 소리에 섞여, 문득 방울 소리가 새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흡사 부활절날 여러 종루에서 일제히 울려오는 종악과도 같이 즐겁고 경쾌한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노새를 몰고 나타난 것은 꼬마 미아로도 아니고, 그렇다고 늙은 노라드 아주머니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누구일까요? ......천만뜻밖에도 바로 우리 아가씨였습니다. 우리 아가씨가 노새 등에 실린 버들고리 사이에 의젓이 올라타고 몸소 나타난 것입니다. 맑은 산 정기와, 소나기 뒤에 싸늘하게 씻긴 공기를 씌어 얼굴이 온통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꼬마는 앓아 누워 있고, 노라드 아주머니는 휴가를 얻어 자기 아이들을 보러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스테파네트는 노새에서 내리며 우선 그 모든 소식과, 그리고 도중에 길을 잃었기 때문에 늦어졌다는 사연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아가씨 머리에 꽃은 꽃 리본이며, 그 눈부신 스커트, 그리고 그 곱고 빛나는 레이스로 단장한 화려한 옷차림을 보면, 덤불 속에서 길을 찾아 해맸다느니보다는 차라리 어느 무도회에라도 들러서 놀다가 늦어진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오, 고 귀여운 모습! 아무리 바라보아도 내 눈은 지칠 줄을 몰랐습니다. 그때까지 그렇게 가까이 아가씨를 바라본 적이 없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겨울이 되어 양떼를 몰고 벌판으로 내려가서, 저녁을 먹으러 농장으로 돌아가면, 가끔 아가씨가 식당을 휙 가로질러 지나가는 때도 있었습니다만, 거의 하인들에게는 말을 거는 일이 없었습니다. 늘 아름답게 차려 입고 어쩐지 좀 깔끔해 보이고......... 그런데, 지금 그 아가씨가 바로 내 눈앞에 와 있는 것입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그만하면 넋을 잃을 법도하지 않습니까?
바구니에서 식량을 끌어내기가 무섭게, 스테파네트는 신기한 듯이 주위를 휘휘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아가씨는 아름다운 나들이옷을 더럽힐까 봐 스커트 자락을 살짝 걷어올리더니, 양을 몰아넣는 울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내가 자는 구석이며, 양 모피를 깐 짚자리며, 벽에 걸린 커다란 두건 달린 외투며, 내 채찍, 그리고 구식 엽총 따위를 보고 싶어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아가씨에게는 재미있고 즐거웠던 것입니다.
"그래, 여기서 산단 말이지? 참 가엾기도 해라. 밤낮 이렇게 외로이 세월을 보내자니 얼마나 갑갑할까!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지? 무슨 생각을 하며?"
'당신을 생각하며...... 아가씨.'
이렇게 대답하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치밀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대답한대도 거짓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어찌 당황했던지, 한 마디도 대답이 선뜻 나오질 않았습니다. 아마 그러한 낌새를 눈치채고도, 깜찍스러운 것이 일부러 얄궂은 질문을 던지고는, 내가 쩔쩔매는 꼴을 보며 기뻐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예쁜 여자 동무라도 가끔 만나러 올라오니? 정말 여자 동무가 여기를 찾아올 때면, '황금의 양'이나 저 산봉우리 위로만 날아다니는 에스테렐 선녀를 눈앞에 보는 듯하겠구나."
이런 말을 하며 머리를 뒤로 젖히고 웃는 그 귀여운 몸짓이라든지, 요정이 나타나듯이 얼른 왔다가는 숨 돌리 겨를 없이 가버리는 그 서운한 뒷맛이, 정말 아가씨 자신이야말로 내게는 영락없이 에스테렐 선녀 같이만 보였습니다.
"잘 있거라. 목동아."
"조심해 가셔요. 아가씨."
마침내, 아가씨는 빈 바구니를 싣고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아가씨가 비탈진 산길 속에 가뭇없이 사라진 뒤에도, 그 노새 발굽에 채어 연방 굴러 떨어지는 돌멩이 소리가 여전히 들려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돌멩이 하나하나가 그대로 내 심장 위에 덜컥덜컥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오래오래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해가 질 무렵까지, 그 애틋한 꿈이 달아날까 봐 감히 손 하나 까 딱 못하고 졸음에 겨운 듯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저녁때가 다 되어, 내려다보이는 산골짜기들이 차차 푸른빛으로 변하고, 양들도 울안으로 돌아오려고 '매매' 울면서 서로 몸을 비비대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밑으로 내려가는 언덕배기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러자, 우리 아가씨가 나타나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금방 생글생글 웃던 모습은 간 데 없고, 흠뻑 물에 젖어서 추위와 공포로 오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아마, 언덕 밑에서, 소나기에 물이 불은 소르고 강에 부딪히자 기를 쓰고 굳이 건너가려다가 그만 물에 빠질 뻔한 모양이었습니다. 더욱 난처한 일은, 그렇게 날이 저물고 보니 이젠 농장으로 돌아 갈 생각은 아예 꿈에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름길이 있기는 했지만, 아가씨 혼자서는 도저히 찾아갈 수 없을 터이고, 그렇다고 내가 양 떼를 여기에 내버려두고 떠날 수 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산 위에서 밤을 세워야 하며, 더군다나 가족들이 근심할 생각을 하고 아가씨는 안절부절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로서는 힘자라는 데까지 아가씨를 안심시키려고 위로해 주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칠월이라 밤도 아주 짧습니다. 아가씨, 잠깐만 꾹 참으시면 됩니다." 이렇게 달래 놓고는 황급히 불을 활활 피워, 발과 시냇물에 젖은 옷을 말리게 했습니다. 이어 우유와 치이즈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가엾은 아가씨는 불을 쬐려고도, 무엇을 먹어 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구슬 같은 눈물이 글썽글썽 눈에 괴는 걸 보고, 그만 나까지도 울고 싶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기어이 밤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이제는 아득한 산꼭대기에 겨우 싸라기만큼이나 햇볕이 남 아있어, 서쪽 하늘에 증기처럼 한 줄기 빛이 비껴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아가씨가 울 안 에 들어가서 쉬기를 바랐습니다. 새 짚 위에, 한번도 써 보지 않은 새 모피를 깔아놓고, 안 녕히 주무시라고 인사를 하고 나서, 나는 밖으로 나와 문 앞에 앉았습니다.
비록 누추할망정 그래도 내 울안에서, 신기한 듯이 그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는 양들 바로 곁에서, 우리 주인댁 따님이-마치 다른 어느 양보다 더 귀하고 더 순결한 한 마리 양처럼- 내 보호 밑에 마음놓고 고이 쉬고 있다는 생각에 오직 자랑스러운 마음이 벅차 오를 뿐이었습니다. 이때까지 밤하늘이 그렇게도 유난히 깊고, 별들이 그렇게도 찬란하게 보인 적은 없었습니다.
갑자기 사립문이 삐꺽 열리면서 아름다운 스테파네트가 나타났습니다. 아가씨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양들이 뒤척이는 서슬에 짚이 버스럭거리며, 혹은 잠결에 '매'하고 울 음 소리를 내는 놈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모닥불 곁으로 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것을 보고, 나는 염소 모피를 벗어 아가씨 어깨 위에 걸쳐 주고, 모닥불을 이글이글 피워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둘이는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만일, 한번만이라도 한데서 밤을 새워 본 일이 있는 분이라면, 인간이 모두 잠든 깊은 밤중에는, 또 다른 신비로운 세계가 고독과 적막 속에 눈을 뜬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 니다. 그 때, 샘물은 훨씬 더 맑은 소리로 노래 부르고, 못에는 자그마한 불꽃들이 반짝이는 것입니다. 온갖 산신령들이 거침없이 오락가락 노닐며, 대기 속에는 마치 나뭇가지나 풀잎이 부쩍부쩍 자라는 소리라도 들리듯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들, 그 들릴 듯 말 듯한 온갖 소리들 이 일어납니다. 낮은 생물들의 세상이지요. 그러나, 밤이 오면 그것은 물건들의 세상이랍니다. 누구나 이런 밤의 세계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좀 무서워질 것입니다만…….
그래서, 우리 아가씨도 무슨 바스락 소리만 들려도, 그만 소스라치며 바싹 내게로 다가드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저편 아래쪽 못에서 처량하고 긴 소리가 은은하게 굽이치며 우리가 앉아 있는 산등성이로 솟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찰나에, 아름다운 유성이 한 줄기 우리들 머리 위를 같은 방향으로 스쳐 가는 것이, 마치 금방 우리가 들은 그 정체 모를 울음소리가 한 가닥 광선을 이끌고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저게 무얼까?"
스테파네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이지요."
이렇게 대답하고 나는 성호를 그었습니다.
아가씨도 나를 따라 성호를 긋고는 잠시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깊은 명상에 잠겼습니다. 이윽고, 불쑥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정말이니? 너희들 목동은 모두 점쟁이라면서?"
"천만에요, 아가씨,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남들보다는 더 별들과 가까이 지내는 샘이지요. 그러니, 평지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별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잘 알 수 있답니다."
아가씨는 여전히 공중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손으로 턱을 괸 채 염소 모피를 두르고 있는 모습은, 그대로 귀여운 천국의 목자였습니다.
"어머나, 저렇게 많아! 참 기막히게 아름답구나! 저렇게 많은 별은 생전 처음이야. 넌 저 별 들 이름을 잘 알 테지?"
"아무렴요, 아가씨. 자! 바로 우리들 머리 위를 보셔요. 저게 '성 쟈크의 길(은하수)'이랍니 다. 프랑스에서 곧장 에스파니아 상공으로 통하지요. 샤를르마뉴 대왕께서 사라센 사람들과 전쟁을 할 때에, 바로 갈리스의 성 쟈크가 그 용감한 대왕께 길을 알려 주기 위해서 그어놓은 것이랍니다. 좀더 저 쪽으로 '영혼들의 수레'와 그 번쩍이는 굴대 네 개가 보이지요? 그 앞 에 있는 별 셋이 '세 마리 짐승'이고, 그 셋째번 별이 바로 곁에 다가붙은 아주 작은 꼬마 별 이 '마차부'이고요, 그 언저리에 온통 빗발처럼 내리 떨어지는 별들이 보이죠? 그건 하느님께 서 당신 나라에 들이고 싶지 않은 영혼들이랍니다. 저편 좀 낮은 쪽에, 저것 보십시오. 저게 '갈퀴' 또는 삼왕성(오리온)이랍니다. 우리들 목동에게는 시계 구실을 해 주는 별이지요. 그 별을 쳐다보기만 해도, 나는 지금 시각이 자정이 지났다는 걸 안답니다. 역시 남쪽으로 좀더 아래로 내려가서, 별들의 횃불인 쟝 드 밀랑(시리어스)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저 별에 관해 서는 목동들 사이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전하고 있답니다.- 어느 날 밤, 쟝 드 밀랑은 삼왕 성과 '병아리장(북두칠성)'들과 함께 그들 친구별의 잔치에 초대를 받았나봐요. '병아리장' 은 남들보다 일찍 서둘러서 맨 먼저 떠나 윗길로 접어들었다나요. 저 위쪽으로 하늘 한복판을 보셔요. 그래, 삼왕성은 좀 더 아래로 곧장 가로질러 마침내 '병아리장'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게으름뱅이 쟝 드 밀랑은 너무 늦잠을 자다가 그만 맨 꼬리가 되었어요. 그래 불끈해 가지고 그들을 멈추게 하려고 지팡이를 냅다 던졌어요. 그래서, 삼왕성을 '쟝 드 밀랑의 지팡이'라고도 부른답니다……. 그렇지만, 온갖 별들 중에도 제일 아름다운 별은요, 아가씨, 그 건 뭐니뭐니해도 역시 우리들의 별이죠. 저 '목동의 별'말입니다. 우리가 새벽에 양떼를 몰 고 나갈 때나 또는 저녁에 다시 몰고 돌아올 때, 한결같이 우리를 비추어 주는 별이랍니다. 우 리들은 그 별을 마글론이라고도 부르지요. '프로방스의 피에르'의 뒤를 쫓아가서 칠 년 만에 한 번씩 결혼을 하는 예쁜 마글론 말입니다."
"어머나! 그럼 별들도 결혼을 하니?".
"그럼요, 아가씨".
그리고 나서, 그 결혼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해 주려고 하고 있을 무렵에, 나는 무엇인가 싸늘하고 보드라운 것이 살며시 내 어깨에 눌리는 감촉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아가씨가 졸음에 겨워 무거운 머리를, 리본과 레이스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앙증스럽게 비비대며, 가만히 기대온 것이었습니다. 아가씨는 훤하게 먼동이 터 올라 별들이 해쓱하게 빛을 잃을 때까지 꼼짝 않고 그대로 기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잠든 얼굴을 지켜보며 꼬빡 밤 을 새웠습니다. 가슴이 설렘을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오직 아름다운 것만을 생각하게 해 주는 그 맑은 밤하늘의 비호를 받아, 어디까지나 성스럽고 순결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총총한 별들이 마치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양떼처럼 고분고분하게 고요히 그들의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곤 했습니다. -저 숱한 별들 중에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
요점 정리
작가 : 알퐁스 도데
갈래 : 소설, 순수소설, 단편 소설
성격 : 서정적, 낭만적,
주제 : 젊은 남녀의 순진무구한 감정을 그림
이해와 감상
프랑스의 작가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1869)로 주인집 아가씨를 연모하는 양치기 소년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이야기로 〈방앗간 소식 Lettres de mon moulin〉에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순박한 한 목동의 젊은 날의 청순한 사랑을 그린, 도데 특유의 인간에 대한 애정이 담긴 단편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이나 역사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고 진공 상태에서 인간의 순수성을 추구하여,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인간의 감정을 그렸다.
목가적(牧歌的)인 배경에 낭만적인 서정을 가득 담고 있는 이 소설은, 배경과 소재와 일치된 순수성으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별 이야기를 통하여 목동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이 돋보인다. 또 천상과 지상, 별과 인간을 대비시켜 천상의 별만이 가지는 청순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형상화함으로써 인간의 순수성을 추구하고 있다.
섬세하고 사실적인 표현을 바탕으로 한 인상주의(印象主義) 수법을 써서 섬세한 감정의 흐름과 배경 묘사를 세밀하게 하였다. 프로방스 지방의 풍부한 서정성과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뛰어난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심화 자료
알퐁스도데(Alphonse Daudet)
1840. 5. 13 프랑스 님~1897. 12. 16 파리(?).
프랑스의 작가로 주로 프랑스 남부 지방의 인물과 생활을 익살스럽고 정감있게 묘사한 것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그의 장편소설 〈 동생 프로몽과 형 리슬레르 Fromont jeune et Risler aine〉(1874)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받았다.
생애
도데는 견직물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849년에 아버지는 공장을 팔고 리옹으로 이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옹에 간 알퐁스는 처음에는 그 습기찬 공기에 불쾌감을 느꼈지만, 곧 엉뚱한 짓과 론 강의 생활에서 위안을 찾았다. 그는 14세 때 처음으로 시와 소설을 썼다. 1857년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도데는 대학 진학의 꿈을 버려야 했다. 그는 알레스에 있는 한 학교에서 사환으로 일했는데, 이 불행한 생활은 6개월 만에 결국 해고당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그의 반(半)자서전적 소설인 〈꼬마 Le Petit Chose〉(1868)에 주제를 제공해주었다. 이 소설은 그때의 경험에 살을 붙이거나 생략하여 재미있게 꾸민 것이다. 1857년말에 그는 형 에르네스트가 있는 파리로 갔다.
그후 도데는 글쓰는 일에 몰두하는 한편 보헤미안 문단과 사교계 문단을 모두 드나들기 시작했다. 젊고 잘생긴 그는 모델인 마리 리외와 관계를 맺고, 유일한 시집인 〈연인들 Les Amoureuses〉(1858)을 리외에게 헌정했다. 그는 리외와 오랫동안 골치아픈 관계를 계속했는데, 이 관계는 훨씬 나중에 〈사포 Sapho〉(1884)라는 반자서전적 소설에 반영되었다. 그는 또한 신문, 특히 〈피가로 Le Figaro〉지에 자주 작품을 기고했다. 1860년에 그는 19세기 프로방스어 문학부흥운동의 지도자 프레데리크 미스트랄을 만나, 남프랑스의 생활에 열중하게 되었다. 남프랑스의 생활은 북부의 윤리적이고 지적인 엄격성과는 반대로 열정적이고 예술적이며 관능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같은 해 그는 모르니 공작의 비서로 일자리를 얻었다.
그의 건강은 가난과 그리고 결국은 그의 목숨을 앗아간 성병에 서서히 침식당하고 있었다. 도데는 1861년에서 1862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을 알제리에서 보냈다. 이 여행에서 얻은 성과 가운데 하나가 〈사자 사냥꾼 샤파탱 Chapatin le tueur de lions〉(1863)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사자 사냥꾼은 도데의 미래의 주인공 타르타랭의 첫번째 스케치라고 할 수 있다. 도데가 처음으로 쓴 희곡 〈마지막 우상 La Derniere Idole〉은 1862년에 파리의 오데옹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커다란 반향을 얻었다. 〈방앗간 소식 Lettres de mon moulin〉(1869)에서 그는 1862년말 코르시카에서 보낸 겨울을 회상하고 있다. 1863~65년(모르니 공작이 죽을 때까지)에 겪은 풍부한 사회생활은 그가 〈르 나바브 Le Nabab〉(1877)에서 무자비하게 분석한 자료를 그에게 제공해주었다. 1867년 1월에 그는 재능있는 작가인 쥘리아 알라르와 결혼했는데, 그는 그녀를 깊이 사랑했고, 그녀는 그의 이후 작품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레옹과 뤼시앵이라는 두 아들과 에드메라는 딸 하나를 낳았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은 그의 2번째 단편집 〈월요일 이야기 Les Contes du lundi〉(1873)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의 글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전쟁 때 도데는 군에 입대했지만, 1871년 파리 코뮌의 공포정치 때 파리를 탈출했다. 그의 〈타라스콩의 타르타랭이 겪은 놀라운 모험 Les Aventures prodigieuses de Tartarin de Tarascon〉(1872)은 별로 호평을 받지 못했지만, 모험을 좋아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천진함과 허풍스러움을 풍자한 인물로서 유명하다. 〈아를의 여인 L'Arlesienne〉이라는 희곡도 역시 실패했으나 1885년에 재공연되었을 때는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의 다음 소설인 〈동생 프로몽과 형 리슬레르〉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받고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후 몇 년 동안(적대적인 비평이 전혀 없지는 않았음) 그는 부귀와 명성을 누렸다.
말년에 도데는 성병이 척수까지 번져 심한 고통을 겪었다. 〈고통 La Doulou〉(1931년까지 출판되지 않았음)은 고통을 연구함으로써 완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는 감탄할 만한 자제심으로 온갖 종류의 책을 써서 파리의 문단과 음악계를 계속 즐겁게 해주었다. 그는 젊은 작가들(예를 들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친절한 후원자였다. 1895년에 그는 런던과 베네치아를 방문했다. 그리고 2년 뒤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평가
심리학적으로 볼 때, 도데는 상충하는 요소들의 통합을 보여준다. 모든 사회계층에서, 그리고 여행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겪은 체험은 그가 타고난 재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남프랑스 사람이었던 도데는 정념에 대한 이해와 지중해적인 세계관을 결합했고, 인간행동의 세부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그는 평생 동안 다른 사람들을 관찰한 내용을 작은 공책들에 기록했고, 이 공책들을 영감의 보고로 이용했다. 소설은 "어떤 역사도 갖지 못할 사람들의 역사"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접근 방식은 냉정한 객관성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그는 줄곧 감상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선입관에서 자유로웠던 그는 동료 자연주의자들과는 달리, 세계의 추악한 면에만 관심을 쏟는 소설가들은 세계의 다양성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는 겉으로 드러난 세부적인 면에 객관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의 글에는 이런 관심과 동시에 유난히 동정심이 많은 인간성과 사물 및 개인의 신비에 대한 외경심도 표현되어 있다. 그의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은 내적인 진실성을 갖고 있으며, 그는 물질적 현상을 묘사할 때처럼 충실하게 이 진실성을 재현했다. 나아가, 그는 정념에는 운명의 힘과도 같은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생각은 그의 많은 글에서 열매를 맺어 그의 풍자는 동정심으로 부드러워지곤 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모파상뿐 아니라 영국의 찰스 디킨스와도 유사점을 갖는다.
도데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볼 때 하나의 계통을 따라 계속 발전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문학적 경향이 서로 동떨어진 삽화들처럼 잇따라 나타난 일련의 과정이었다. 그래도 〈타라스콩의 타르타랭이 겪은 놀라운 모험〉에 나타난 반낭만주의적 풍자는 〈방앗간 소식〉에서는 점묘파나 인상파 화가들과 비슷한 사실주의로 바뀌었고, 이것은 다시 남프랑스의 특성을 조롱한 초기작품을 수정하기 위해 쓴 〈아를의 여인〉의 비극적 색조로 이어졌다. 또한 〈꼬마〉와 〈월요일 이야기〉에는 풍자보다 오히려 동정과 염려가 더 많이 담겨 있다. 도데는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의 갈등에 점점 더 몰두하게 되었다. 〈자크 Jack〉(1876)는 육체적 사랑과 모성애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한 여인을 묘사하고 있고, 〈뉘마 루메스탕 Numa Roumestan〉(1881)은 남자와 여자의 북부적 성격과 남부적 성격 사이의 적개심을 묘사하고 있으며, 〈전도사 L'Evangeliste〉(1883)는 종교적 광신과 싸우는 아들의 애정을, 〈작은 교구 La Petite Paroisse〉(1884)는 질투심의 모순을 다루고 있다. 〈사포〉에서 제기하는 도덕적 문제는 자신이 버리고 떠나는 소녀에 대한 동정심과 자유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연인의 해묵은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 세대 전체의 청년들에 대한 도데의 평가가 그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아를라탕의 보물 Le Tresor d'Arlatan〉(1897)과 〈삶에 대한 단상(斷想) Notes sur la vie〉 및 〈새로운 단상 Nouvelles notes〉은 프로이트보다 앞서서 억압된 잠재 의식을 분석한 대담한 심리학자 도데의 모습을 보여준다. 도데의 걸작에는 서로 대립하는 요소들, 즉 진실과 환상, 무자비한 묘사와 시, 명석한 진지함과 유머 감각, 아이러니와 연민 등 인간의 존엄성을 이루는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저서
Oeuvres completes de Alphonse Daudet, (definitive edition), 20 vol. : Alphonse Daudet, 19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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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팝니다 : A. 도데, 송정곤 역, 우리시대사, 1990
아를르의 여인 : A. 도데, 김장섭 역, 문양사, 1989
삶으로의 여행 : A. 도데, 황보석 역, 늘푸른나무, 1989
사랑읽기 : A. 도데, 홍동선 역, 문민사, 1989
꼬마철학자 다니엘(범우피닉스문고 13) : A. 도데, 이정림 역, 범우사, 1989
마지막수업(을지세계문학선 21) : A. 도데, 윤승태 역, 을지출판사, 1989
허풍쟁이의 대모험(춘추문예 1) : A. 도데, 이재형 역, 춘추원, 1989
도데 단편집(문예문고 6) : A. 도데, 김사행·이춘호 공역, 문예출판사, 1972
풍차간소식 : A. 도데, 최용찬 역, 법문사, 1959
그리운 사랑 : A. 도데, 염상섭 역, 문성당, 1953
연구서
불문학개론 : 이휘영 외, 정음사, 1982
La Jeunesse d'Alphonse Daudet : M. Bruyere, 1955
Les Annees d'apprentissage d'Alphonse Daudet : J. H. Bornecque, 1951
Vie d'Alphonse Daudet : Lucien Daudet, 1941
Bibliographie des auteurs modernes de langue francaise, vol. 4 : H. Talvart·J. Place, 1933
Alphonse Daudet : Leon Daudet, 1898
Essai de bibliographie des oeuvres de M. Alphonse Daudet : J. Brivois, 1895(reprinted 1970)
Alphonse Daudet:A Biographical and Critical Study : R. H. Sherard, 1894
Les Romanciers naturalistes : E. Zola, 1881(출처 : 한국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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