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오 영감 / 발자크
by 송화은율고리오 영감 / 발자크 / 조홍식 옮김
<전략>
다음 날 라스띠냑은 써놓은 편지를 부치러 갔다.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주저했지만, '출세하고야 말테다!'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그것들을 우체통에 넣었다. 이 말은 도박사의, 또는 위대한 선장의 말로서 구원의 비율보다 많은 위험의 비율이 따른 숙명론적인 언어이다. 수일 후 으제느는 레스또 부인을 방문했으나, 만나 주지를 않았다. 세 번씩이나 그는 다시 갔으나, 세 번 다 막심 드뜨라이유 백작이 와 있지 않은 시간에 얼굴을 내밀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전에서 면회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 자작 부인이 한 말 그대로였다. 학생은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강의에는 나갔지만 그것도 출석했다는 대답을 하기 위해서고, 출석을 증명하고선 곧 빠져 나왔다. 대부분의 학생이 구실로 삼는 이론을 그도 자기에 대한 변명으로 했다. 공부란 시험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될 때를 위해서 해두는 것이다. 그는 2학년과 3학년을 동시에 등록해서, '이 때야말로' 할 때에 한꺼번에 열심히 법률을 공부하리라고 배짱을 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아직도 십오 개월 동안 파리라는 대양을 항해하고 러브 헌팅을 한다고 할까, 행운을 낚아 올릴 시간이 있는 것이다. 이 주간에 그는 두 번 보세앙 부인을 만났다. 그녀의 집을 그는 다쥐다 후작의 마차가 나가고 없을 때만 골라서 방문했다. 그리고 또 수일 동안, 생 제르맹 거리의 가장 시적인 인물인 이 유명한 여성은 아직 승리를 자랑하면서도 로슈피드 양과 다쥐다 삥또 후작과의 결혼을 연기시켰다. 그러나 행복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으로 어느 때보다도 열렬한 사랑의 행위를 매일같이 되풀이한 이 며칠이 파국을 더욱 빨리 오게끔 했다. 로슈피드 집안과 뜻을 통하고 있던 다쥐다 후작은 사이가 벌어졌던 이 부인과의 화해를 도리어 잘된 상황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는 보세앙 부인이 이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에 점차로 익숙해져서, 그런 마땅히 예상되는 애인의 미래를 위하여 오후의 데이트를 희생해 주는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새로운, 말할 수 없이 신성한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쥐다 씨는 근사한 연극을 하고 있었고, 자작 부인도 속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있었다. '긍지 있게, 창문에서 몸을 던지지 않고, 저 분은 계단을 굴러 떨어지고 있어요.' 하고 그녀의 친구인 랑제 공작 부인은 말했다. 그렇지만 이 최후의 불빛이 꽤 오랜 동안 계속해서 빛나고 있었기 때문에 자작 부인은 파리에 남아서, 친척인 이 젊은 사나이를 위해서 일종의 맹목적인 사랑을 베풀어 도와 주었다. 으제느는 이제는 어떤 인간의 눈 속에서도 진정한 연민이나 위로를 찾아낼 수 없다고 할 상황에 놓인 그녀에 대해서, 헌신과 감수성이 충만한 태도로 행동했다. 이런 경우에 사나이가 그녀들에게 상냥하게 말을 건네는 것은, 대개의 경우 생각이 따로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누싱겐 집안에의 접근을 시도하는 데 선행해서, 충분히 장기판 위의 국명을 봐두고 싶다는 생각에서 라스띠냑은 고리오 영감의 과거의 생활을 알고자 약간의 확실한 정보를 수집했는데,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장 조아섕 고리오는 대혁명 전에는 수완이 좋은 절약가로 일개 제면 직원이었으나, 꽤 진취적 기상이 풍부했기 때문에 마침 1789년의 최초의 봉기에서 희생자가 된 주인의 가게를 사들였다. 그는 소맥 시장에 가까운, 라 쥐시엔느 거리에 가게를 열고, 자기의 장사를 이 위험한 시기에서 가장 유력한 사람들에게 보호받으려고 그 거리의 위원장직을 담당한다는 빈틈없는 계획성을 발휘했다. 이 지혜는 좋건 나쁘건 간에 그 식량 기근 후에 파리의 양곡이 대단한 고가를 부르게 되었을 때 재산을 모으게 했던 것이다. 민중이 빵집 앞에서 맞붙어 싸우는 속에서도 어떤 종류의 한패는 몰래 식료품상에 가서, 스파게티라든가 마카로니를 샀기 때문이다. 이 한 해 동안에 시민 고리오는 착실하게 자본을 축적하고, 그것이 나중에는 거액의 돈이 되어 그것을 소유하는 인간에게 주는 우월성을 마음껏 이용해서 장사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어느 정도의 노력밖에 없는 모든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이, 그의 신상에도 일어났다. 결국 평범한 중용이 그를 구해 주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의 재산은 이미 부자인 것이 아무 위험도 없는 시기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알게 되었기 때문에 누구의 질투도 모략도 받지 않았다. 곡물의 거래가 그의 지능을 전부 빨아 먹을 것같이 보였다. 밀이나 밀가루나 낱알에 대한 것, 그것들의 품질이나 산지를 분간하든가, 그 보존에 신경을 쓰든가, 상장의 변동을 예상한다든가, 수확의 다과를 예견하든가, 싼 값으로 곡물을 사들이거나 시칠랴 섬이나 우크라이나에서 매입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고리오의 오른편에 앉을 사람이 없었다. 그가 장사의 지휘를 하고, 곡물의 수출입에 관한 법률을 설명하고, 그 정신을 연구하고, 그 맹점을 꼬집어 내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그가 장관이라도 할 수 있는 역량의 소유자임에 틀림이 없다고 판단했다. 인내성이 있었고, 활동적이고 정력적이며, 건실해서 무슨 일이라도 재빠르게 해내는 동작에 그는 솔개의 예리한 안력을 갖추고, 모든 일의 앞을 찌르고, 이것저것을 모두 예견하고, 무엇이든 알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일체를 갖추고 있었다. 책략을 쓸 때는 외교관과도 같았고, 행동을 할 때는 병사였다. 그러나 일단 장사를 떠나서 하는 일이 없을 때는 입구의 마루턱에 기댄 채 몇 시간이고 문지방 위에 우두커니 서 있거나, 조그마하고 어두컴컴한 가게 밖으로 나오면 그는 또 원래의 우둔하고 조야(粗野)한 직업인, 대수롭지 않은 이치도 이해 못하고, 정신의 온갖 환희에도 무감각한 인간, 극장에서는 잠 자는 사나이, 넋 빠진 바보스러운 점만이 취할 점인 저 파리의 돌리봉의 한 사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런 성격의 인간은 거의 모두가 비슷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는 대개의 경우 숭고한 감정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배타적인 두 개의 감정이 이 제면업자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마치 곡물의 거래가 뇌 중의 전지능을 거의 다 써버리고 만 듯이 그의 마음의 윤기를 흡수해 버리고 말았다.
라 보리이 지방의 호농의 딸이었던 그의 아내는 그에게 있어서 종교적인 찬탄, 제한이 없는 애정의 대상이었다. 고리오는 그녀의 마음 속에서 자기의 성격과는 극단의 대조를 이루고 있는, 가냘프면서도 심지가 강하고 민감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성격을 발견하고 감탄했다. 사나이의 마음에 나면서부터 갖추어져 있는 감정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연약한 존재에 대해서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여자를 보호한다는 긍지가 아닐까. 게다가 사랑이라는 기쁨을 원천에 두고서 하는 모든 진실하고 솔직한 영혼의 그 열렬한 감사를 가한다면 독자도 수없이 많은 기이한 정신 현상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구름 그늘 한 점 없었던 행복한 7년간의 생활 후에, 고리오는 그에게 있어서 가장 불행한 일이었지만 아내를 잃었다. 그 이유는, 그녀는 감정의 영역 밖에서, 그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이 둔한 사나이의 성질을 닦아 내고, 어쩌면 거기에 세상이나, 인생의 만반에 대한 이해를 키워 주었을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고리오에게는 부성애의 감정이 어리석음에 가까울 정도로 높아졌다. 그는 아내의 죽음으로 해서 배척당한 애정을 두 딸에게 쏟고, 딸들도 처음에는 그의 모든 감정을 마음껏 만족시켜 주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딸을 고리오의 후처로 떠맡기려고 하는 상인이라든가 호농들이 아무리 적당한 혼담을 가지고 와도, 그는 홀아비로 살 것을 고집했다. 그가 어느 정도 호의를 가지고 있는 장인은, 고리오가 아무리 죽었다고 해도 아내에게 불성실한 짓은 안 하겠다고 맹세를 한 것은 확실한 사실이라고 하면서 단언하는 것이었다. 시장의 족속들은 그런 숭고한 광기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농담거리로 하여 고리오에게 천한 별명을 지어 주었다. 그 가운데 하나로, 거래가 이루어진 축하의 술을 마시면서, 최초로 그런 별명을 부른 사나이는 제면업자로부터 주먹을 한 대 어깨에 맞고 저만큼 나가 떨어져, 오블랭 거리의 차가 못 들어오게 세워 놓은 돌에 머리를 다쳤다. 고리오가 딸들에게 대해서 보이는 무분별하다고 할 정도의 헌신, 소심하고 섬세한 애정은 너무나 유명했다. 어느 날 그의 장사 라이벌의 한 사람이 그를 파리 시장에서 쫓아 버리고 자기가 상장(上場)을 좌우하려고 델핀느가 마차에 치어서 나가 떨어졌다고 그에게 말했다. 제면업자는 핏기를 잃고 창백해져서, 허둥지둥 시장에서 달려 나갔다. 이 거짓 정보에 속아서 받은 상반된 감정의 반동으로 그는 며칠 동안 앓아 누웠다. 그 사나이의 어깨에는 살인적인 주먹을 먹이진 않았지만, 후에 그 사나이가 위기 일발의 경우에 처하였을 때 파산이 되도록 타격을 가하여 이 사업장 라이벌을 시장에서 완전히 쫓아내고 말았다. 두 딸의 교육은 물론 상식을 초월한 것이었다. 6만 프랑 이상의 연금 수입이 있으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천 2백 프랑도 쓰지 않던 고리오의 행복이란, 딸들의 변덕스러움을 소원대로 해 주는 것이었다. 선발된 교사들은 그녀들에게 훌륭한 교육의 모범이 되는 기능과 예능을 가르치도록 명령받았다. 그녀들에겐 시중을 드는 부인들이 붙여졌다. 딸들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그 부인들은 재치도 있었고, 취미도 고상했다. 그녀들은 말을 탔고, 마차도 가지고, 마치 부유한 노귀족의 애첩과도 같은 생활을 했다. 아무리 돈이 많이 드는 소망이라도 그녀들이 입만 떼면 아버지는 서둘러 그것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선물의 보상으로서 애무를 하는 것 외엔 요구하는 것이 없었다.
고리오는 딸들을 천사의 위에 놓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자기보다도 높은 위치에 그녀들을 놓았던 것이다. 가엽게도, 그는 그녀들이 주는 고통까지도 사랑하고 있었다. 결혼 적령기가 되니까 그녀들은 자기의 기호에 따라서 지아비를 선택할 수가 있었다. 두 딸은 제각기 아버지 재산의 절반을 지참금으로 받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모로 해서 레스또 백작의 청혼을 받은 아나스따지이는 귀족 계급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원래부터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사회의 상층부에 진출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델핀느는 돈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는 후에 신성(神聖) 로마 제국의 남작이 된 독일 출신의 은행가 누싱겐과 결혼했다. 고리오는 제면업을 계속했다. 그것이 그의 생활의 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딸이나 사위들은, 그 후 그가 그 장사를 계속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지 않았다. 5년 간 그들로부터 귀찮은 소리를 듣던 끝에 그는 가게를 판 돈과, 최근 수년 간의 이익을 가지고 은퇴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가 거처하게 된 하숙의 여주인 보께르 부인의 계산으로는 그 금액으로 국채를 사더라도, 8천에서 1만 프랑의 연리 수입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딸들이, 그 남편에게 강한 권유를 받고, 그를 자기들 집에 와서 살게 하는 것뿐 아니라, 공개적으로 손님처럼 대접하는 것까지 거절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보고 절망 끝에 이 하숙으로 은퇴해 버리고 만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고리오 영감의 가게를 매수한 뮈레 씨라는 인물이 알고 있는 전부였다. 라스띠냑이 들은 랑제 공작 부인의 추측은 이렇게 해서 확인된 셈이었다. 여기서 이 사람의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무서운 파리의 비극의 도입부가 끝난다.
<후략>
요점 정리
작자 : 발자크 / 조홍식 옮김
갈래 : 장편 소설, 사회 소설, 풍속 소설
배경 : 19세기 프랑스
제재 : 돈(자본주의)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성격 : 사실적, 비판적, 전형적
특징 : 치밀한 묘사, 전형적인 인물 창조
주제 : 부패한 사회 속의 맹목적인 불행한 부성애(父性愛)와 라스띠냑이라는 주인공이 어떻게 파리라는 부패하고 위선적인 도시에서 악의 세계로 빠져드는 가의 이야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출세의 노예가 되어 파멸되어 가는 인간상
줄거리 : 파리의 값싼 하숙집에서 여러 하숙인들과 함께 고리오 영감과 으제느 라스띠냑이라는 청년이 하숙을 하고 있다. 제면업자였던 고리오는 지난 날 백만장자였으나 두 딸에게 거액의 지참금을 주어 귀족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가 계속 사업을 하는 것을 사위들이 싫어하자 고리오 영감은 제면업을 처분하고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싸구려 하숙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청년 으제느 라스띠냑은 지방의 가난한 귀족의 후손으로 화려한 출세를 꿈꾸는데 사촌 누이와 보세앙 자작 부인의 원조를 받아 고리오의 막내딸 델핀느 드 누싱겐 남작 부인에게 접근한다.
라스띠냑은 사교계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어 보뜨랭의 유혹에 시달리지만 결국 거절하고 만다.
한편 고리오가 그토록 사랑하는 두 딸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며, 화려한 사교계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아버지의 돈을 필요로 한다. 고리오는 딸들의 거듭되는 낭비로 마침내 빈털털이가 되고 가난에 빠져 더 이상 딸들을 도와 주지 못하게 되자 괴로워한다. 또한 딸들이 추악한 형제 싸움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픈 나머지 병들어 쓰러지고 만다.
그러나 두 딸은 병문안조차 오지 않으며, 으제느와 그의 친구가 병 간호를 하게 된다. 고리오는 헛되이 그의 딸들의 이름을 부르며 저주와 축복의 말을 교대로 중얼거리다가, 두 청년을 자기 딸이라고 착각한 가운데 숨을 거두고 만다.
라스띠냑은 고리오의 장례를 치러 주고는 그의 유해를 뻬르 라셰즈의 묘지에 매장하면서 청춘의 마지막 눈물을 묻는다. 그리고 파리를 향하여 '사회에의 도전'의 첫걸음을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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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수록분 : 「1. 하숙집」이라는 소제목이 있는 끝 부분으로, 으제느가 파리 사교계에 진출하기 위해 애쓰는 부분이다.
내용 연구
(전략)
다음날 라스띠냑은 써놓은 편지를 부치러 갔다(라스띠냑의 편지를 부치는 행위는 결심을 상징).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주저했지만, '출세하고야 말테다!'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그것들을 우체통에 넣었다. 이 말은 도박사의, 또는 위대한 선장의 말로서 구원의 비율보다 많은 위험의 비율이 따른 숙명적인 언어이다(공부를 위해 파리에 온 라스띠냑은 상류 사회계의 생활에 접하면서 사교계를 통한 출세를 결심하는 행동이 서술되어 있다. 이 부분의 진술에 작자의 빈정거림이 묻어 있는 것으로 보아 출세란 말은 성공 가능성보다는 실패 가능성이 높은 운명적인 것이라는 말로 볼 수 있다). 수일 후 으제느는 레스또 부인을 방문했으나, 만나 주지를 않았다. - 라스띠냑의 레스또 부인방문과 실패
학생(라스띠냑)은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강의에는 나갔지만 그것도 출석했다는 대답을 하기 위해서고, 출석을 증명하고선 곧 빠져 나왔다(라스띠냑의 어긋나고 있는 삶의 태도를 보여 주고 있음). 대부분의 학생이 구실로 삼는 이론을 그도 자기에 대한 변명으로 했다. 공부란 시험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될 때를 위해서 해두는 것이다(공부의 의미를 시험 치르는 것에다 둠으로써 잘못된 행동에 대한 자기 위안으로 삼았다는 말이다). 그는 2학년과 3학년을 동시에 등록해서, '이때야말로' 할 때에 한꺼번에 열심히 법률을 공부하리라고 배짱을 정하고 있었다(사교계에 진출할 궁리 때문에 공부가 뒷전으로 밀려 나갔다는 것을 암시). 그렇게 하면 아직도 십오 개월 동안 파리라는 대양을 항해하고 러브 헌팅을 한다고 할까, 행운을 낚아 올릴 시간(사교계를 통해서 출세할 수 있는)이 있는 것이다. - 라스띠냑의 학교 생활
이 주간에 그는 두 번 보세앙 부인을 만났다. 그녀의 집을 그는 다쥐다후작의 마차가 나가고 없을 때만 골라서 방문했다(불륜관계). 그리고 또 수일 동안, 생 제르맹 거리의 가장 시적인 인물인 이 유명한 여성(보세앙 부인)은 아직 승리를 자랑하면서 로슈피드 양과 다쥐다 삥또 후작과의 결혼을 연기 시켰다. 그러나 행복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으로 어느 때보다도 열렬한 사랑의 행위를 매일같이 되풀이 한 이 며칠이 파국을 더욱 빨리 오게끔 했다(라스띠냑의 출세 지향의 행동이 실패로 끝날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구절). 로슈우드 집안과 뜻을 통하고 있던 다쥐드 후작은 사이가 벌어졌던 이 부인(로슈피드 양)과의 화해를 도리어 잘된 상황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는 보세앙 부인이 이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에 점차로 익숙해져서, 그런 마땅히 예상되는 애인(라두다 후작)의 미래를 위하여 오후의 데이트를 희생해 주는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 보세앙 부인과 다쥐드 후작
매일 새로운, 말할 수 없이 신성한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쥐다씨는 근사한 연극(귀족 사회의 위선을 드러내는 말)을 하고 있었고, 자작 부인도 속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있었다. '긍지 있게, 창문에서 몸을 던지지 않고, 저 분은 계단을 굴러 떨어지고 있어요.(창문에서 몸을 던지는 것은 한 순간에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계단을 굴러 떨어지는 것은 한 단계 한 단계 내려 오는 것으로, 보세앙 부인과 다쥐다 후작의 관계가 점차 소원해진다는 것을 비유)' 하고 그녀의 친구인 랑제 공작 부인은 말했다. 그렇지만 이 최후의 불빛이 꽤 오랜동안 계속해서 빛나고 있었기 때문에 자작 부인은 파리에 남아서, 친척인 이 젊은 사나이(라스띠냑)를 위해서 일종의 맹목적인 사랑을 베풀어 도와 주었다. - 귀족들의 사랑과 위선
(이 부분은 이 작품의 서두로 아직 어린 학생인 으제느 드 라스띠냑이 점점 사회에 물들어 가는 과정의 첫 단계를 그리고 있다. 그는 연회에서 만난 귀족 부인들을 사귀어 출세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자신의 학업을 미루어 둔 채 이일에만 전념한다. 이 글에서 보여지는 듯 당시 상류 하회에서는 결혼과 관계없는 연인 관계가 유행처럼 번져 있었으며 오히려 그것이 그들의 명예를 높여 준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다. 그러나 이 연인 관계에는 역시 외모와 함께 권세와 돈이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고 있었으니 이들은 사랑조차도 진실 되게 하지 못함을 밝히고 있다.)
누싱겐 집안에의 접근을 시도하는 데 선행해서, 충분히 장기판 위의 국면을 봐 두고 싶다는 생각에서 라스따냑(일에 있어서 치밀하고 주도면밀(周到綿密)한 사람)은 고리오 영감의 과거의 생활을 알고자 약간의 확실한 정보를 수집했는데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라스띠냑의 고리오 영감에 대한 정보수집
장 조아생 고리오는 대혁명 전에는 수완이 좋은 전략가로 일개 제면 직원이었으나 꽤 진취적 기상이 풍부했기 때문에 마침 1789년의 최초의 봉기에서 희생자가 된 주인의 가게를 사들였다. 그는 소맥 시장에 가까운 라쥐시엔느 거리에 가게를 열고 자기의 장사를 이 위험한 시기에서 가장 유력한 사람들에게 보호받으려고 그 거리의 위원장직을 담당한다는 빈틈없는 계획성을 발휘했다. 이 지혜는 좋건 나쁘건 간에 그 식량 기근 후에 파리의 양곡이 대단한 고가를 부르게 되었을 때 재산을 모으게 했던 것이다 민중이 빵집에서 맞붙어 싸우는 속에서도 어떤 종류의 한패는 몰래 식료품상에 가서 스파게티라든가 마카로니를 샀기 때문이다. 이 한 해 동안에 시민 고리오는 착실하게 자본을 축적하고 그것이 나중에는 거액의 돈이 되어 그것을 소유하는 인간에게 주는 우월성을 마음껏 이용해서 장사를 넓히는데 도움이 되었다. 어느 정도의 노력밖에 없는 모든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이 그의 신상에도 일어났다 결국 평범한 중용이 그를 구해주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의 재산은 이미 부자인 것이 아무 위험도 없는 시기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이 알게 되었기 때문에 누구의 질투도 모략도 받지 않았다. - 고리오 영감의 성공과정
밀이나 밀가루나 낟알에 대한 것 그것들의 품질이나 산지를 분간하든가 그 보존에 신경을 쓰든가 상장의 변동을 예상한다든가 수확의 다과를 예견하든가 싼값으로 곡물을 사들이거나 시필랴 섬이나 우크라이나에서 매입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고리오의 오른편에 앉을 사람이 없었다. 그가 장사의 지휘를 하고 곡물의 수출입에 관한 법률을 설명하고 그 정신을 연구하고 그 맹점을 꼬집어 내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그가 장관이라도 할 수 있는 역량의 소유자임에 틀림이 없다고 판단했다. 인내성이 있었고 활동적이고 정력적이며 건실해서 무슨 일이라도 재빠르게 해 내는 동작에 그는 솔개의 예리한 안력을 갖추고 모든 일의 앞을 찌르고 이거저것을 모두 예견하고 무엇이든 알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일체를 갖추고 있었다. - 성공하기 위한 고리오영감의 노력과 재능
그러나 일단 장사를 떠나서 하는 일이 없을 때는 입구의 마루턱에 기댄 채 몇 시간이고 문지방 위에 우두커니 서있거나 조그마하고 어두컴컴한 가게 밖으로 나오면 그는 또 원래의 우둔하고 조야한 직업인 대수롭지 않은 이치도 이해 못하고 정신의 온갖 환희에도 무감각한 인간 극장에서는 잠자는 사나이 넋 빠진 바보스러운 점만이 취할 점인 저 파리의 돌리봉의 한 사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런 성격의 인간은 거의 모두가 비슷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대개의 경우 숭고한 감정(부성애(父性愛))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배타적인 두 개의 감정이 이 제면업자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마치 곡물의 거래가 뇌 중의 전지능을 거의 다 써버리고 만 듯이 그의 마음의 윤기를 흡수해 버리고 말았다. - 성공한 고리오 영감의 다른 면
(이 지문은 고리오 영감의 둘째 딸인 누싱겐 부인에게 접근하기 위해 라스띠냑이 얻은 고리오 영감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 정보에 의하면 고리오영감은 프랑스 혁명이후의 사회적인 혼란을 틈타 성장한 전형적인 벼락 부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이제 더 이상 타고난 신분이 사회적 지위의 절대적인 척도가 될 수 없는 변화된 사회적 환경을 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돈만 있으면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따라서 경제와 돈이 사회의 중추적인 힘의 바탕이 되었던 시대 그 시대에 대한 정확한 묘사를 발자크는 고리오라는 한인물의 과거를 통해 매우 정확하고 축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모은 재산의 정당성에 대한 아무런 자각이나 반성이 없이 오로지 돈과 부인 딸들에 대한 배타적인 사랑으로 가득찬 고리오영감의 모습은 경제의 발전으로 이루어진 프랑스 사회의 근대적인 모습이 결코 균형적인 발전이 아니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라 보리이 지방의 호농의 딸이었던 그의 아내는 그에게 있어서 종교적인 찬탄, 제한이 없는 애정의 대상이었다. 고리오는 그녀의 마음속에서 자기의 성격과는 극단의 대조를 이루고 있는, 가냘프면서도 심지가 강하고 민감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성격을 발견하고 감탄했다. 사나이의 마음에 나면서부터 갖추어져 있는 감정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연약한 존재에 대해서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여자를 보호한다는 긍지가 아닐까. 게다가 사랑이라는 기쁨을 원천에 두고서 하는 기이한 정신 현상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구름 그늘 한 범 없었던 행복한 7년간의 생활 후에, 고리오는 그에게 있어서 가장 불행한 일이었지만 아내를 잃었다. - 고리오 영감의 애정의 대상인 아내가 죽음
그런 상황에서 고리오에게는 부성애의 감정이 어리석음에 가까울 정도로 높아졌다. 그는 아내의 죽음으로 해서 배척당한 애정을 두 딸에게 쏟고, 딸들도 처음에는 그의 모든 감정을 마음껏 만족시켜 주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딸을 고리오의 후처로 떠맡기려고 하는 상인이라든가 호농들이 아무리 적당한 혼담을 가지고 와도, 그는 홀아비로 살 것을 고집했다. 그가 어느 정도 호의를 가지고 있는 장인은, 고리오가 아무리 죽었다고 해도 아내에게 불성실한 짓은 안 하겠다고 맹세를 한 것은 확실한 사실이라고 하면서 단언하는 것이었다. 시장의 족속들은 그런 숭고한 광기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농담거리로 하여 고리오에게 천한 별명을 지어 주었다. 그 가운데 하나로, 거래가 이루어진 축하의 술을 마시면서, 최초로 그런 별명을 부른 사나이는 제면업자로부터 주먹을 한 대 어깨에 맞고 저만큼 나가 떨어져, 오블랭 거리의 차가 못 들어오게 세워 놓은 돌에 머리를 다쳤다. - 지나친 부성애의 시작
고리오가 딸들에게 대해서 보이는 무분별하다고 할 정도의 헌신, 소심하고 섬세한 애정은 너무나 유명했다. 어느 날 그의 장사 라이벌의 한 사람이 그를 파리 시장에서 쫓아 버리고 자기가 상장을 좌우하려고 델핀느가 마차에 치어서 나가 떨어졌다고 그에게 말했다. 제면업자는 핏기를 잃고 창백해져서, 허둥지둥 시장에서 달려나갔다. 이 거짓 정보에 속아서 받은 상반된 감정(충격과 안도감)의 반동으로 그는 며칠 동안 앓아 누웠다. 그 사나이의 어깨에는 살인적인 주먹을 먹이진 않았지만, 후에 그 사나이가 위기 일발의 경우에 처하였을 때 파산이 되도록 타격을 가하여 이 사업장 라이벌을 시장에서 완전히 쫓아내고 말았다. - 부성애에 관련된 일화
두 딸의 교육은 물론 상식을 초월한 것이었다. 6만 프랑 이상의 연금 수입이 있으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천2백 프랑도 쓰지 않던 고리오의 행복이란, 딸들의 변덕스러움을 소원대로 해 주는 것이었다. 선발된 교사들은 그녀들에게 훌륭한 교육의 모범이 되는 기능과 예능을 가르치도록 명령받았다. 그녀들에겐 시중을 드는 부인들이 붙여졌다. 딸들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그 부인들은 재치도 있었고, 취미도 고상했다. 그녀들은 말을 탔고, 마차도 가지고, 마치 부유한 노귀족의 애첩(화려하며 풍족하며 부유한 생활)과도 같은 생활을 했다. 아무리 돈이 많이 드는 소망이라도 그녀들이 입만 떼면 아버지는 서둘러 그것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었다. - 두 딸의 교육과 고리오의 노력
(이 부분은 고리오 영감의 부성애가 어떻게 하여 비정상적인 상태로까지 커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 준다. (라 보리이 지방의 호농의 딸이었던 - 가장 불행한 일이었지만 아내를 잃었다.)에서 나타나듯 고리오 영감의 사랑은 부인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는 매우 정상적이며 평범한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사모하던 부인의 죽음 이후, 고리오는 애정의 대상을 딸들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고리오에게는 -세워 놓은 돌에 머리를 다쳤다.)에서 보이듯 재혼도 거부한 거의 관심은 오로지 딸들을 귀족의 자녀들처럼 풍족하고 화려하게 키우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이 일반 사람들에게 비정상적으로 비춰지기 시작했고, 고리오 영감 역시 사랑의 배타성을 키워나간다. 그에게 붙여진 저속한 별명을 최초로 부른 사나이를 고리오 영감이 때린 일화는 이를 잘 보여 준다. 그는 딸들이 귀족과 같은 교육을 받도록 모든 뒷받침을 해 주었는데, 이 부분에서 독자는 귀족의 전유물이던 교육의 기회가 경제력을 키운 부르주아지들에게도 주어졌던 당시 사회의 모습을 알게 된다. 고리오 영감의 두 딸들은 변덕스럽고 이기주의자들처럼 끊임없이 요구만 하였다. 고리오 영감은 그 요구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들어주었으며, 그 대신으로 바란 것은 딸들의 애무, 자신이 그토록 정성을 들이는 딸들은 조금이나마 만져 보는 것이었다. 즉, 고리오의 사랑은 지나친 사랑이며 일방적인 사랑에 가깝다.)
고리오는 딸들을 천사의 위에 놓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자기보다도 높은 위치에 그녀들을 놓았던 것이다. 가엽게도, 그는 그녀들이 주는 고통까지도 사랑하고 있었다(맹목적인 부성애로 인한 고리오 영감의 불행을 예감). - 고리오의 딸들에 대한 태도
결혼 적령기가 되니까 그녀들은 자기의 기호에 따라서 지아비를 선택할 수가 있었다. 두 딸은 제각기 아버지 재산의 절반을 지참금으로 받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미모로 해서 레스또 백작의 청혼을 받은 아나스따지이는 귀족 계급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원래부터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사회의 상층부에 진출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델핀느는 돈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는 후에 신성 로마 제국의 남작이 된 독일 출신의 은행가 누싱겐과 결혼했다. 고리오는 제면업을 계속했다. - 두 딸의 결혼과 고리오와의 격차
그것이 그의 생활의 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딸이나 사위들은, 그 후 그가 그 장사를 계속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지 않았다. 5년간 그들로부터 귀찮은 소리를 듣던 끝에 그는 가게를 판 돈과, 최근 수년 간의 이익을 가지고 은퇴하는 것에 동의했다(맹목적인 사랑이 낳은 비극적 사실). 그가 거처하게 된 하숙의 여주인 보께르부인의 계산으로는 그 금액으로 국채를 사더라도, 8천에서 1만 프랑의 연리 수입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딸들이, 그 남편에게 강한 권유를 받고, 그를 자기들 집에 와서 살게 하는 것뿐 아니라, 공개적으로 손님처럼 대접하는 것까지 거절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보고 절만 끝에 이 하숙으로 은퇴해 버리고 만 것이다.(고리오는 맹목적 사랑을 바쳤지만 딸들로부터 받은 대접은 아버지로 인정을 하지 않는 것일뿐만 아니라, 그 흔한 손님으로도 대접하지 않겠다는 것이어서 절망을 느끼게 된다, 끈 떨어진 뒤웅박이다.) - 고리오의 가게 청산과 은퇴
이러한 것들이 고리오 영감의 가게를 매수한 뮈레 씨라는 인물이 알고 있는 전부였다. 라스디냑이 들은 랑제 공작 부인의 추측은 이렇게 해서 확인된 셈이었다. 여기서 이 사람의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무서운 파리의 비극의 도입부가 끝난다. - 라스띠냑과 랑제 공작 부인의 추측과 확인
(이 지문은 고리오 영감의 몰락의 서두를 마무리하고 있다. 고리오 영감은 두 딸들을 정성껏 키워 남부럽지 않게 결혼시켜 주었으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이미 신분 상승을 이룬 두 딸의 냉담함뿐이다. 아버지가 대준 돈으로 첫째 딸은 귀족이라는 계급을 택했고 둘째 딸은 은행가라는 부를 택하여 신분 상승을 이루었지만, 두 딸들이 이제는, 그들에게 신분 상승을 가져다 준, 상인이라는 아버지의 신분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이 두 딸의 행동은 소설이 전개되면서 더욱 부정적으로 드러나는데, 돈이 필요할 때마다 하숙집에 들러 얼마 남지 않은 고리오 영감의 재산을 얻어가고 급기야 지친 아버지 앞에서 돈 때문에 자매끼리 싸워 아버지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가해 죽음에까지 이르게 만든다. 게다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도 병문안을 가지 않고 임종도 하지 않았으며, 장례식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이러한 두 딸은 일방적인 고리오 영감의 부성애만큼이나 비정상적으로 그려진다. 맹목적인 사랑에 대한 철저한 냉담성은 고리오 영감이 죽은 후에 둘째 딸의 반성으로 조금 풀리지만 두 딸의 행동은 여전히 시대의 불효녀의 전형으로 보인다. 그러나 발자크는 여기에서 이 두 딸의 성격, 혹은 생활상의 잘못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 두 딸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돈 때문에 가족관계로 와해될 수 있는 사회의 한 단면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평민의 딸로 태어나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백작 부인, 남작 부인이 될 수 있는 사회적인 변화를 발자크는 이 두 딸의 결혼을 통해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후략>
라스티냑 : 그는 지방의 가난한 귀족의 후손으로 화려한 상류 사회를 동경하며 파리 사교계에 진출하고자 후원자가 될 여성을 찾는 야심가. 그는 출세하기 위해 사교계에 뛰어들지만 고리오의 두 딸과 접촉하면서 허영과 허위투성이의 파리 사교계를 눈여겨 보게 된다.
그는 최후의 ~ 우체통에 넣었다 : 그의 어머니와 두 여동생에게 돈을 부치라는 편지를 쓴 것이다.
수일 후∼만나 주지를 않았다 : 라스띠냑이 고리오 영감과 한 하숙에 있다는 사실을 안 레스또 부인이 출입을 금지한 것이다. 레스또 부인은 고리오 영감의 딸이다.
자작 부인이 한 말 그대로였다. : 보세앙 자작 부인에게서 두 딸과 사위는 아버지 고리오 영감을 매우 멸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또 수일 동안∼결혼을 연기시켰다 : 다쥐다 후작은 포루투갈에서 유명한 부자 귀족으로 보세앙 부인과 깊은 관계를 가졌다. 그는 보세앙 부인 몰래 로슈피드 집안의 여자와 결혼하려 한다. 그러나 본능적인 직감으로 보세앙 부인이 눈치를 채게 됨.
오후의 데이트를 희생해 주는 것이라고 기대 : 보세앙 부인과 후작은 매일 오후 2-4시 사이에 만나왔음
봉기 : 떼를 지어 벌떼처럼 일어남 여기서는 프랑스 대혁명을 뜻함
소맥 : 참밀
기근 : 흉년으로 곡식이 부족함. 먹을 양식이 없어 굶주림
상장 : 주식이나 어떤 물건을 시장의 매매 대상으로 하기 위해 거래소에 등록하는 일
맹점 : 주의가 미치지 못하여 모순되어 있는 점
건실 : 건전하고 착실함
안력 : 시력
일체 : 한결 같음
조야 : 됨됨이가 촌스럽고 천함
돌리봉 : 1790년 초연된 슈다르 데폴즈의 희극 "귀머거리 또는 만원숙사"에 나오는 인물로 잘못하여 딸을 불행하게 만들 뻔한 우둔한 사나이
배타적 : 남을 배척하는 경향
호농 : 많은 땅을 가지고 썩 잘 짓는 농사, 또는 그러한 농가
찬탄 : 칭찬하고 감탄함. 마음에 아름답게 여김.
심지 : 마음의 본 바탕. 마음자리
부성애 :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호의 : 친절한 마음씨
단언 : 주저하지 않고 딱 잘라 말함.
헌신 : 몸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
소심 : 주의 깊음. 도량이 좁음. 담력이 없고 겁이 많음.
위기 일발 : 조금도 여유가 없이 아슬아슬하게 닥친 위기의 순간.
지참금 : 신부가 시집갈 때 친정에서 가지고 가는 돈
국채 : 세입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국가가 지는 금전상의 채무, 또는 그것을 나타내는 채권
매수 : (물건을) 사들임.
라스띠냑∼셈이었다 : 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보세앙 부인과 고리오와 두 딸들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랑제 부인이 이런 사실을 추측한 적이 있다.
여기서 이 사람의∼도입부가 끝난다 : 이 소설의 시작은 고리오가 하숙을 하게 되면서 그 하숙집을 무대로 시작된다. 이 하숙집에 묵고 있는 인물들을 통해 당시 사회의 단면들이 사실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세기 프랑스의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돈'의 문제를 보께르 하숙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즉 당대 프랑스 사회의 특징을 드러낼 수 있는 인물을 보께르 하숙집에 끌어들임으로써 당시 프랑스 사회의 축도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자연주의를 넘어선 사실주의를, 즉 현실에 대한 참다운 반영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돈의 논리'이다. 돈은 이 작품의 모든 인물을 지배하고 돌아다닌다. 돈은 가족 관계마저도 왜곡시킨다. 이 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의 위력과 문제점을 시사해 준다. (출처 : 구인환 김흥규 저 한샘문학교과서)
감상 2
일찍 어머니를 여읜 두 딸의 행복을 빌면서 일체를 희생한 고리오 영감은 딸들의 결혼 후의 배은 망덕에 비분과 오뇌를 참지 못한다. 결국 병상에도 찾아오지 않는 두 딸을 저주도 하고 축복도 하면서 비참하게 죽어 간다.
부주제로서 왕정 복고 시대, 파리에서 시골 출신의 가난한 청년 귀족 라스띠냑의 사회적 출세를 위한 야심의 자각과 탈옥수 보뜨랑의 기성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도전이 묘사되어 있다.
고리오 영감의 동물적인 사랑을 작가는 부성애의 그리스도라고 하며, 이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과 비교된다.
한편, 파리 상류 사회의 쇠퇴와 서민층의 생기가 대비되어, 작자의 넓은 리얼리즘의 시야를 볼 수 있는 "인간 희극" 중의 한 대표작이다.
심화 자료
등장 인물
라스띠냑 : 지방의 가난한 귀족의 후손, 화려한 상류사회를 동경하며 파리 사교계에 진출하고자 후원자가 될 여성을 찾는 야심가.
고리오 영감 : 제면업자. 한 때 백만장자 부인을 잃고 두 딸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베풀지만 자신은 빈털털이가 되고 병이 들어 죽는다
고리오 영감의 두 딸 : 자신들의 신분상승을 위해 철저하게 아버지의 부를 이용하는 불효녀들. 병든 아버지에 대해 냉담하다.
이 작품의 주요 테마
이 작품의 주요 테마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수전노인 고리오 영감의 일방적인 부성애이고 다른 하나는 라스띠냑이라는 주인공이 어떻게 파리라는 부패하고 위선적인 도시에서 악의 세계로 빠져드는가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19세기 프랑스의 자본주의와 과정에서 드러나는 '돈'의 문제를 보께르 하숙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즉, 당대 프랑스 사회의 특징을 드러낼 수 있는 인물을 보께르 하숙집에 끌어들임으로써 당시 프랑스 사회의 양상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자연주의를 넘어선 사실주의를, 즉 현실에 대한 참다운 반영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돈의 논리이다 돈은 모든 인물을 지배하여 가족관계마저도 왜곡시킨다. 이러한 내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의 위력과 그에 따른 문제점을 시사해 준다.
사실주의 소설의 특성
사실주의는 실증주의의 영향 아래 19세기 중엽의 소설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예 사조이며, 넓은 의미에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다루려는 세계관, 예술적 태도 및 방법론을 두루 가리킨다. 작품에서 객관적인 태도와 세부적인 사실 묘사를 중시하며, 전형적인 인물을 통해 현실의 전형적인 상황과 의미를 추구한다. 즉, 주관을 버리고 현실을 엄격, 냉정하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로 인식하고, 인간의 속물 근성, 범죄, 타락, 알콜 중독, 극빈 등의 어두운 면을 묘사, 폭로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사실주의 문학은 프랑스에서 발생하여 유럽 각국으로 전파되었는데, 프랑스에서는 리얼리즘의 대표적 작가라고 할 수 있는 발자크의 '인간 희극'의 일부가 1829년부터, 스탕달의 '적과 흑'이 1831년부터 각각 발표됨으로써 사실주의는 개화하기 시작했다.(출처 : 구인환 김흥규 저 한샘문학교과서)
프랑스의 사실주의
사실주의는 실증주의 영향 아래 19세기 중엽의 소설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예 사조이며, 넓은 의미에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다루려는 세계관, 예술적 태도 및 방법론을 두루 가리킨다. 작품에서 객관적인 태도와 세부적인 사실 묘사를 중시하며, 전형적인 인물을 통해 현실의 전형적인 상황과 의미를 추구한다. 즉, 주관을 버리고 현실을 엄격, 냉정하게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로 인식하고, 인간의 속물 근성, 범죄, 타락, 알콜 중독, 극빈 등의 어두운 면을 묘사, 폭로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 문학에서의 사실주의 현실을 특히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기를 지향하는 경향 혹은 예술이란 본질에 있어서 외적 현실을 모방하는 객관적 재현이라는 믿음 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실주의자들은 인간의 외적현실을 객관적 표현, 또는 재현하고자 했다는 것이 초점이다.
19세기 풍속사를 자신의 소설에 구현하고 했던 인간희극의 발자크 탁월한 심리분석과 풍속의 묘사로 자신의 시대를 묘사한 '적과흑'의 스탕달 그리고 사실주의를 자신의 낭만적인 기질을 다스리기 위해 받아들인 다음, 후에는 그것을 자신의 표현 수법으로 삼은 보바리 부인의 플로베르 등이 프랑스 사실주의의 거장들이다.
발자크의 작품 경향
발자크는 당시 사회에 살고 있던 인간의 전형을 그려내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 그는 소설에 등장하는 한 사람의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묘사하고 환경에서 그 특성을 밝혀가고 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가구들과 벽지까지도 자상하고 면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그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서 작중 인물의 직업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그는 작중 인물들에게 제각기 무언가 격력한 정열이나 광기를 부여하고 예민한 관찰력에 바탕을 둔 상상력에 의해서 인물들에다 강렬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으제니 그랑데'의 금전에의 집착에서 오는 인색함, '시골 의사'의 헌신, '고리오 영감' 부성애, '사촌 베뜨'의 질투 등은 좋은 예이다. 발자크에 있어서 사실주의는 세계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새로운 여러 가지 구조들에 대한 놀라운 직관이라고 할 수 있다.
라스띠냑의 출세주의
이 소설의 주요 당증 인물 가운데 하나인 라스띠냑은 프랑스 소설에 나오는 대표적인 출세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는 같은 시대의 스탕달의 '적과 흑'에 등장하는 쥴리앙 소렐과 비교된다. 이 두 사람 모두 사회 상향의지가 매우 강하며 야심이 큰 젊은이이다. 그러나 쥴리앙 소렐이 어머니가 없고, 아버지와는 적대적인 관계이며, 두 형들의 질투를 받고 있는, 아주 불리한 가정 환경을 가지고 있는 반면, 라시띠냑은 가난하지만 귀족 출신으로 자신에게 헌신적인 어머니와 누이가 있다. 쥴리앙 소렐은 상향 의지가 있기는 하나 자신의 자존심과 감정의 고귀성을 중요시 하여 그것에 위배되면 절대로 타협하지 않지만, 라스띠냑은 사회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사회에 흡수되어 자기 스스로가 사회에 통합되는 점도 크게 다르다. 쥴리앙 소렐이 교환 가치에 가려져 있는 사회와 대립 갈등의 관계에 있지만, 라스띠냑이 출세주의는 그것과는 달리 사회 속에 있으면서 사회를 고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이후의 소설들에서 라스띠냑은 더 이상 변하지 않고 고착된 모습만을 계속 보여준다.
고리오 영감의 몰락
발자크는 작품에서 돈에 관해서는 그 구체적인 액수까지 매우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에서도 고리오 영감을 몰락과정을, 그가 하숙집에 내는 하숙비를 낱낱이 알려 줌으로써 간접적으로 그리고 있다. 하숙비와 함께 하숙방의 층수도 매우 깊은 관련이 있는데 통상적으로 파리에서는 층수가 올라갈수록 하숙비가 싸다. 이러한 정보는 고리오 영감의 몰락을 독자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고리오 영감의 하숙방의 층수와 하숙비는 다음과 같다. 처음에 하숙 들었을 때 : 천2백 프랑-1층에 방 셋을 씀. 2년 후 : 9백 프랑-3층 하숙방을 씀. 3년 후 : 45프랑-4층 방을 씀.
발자크(Honore de Balzac)
본명은 Honore Balssa.
1799. 5. 20 프랑스 투르~1850. 8. 18 파리.
프랑스의 소설가로 방대한 양의 장편 및 단편소설들로 이루어진 〈인간희극 La Comedie humaine〉이라는 연작을 발표했다. 정통적인 고전소설 양식을 확립하는 데 이바지했고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생애
발자크의 아버지는 남프랑스의 농가 출신으로 루이 16세와 나폴레옹 시대에 걸쳐 43년 동안 관리로 일했다. 어머니는 파리의 부유한 직물상인의 딸이었다. 여동생 로르(드 쉬르비유 부인이 됨)는 유년시절 발자크의 유일한 친구였고, 훗날 최초의 발자크 전기를 쓰기도 했다.
발자크는 8~14세에 방돔에 있는 오라토리앵 중학교에 다녔다.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그의 가족들은 투르에서 파리로 이사했고 거기서 2년 더 학교를 다닌 뒤 변호사 사무실에서 3년간 서기로 일했다. 이 시절에 이미 문학에 뜻을 두어 〈크롬웰 Cromwell〉(1819)과 기타 비극 작품을 몇 편 발표했으나 완전히 실패했다. 그뒤 신비하고 철학적인 사상을 담은 소설을 몇 편 쓰다가 이런저런 익명으로 고딕 소설, 익살소설, 역사소설 등 밥벌이를 위한 잡문을 썼다. 이어 출판업·인쇄업·활자주조업 등의 사업에 손을 댔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1828년에는 가까스로 파산은 면할 수 있었으나 6만 프랑 이상의 빚을 지게 되었다. 그후 발자크의 생활은 끊임없이 늘어나는 부채와 그 부채를 갚기 위해 쉴새없이 글을 써내야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이때부터 발자크는 새로운 문학성으로 창작에 전념하게 되었고 이로써 습작시대는 끝이 났다.
1829년에 발표된 두 작품은 발자크에게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올빼미당 Les Chouans〉은 본명으로 발표한 첫번째 소설이었고 또 그만큼 자부심을 느낀 역사소설이다. 이 소설은 올빼미(슈앙)라고 하는 브르타뉴 지방의 농민들이 1799년 프랑스 혁명정부에 대항해 왕당파 반란에 가담한 사건을 다룬 것이다. 또다른 작품은 〈결혼의 생리학 La Physiologie du mariage〉이라는 익살 넘치는 풍자 에세이로서 아내의 부정을 주제로 그 원인과 치유방법을 논한 것이다. 단편집 〈사생활의 풍경 Scenes de la vie privee〉(1830)에 들어 있는 6편의 단편소설은 그의 명성을 한층 높여주었다. 비교적 긴 이 단편소설들은 부모의 권위와 충돌하는 딸들의 심리를 다룬 것이 대부분이다. 이 작품들에 나오는 가정생활의 배경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후기 파리 생활을 다룬 작품들에 나타나는 자세한 사회적 관찰을 예고해주는 것이다.
발자크는 이때부터 일생의 대부분을 파리에서 지냈다. 당대의 유명한 파리 시내 살롱들에 빈번히 출입했고, 사교계의 재사로 행세하기에 한층 힘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활기에 넘치고, 수다스럽고, 건강하고 쾌활하고, 이기적이고, 남의 말을 잘 믿고, 허풍을 떠는 사람이었다. 자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명문귀족가의 문장(紋章)을 자기 것인 양 사용했고 귀족의 신분을 나타내는 전치사 '드'(de)를 자기 이름에 붙였다. 그는 명예와 재산과 사랑에 굶주려 있었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천재성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의 인기여성이나 귀족가문의 여성들과 애정편력에 빠지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성숙한 여인들의 심리를 잘 알게 되었고, 이는 그의 소설에서 탁월한 여성심리 묘사의 바탕이 되었다.
1828~34년에 걸쳐 발자크는 멋쟁이 한량처럼 자신이 벌어들인 돈을 미리 받아 써버리면서 방탕한 생활을 했다. 남을 매혹시키는 말재주가 있었기 때문에 사교계에서도 좋은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사교계 출입은 엄청나게 고된 창작생활에서 잠시 숨돌리는 휴식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는 수도사 같은 흰 실내복을 입고 끊임없이 블랙커피를 마셔가며, 거위깃 펜으로 하루 14~16시간씩 글을 써냈다. 그는 1832년 늙은 우크라이나 지주와 결혼한 폴란드 백작부인 에블린 한스카와 사귀게 되었다. 한스카 부인은 다른 많은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발자크에게 편지를 써서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1833년 스위스에서 2번 만났다. 제네바에서 2번째 만났을 때는 서로 깊은 관계를 맺었고 1835년 빈에서 다시 만났다. 그들은 한스카 부인의 남편이 죽으면 결혼하기로 맹세했고, 발자크는 그녀에게 계속 편지를 써보내 사랑을 표시했다. 이 편지들을 모은 것이 그가 죽은 뒤 발표된 〈이국 여인에게 보낸 편지 Lettres a l'etrangere〉(4권, 1889~1950)로, 발자크의 생애와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 원천이다.
부채를 청산하고 한스카 부인과 결혼할 만한 여건을 만드는 것이 최대목표였던 이 시기는 창작의 절정기였다. 1832~35년에 20권 이상의 작품을 써냈는데 장편소설로는 〈시골 의사 Le Medecin de campagne〉(1833)·〈외제니 그랑데 Eugenie Grandet〉(1833)·〈저명한 수다쟁이 L'Illustre Gaudissart〉(1833), 걸작 〈고리오 영감 Le Pere Goriot〉(1835), 〈13인의 역사 Histoire des treize〉(1833~35)라는 제목이 붙은 3부작 〈샤베르 대령 Le Colonel Chabert〉(1832)·〈투르의 신부 Le Curede Tours〉(1832)·〈고브세크 Gobseck〉(1835) 등이 있다. 1836~39년에는 〈고미술품 진열실 Le Cabinet des antiques〉(1839), 또다른 유명한 걸작인 〈환멸 Illusions perdues〉(1837~43)의 전반 2부분과 〈세자르 비로토 Cesar Birotteau〉(1837), 그리고 〈뉘생장 상점 La Maison Nucingen〉을 썼다. 또한 1832~37년에는 〈야릇한 이야기 Contes drolatiques〉의 첫 3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단편들은 라블레적인 주제를 다룬 것으로 16세기 프랑스어를 교묘하게 모방했으며 활력과 예술적 기품이 넘치는 작품이다. 1830년대에 발자크는 신비스럽고, 의사과학적(擬似科學的)이며, 기괴한 주제를 다룬 여러 편의 철학적 소설을 썼다. 〈신비로운 도톨가죽 La Peau de chagrin〉(1831)·〈미지의 걸작 Le Chef-d'oeuvre inconnu〉(1831)·〈루이 랑베르 Louis Lambert〉(1834)·〈절대의 탐구 La Recherche de l'absolu〉(1834)·〈세라피타 Seraphita〉 등이 이 시기 작품이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발자크는 당시 프랑스 사회에 대한 최고 관찰자요 기록자로 등장했다. 이같은 작품들은 이야기의 재미, 생동감 넘치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인물 설정, 인생의 거의 모든 영역에 대한 집요한 흥미와 탐구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러한 인생의 영역들에는 시골과 도시 사이의 풍습과 예절의 차이, 은행·출판사·일반회사 등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의 세계, 예술·문학 등 고급문화의 세계, 정치와 당파간의 음모, 낭만적인 사랑의 세계, 귀족사회와 부유한 부르주아지 세계의 미묘한 관계와 추문 등이 포함된다.
발자크가 가장 즐겨 다루는 주제는 시골 출신의 젊은 사람이 파리라는 경쟁사회에서 출세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다. 그는 무자비하고, 약삭빠르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경제적으로 출세한 사람들에게 찬탄을 보냈으며, 특히 모험가, 악한, 몰인정한 자본가, 죄수 등 사회와 갈등관계에 있는 개인이라는 주제를 즐겨 다루었다. 그의 작품에는 악한이 선한 인물보다 훨씬 정력적이고 재미있는 경우가 자주 펼쳐진다. 물질적 풍요와 재산을 중시하는 부르주아 가치관이 귀족사회의 도덕적 가치관을 서서히 대치하고 있던 당시 프랑스 사회체제에 매혹되면서도 발자크는 귀족사회의 가치관이 훨씬 더 안정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 사회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이같은 주제들은 발자크 이전의 프랑스 소설가들이 알지 못했거나 탐구하지 않았던 새로운 소재를 제공했다. 발자크 소설의 주인공들은 물질적 어려움이나 출세라는 야망의 끊임없는 압력을 받으면서 사회에나 자기 자신에게 파괴적인 방식으로 정력을 소모하는 사람들이다. 그는 의지·사상 등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파괴력에다 인물의 내부에 응축되어 있는 생명력의 흐름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연결시켰다. 이 생명력의 흐름이란 인물들이 자신의 욕망에 따라 축적할 수도 있고 낭비해버릴 수도 있는 정력의 응축을 말하는 것으로, 그 욕망의 정도에 따라 수명이 연장되기도 하고 단축되기도 한다. 발자크의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중요한 특징은 그들이 대부분 이같은 생명력을 탕진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인물들은 어느 한 가지 욕망의 화신인 동시에 그 희생양이라는 편집광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권력에 탐닉하는 〈고브세크〉의 주인공인 고리대금업자나 〈외제니 그랑데〉에 나오는 돈에 집착하는 구두쇠 같은 아버지에게서와 같은 탐욕,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아버지의 지나친 부성애, 〈사촌누이 베트 La Cousine Bette〉에 보이는 여인의 복수심, 〈사촌 퐁스 La Cousin Pons〉에 나오는 예술가의 완벽주의, 〈절대의 탐구〉에 나오는 예술품 수집광, 〈미지의 걸작〉에 나오는 광신적인 화학자의 지나친 호기심, 〈잃어버린 환상〉과 〈화류계 여인의 영화와 몰락 Splendeurs et miseres des courtisanes〉에 나오는 놀라울 정도로 재간이 많은 범죄주모자의 엄청난 야망 등이다. 그들에게는 일단 집착이 시작되면 그 힘이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되고, 그 희생자는 다른 모든 것에 눈이 멀게 된다. 1830년대 이후에 발표된 소설들은 그 전형적인 구조가 정해져 있다. 즉 준비와 전개 단계가 지루하게 펼쳐지다가, 고전 비극에서와 같이 갑작스럽게 긴장이 폭발해 자연스럽게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인간희극
1834년은 발자크의 문학적 생애의 절정을 이룬다. 이해에 그는 자신의 소설들을 한데 묶어, 그것이 당시 프랑스 사회 전체를 이해하는 수단이 되게 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워 3개의 커다란 범주로 분류했다. '분석적 연구'(etudes analytiques)는 인간의 생활과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를, '철학적 연구'(etudes philosophiques)는 인간 행동의 원인을, '풍속의 연구'(etudes de moeurs)는 인간 행동의 원인이 가져오는 결과를 밝힌 것으로 다시 개인·시골·파리·정치·군대·전원 생활의 여섯 장면으로 나뉜다. 이같은 계획에 따라 1834~37년에 12권으로 된 전집이 출판되었다. 1837년에는 더 많은 소설을 썼고 1840년 이 소설 모두를 통괄하는 단테식의 제목 〈인간희극〉을 생각해냈다. 그는 일련의 출판업자들과 협상을 벌여 이 제목으로 1842~48년에 걸쳐 17권으로 된 〈인간 희극〉 전집을 출판했다. 거기에는 1842년에 쓴 유명한 서문도 포함되어 있다. 1845년이 되자 새로이 추가할 작품도 있고 집필중이거나 계획중인 작품도 몇 편 있었기 때문에 또다른 전집을 준비했다. 그결과 1869~76년에 24권으로 된 '결정판'이 출판되었다. 〈인간희극〉에 수록된 장편 및 단편 소설은 대략 90편에 이른다. 1834년에는 '동일인물을 재등장시키는' 아이디어가 구상되었다. 발자크는 인물의 집단을 설정해 이들을 서로 다른 작품에 자주 재등장시킴으로써 현실세계에 바탕을 둔 자신의 상상세계에 일체감과 일관성을 부여했다. 특정인물들을 서로 다른 소설에서, 때로는 전면에 때로는 배경에 재등장시켜 독자로 하여금 그 인물들에 대하여 서서히 전체적인 인상을 파악하게 했다. 발자크는 이같은 기교를 사용함으로써 현대 연작소설의 창시자가 되었다. 〈인간희극〉에는 이름이 나오는 인물이 무려 2,472명으로 추산되며, 이름이 나오지 않는 인물도 566명이나 된다.
1842년 1월 발자크는 벤체슬라스 한스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제 에블린과 결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으나 여러 가지 장애가 가로놓여 있었다. 엄청난 부채도 그중 하나였다. 에블린도 그후 여러 해 동안 결혼을 망설여왔다. 1842~48년에는 그녀의 마음을 돌려보려는 필사적인 희망으로 점점 나빠지는 건강에도 불구하고 창작활동에 더욱 힘썼다.
발자크는 1840년대 초반과 중반에 많은 걸작을 써냈다. 이 시기의 걸작으로는 〈수상한 일 Une Tenebreuse Affaire〉(1841)·〈여자 낚시꾼 La Rabouilleuse〉(1841~42)·〈위르쉴 미루에 Ursule Mirouet〉(1841), 대표작 중의 하나인 〈화류계 여인의 영화와 몰락〉(1843~47)이 있다. 최후에 발표한 두 걸작은 〈사촌누이 베트〉(1847)와 〈사촌 퐁스〉(1847)이다. 1847년 가을 발자크는 비에르지호브니아에 있는 한스카 부인의 성(城)을 방문해 1848년 2월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그해 10월 다시 그곳을 방문해 1850년 봄까지 머물렀는데 이때 큰 병에 걸렸다. 마침내 에블린은 마음이 누그러져 1850년 3월 두 사람은 결혼했고 파리로 이주했으나 발자크는 그뒤 몇 개월 동안 비참한 병상생활을 하다가 죽었다.
문학적 평가
발자크는 그의 소설이 당시의 프랑스 사회전체를 이해하는 도구가 되게 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완전히 실현한 것 같지는 않다. 군대생활이나 정치무대 같은 장면묘사는 불완전하고 산업근로자 등 신흥계급의 묘사에는 불충분한 점이 많다. 그렇지만 사회의 여러 계급 출신의 남녀 주인공을 다양하게 등장시킨 점, 인간의 정열과 약점을 폭넓게 보여준 점, 생동감 넘치고 설득력있는 인물을 설정한 점 등에 있어서 다른 이의 추종을 불허한다.
발자크의 소설 집필방식은 아주 특이했다. 그는 처음에는 단순한 주제와 간략한 초안을 가지고 글을 써나간다. 그러나 글을 써나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저절로 떠올라 그 작품이 완성되면 원래의 초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곤 했다. 문제는 자신의 원고가 인쇄소에서 조판이 완료되고 난 뒤에도 끊임없는 가필을 해 원래의 이야기를 확대·확충하려는 버릇이 있었다는 것이다. 원래의 초안에 이같이 덧붙여나가는 가운데 장편소설이 완성되었다. 그대신 인쇄소의 엄청난 조판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소설이 출판되고 난 뒤에도 가필을 하기가 일쑤여서 출판 이후에도 수정본이 연이어 나왔다. 발자크의 기법은 거의 언제나 보강하고, 강조하고, 확충하는 것이었다. 법절차·재무규칙·산업공정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묘사하느라고 이야기가 길게 빗나가기도 하지만 그의 문장기법은 묘사력이 풍부하고, 장면 전환이 빠르고, 간결하면서도 풍류적이다. 또 풍자와 기지가 풍부하고 심리묘사가 뛰어나다. 프랑스어를 발자크처럼 잘 구사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소설 중에서 대화도 탁월하게 구사한다. 그는 풍자적인 유머를 적절히 사용해 어두운 내용의 작품이 너무 침울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도 한다. 아울러 희극적 장면을 연출하는 절묘한 재주도 가지고 있다.
발자크는 사실주의 또는 자연주의 소설의 창시자이며, 논리정연한 줄거리의 전개, 전지적 시점의 관찰자, 일관성있는 등장인물 등을 특징으로 하는 정통 고전소설의 기법을 확립한 소설가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발자크는 놀라운 관찰력과 사진같이 생생한 기억력을 가졌고 다른 사람들의 태도·감정·동기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동정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 사회적 배경과 인물의 관계를 설명하려고 애썼다. 동시대사람들의 계급적 신분과 직업을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동시대사람의 호적(戶籍)과 경쟁하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고, 또 그것을 성공적으로 실현했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인간의 정신이 인간과 세상사를 압도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소설의 셰익스피어'가 되었다. H. J. Hunt 글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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