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라하트 하헤렙 / 요점정리 - 조성기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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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소개

 조성기(趙星基: 1950- )

경남 고성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1970년 단편 <만화경(萬花鏡)>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 그는 미성숙한 개인이 세계 안에서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과정을 그려 내면서 삶의 근원적인 자각을 다루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근조절기(謹弔節期)>, <라하트 하헤렙>, <야훼의 밤>, <가시 둥지> 등이 있다.

 
이해와 감상

  <라하트 하헤렙>은 <갈대 바다 저편>의 주인공 성민이 군에 입대하여 겪은 체험의 기록이다.

성민은 군대 교회라는, 삶의 질곡이 가장 적나라하게 집약되어 나타나는 어둠의 세계를 통하여 정신적 방황을 거쳐 성숙되어 간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성민이 군대, 즉 삶의 불가피한 힘이 집약되어 있는 상징 공간에서 세계를 체험하며 인식하는 것은 불의 위험스러움과 그 불로 인한 상처를 통해서이다.

성민에게 처음으로 제기된 비합리적 고통은 아폴로 눈병으로 인한 귀향 조치이다. 아폴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의 이름이다. 이런 이름이 눈병에 붙여진 까닭을 성민은, "다른 눈병의 경우와 달리 심하게 붉어져 마치 활활 타는 태양의 불길처럼 보이기 때문인가."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성민에게 상처를 주는 첫 번째 불길이었다.

이후, 그는 계속 불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사격장에서의 불, 페치카 당번으로서의 불 관리, 김 병장의 담뱃불 등등이 직접적인 고통의 체험이었고 간접적인 고통의 체험은 더욱 심각하다.

훈련소에서 가장 심하게 훈련을 시키던 조교는 목사의 아들이지만 월남에서 화염 방사기로 어린아이까지 죽인 체험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조교의 거친 행위는 불로 인한 마음의 상처와 관련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군목도 불로 인하여 마음의 상처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군목은 중위 때의 군대 화재로 인하여 수용 쇼크라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 그에게는 월남에서의 산불 체험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는 심한 불안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또 하나의 불길은 성민의 내부적 불길인 성욕의 불길이다. 이 불길은 군대 혹은 사회 질서에 의해, 그리고 종교적 엄숙성에 의해 극히 억제되어 있다. 성민은 정미를 통하여 자신의 불길을 정화하려 하지만 그녀와의 만남은 좌절된다. 그래서 여관에서 창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만 그 창녀가 정화(淨化)의 불길이 되지 못함은 당연하다. 이때 정미 대신 성민에게 나타난 여자가 동순이다. 어느 날 밤 우연한 만남으로 동순과 성민은 서로가 서로에게 동정을 바친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는 개인적이고 성적인 차원의 통과 의례이다. 성민으로부터 불씨를 옮겨 받은 동순은 그 불씨를 키운다.

교회 마당에서 낙엽을 태우고 있을 때, 동순이 나타나서 지노귀굿의 춤사위를 춘다. 마침내 동순은 조각실로 몰래 들어가 막달라 마리아 상에 불을 붙이고 정화의 의식을 치룬다. 이 불로 막달라 마리아 상이 타고 교회가 불타게 된다. 동순의 얼굴도 타고 결국 군목은 행방 불명이 된다.

이러한 불길들은 결국은 그 동안의 고통과 상처를 태우는 불길의 의미를 지닌다. 치어오르는 불길은 고통과 상처가 탄 후의 승화, 혹은 정화의 불길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형혼에 상처를 남겼던 모든 불길이 승화의 불길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이 화재가 있은 후, 모든 인물들은 제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성민은 정말 군대 같은 군대로 전출 가서 호된 군대 생활을 건강하게 치루어 낼 수 있게 되었고, 정미는 상처를 회복하여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된다. 동순은 미친 영혼에서 제 정신을 찾게 되며, 군목은 행방 불명됨으로써 그의 수용 쇼크는 자연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하여 성민은 군대라는 통과 의례를 치르고 성인이 되어 제대할 때 '라하트 하헤렙'이라는 나무 조각품을 선물로 받고 나간다. '라하트 하헤렙'이란 성경에 나오는 말로 '화염검(火焰劍)'의 뜻을 지닌 말이다. 즉, '칼 모양으로 된 불길'이라는 뜻이다. 성민이가 군대를 마치고 얻은 것이 '라하트 하헤렙'이라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소설의 마지막을 이루는 정 상병의 편지는 이를 분명히 이해하게 한다.

― 그 당시 분명히 지상에 창설되었던 에덴 동산이 왜 지금은 존재하지 않을까. 나는 그 두루 휘도는 칼 모양의 불길로 인하여 에덴 동산이 동편에서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네.

<중략> 그러나 반면, 그 '라하트 하헤렙'은 선악과를 태우는 불길인 동시에 생명 나무를 태우는 불길이기도 하였네. 해방이면서 상실이요, 자유이면서 죽음이었네. 나는 아담이 그 상실과 죽음을 깨닫고 뒤늦게 불길 속으로 생명 나무를 건지려 뛰어들어 갔다고 생각하네. 그렇지만 그 아담은 생명 나무를 건지지 못하고 크고 깊은 화상만 입었네. 그 아담의 화상은 후손들에게 유전되어 인류는 모든 영혼에 화상을 입은 존재들이 되었네.

아담 이후, 카인의 살인으로부터 시작된 인류의 죄악들은 바로 이 화상을 증거하고 있지 않느냐 말일세. 그러니까 인간과 역사 속에는 바로 이 '라하트 하헤렙'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지.

<중략>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이 '라하트 하헤렙'을 불깃불이나 맞불로 삼아 저 불타는 세상에서 새로운 비상구를 찾아가기 바라네. ―

결국 성민은 군대라는 통과 의례를 통하여 불타는 세상을 체험으로 인식하였고, 또 그 불타는 세상에서 그 불을 정화시키는 맞불로서의 자신의 삶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군대 생활 시작 당시 성민이가 매달렸던 욥기 23장 10절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성경 말씀이 실현되어 성민은 한 사람의 어엿한 성인(成人)이 된 것이다. <이남호, [70년대 젊음의 성장 체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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