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오면 - 심 훈
by 송화은율그 날이 오면 - 심 훈
그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리까.
그 날이 와사, 오호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기어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처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시집 '그 날이 오면', 1949)
* 삼각산(三角山) : 북한산(北漢山)의 옛 명칭
* 인경(人磬) : 통행 금지를 알리기 위해 설치해서 치던 큰 종. 인정(人定).
* 육조(六曹) : 옛날 조정의 여섯 관아(官衙)
작자
심훈(1901~1936) : 본명은 대섭(大燮). 소설가.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4개월간 복역한 뒤 중국에서 대학 과정을 공부했다. 귀국 후 기자 생활을 하면서 소설을 냈고, 1935년 장편 소설 '상록수'로 크게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그의 소설은 식민지하에서 고통받는 민족의 삶을 주로 그렸으며, 시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볼 수 있다. 특히 장편 ‘영원의 미소’, ‘직녀성’, 단편 ‘황공의 최후’를 통해서, 낡은 윤리와 보수성을 타파하고 새로운 개인 중심 및 민족적인 사회 봉사 이념을 추구하는 계몽주의 정신을 드러냈다. 1936년에 병사하였고, 시와 수필을 모은 ‘그 날이 오면'이 1949년에 간행되었다.
감상의 초점
이 시는 격렬한 감정에 휩싸여 시적 균형성을 잃고 있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민족 해방을 향한 강렬한 애국적 열정은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어느 시인보다도 뜨겁게 느껴진다.
이 시는 대응하는 두 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연이 ‘그 날이 오면’이라는 가정적 미래로 시작하는 대신 제2연은 ‘그 날이 와서’의 가정적 현재로 되어 있음에 유의하자. 한편 제1연의 ‘삼각산’이 제2연에서 ‘육조’로 변화되고, 제1연의 ‘인경’이 제2연에서 ‘북’으로 변화되고 있다. 그러나 제1연에서 제2연으로 넘어가면서 시상이 크게 진전되지는 않는다.
< 감상의 길잡이 1 >
이 작품은 장편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이 쓴 희귀한 저항시다. C. M. 바우라는 시와 정치(Poetry and Politics)에서이 시를 ‘세계 저항시의 본보기’라고 평가하였다.
전체의 시상은 ‘그 날’을 염원하는 격정(激情)과 환희(歡喜)의 정서를 형상화해 보이고 있다. 이 시는 서로 대응하는 두 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날이 오면’이 ‘그 날이 와서’와 대응하고, ‘삼각산’이 ‘육조’와 대응하며, ‘인경’이 ‘북’과 대응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지나치게 대응 관계를 염두에 둔 탓인지 제1연에서 제2연으로 넘어가면서 시상의 진전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제1연은 ‘그 날이 오면’이라는 가정적 미래로 시작하고 있다. 곧 해방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기꺼이 ‘나’의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두운 식민지 치하에서 자유를 속박 당하는 삶이란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하다는 절실한 부르짖음이 극한적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제2연은 ‘그 날이 와서’라는 가정적 현재로 시상의 변화를 주면서 제1연에서보다 더욱 처절하고 전율감마저 느끼게 하는 부르짖음이 노래되고 있다. 그만큼 마음에 맺힌 조국 광복에 대한 염원은 절실한 것이다.
< 감상의 길잡이 2 >
출세작 <상록수>를 집필하기 3년 전인 1932년에 간행하려 했던 그 날이 오면은 총독부의 검열에 걸려 반 이상이 삭제됨으로써 중단되었다가, 그의 사후 10년도 더 지난 1949년에야 비로소 가족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상록수>를 이해하는 길목에 위치하는 그 날이 오면은 중국 항주(杭州) 지강 대학에서 돌아와 1923년 ‘극문회(劇文會)’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면서 쓴 시와 수필을 묶은 작품집이다. 이 작품집의 표제시인 이 시는 제일 고보에 재학 중 3․1 운동에 참가, 진두 지휘를 하다가 투옥된 바 있는 심훈의 투철한 현실 인식과 애국심을 집대성한 걸작으로 이육사의 <절정>과 함께 3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시의 하나이다.
이 시에서 ‘그 날’이란 온갖 민족적 수난과 저항 끝에 죽음을 넘어서 획득하게 되는 조국 해방의 날을 의미한다. 화자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라고 하는 등 조국 해방의 날이 오는 순간을 상식적인 논리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상황으로 설정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일종의 환각 상태에 빠져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는 표현이지만, 화자가 ‘그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하게 해 준다. 이러한 환각 속에서 화자는 죽음마저도 초월하는 존재가 된다. 이것은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 기뻐서 죽사오매’와 같은 표현으로 나타나 있다.
2연도 1연과 거의 동일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그 날’이 올 때의 기쁨을 제시하고 있으며, 후반부에서는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메고는 /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와 같은 죽음을 초월한 자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시는 격정과 환희라는 시 정신을 바탕으로 광복의 ‘그 날’을 염원하는 마음이 잘 표출되어 있다. 눈에 거슬리는 극한적 표현을 자주 씀으로써 다분히 관념적이고 격렬한 정서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절절한 호소, 강인한 의지, 도도한 의기(義氣)의 자세와 목소리, 비장감(悲壯感)으로 비롯된 치열한 저항성과 강렬한 역사성은 바로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사실 이와 같은 저항시에서는 세련된 정서나 아름다운 표현은 도리어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쓸데없는 장식물이 될 뿐이다. 한편, 이 시는 1930년 3월 1일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영국의 비평가 바우라(Bowra)는 그의 비평서 시와 정치에서 이 시를 세계 저항시의 한 본보기로 들며, “일본의 한국 통치는 가혹하였으나, 그 민족의 시는 죽이지 못했다.”고 평한 바 있다.
< 감상의 길잡이 3 >
사람들은 수백 수천의 시를 쓰고도 시인의 이름으로 기억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심훈은「그날이 오면」의 단 한편의 시로 불멸의 시인이 되었다. 한국에서만이 아니다.심훈은 옥스퍼드 시학교수 바우러의 역저「시와 정치」(1966년)에서 파스테르나크와 세페레스와 같은 노벨문 학상 수상자와 당당히 어깨를 겨루고 있다.공공적 주제를 다루고 있는 정치시에 있어「개인적인 열렬한 기분」과 단순성이 얼마나 특수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 바우러는 그것을 실증하는 모형으로 「그날이 오면」전문을 분석했다.「한국 시인은 독일 시인처럼 잔악한 사실에 구속되지 않는다.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비록 먼 훗날의 일이라 하더라도 감격적인 그 미래가 일깨우는 자극적이고도 숭고한 그 기분인 것이다.그는 한국의 산과 강,종로와 같이 친숙한 환경에 그의 비전을 설정한다.…자연은 그와 기쁨을 함께 나누고 일어나서 함께 춤을 춘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자연환경과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사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바우러 교수는 서구의 저항시인들에게서 맛볼 수 없는 색다른 감동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그날이 오면」이 정치시로서 성공하게 된 이유를 좀더 정밀하게 검증하기 위해서 우리는 바우러 교수가 지적한「개인적인 열렬한 기분」,「감격적인 그 미래가 일깨우는 자극적이며 숭고한 그 기분」이란 것이 대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다.그리고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한데 있다. 그 시의 1연 맨 처음과 마지막에 나오는 시구를 한데 이어보면「그날이 오면,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라는 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인경을 머리로 받아 죽는 옛 전설의 까마귀 비유이기 때문에 1연의 시를 한 형태로 축약하면「그날이 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가 된다.즉 한국민족이라면 누구나 속으로 외우고 살아온 말이다. 심훈은 바로 한국인의 뿌리깊은 민족정서와 그 삶의 본질에서 저항의 언어를 가져온 것이다.그 한의 언어를 어떻게 희랍 고전시의 연구가가 알았을리 있겠는가. 더구나 그가 인용한「그날이 오면」의 번역시에는 바로 그 한의 구절이 삭제되어 있다.그러니 영어로 번역조차 할 수 없는 그「한」의 정서가 그에게는 그저「개인적인 열렬한 기분」으로 파악될 수밖에 없다.
한이란 외부의 어떤 힘이나 방해로 이루지 못한 욕망이다.그러므로 죽음은 모든 것을 멸할 수 있어도 평생동안 마음 밑바닥에 쌓인 그 한만은 없앨 수가 없다.한국인이 종교로부터 구하려고 한 것은 영생이 아니라 바로 그 한을 푸는 일이다.오구굿과 같은 무속의식 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한」에 뿌리를 둔 저항시는「원」에서 출발한 그 정치 시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원과 한은 어떻게 다른가.춘향이에게 있어 변학도에 대한 감정은 원이지만,이도령에 대한 그것은 한이다.
춘향의 시가 변학도에게로 향하면「원의 언어」가 되고,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면 원수를 갚는 복수로 발전될 것이다.그러나 아무리 변사또를 복수한다 해도 이도령을 만나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 한은 풀 수가 없다.춘향이 심훈이 되고 일제의 극악한 지배가 변학도가 된다면,그리고 이도령과의 극적만남이 민족 강토가 해방되는 그날이라고 한다면,그 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독일형 저항시와는 분명 다른「그날이 오면」과 같은 시가 될 수 밖에 없다.그리고「감격적인 미래의 자극적이고도 숭고한 기분」이란 곧「한을 푸는 미래」로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2연째의 그 시를 읽어가면「인간의 자연환경과 기쁨을 나누는 사상」이라고 한 그 비평이 얼마나 피상적인 것인가도 알게 된다.점잖은 영국의 그 시학자는 춤추는 삼각을「감상적 오류의 멋진 변형」이라고 칭찬하고 있지만,산과 강물을 춤 추게 하는 기쁨….육조 넓은 거리에서 울고 뒹굴고 춤춰도 복받쳐 오르는 주체할 수 없는 그 기쁨을 무엇이라고 하는가.한국인들에게 물어보면 금세 신바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 1연의 시가 죽음보다도 강한「한풀이」를 노래한 것이었다면,2연의 그것은 죽음보다 강한 「신바람」의 세계를 읊은 것이다.1연에서는 제 머리로 인경을 받아 종을 울리지만,2연에서는 칼로 제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어 친다. 그 종소리가 민족의 한을 푸는 소리라면,이 북소리는 민족의 행진을 이끄는 신바람의 소리인 것이다.신바람은 존재의 저 근원으로부터 절로 솟아나는 힘이다.나와 너의 경계가 사라지고 안과 밖의 담벼락이 무너지고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문자 그대로의 해방공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속에서는 북과 북을 치는 사람이 구별되지 않는다.자기 가죽으로 만든 북을 자기가 친다고 했다.치는 것도 자기요,울리는 것도 자기다.사람이 북이 되고,북이 사람이 된다.그러한 신명의 북소리는 삼각산 한강수와의 교감은 물론이고 생과 죽음의 문지방마저도 횡단한다.바우러는 그것을 그저「황홀한 순간」이라고 했지만 한국인들은 사물놀이나 탈춤을 통해서 일상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신바람인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한의 종소리와 신바람의 북소리는 다같이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실현된다는 사실이다.「그날이 오면」에서 한을 푸는 기쁨의 그 종소리는 바로 자신의 두개골이 으스러지는 소리이고,신명의 그 북소리는 자신의 살가죽을 칼로 벗겨내는 소리이기도 한 것이다. 종소리든 북소리든 그것은 울려 퍼진다.끝없이 진동하고 넘치고 확산하고 상승하다가 침묵속으로 사라진다.두개골이 파열되고 가죽이 벗겨지는 아픔이 희열의 종소리와 북소리로 바뀌어지는 그 한과 신바람의 위대한 아이러니야 말로 시를 창조하는 자원인 것이다.그러므로「그날」의 기쁨을 뒤집기만 하면 가혹한 일본 압제의 상황인「오늘」에 대한 고발과 분노의 심판이 된다.
바우러는 말한다.일본 사람들의 어떤 압제도 한국 시인들을 죽일 수 없었다고.그러나 한국 시인의 가슴에는 죽음보다 강한 한과 신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과연 알았을까.그리고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대립개념으로만 생각해온 그의 시학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면서도 사회나 민족 그리고 우주전체를 넘나드는 한풀이와 신바람의 그 담벼락없는 리듬을 포용할만한 자리가 과연 있었을까.그 시가 쓰여진지 한세기 가까이 지나고「그날」을 맞이한지 반세기가 넘었는데도 우리는 심훈의 언어에서 여전이 자신의 머리와 자신의 가죽으로 울리는 생생한 그 종소리와 북소리를 들을 수 있다.그 기쁨과 아픔이 한데 어울려 가슴을 저리게 하는 가락들을 만약 바우러와 같은 서구의 비평가들이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그날이 오면 한국의 시는 세계의 지붕위로 발돋움하게 될 것이다.
<이어령 교수>
< 감상의 길잡이 4 >
이 시에서 말하는 `그 날'이란 심훈이 갈망하였던 민족 해방의 날이다. 작품의 전 내용은 그 날이 왔을 때 폭발하듯 터져 나올 환희의 모습에 집약된다.
제1연 : `그 날'이 오면 삼각산조차 일어나 춤을 추고 한강물은 기쁨으로 뒤집혀 용솟음칠 것이다. 내 목숨이 다하기 전에 그 날이 오기만 한다면 나는 해방의 기쁜 소식을 알리는 인경을 새처럼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다가 죽어도 좋다. 머리가 깨어져 산산조각이 된다 한들 해방의 기쁨 속에서 죽을 수 있다면 무슨 한이 남겠는가? 억압 속에서의 삶이란 차라리 자유민으로서의 죽음보다 못하다는 절실한 부르짖음이 격한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제2연 : 터질 듯한 감격의 그날이 오면 예전에 육조가 있던 곳의 넓은 길을 해방의 기쁨으로 울며 뛰며 뒹굴어 보련다. 억눌린 삶에서 되살아나는 벅찬 환희를 어찌 가슴에 담아 둘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하고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막힐 듯하다면 잘 드는 칼로 내 몸의 가죽을 벗겨 커다란 북을 만들어 메고는 온 민족의 감격스런 행렬에 앞장을 서련다. 내 몸의 살가죽이 벗겨지는 아픔도 해방의 기쁨에 비한다면야 무엇이겠는가? 해방의 행렬 앞에서 울려나오는 그 우렁찬 소리를 한번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곧 쓰러져 죽는다 해도 아쉬움 없이 눈을 감겠다. 제1연보다 한층 처절한 부르짖음이 생생하게 울려 나오는 대목이다.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북을 만들어 소리를 울리겠다는 구절은 어떤 무서운 결의의 전율감마저 느끼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작품이 한 편의 시로서 지나치게 격렬한 감정에 지배되어 알맞은 시적 균형을 잃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경험이 압도하는 순간에는 보통의 시적, 수사적(修辭的)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 그럴 때에는 차라리 억누를 수 없는 힘의 솟구침에 말을 맡기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다. 심훈은 전문적 시인이 아니었고, 그러면서도 그와 같은 절실한 욕구 때문에 이런 작품을 썼다. [해설: 김흥규]
성격 : 저항적, 희생적, 의지적, 역동적
심상 : 시각적, 청각적 심상
특징 : ① 미래 지향적, 극한적인 시어의 사용, ② 경어의 종결 어법
어조 : 남성적 어조, 의기가 넘치는 강건한 어조, 호소력 있는 어조
구성 : 병렬식 구성
① 그 날이 오면 죽어도 한이 없음.(제1연)
② 그 날이 와서 기쁨의 우렁찬 소리를 듣기만 하면 당장 죽어도 원이 없음.(제2연)
제재 : 조국 광복
주제 : 조국 광복에의 간절한 염원
<연구 문제>
1. ㉠은 (1)화자의 어떤 내면 상태의 표현인지를 70자 내외로 설명하고, (2)그 표현법은 무엇인지 밝혀라.
☞ (1) 조국 광복을 염원하는 마음이 힘차고 생동감 있게 드러나 있으며, 조국 산천도 해방의 기쁨을 이기지 못해 살아 움직일 듯 민족 모두와 어울릴 것이다.
(2) 대유법, 활유법
2. 이 시에서 ‘까마귀’는 무엇을 드러내기 위한 소재인지 25자 정도로 답하시오.
☞ 조국 광복을 위한 자기 희생의 감정 이입물이다.
3. ㉡, ㉣의 소리의 상징적 의미를 간단한 어구로 답하라.
☞ 역사와 민족이 부활하는 소리.(조국 광복을 맞는 기쁨의 소리, 조국 해방을 환호하는 소리, 광복을 알리는 소리)
4. 이 시에서 ‘울리오리다’, ‘남으오리까’, ‘감겠소이다’와 같은 경어체의 종결 어법이 갖는 효과를 화자의 태도와 관련하여 한 문장으로 답하라.
☞ 화자는 이 시의 제재인 조국 광복을 절대적이고 숭고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며, 동시에 화자의 의지를 절대적이고 신성하게 하여 준다.(화자의 조국 광복을 위한 아낌 없는 희생과 정성을 호소력 있게 드러내 준다.)
4. ㉢에서 연상되는 4자의 한자 성어(漢字成語)를 쓰라.
☞ 살신성인(殺身成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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