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애가(爐邊哀歌) /오일도
by 송화은율
노변애가(爐邊哀歌) /오일도
밤새껏 저 바람 하늘에 높으니
뒷산에 우수수 감나뭇잎 하나도 안 남았겠다.
계절(季節)의 조락(凋落), 잎잎마다 새빨간 정열(情熱)의 피를
마을 아이 다 모여서 무난히 밟겠구나.
시간(時間) 좇아 약속(約束)할 수 없는 오―나의 파종(破鐘)아
울적(鬱寂)의 야공(夜空)을 이대로 묵수(默守)할 것가!
구름 끝 열규(熱叫)하던 기러기의 한 줄기 울음도
멀리 사라졌다. 푸른 나라로 푸른 나라로!
고요한 노변(爐邊)에 홀로 눈감으니
향수(鄕愁)의 안개비 자욱히 앞을 적시네.
꿈속같이 아득한 옛날 오―나의 사랑아
너의 유방(乳房)에서 추방(追放)된 지 내 이미 오래다.
거친 비바람 먼 사막(沙漠)의 길을
숨가쁘게 허덕이며 내 심장(心臟)은 찢어졌다.
가슴에 안은 칼 녹스는 그대로
오―노방(路傍)의 죽음을 어이 참을 것가!
말없는 냉회(冷灰) 위에 질서(秩序)없이 글자를 따라
모든 생각이 떴다―잠겼다―또 떴다.
―앞으로 흰 눈이 펄펄 산야(山野)에 나리리라
―앞으로 해는 또 저물리라.
<시원(詩苑), 1935. 2>
이해와 감상
늦가을, 초겨울의 시다. 이제 시인은 난로가에 앉아 불을 쬐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단풍 든 감나무 잎을 다 떨구는데 이 조락의 계절을 맞아 시인은 우울한 향수에 잠기었다. 사랑은 이미 오래 전 떠났고, 몸은 피폐해졌다. 오래 전에는 가슴에 칼을 품은 바 있으나, 이제 그 기개는 낡아 칼에는 녹이 슬고 이렇게 목적지에 이르지 못한 채 길가에서 생애를 마칠 것만 같다. 그리고 가뭇없이 겨울은 닥칠 것이며, 눈은 내릴 것이며, 한 해는 또 저물 것이다.
제목을 쉬운 말로 풀자면 `난로가의 슬픈 노래'이다. 어려운 한자어의 취향이 시를 썩 매끄럽지 않게 하지만 시형은 제자리를 잡고 있으며, 계절의 어두운 곡절을 맞아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인의 몸짓은 절박한 데가 있다. 발단은 부담이 없고, 전개는 절실하고, 결말은 잦아드는 맛이 있어 가편(佳篇)의 시라고 할 만하다. [해설: 이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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