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가을 무덤 - 祭亡妹歌(제망매가) / 해설 / 기형도

by 송화은율
반응형

가을 무덤 - 祭亡妹歌(제망매가) / 기형도

 

누이야

네 파리한 얼굴에

철철 술을 부어주랴

 

시리도록 허연

이 零下(영하)의 가을에

망초꽃 이불 곱게 덮고

웬 잠이 그리도 길더냐.

 

풀씨마저 피해 나는

푸석이는 이 자리에

빛 바랜 단발머리로 누워 있느냐.

 

헝클어진 가슴 몇 조각을 꺼내어

껄끄러운 네 뼈다귀와 악수를 하면

딱딱 부딪는 이빨 새로

어머님이 물려주신 푸른 피가 배어나온다.

 

물구덩이 요란한 빗줄기 속

구정물 개울을 뛰어 건널 때

왜라서 그리도 숟가락 움켜쥐고

눈물보다 찝찔한 설움을 빨았더냐.

 

아침은 항상 우리 뒷켠에서 솟아났고

맨발로도 아프지 않던 산길에는

버려진 개암, 도토리, 반쯤 씹힌 칡.

질척이는 뜨물 속의 밥덩이처럼

부딪히며 하구(河口)로 떠내려갔음에랴.

 

<후략>


 요점 정리

 지은이 : 기형도

 갈래 : 서정시

 성격 : 추모적, 회상적, 향토적

 어조 : 대상에게 말을 건네는 애상적 목소리

 구성 : 현재 - 과거 - 현재의 시상 전개

1연 : 죽은 누이에 대한 조상(弔喪)

2~3연 : 누이의 무덤 주위의 삭막한 풍경

4연 : 가슴 깊이 사무치는 혈육의 정

5~7연 : 힘겹게 살았던 가족의 삶

8연 : 죽은 누이에 대한 정서적 교감

 주제 : 죽은 누이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

 내용 연구

누이야[말을 건네는 방식의 어조]

네 파리한 얼굴에

철철 술을 부어주랴[명복 기원, 조상] - 죽은 누이에 대한 조상(弔喪)

 

시리도록 허연

이 零下(영하)의 가을에

망초꽃 이불 곱게 덮고[무덤, 죽음의 이미지]

웬 잠이 그리도 길더냐.

 

풀씨마저 피해 나는

푸석이는 이 자리에

빛 바랜 단발머리로 누워 있느냐. - 누이의 무덤 주위의 삭막한 풍경

 

헝클어진 가슴 몇 조각을 꺼내어

껄끄러운 네 뼈다귀와 악수를 하면

딱딱 부딪는 이빨 새로

어머님이 물려주신 푸른 피[고난을 같이 겪었던 혈육의 피]가 배어나온다. - 가슴 깊이 사무치는 혈육의 정

 

물구덩이 요란한 빗줄기 속

구정물 개울을 뛰어 건널 때

왜라서 그리도 숟가락 움켜쥐고

눈물보다 찝찔한 설움을 빨았더냐.[고단했던 어린 시절 회상]

 

아침은 항상 우리 뒷켠에서 솟아났고

맨발로도 아프지 않던 산길에는

버려진 개암, 도토리, 반쯤 씹힌 칡.[향토적 이미지]

질척이는 뜨물 속의 밥덩이처럼

부딪히며 하구(河口)로 떠내려갔음에랴.

 

우리는

신경(神經)을 앓는 중풍환자(中風病者)로 태어나

전신(全身)에 땀방울을 비늘로 달고

쉰 목소리로 어둠과 싸웠음에랴[삶의 고단함을 의미]. - 힘겹게 살았던 가족의 삶

 

편안히 누운[죽음으로 인한 영원의 안식]

내 누이야.

네 파리한 얼굴에 술을 부으면[죽은이를 조상하는 행위]

눈물처럼 튀어오르는 술방울이[술은 '눈물' 방울로 바뀌어 화자에게 다가와 화자의 영혼을 뒤흔들게 된다. 이 때, '네 파리한 얼굴', '술방울'이 '눈물처럼 튀어오르는 모습', '못난 영혼을 휘감고 온몸을 뒤흔드는' 것들은 모두 실재하는 모습이나 상황이라기보다는 화자의 내면에 떠오르는 심리적 실재에 해당함]

 

이 못난 영혼을 휘감고

온몸을 뒤흔드는 것이 어인 까닭이냐.[그 행위 끝에 '술'은 누이의 눈물로 튀어오르게 되고, 그 눈물은 '나'의 영혼을 뒤흔들게 된다. 따라서 술은 죽은 누이에게로 향하는 화자의 위로와 조상 등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보아야 함] - 죽은 누이에 대한 정서적 교감

 이해와 감상

 

  제망매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기형도의 가을 무덤'은 박재삼의 '추억에서'와 같은 시가 떠오른다. 한 치의 희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난했던 화자의 어린 시절, 한 평생 가난 속에서 생선을 팔며 자식을 위해 헌신해 온 엄마의 삶('추억에서'), 채소를 팔러 간 엄마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든 화자의 어린 시절('엄마 걱정')의 모습이 누이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5~7연 내용을 통해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게 산 삶이었음에도, 조그마한 행복마저 맛보지 못하고 죽어 간 누이의 삶이기에 화자의 가슴에 맺힌 한과 안타까움은 한없는 지극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마지막 연에서 '술'을 매개로 화자와 누이가 내면적으로 교감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혈육 간의 진한 슬픔의 교류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월명사의 제망매가와 비교하면 제망매가는 내세에 대한 기약이 담겨 있고 죽은 누이에 대한 형상화가 없으나, '가을 무덤'에는 누이의 생전의 삶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고, '제망매가'나 '가을 무덤' 모두 의문과 영탄의 표현을 통해 화자의 정서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