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도(巫女圖) / 줄거리 및 해설 / 김동리
by 송화은율무녀도(巫女圖, 1936년 5월, <중앙>) 줄거리 및 해설
작가:김동리(金東里,1913 -1990)
경북 경주 출생. 본명은 시종(始終). 1929년 경신고보를 중퇴하고 귀향하여 문학 작품을 섭렵함. 1934년 시 「백로」가 <조선일보>에 당선되고 단편 「화랑의 후예」가 1935년 <조선중앙일보>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처음에는 서정주 등과 함께 <시인부락> 동인이었으며 ‘생명파’라 불리웠다.
그의 작품 경향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인간 구원의 문제를 주제로 순수한 소설을 창작한 것으로 대표된다. 그의 문학적 여정은 3기로 나눌 수 있다. 초기에는 토속적, 샤머니즘적, 동양적 신비의 세계에서 제재를 선택하여 인간 생명의 허무적인 운명과 신비함을 추구하여 「무녀도」, 「황토기」 등을 남겼다. 중기에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보다 더 역사 의식과 현실 의식이 강화되면서 참여 의식인 강한 작품을 창작하여 「귀환장정」, 「흥남철수」, 「역마」 등을 발표했다. 후기에는 보다 근원적인 인간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근대 문명에 대한 차원 높은 비판 의식을 형상화하여 「등신불」, 「사반의 십자가」 등을 남겼다.
등장인물
모화:무당. 전통적인 무속을 고수하려다 끝내 죽음.
욱이: 모화의 아들. 기독교도. 모화에게 죽음.
낭이:모화의 딸. 귀머거리. 욱이와는 의붓남매 사이.그림을 잘 그려 이 작품의 서두에 나오는 무녀도를 그렸음.
줄거리
뒤에 물러 누운 어둑어둑한 산, 앞으로 폭이 널따랗게 흐르는 검은 강물, 산마루로 들판으로 검은 강물 위로 모두 쏟아져 내릴듯한 파아란 별들, 바야흐로 숨이 고비에 찬 이슥한 밤중이다. 강가 모랫벌엔 쿤 차일을 치고, 차일 속엔 마을 여인들이 자욱이 앉아 무당의 시나위 가락에 취해 있다. 그녀들의 얼굴 얼굴 들은 분명히 슬픈 흥분과 새벽이 가까와 온 듯한 피곤에 젖어 있다. 무당은 바야흐로 청승에 자지러져 뼈도 살도 없는 혼령으로 화한 듯 가벼이 쾌자자락을 날리며 돌아간다....
우리집에 있는 무녀도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경주읍에서 십여 리 떨어진 집성촌 마을의 퇴락한 집에 사는 모화는 무녀였다. 그녀는 세상 만물에 귀신이 들어앉아 있다고 믿었으며, 그녀의 생활은 굿이 그 전부였다. 그녀의 식구는 넷이었는데, 남편은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 해변가로 나가 혼자 해물 장수를 하고 있었고, 아들 욱이는 무당의 사생아로서 동네에서 배겨나기가 힘겨워, 몇 해 전에 마을을 나가고 없었으므로, 집에는 그녀와 고명딸 낭이의 두 모녀가 앙상히 살아가고 있었다.
낭이는 귀머거리 소녀였다. 그러나 그녀는 대단한 화제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아버지의 끔찍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방에 들어앉아 그림만 그렸다. 한편 모화는 매일 술만 마셨다. 그러나 그녀 역시 낭이를 소중히 했다. 모화는 낭이를 낳을 때의 태동으로 짐작해서 낭이를 용신(龍神- 용왕)의 딸의 화신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몇 해 두고 소식이 없던 욱이가 돌아왔다. 모화는 기뻐서 안고 울었다.
그러나 이윽고 욱이가 예수교에 귀의했다는 것을 알자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 때부터 그녀는 욱이에게 귀신이 붙었다고 아들을 위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데, 욱이는 욱이대로 어머니에게 마귀가 붙었다고 걱정했으며, 마태복음에 적혀 있듯이 낭이가 귀머거리가 된 것도 그 탓으로 알았다. 그는 하느님께 어머니와 누이를 구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잘 때도 언재나 성경을 가슴에 품고 잤다. 어떤 날 밤, 욱이는 잠결에 가슴이 허전함을 느꼈다. 깨어보니 성경이 없었다. 때마침 부엌에 불이 밝혀져 있는데, 어머니가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녀는 벌써 성경 첫 장을 불에 태우고 있었다. 그는 부리나케 뛰어 나가 성경을 뺏으려 했다. 그 때 머리 위로 식칼이 날았다. 그녀의 눈에는 욱이가 예수 귀신으로 보였다. 그는 기어코 세 곳에 칼을 맞고 넘어졌다. 그녀는 그로부터 두문불출하고 아들의 병을 간호했다. 그 사이 이 마을에도 교회가 서고 예수교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도들은 무속을 비방하며 돌아다녔다. 교회는 욱이의 청으로 목사가 주선해서 세웠던 것이다. 욱이는 기어코 소생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녀는 예수 귀신이 욱이를 잡아갔다고 말했으며, 매일 같이 귀신 쫒는 주문을 외었다.
달포가 지났을 때, 그녀는 물에 빠져 죽은 젊은 여인의 혼백을 건지는 굿을 맡게 되었다. 그녀는 그날따라 어느 때보다 정숙했다. 외아들을 잃은데다가 예수교도로부터 박해까지 받고 사는 모화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예쁘게 보였다. 그녀는 신나게 굿을 했다. 그것은 그녀는 이제 이 괴로운 세상을 떠나 용신에게 귀의할 결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여인의 혼백을 건지기 위해 여인이 죽은 못 속으로 넋대를 쥐고 하염없이 들어갔다. 그녀는 마침내 꼭지물이 가까운 곳까지 가서는 구슬픈 노래를 불렀다. 봄철에 꽃 피거든 낭이더러 찾아 달라는 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는 기어코 물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모화가 죽은 지 열흘이 지난 어떤 날, 낭이의 아버지는 나귀 한 마리를 몰고 모화의 집으로 왔다. 그는 낭이를 나귀에 태우고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그들은 곳곳으로 귀한 집을 찾아다니며, 그녀는 무녀의 그림을 그려주고, 아버지는 낭이에 대한 내력을 애기하고는 댓가를 받으면서 정처없이 또 돌아다녔다.
낭이는 잠자코 그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나귀 위에 올라 앉았다. 그들이 떠난 뒤엔 아무도 그 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고, 밤이면 그 무성한 잡풀 속에서 모기들만이 떼를 지어 울었다.
해설
‘무녀도’는 우리의 전래 토속 신앙인 무속과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 신앙의 충돌로 인한 모자 간의 대립. 갈등을 다루고 있다. 즉, 기독교로 대표되는 외래 문화와 무속으로 대표되는 토속 신앙 간의 대립을 기본 축으로 하여 결국은 토속 신앙이 패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욱이의 죽음은 교회의 설립이라는 미래 제시적인 죽음이며 상대적으로 모화의 죽음은 외래 신앙인 기독교 사상이 퇴조할 수밖에 없다는 시대 조류를 나타내는 비극적 죽음이다. 한쪽은 승리의 죽음이요, 한쪽은 패배의 죽음이다.
한편 이 작품은 탐미주의적 에로티시즘이 깔려있다. 모화의 장단에 맞추어 저고리와 치마를 벗고 나체춤을 추는 낭이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는 작가가 샤머니즘의 세께를 미화하기 위하여 사용한 효과적인 무기로 보여진다.
「무녀도」는 원래 <중앙>에 발표된 이래 1947년 판 단편집 무녀도에서, 1967년 판 김동리 대표작 선집에서, 각각 개작(改作)되었고 1978년 장편 「을화(乙火)」로 완전 개작되었다. 원작 「무녀도」에서는 욱이는 살인범이며 기독교도가 아니었다.
(주제) 외래 문화와 토속 문화의 갈등에 의한 혈육간의 비극
소멸하는 것을 지키려는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
(갈래) 단편 소설. 액자 소설, 본격 소설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도입 액자)과 전지적 작가 시점(내부 이야기)의 혼용
(성격) 무속적(巫俗的), 신비적
참고
허웅 외(1975), 국어국문학사전,일지사에서 줄거리를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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