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노동의 새벽 - 박노해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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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새벽 - 박노해


작가 : 박노해(1956- ) 전남 고흥 출생. 1983시와 경제시다의 꿈등을 시를 발표하며 등단. 1회 노동문학상 수상(1988).

진지하고 구체적인 노동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한 사실주의의 정신으로 노동해방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지향해 가고 있다.

시집으로는 노동의 새벽(풀빛, 1985) 등이 있고, 산문집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노동문학사, 1989) 등의 저서가 있다.

 

< 감상의 길잡이 1 >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박노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산업 현장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일상적인 노동 체험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낸 시인이다. ‘노동 해방의 약자인 노해를 그의 필명으로 삼은 그는 노동운동사상 전태일이후 노동자의 대표적 상징체이기도 하다. 그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급속히 독자층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1980년대 노동문학, 혹은 노동자 문학의 활성화에 불을 당긴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 후 소위 시국 사건에 연루되어 공식적인 활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1988년 제1회 노동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1989년 결성된 세칭 사노맹의 중앙 위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이 사건에 연루되어 현재 복역중에 있으며, 옥중에서 쓴 작품들을 모아 1993󰡔참된 시작󰡕을 출간하였다.

 

󰡔노동의 새벽󰡕은 우리 문학사에 있어 하나의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작품이다. ‘현장적 구체성’, ‘체험의 진실성’, ‘최고 수준의 정치적 의식과 예술적 형상화 능력등의 말로 칭송받았던 이 시집의 작품들은 지식인의 관념이 아닌, 노동자의 노동 현장의 일상적 삶이 노동자의 언어로 형상화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에게 있어 현실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에 의한 부정의 대상이었다.

 

󰡔노동의 새벽󰡕의 표제시인 이 시는 540행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의미상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은 1연으로 철야 작업을 끝내고 나서 피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 소주를 마시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라고 위기를 느끼는 발단 부분이다. 둘째 단락인 2,3연은 화자의 서로 상반되는 자세가 나타나는 전개 부분이다. , 2연은 오래 못가도 /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을 나타내며, 3연은 진이 빠진 / 스물 아홉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과, ‘운명을 어쩔 수 없다는 갈등이 상반된다. 셋째 단락인 4연에서는 차거운 소주를 붓는행동이 분노와 슬픔을 붓는행동으로 바뀌는 전환 부분이다. ‘슬픔은 앞에서 나타났던 갈등의 연속이라면, ‘분노는 체념을 넘어서는 힘이 된다. 넷째 단락인 5연은 절정과 화해를 이루는 부분으로, 4연에서의 분노의 힘이 더욱 확산되어 절망의 벽을 /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 거치른 땀방울로 퍼져나간다. 절망은 사라지고, 그 대신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희망과 단결의 의지를 다지는 화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시의 제목 노동의 새벽에서 노동은 현실의 고통과 절망을 의미하며, ‘새벽은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과 사랑을 지펴려는 결연한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삶의 고통과 초월이라는 대립 구조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물론 단순한 대립 구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갈등과 전환은 절망의 벽으로 제시된 노동 현실을 벗어나지 않으며, 그 운명을 감싸안고 살아가려는 몸부림을 절실히 그려낸다는 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 감상의 길잡이 2 >

이 시는 80년대 대표적인 노동시이다. 노동자인 시인이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노동 현장의 분노와 사랑을, 절망과 희망의 숨결을 실감 있게 노래하고 있다. 가난의 멍에와 질긴 목숨 때문에 전쟁 같은 노동일을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처지가 비관적인 어조로 토로되고 있다. 죽지 않기 위해 하는 노동이 너무도 힘겹고 고되기 때문에 죽음이 연상되는 것은 당연하다. 시인은 이 절망의 벽을 깨뜨릴 반역의 꿈을 키운다.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분노이면서 희망이며 사랑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시인은 가슴 위로 소주를 붇는다. 억압이 없는, 노동자가 참된 주인이 되는 해방의 세상을 위한 투쟁의 단결을 위해 그는 벗들에게 차가운 소주를 돌리는 것이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술과 분노와 희망에 취한 그들의 눈 앞에 어른거리는 듯하다. 이 시는 착취와 피착취라는 자본주의의 첨예한 계급 모순과 그 변혁의 비장한 결의를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통해 노래하고 있다. [해설: 박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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