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독해연습4 / 예술과 과학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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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예술, 수학, 그리고 모든 창조적 행위에 대한 감상(appreciation)은 재창조(recreation)행위라 생각된다. , 여러분이 감상에 의해 예기치 않은 유사성(類似性)을 보게 되고, 그 존재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끼게 될 때,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맞는 방법으로 재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창조 행위를 상상 속에서 다시 체험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내 견해에 의할 것 같으면 감상은 수동적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와 같은 성질의 활동인 것이다. , 그것이 맞는 말이라면 사람은 감상을 통해 훈련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여러분이 지금보다 더 훌륭한 감상자로, 어쩌면 독창적인 창조자로도 훈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여러분의 타고난 창조적인 재질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

 

창조를 사물을 만들거나 파괴하는 다소 특별한 과정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나는 이 견해에 동조(同調)하진 않는데, 이는 창조와는 반대되는 것은 파괴가 아니라 단지 무질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창조된 작품과 반대되는 것은 단지 혼란된 상태(chaos)이다. 그러므로 전도(顚倒)된 창조적 충동 때문에 파괴하려는 일이 생긴다라는 견해에는 동조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창조 행위가 예술과 과학에서 동일한 성격을 가진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자연적이고, 인간적이며, 살아 있는 행위이다. 그러나 물론 분명히 시()가 수학의 정리(定理)와 비슷하지는 않다. 어떻게 다른가? 그것은 시와 정리가 만들어지는 방식과는 관계가 없다. 그들이 인간의 경험과 어울리는 방식이 각각 다르므로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예로 들자. 이것은 모든 아이가 재발견하는 정리이다. 그들은 그 정리를 항상 같은 형식으로 재발견한다. , 그들의 경험은 지적(知的)이며 똑같게 행하여질 수 있다. 예술에서는 이러한 일이 생길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사람과 동물을 그리려 하지만, 아무도 레오나르도의 <담비와 같은 숙녀>를 똑같이 다시 그리려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희곡을 쓰려고 하지만 <오디푸스 왕>과 똑같이 쓰려 하지는 않으며 단지 같은 주제에 대해 쓰려 한다. 예술의 경우에는 한 사람의 경험이 청사진처럼 다른 사람의 경험과 맞아떨어질 수는 없다. 아무도 이런 목적으로 예술 작품을 읽지는 않는다. 즉 그것을 재창조하지, 청사진을 다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예술 작품을 읽는 사람은 그 자신의 경험을 추구한다. 즉 그가 배우며, 그가 생활하며, 그가 생각을 펼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술과 과학의 차이라 생각되며, 따라서 차이는 창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된 작품과 그것을 감상하면서 재창조하는 사람이 맺는 관계의 성질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과학과 예술 모두에는 결정적 고리를 우연히 찾게 됨으로써 이루어진 위대한 발견이 많이 있다. 이러한 발견의 유명한 예인 인조 염료의 실용적 제조 공법의 발견은 한 실험실 조수가 온도계로 혼합물을 젓다가 온도계를 깨뜨려, 수은이 요구되던 유일한 촉매(觸媒)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이루어졌다. 예술의 경우, 드라이든(Dryden)은 그가 솔직히 밝혔듯이, 압운(押韻)을 찾아내면 기쁜 생각이 들곤 했으므로, 압운이 없는 시보다 압운이 있는 시를 쓰기를 즐겨 했다. 구노(Gounod)였다고 생각이 드는 어떤 작곡가의 잘 알려진 예도 있다. , 그는 잉크로 쓰다가 악보 위에 어떤 약을 쏟아 버려 유명한 악절에서 아주 상당한 변화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왜 기회는 이런 식으로 찾아오는가? 정신은 매우 긴장되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두리번거리면서 연관(聯關, connections)과 감추어진 유사성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기회가 찾아온 순간 기회를 포착하여, 우연한 사건을 행운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탐구적(探究的)인 정신이다. 세상에는 자기가 실제로 발견을 했었지만, 다만 그냥 지나쳐 버렸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늘 많다. 뢴트겐이 왜 사진 원판(原板)이 흐려졌을까?”라는 의문을 실제로 품기 전에도 많은 사람들의 사진 원판이 흐려졌었다. 재미있게 표현하면, 의문을 품는 것, 즉 사진 원판을 치워 버리지 않을 만큼 탐구적인 것이 탐구적 정신의 본질이다. 원판이 흐려진 일은 기회였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적극적이고 탐구적으로 감추어진 유사성을 찾는 정신에게만 주어진 기회였다. / P. E. 아리오티,<예술과 과학>


1. 윗글의 주제가 잘 드러나도록 20자 내외의 제목을 쓰라.

 

윗글의 필자는 ㈎~㈐에서는 예술과 과학의 창조 행위에 대해, 에서는 예술과 과학의 탐구적 정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문제의 요구가 구체적한정적으로 제목을 쓰는 것이므로, 두 부분의 의미가 모두 들어 있는 제목이 되어야 한다.

예술과 과학의 창조 행위의 의미와 탐구적 정신의 의의

 

2. 윗글을 내용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눌 때, 셋째 부분의 중심 내용을 40자 이내 (띄어쓰기 포함)의 한 문장으로 쓰라.

 

윗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각 부분의 중심화제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 창조 행위의 의미

: 예술과 과학의 창조 행위의 비교

,: 예술과 과학의 발견(창조)과 탐구적 정신의 관계

예술과 과학의 위대한 발견은 탐구적 정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예술과 과학의 위대한 발견은 탐구적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3. 윗글을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600자 내외로 요약하라.

 

유의사항 요약문 자체가 완결된 글이 되도록 할 것

원문의 흐름에 따르되 가능한 자신의 표현으로 바꾸어 쓸 것

원문의 여러분이란 표현을 사용할 때에는 우리로 바꾸어 쓸 것

제목과 성명을 쓰지 말 것

 

윗글과 같이 길이가 길고 구체적 예가 많은 글을 요약할 때는 구체적 예를 생략하고 주장의 핵심만 간추리는 것이 요약의 원칙이다. 그렇다고 구체적 예를 무조건 생략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윗글에 나와 있는 예 중에서 사람들이 잘 알고 있고, 이해하기 쉬운 예 하나는 짧게 들어주는 것이 글의 의미 전달에 더욱 효과적이다.

 

예술, 수학, 그리고 모든 창조적 행위에 대한 감상은 재창조 행위다. 그러므로 감상이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창조와 같은 성질의 활동이며, 우리는 감상을 통해서 독창적 창조자로 훈련될 수 있고 자신의 창조적 재질을 최대한 발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창조를 기존의 것을 파괴하는 다소 특별한 과정과 동일시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그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창조와 반대되는 것은 파괴가 아니라 무질서이고 창조된 작품과 반대되는 것은 혼란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창조 행위가 자연적이고, 인간적이며, 살아 있는 행위란 점에서 그것은 예술과 과학에서 동일한 성격을 갖는다. 단지 그것들이 인간의 경험과 어울리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수학이나 과학에서는 모든 사람이 항상 똑같은 방식으로 정리(定理)를 재발견하는 데 반해서, 예술의 경우에는 한 사람의 경험이 청사진처럼 다른 사람의 경험과 똑같을 수는 없다. 이것이 예술과 과학의 차이며 그것은 창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된 작품과 그것을 재창조하는 사람이 맺는 관계의 성질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과학과 예술의 위대한 발견은 우연성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정신이 긴장되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대상의 연관성과 유사성을 찾고자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탐구적 정신이 새로운 발견 더 나아가 새로운 창조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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