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독해연습10 / 미래의 선택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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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라.


인류의 진화와 발달의 과정에서 인간문화 중 많은 것들이 그 쓸모때문에 발명되고 발생하기도 했지만 또 많은 것들은 쓸모와 관계없이 재미때문에 발명되고 발생되었다. 돌도끼, 그릇, 집이 전자의 예고 노래, 그림이 후자의 예다. 물론 쓸모로 만든 것이 재미있어진 경우도 있고 재미있어서 만든 것이 쓸모가 생긴 것도 있다. 또 쓸모와 재미가 함께 범벅이 된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에겐 그것이 쓸모있고 어떤 사람에겐 재미인 경우도 있다. 지식, 기술, 학문이 그 예다.

 

그 시작에서 쓸모가 였던 재미가 였던 간에 오늘날 그 문화 또는 그 문명이라고 부르는 그윽하고 격조 높은 것들은 대부분 그것을 쓸모, 수단으로서만 다루지 않고 그 자체를 멋, 재미, , 그윽함, 아름다움으로 다룬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다. 토기는 처음엔 쓸모에 불과했다. 그랬다가 누군가가 줄무늬, 빗살무늬를 그려넣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이미 쓸모, 수단만은 아니었다. 끝내 고려자기라는 희한한 문화를 발견한 사람은 그 쓸모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그 아름다움에 흥이 난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니라면 그저 새지 않고 쉬이 깨지지 않는 투박한 그릇으로 만족했어야 했다. 화약은 우연히 쓸모로써 발견했을 것이다. 다이너마이트는 노벨이 쓸모 반 호기심 반으로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어마어마한 원자탄의 원리는 순전히 지적 호기심으로 원자의 구조를 연구해 들어간 학자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진리의 생태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이 있다. 진리는 그 스스로를 마치 양파처럼 겹겹의 그럴듯한 허위의 껍질로 감싸고 있으며 여간해서는 그 아름다운 자태를 내보이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자기를 차지하려고 다가오면 양파 한 겹의 그럴듯한 허위를 진리로 보이게 한다. 진리를 수단으로 이용해 먹기에 급급한 수단주의자는 급한 마음에 이 겹겹의 그럴듯한 허위나 반진리에 속아 반해 버리게 된다. 도리어 진리는 순진무구하게 아무 이해나 관심 없이 그저 진리를 그 자체로서 반겨 주면서 자기에게 가까이 오는 자에게만, 그러는 정도에 따라서만 그 아름다운 자태를 조심스럽게 열어서 보여 준다. 그것은 마치 한 요조숙녀가 자기를 치부나 출세의 정략 수단으로 삼으려고 가까이 하는 자를 역겨워 멀리하고 다만 자기의 있는 그대로를 반겨 주는 사람에게 사랑을 허락하는 것과 같다. 통계학의 영가설 검증은 어떤 두 현상 사이에 차가 있다.”라고는 말하지 않고 다만 차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는 형식을 취한다. 또 우리가 진리에 접근하는 방식은 이것이 정말이다.”라고 증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것은 거짓말이다.” 또는 이것은 아직 거짓말이 아니다.”라는 마치 양파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 가듯 하는 형식을 취한다고 과학 철학자들은 말한다. 이런 주장에 비추어 진리의 생태학은 결코 낭만적인 표현인 것만은 아니다.

 

진리도 아름다움도 선도 그것을 수단으로 보는 자에게는 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문화, 문명이라고 부르는 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대부분 그 자체를 반기고 거기에 황홀하게 심취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쌓인 것들이다. 따라서 수단주의 풍토는 도리어 문화의 불모지대며 우리가 바라는 고도의 지성, 고도의 예술성, 고도의 도덕성은 이런 풍토에서는 자라날 수가 없다.

 

문화의 축적만이 역사를 뜻있게 한다. 학문, 과학, 예술, 사상 등에서 계속되는 문화적 생산과 축적이 없는 민족의 역사는 있으나마나고 잘난 민족이라고 떠들어도 속으로는 스스로조차 믿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밖에서는 남들이 알아 주지도 않는다. 문화 생산과 축적이 빈약한 민족은 그것이 풍부한 민족에게 명실공히 또는 실질적으로 흡수되고 만다. 청은 중국 대륙을 점령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완전히 중국에 먹혔다. 지금은 명실공히 중국의 일부에 불과하게 되고 말았다. 수단주의 풍토는 문화 생산의 빈약화와 더불어 긴 역사에는 역사의 정지, 말살, 부재라는 재난마저 몰고 올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수단주의, 목적 편향주의의 재난은 엄청나다. 이들이 낳는 의미와 목적의 부재, 열중과 성취의 부재, 윤리의 부재, 그리고 문화와 역사의 부재는 실로 엄청난 개인적사회적역사적 재난들이다. 우리는 수단주의 풍토가 우리의 마음속에 번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반성하고 개인적, 사회적으로 지향전환을 심각하게 생각할 때도 된 것 같다. 그 일환으로 교육의 재지향도 절실하다.

 

정범모, <미래의 선택>


 

많은 것들이 쓸모 때문에 발명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의 과학 문명은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 힘입어 이룩된 바가 크다. 원래 진리라는 것은 그 결과를 이용하려는 수단주의에 의해서는 참된 모습을 발견하기 어렵고 오히려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했을 때 참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학자는 진리의 참모습을 늘 겸손한 자세로 발견해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실용성만을 염두에 둔 학문의 태도로는 진리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없고 나아가 고도의 문화를 이룰 수도 없는 것이다. 고도의 문화를 이루지 못하면 국제 경쟁에서 뒤져 역사의 그늘로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수단주의적 학문의 태도를 반성하고 이제는 순수한 진리 탐구의 태도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핵심내용이다.

 

1. 윗글의 첫째 단락과 둘째 단락을 묶어서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

 

첫째 단락은 지난날 인류의 진화와 발달의 과정에서 인류의 문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밝힌 단락이며, 둘째 단락은 오늘날 격조 높은 문화, 문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밝힌 단락이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를 대비시켜 문장을 진술해야 한다.

 

지난날 인류의 문명은 그 실용성이나 지적 호기심 때문에 이루어져 왔지만 오늘날 고도의 문화, 문명은 실용적인 필요성에 의해서보다도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 힘입어 이루어진 바가 크다.

 

2. 윗글에서 진리의 生態學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진리의 속성을 비유를 사용하지 말고 간략히 진술하라.

 

진리의 生態學이란 진리가 양파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을 말한다. 진리는 양파 껍질처럼 그럴듯한 허위의 껍질로 감싸고 있어서 실용성만을 염두에 둔 나머지 급한 마음으로 탐구해서는 그 참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우며 통계학의 零假說 검증에서처럼 늘 겸손한 태도와 순수한 지적 호기심으로 깊이 있게 탐구해야만 그 참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진술하되 양파 껍질에 비유한 내용이 들어가지 않도록 유의한다.

 

진리는 그 참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실용성만을 염두에 둔 나머지 급한 마음으로 탐구해서는 그 참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우며 늘 겸손한 태도와 순수한 지적 호기심으로 깊이 있게 탐구해야만 그 참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다.

 

3. 윗글을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600자 내외로 요약하라.

 

유의사항

요약문 자체가 완결된 글이 되도록 할 것

원문의 흐름에 따르되 자신의 표현으로 바꾸어 쓸 것

원고지 사용법과 맞춤법 규정에 맞게 쓸 것

제목과 성명을 쓰지 말 것

 

이 글은 모두 여섯 개의 형식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각 형식단락의 핵심 내용을 정리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전체 글을 요약해 나가도록 한다. 또 자신의 표현으로 바꾸어 써야 하는 만큼 핵심 내용을 정리할 때 미리 이것을 자신의 표현으로 바꾸어 정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각 단락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날 인류 문명은 그 실용성이나 지적 호기심 때문에 이루어졌다.

오늘날 고도의 문화, 문명은 실용적인 필요성에 의해서보다는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 힘입어 이루어진 바가 크다.

진리는 양파껍질처럼 겹겹의 그럴듯한 허위의 껍질로 감싸고 있어서 실용성만을 염두에 둔 나머지 급한 마음으로 탐구해서는 그 참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우며 늘 겸손한 태도와 순수한 지적 호기심으로 깊이 있게 탐구해야만 그 참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다.

실용성만을 염두에 두고 진리를 탐구하면 고도의 문화를 이루어 낼 수가 없다.

고도의 문화를 이루지 못한 나라는 문화적으로 다른 나라에 예속되기 때문에 역사의 그늘로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실용주의적인 학문의 태도를 반성하고 진리 탐구의 순수한 태도를 되찾아야 한다.

 

요약

지난날 인류의 문명은 대부분 그 실용적인 필요성과 지적 호기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화약, 다이너마이트, 원자탄의 차이에서 보는 것처럼 오늘날 고도의 문화, 문명은 실용적인 필요성에 의해서보다도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 힘입어 이루어진 바가 크다. 원래 진리는 양파 껍질처럼 겹겹의 그럴듯한 虛僞의 껍질로 감싸고 있기 때문에 실용성만을 염두에 둔 나머지 급한 마음으로 탐구해서는 그 허위의 모습을 발견하는 데 만족하기 쉬워 참모습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어디까지나 통계의 零假說 검증에서처럼 늘 겸손한 태도와 순수한 지적 호기심으로 깊이 있게 탐구해야만 그 참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용성만을 염두에 두고 진리를 탐구하면 고도의 문화를 이루어 낼 수가 없어 참된 문화의 부재 상태를 초래하고 만다. 또 고도의 참된 문화를 이루지 못한 나라는 문화적으로 다른 나라에 예속된 나머지 실질적으로 그 나라에 흡수되는 결과를 빚어 심지어 역사의 그늘로 사라지는 결과까지도 초래할 수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가고 있는 실용주의적인 학문의 태도를 깊이 반성하고 진리 탐구의 순수한 태도를 되찾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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