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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야행(錦衣夜行) // 비단옷을 입고 밤에 간다는 뜻으로, 아무 보람없는 행동을 가리킴. 《出典》‘漢書’ 項籍傳 / ‘史記’ 項羽本紀 유방(劉邦)에 이어 진(秦)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에 입성한 항우(項羽)는 유방과 대조적인 행동을 취했다. 우선 유방이 살려둔 3세 황제 자영(子嬰)을 죽여 버렸다.(B.C 206) 또 아방궁(阿房宮)에 불을 지르고 석 달 동안 불타는 것을 안주 삼아 미인들을 끼고 승리를 자축했다. 그리고 시황제의 무덤도 파헤쳤다. 유방이 창고에 봉인해 놓은 엄청난 금은 보화(金銀寶貨)도 몽땅 차지했다. 모처럼 제왕(帝王)의 길로 들어선 항우가 이렇듯 무모하게 스스로 그 발판을 무너뜨리려 하자 모신(謀臣) 범증(范增)이 극구 간했다. 그러나 항우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오랫동안 누..
기호지세(騎虎之勢) // 범을 타고 달리는 기세. 곧 중도에서 그만 둘 수 없는 형세. 《出典》‘隋書’ 獨孤皇后傳 남북조(南北朝) 시대 말엽인 581년, 북조 최후의 왕조인 북주(北周)의 선제(宣帝)가 죽자, 재상 양견(楊堅)은 즉시 입궐하여 국사를 총괄했다. 외척이지만 한족(漢族)이었던 그는 일찍이 오랑캐인 선비족(鮮卑族)에게 빼앗긴 이 땅에 한족의 천하를 회복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차에 선제가 죽은 것이다. 양견이 궁중에서 모반을 꾀하고 있을 때 이미 남편의 뜻을 알고 있던 아내 독고부인(獨孤夫人)으로부터 전간(傳簡)이 왔다.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이므로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일입니다.(騎虎之勢 不得下) 만약 도중에서 내리면 잡혀 먹히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호랑이..
고성낙일(孤城落日) // 남의 도움이 없는 몹시 외로운 정상의 비유. 《出典》唐나라 王維의 詩 이 詩는 왕유(王維:699-759)의 칠언절구(七言絶句)인 에서 읊은 것이다. 장군을 따라서 우현(右賢)을 취하고자 하니, 모래밭으로 말을 달려 거연(居延)으로 향하네. 멀리 한나라 사자가 소관(蕭關) 밖에 옴을 아니, 근심스러워 보이는구나, 고성낙일(孤城落日)의 가여. 欲逐將軍取右賢 沙場走馬向居延 遙知漢使蕭關外 愁見孤城落日邊 이 詩에서는 직접 세력이 쇠퇴하여 도움도 기대도 할 수 없는, 마음이 안 놓이는 상태에 있음을 비유하여, 「孤城落日」이 불려진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요새(要塞) 밖의 쓸쓸한 풍경을 노래한 것이며, 그곳에 간 친구가 그곳에서 겪을 안타까운 처지를 상상하여, 그 처지를 위로하는 기분으로 ..
가인박명(佳人薄命) : 여자의 용모가 너무 아름다우면 운명이 기구함. 《出典》 : '蘇軾'의 詩 이 시의 작자 소식(蘇軾:1036-1101)이 항주, 양주 등의 지방장관으로 있을 때 우연히 절에서 나이 삼십이 이미 넘었다는 예쁜 여승을 보고 그녀의 아름다웠을 소녀시절을 생각하며 미인은 역사적으로 운명이 기박하였음을 시로 쓴 데서 전하여졌다. 두 볼은 엉긴 우유와 같고 머리는 옻칠을 한 것처럼 새까맣고, 눈빛이 발에 들어오니 주옥과 같이 빛난다. 본디 흰 비단으로써 선녀의 옷을 지으니, 입술연지는 천연의 바탕을 더럽힌다 하여 바르지 않았네. 오나라 사투리의 애교 있는 소리는 어린아이처럼 애띠고, 무한한 사이의 근심 다 알 수 없네. 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 운명 기박함이 많으니, 문을 닫고 봄이 다하니 버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 보다 무서움. 苛:가혹할 가, 政:정사 정, 猛:사나울 맹, 於:어조사 어, 虎:범 호 [출전]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는 뜻으로, 가혹한 정치는 백성들에게 있어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고통보다 더 무섭다는 말. 춘추 시대(春秋時代) 말엽, 공자(孔子:B.C 551∼479)의 고국인 노(魯)나라에서는 조정의 실세(實勢)인 대부(大夫) 계손자(季孫子)의 가렴 주구(苛斂誅求)로 백성들이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 날, 공자가 수레를 타고 제자들과 태산(泰山) 기슭을 지나가고 있을 때 부인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일행이 발길을 멈추고 살펴보니 길가의 풀숲에 무덤 셋이 보였고, 부인은 그 앞에서 울고 있었다. 자비심이 많은 공자는 제자인 자로..
각주구검(刻舟求劍) 사리에 어둡고 융통성이 없음. 《出典》 '呂氏春秋' 戰國時代(전국시대), 楚(초)나라의 한 젊은이가 揚子江(양자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탔다. 배가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그만 실수하여 손에 들고 있던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뿔사! 이를 어쩐다." 젊은이는 허둥지둥 허리춤에서 단검을 빼 들고 칼을 떨어뜨린 그 뱃전에다 표시를 하였다. 이윽고 배가 건너편 나루터에 닿자 그는 곧 옷을 벗어 던지고 표시를 한 그 뱃전 밑의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칼이 그 밑에 있을 리가 없었다. 楚人 有涉江者 其劍 自舟中 墜於水 遽刻其舟 曰『是 吾劍之所從墜』舟止 從其所刻者 入水求之 舟己行矣 而劍不行 求劍若此 不亦惑乎. 以古法 爲其國 與此同 時己徙矣 以法不徙 以此爲治 豈不難哉.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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