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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의 현실적 맥락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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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의 현실적 문맥

 

우선 허생의 축재 방식에 대해 살펴보자. 허생 관련 설화들에는 부의 축재 방식이 크게 둘로 나타난다. 󰡔허생전󰡕에서는 그 중 상당히 현실적인 것을 택하여 조선 후기의 사회 경제적 기반에 어느 정도 걸맞게 형상화해 놓았다는 점을 주목해 보기로 한다. 허생 관련 설화들에 나타나는 치부 유형은 빌린 돈으로 평양 기방에 방치되어 있는 보물을 얻어 중국 상인에게 파는 방법과 매점 상행위를 통한 방법이 있다. 이 중 후자가 훨씬 현실적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또한 󰡔허생전󰡕의 경우 매점매석을 하는 것도 안성이란 물산의 집산지에 내려가고 제주도에도 가는 등 조선 후기 물산의 흐름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충분히 현실의 문맥에서 치부를 하고 있다. 게다가 그러한 행위를 통해 국가 경제의 폐쇄성을 실학자의 안목으로 비판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전자가 이른바 벼락부자식의 지극히 설화적이고 비현실적인 치부 방법이라면, 󰡔허생전󰡕5년에 걸친 점진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의 치부 방법이라는 점에서 리얼리티는 충분하다고 본다.

 

이러한 축재를 통해서 허생이 보여준 변산 군도의 구제 부분조선 후기 사회 기층민들의 동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허생과 이들의 관계가 조선 후기 민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진인 출현설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사학계의 연구 성과에 의하면 󰡔허생전󰡕에 나오는 변산의 군도는 1728년 이른바 무신란(戊申亂) 직전 혹은 직후의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 한다. 이 난은 흔히 이인좌(李麟佐)의 난이라고도 하는데, 상층부에서 보면 남인(南人)소론(少論)소북(少北)이 연합하여 노론(老論) 정권을 뒤집으려 했던 것이지만, 그 외의 아래 계층에서 보면 이른바 극적(劇賊)서얼상민천민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이는 그만큼 영조년간 하층 농민층과 기타 소외받거나 고통 당한 계층들이 반발한 것이라 한다. 특히 이 난은 시작부터 변산의 노비 도적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중략>

 

이 난에 참가한 호남 변산 반도의 농민 세력이나 노비 도적과 󰡔허생전󰡕의 변산 군도는 사실상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농민층 분해로 유리(遊離)하고 도망친 자는 당시로서는 범법자였으므로, 이들은 쉽게 적도(賊盜)로 간주되어 유민(流民)의 도적화(盜賊化)가 가속화된 결과였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 중에는 지략을 담당할 인물도 있어서, 󰡔허생전󰡕에서 허생이 섬의 화근을 없앤다고 육지로 데려 온 글을 아는 자(知書者)’란 이런 존재였을 것이다.

 

이들 변산의 군도는 허생의 인도로 계집 한 사람과 소 한 필씩 데리고 무인도로 간다. 그곳에서 농사를 지어 그 소출로 외국 무역까지 해서 부유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 대해 농민군의 근본 요구를 대변하지 못하고 그들을 현실로부터 떼어 냈다는 비판도 가능할 것이다. 당대의 시대적 지향에 있어 현실 변혁 의지를 가진 주요한 두 부류는, 봉건제라는 제도 자체의 모순에 항거하여 일어난 농민 봉기군과 실학 사상으로 사회 개혁을 해 보려는 선진적 지식인들이었다. 연암은 물론 후자에 속한다. 그러나 허생은 그렇지 않다. 허생은 실학자적인 면모도 보여주지만, 오히려 조선 후기 기층민들의 운동에 큰 힘을 발휘했던 진인과 유사한 면모를 보여 준다. 즉 허생은 새로운 사회 경제 관계에 기초한 보다 발전된 현실 사회가 아니라, 다분히 도피적이고 폐쇄적인 유토피아로 이끄는 것이다. 이는 연암의 한계라기보다는 이러한 이인진인에 의해서만 유토피아가 설정될 수밖에 없었던 당대의 정신사적 문맥의 한계인 것이다.

 

서인석, 󰡔<옥갑야화>의 세계와 <허생전>󰡕

▷ 󰡔운당구인환선생화갑기념논문집󰡕(한샘 1989)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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