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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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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하수(河水)는 두 산 틈에서 나와 돌과 부딪쳐 싸우며, 그 놀란 파도와 성난 물머리와 우는 여울과 노한 물결과 슬픈 곡조와 원망하는 소리가 굽이쳐 돌면서, 우는 듯, 소리치는 듯, 바쁘게 호령하는 듯, 항상 장성을 깨뜨릴 형세가 있어, 전차(戰車) 만승(萬乘)과 전기(戰騎) 만대(萬隊)나 전포(戰砲) 만가(萬架)와 전고(戰鼓) 만좌(滿座)로써는 그 무너뜨리고 내뿜는 소리를 족히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모래 위에 큰 돌은 홀연히 떨어져 섰고, 강 언덕에 버드나무는 어둡고 컴컴하여 물지킴과 하수 귀신이 다투어 나와서 사람을 놀리는 듯한데, 좌우의 교리(蛟 )가 붙들려고 애쓰는 듯싶었다.

혹은 말하기를,

"여기는 옛 전쟁터이므로 강물이 저같이 우는 거야."

하지만 이는 그런 것이 아니니, 강물 소리는 듣기 여하에 달렸을 것이다.

산중의 내 집 문 앞에는 큰 시내가 있어 매양 여름철이 되어 큰 비가 한번 지나가면, 시냇물이 갑자기 불어서 항상 차기(車騎)와 포고(砲鼓)의 소리를 듣게 되어 드디어 귀에 젖어 버렸다. 내가 일찍이 문을 닫고 누워서 소리 종류를 비교해 보니, 깊은 소나무가 퉁소 소리를 내는 것은 듣는 이가 청아(淸雅)한 탓이요,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지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분노한 탓이요, 뭇 개구리가 다투어 우는 것은 듣는 이가 교만한 탓이요, 천둥과 우 레가 급한 것은 듣는 이가 놀란 탓이요, 찻물이 끓는 듯이 문무(文武)가 겸한 것은 듣는 이가 취미로운 탓이요, 거문고가 궁우(宮羽)에 맞는 것은 듣는 이가 슬픈 탓이요, 종이창에 바람이 우는 것은 듣는 이가 의심 나는 탓이니, 모두 바르게 듣지 못하고 특히 흉중에 먹은 뜻을 가지고 귀에 들리는 대로 소리를 만든 것이다.

지금 나는 밤중에 한 강을 아홉 번 건넜다. 강은 새외(塞外)로부터 나와서 장성을 뚫고 유하(楡河)와 조하(潮河)·황화(黃花)·진천(鎭川) 등의 모든 물과 합쳐 밀운성 밑을 거쳐 백하(白河)가 되었다. 나는 어제 두 번째 배로 백하를 건넜는데, 이것은 하류(下流)였다.

내가 아직 요동에 들어오지 못했을 때 바야흐로 한여름이라, 뜨거운 볕 밑을 가노라니 홀연 큰 강이 앞에 당하는데 붉은 물결이 산같이 일어나 끝을 볼 수 없으니, 이것은 대개 천리 밖에서 폭우(暴雨)가 온 것이다. 물을 건널 때는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우러러 하늘을 보는데, 나는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머리를 들고 쳐다보는 것은 하늘에 묵도(默禱)하는 것인 줄 알았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물을 건너는 사람들이 물이 돌아 탕탕히 흐르는 것을 보면, 자기 몸은 물이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고 눈은 강물과 함께 따라 내려가는 것 같아서 갑자기 현기(眩氣)가 나면서 물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머리를 우러러보는 것은 하늘에 비는 것이 아니라, 물을 피하여 보지 않으려 함이다. 또한 어느 겨를에 잠깐 동안의 목숨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으랴.

그 위험함이 이와 같으니, 물 소리도 듣지 못하고 모두 말하기를,

"요동 들은 평평하고 넓기 때문에 물 소리가 크게 울지 않는 거야."

하지만 이것은 물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요하(遼河)가 일찍이 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특히 밤에 건너 보지 않은 때문이니, 낮에는 눈으로 물을 볼 수 있으므로 눈이 오로지 위험한 데만 보느라고 도리어 눈이 있는 것을 걱정하는 판인데, 다시 들리는 소리가 있을 것이다. 지금 나는 밤중에 물을 건너는지라 눈으로는 위험한 것을 볼 수 없으니, 위험은 오로지 듣는 데만 있어 바야흐로 귀가 무서워하여 걱정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야 도(道)를 알았도다. 마음이 어두운 자는 이목이 누(累)가 되지 않고, 이목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밝혀져서 병이 되는 것이다. 이제 내 마부가 발을 말굽을 밝혀서 뒷차에 실리었으므로, 나는 드디어 혼자 고삐를 늦추어 강에 띄우고, 무릎을 구부려 발을 모으고 안장 위에 앉았으니, 한번 떨어지면 강이나 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을 삼으며 물로 몸을 삼고, 물로 성정을 삼으니, 이제야 내 마음은 한번 떨어질 것을 판단한 터이므로, 내 귓속에 강물 소리가 없어지고, 무릇 아홉 번 건너는데도 걱정이 없어 의자 위에서 좌와(坐臥)하고 기거(起居)하는 것 같았다.

옛날 우(禹)는 강을 건너는데, 황룡(黃龍)이 배를 등으로 져서 지극히 위험했으나 사생(死生)의 판단이 먼저 마음 속에 밝고 보니, 용이거나 지렁이거나, 크거나 작거나 족히 관계될 바 없었다. 소리와 빛은 외물(外物)이니 외물이 항상 이목에 누가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는 것을 잃게 하는 것이 이 같거든, 하물며 인생이 세상을 지나는 데 그 험하고 위태로운 것이 강물보다 심하고, 보고 듣는 것이 문득 병이 되는 것임에랴.

나는 또 우리 산중으로 돌아가 다시 앞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이것을 증험해 보고, 몸 가지는 데 교묘하고 스스로 총명한 것을 자신하는 자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민족문화추진회옮김)

요점 정리

연대 : 조선 영조때

작자 : 박지원

갈래 : 중수필, 기행문

성격 : 비유적, 교훈적, 사색적, 분석적, 묘사적

문체 : 남성적인 기상을 발휘

짜임 : '기·승·전·결'의 4단 구성

표현 :

① 치밀한 관찰력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본 사색적이고 관조적인 글이다.

② 체험의 적절한 예시 및 반론으로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하였다.

③ 추상적·개념적인 서술을 피하고, 구체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결론을 이끌어 낸, 설득력이 있는 글이다

제재 : 물소리

주제 : 외물(外物)에 현혹되지 않는 삶의 자세, 이목(耳目)에 구애됨이 없는 초연한 마음, 마음을 다스리는 일의 중요성

구성 :

물소리와 듣는 이의 마음가짐

흉중의 뜻에 따라 달리 들림

강을 건너는 자세와 내가 깨달은 진리

인생의 태도와 세인들에 대한 경계

줄거리 : 시내가 산과 산 사이로 흘러나와 급한 경사와 바위 등의 굴곡에 의하여 부딪힌 물결이 울부짖는 듯하게 들리기도 하고 전차 만대가 굴러가는 것처럼 큰소리를 낸다. 사람들은 이것을 설명하여 이곳이 옛날의 전쟁터였기 때문에 그런 소리가 난다고 한다. 그러나 소리는 듣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옛날에 산속의 집에 누워 있자니 마음이 슬플 때, 기쁠 때, 화가 날 때 들려오는 소리가 모두 다르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장마진 요하(遼河)를 건널 때에 기도하듯이 하늘을 쳐다보고 건너는 것은 물을 보면 어지러워 굴러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은 요하가 물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요하가 평야에 위치하여 있기 때문이라 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낮에만 건너므로 눈에 보이는 거친 파도 때문에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밤에 요하를 건너면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은 눈에 거친 파도가 보이지 않아 귀로 위협적인 소리만 듣기 때문이다. 낮에도 삐끗하면 물로 굴러 떨어질 위태로운 자세로 강을 건너니, 위태로운 상황에 긴장하기 때문에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주 그 강을 건너다니니 익숙하여져서 강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져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우리의 감관은 외물에 의하여 지배적 영향을 받게 되며, 이러한 상태에서는 사물의 정확한 실체를 살필 수가 없다. 이러한 인식의 허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감관과 그것에 의하여 움직이는 감정과 절연된 상태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이 〈일야구도하기〉의 요지이다.

출전 : 열하일기 중 '산장잡기(山莊雜記)'

 

 

내용 연구

일야구도하기 : 하룻밤 사이에 아홉 번 강을 건넌 기록

 

하수(河水)는 두 산 틈에서 나와 돌과 부딪쳐 싸우며, 그 놀란 파도와 성난 물머리와 우는 여울과 노한 물결과 슬픈 곡조와 원망하는 소리가 굽이쳐 돌면서, 우는 듯, 소리치는 듯, 바쁘게 호령하는 듯, 항상 장성을 깨뜨릴 형세가 있어, 전차(戰車) 만승(萬乘)과 전기(戰騎) 만대(萬隊)나 전포(戰砲) 만가(萬架)와 전고(戰鼓) 만좌(滿座)로써는 그 무너뜨리고 내뿜는 소리를 족히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모래 위에 큰 돌은 홀연히 떨어져 섰고, 강 언덕에 버드나무는 어둡고 컴컴하여 물지킴과 하수 귀신이 다투어 나와서 사람을 놀리는 듯한데, 좌우의 교리(蛟 )가 붙들려고 애쓰는 듯싶었다.

 

혹은 말하기를,

"여기는 옛 전쟁터이므로 강물이 저같이 우는 거야."

 

하지만 이는 그런 것이 아니니, 강물 소리는 듣기 여하에 달렸을 것이다.

- 강물의 기세와 마음 가짐에 따라 달리 들리는 물소리

산중의 내 집 문 앞에는 큰 시내가 있어 매양 여름철이 되어 큰 비가 한번 지나가면, 시냇물이 갑자기 불어서 항상 차기(車騎)와 포고(砲鼓)의 소리를 듣게 되어 드디어 귀에 젖어 버렸다. 내가 일찍이 문을 닫고 누워서 소리 종류를 비교해 보니, 깊은 소나무가 퉁소 소리를 내는 것은 듣는 이가 청아(淸雅)한 탓이요,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지는 듯한 것은 듣는 이가 분노한 탓이요, 뭇 개구리가 다투어 우는 것은 듣는 이가 교만한 탓이요, 천둥과 우 레가 급한 것은 듣는 이가 놀란 탓이요, 찻물이 끓는 듯이 문무(文武)가 겸한 것은 듣는 이가 취미로운 탓이요, 거문고가 궁우(宮羽)에 맞는 것은 듣는 이가 슬픈 탓이요, 종이창에 바람이 우는 것은 듣는 이가 의심 나는 탓이니, 모두 바르게 듣지 못하고 특히 흉중에 먹은 뜻을 가지고 귀에 들리는 대로 소리를 만든 것이다.

- 마음 속의 뜻이 반영되는 물소리

지금 나는 밤중에 한 강을 아홉 번 건넜다. 강은 새외(塞外)로부터 나와서 장성을 뚫고 유하(楡河)와 조하(潮河)·황화(黃花)·진천(鎭川) 등의 모든 물과 합쳐 밀운성 밑을 거쳐 백하(白河)가 되었다. 나는 어제 두 번째 배로 백하를 건넜는데, 이것은 하류(下流)였다.

 

내가 아직 요동에 들어오지 못했을 때 바야흐로 한여름이라, 뜨거운 볕 밑을 가노라니 홀연 큰 강이 앞에 당하는데 붉은 물결이 산같이 일어나 끝을 볼 수 없으니, 이것은 대개 천리 밖에서 폭우(暴雨)가 온 것이다. 물을 건널 때는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우러러 하늘을 보는데, 나는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머리를 들고 쳐다보는 것은 하늘에 묵도(默禱)하는 것인 줄 알았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물을 건너는 사람들이 물이 돌아 탕탕히 흐르는 것을 보면, 자기 몸은 물이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고 눈은 강물과 함께 따라 내려가는 것 같아서 갑자기 현기(眩氣)가 나면서 물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머리를 우러러보는 것은 하늘에 비는 것이 아니라, 물을 피하여 보지 않으려 함이다. 또한 어느 겨를에 잠깐 동안의 목숨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으랴.

- 낮에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물을 건너는 이유

그 위험함이 이와 같으니, 물 소리도 듣지 못하고 모두 말하기를,

"요동 들은 평평하고 넓기 때문에 물 소리가 크게 울지 않는 거야."

하지만 이것은 물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요하(遼河)가 일찍이 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특히 밤에 건너 보지 않은 때문이니, 낮에는 눈으로 물을 볼 수 있으므로 눈이 오로지 위험한 데만 보느라고 도리어 눈이 있는 것을 걱정하는 판인데, 다시 들리는 소리가 있을 것이다. 지금 나는 밤중에 물을 건너는지라 눈으로는 위험한 것을 볼 수 없으니, 위험은 오로지 듣는 데만 있어 바야흐로 귀가 무서워하여 걱정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 물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유

나는 이제야 도(道)를 알았도다. 마음이 어두운 자는 이목이 누(累)가 되지 않고, 이목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밝혀져서 병이 되는 것이다. 이제 내 마부가 발을 말굽을 밝혀서 뒷차에 실리었으므로, 나는 드디어 혼자 고삐를 늦추어 강에 띄우고, 무릎을 구부려 발을 모으고 안장 위에 앉았으니, 한번 떨어지면 강이나 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을 삼으며 물로 몸을 삼고, 물로 성정을 삼으니, 이제야 내 마음은 한번 떨어질 것을 판단한 터이므로, 내 귓속에 강물 소리가 없어지고, 무릇 아홉 번 건너는데도 걱정이 없어 의자 위에서 좌와(坐臥)하고 기거(起居)하는 것 같았다.

- 깨달음을 얻은 후의 실증

옛날 우(禹)는 강을 건너는데, 황룡(黃龍)이 배를 등으로 져서 지극히 위험했으나 사생(死生)의 판단이 먼저 마음 속에 밝고 보니, 용이거나 지렁이거나, 크거나 작거나 족히 관계될 바 없었다. 소리와 빛은 외물(外物)이니 외물이 항상 이목에 누가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는 것을 잃게 하는 것이 이 같거든, 하물며 인생이 세상을 지나는 데 그 험하고 위태로운 것이 강물보다 심하고, 보고 듣는 것이 문득 병이 되는 것임에랴.

- 올바른 인생의 태도

나는 또 우리 산중으로 돌아가 다시 앞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이것을 증험해 보고, 몸 가지는 데 교묘하고 스스로 총명한 것을 자신하는 자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 세인에 대한 경계

장성 : 긴 성, 만리장성을 가리킴

승 : 네 필의 말이 끄는 전차를 세는 단위, 대, 차량 대수

전고 만 좌 : 전투용 북 일만 개

흘연히 : 높게 우뚝 솟아

교리 : 이무기, 용이 되려다 못되고 물 속에 산다는 여러 해 묵은 큰 구렁이

청아 : 맑고 기품이 있음

깊은 소나무가 퉁소 소리를 내는 것 : 그윽하고 맑은 소리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지는 듯한 것 : 요란하고 불안정한 소리

뭇 개구리가 다투어 우는 것 : 겸손하지 못한 소리, 경쟁하듯 우는 소리

대피리가 수없이 우는 것 : 잦은 가락으로 치닫는 것 같은 소리

천둥과 우레가 급한 것 : 위협적인 소리

찻물이 끓는 듯이 문무가 겸한 것 : 평온하고 여유 있는 소리

거문고가 궁우에 맞는 것 : 침착하고 무겁거나, 쓸쓸하고 고요한 소리

종이창에 바람이 우는 것 : 가늘게 떠는 소리

문무 : 문무화에서 끌어 쓴 말, '文火'는 약하게 타는 불, '武火'는 활활 타는 불

새외 : 요새의 바깥. 여기서는 '만리장성'의 바깥'을 말한다.

백하 : 중국 음산산맥 동부에서 발원하여 천진을 지나 발해만으로 들어가는 강. 예로부터 홍수가 잦은 강으로 유명함. 유하·조하·황하·진천 등은 그 지류이다.

묵도 : 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 속으로 하는 기도

탕탕히 : 물살이 매우 세차게

현기 : 눈이 아찔하고 어지러운 기운

누 :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해가 되고 괴로움이 되는 것

좌와 : 앉거나 눕고, 즉 일상의 거동

기거 : 살아감

전차 ~ 없을 것이다 : 전쟁에 사용하는 수많은 무기가 터뜨리는 소리도 물이 흐르며 내는 소리만은 못하다. 물소리는 이 글의 소재로 마음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특성을 지닌 것이다.

깊은 소나무가 ~ 듣지 못하고 : 마음가짐에 따라서 외물에 대한 인상도 천차만별임을 예시를 통해 말하고 있다. 사물에서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이 어두운 ~ 되는 것이다 : 눈과 귀를 통해 사물의 형상만을 취하는 자(=이목만을 믿는 자)는 형상에 얽매여 마음에 병이 생기지만,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오는 사물의 형상에 구애받지 않는(=마음이 어두운 자)자는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가 없다.

옛날 우는 강을 건너는데 ~ 관계될 바 없었다 : 우는 중국 하왕조의 시조, 치수 설화나 지덕 상징 설화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 예화도 마음 먹기에 따라 사물을 대하는 태도를 달리할 수 있으며, 밝은 판단을 갖고 살아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소리와 빛은 ~ 되는 것임에랴 : 소리와 빛은 늘 눈과 귀를 통해 접촉하는 대상이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 모든 외물을 접할 때 그것의 본질을 보도록 노력한다면 험난한 인생살이도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외부의 영향 때문에 쉽게 마음을 바꾸는 사람들에게 외물에 대해 현혹되지 않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나는 또 ~ 경고하는 바이다 :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스스로의 삶에 적용하면서 자신하는 자는 내적 진실성이 없고 남을 현혹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또 다른 번역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강물은 두 산 사이에서 흘러 나와 돌에 부딪혀, 싸우는 듯 뒤틀린다. 그 성난 물결, 노한 물줄기, 구슬픈 듯 굼실거리는 물갈래와 굽이쳐 돌며 뒤말리며 부르짖으며 고함치는, 원망(怨望)하는 듯한 여울은, 노상(항상) 장성(長城 : 긴 성, 만리장성)을 뒤흔들어 쳐부술 기세(氣勢)가 있다.[그 성난 물결, 노한 물줄기 - 노상 장성들 뒤흔들어 쳐부술 기세가 있다. : 성난 듯, 노한 듯, 구슬픈 듯 구불구불하게 물결이 넘실거리는 물굽이와 굽이쳐 돌며 뒤집혀 말리려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고함치는 듯, 어떻게 보면 원망이 가득 찬 듯한 힘찬 물살은 견고한 만리장성도 쓸어 버릴 세찬 힘이 있다. 의인법, 직유법, 열거법을 써서 도도한 강물의 흐름을 청각적, 시각적, 사실적, 역동적으로 묘사했다.] 전차(戰車) 만 승(萬乘 : 승은 네 필의 말이 끄는 전차를 세는 단위, 대, 차량 대수)과 전기(戰騎 : 전투 기병, 기(騎)는 말 탄 사람의 수효를 세는 단위) 만 대(萬隊 : 수많은 기마대), 전포(戰砲) 만 가(萬架)와 전고 만 좌(戰鼓 萬座 : 전쟁터에서 쓰는 수많은 북)로써도[전차 만 승과 전기 만 대, 전포 만 가와 전고 만 좌로써도 : 수많은 전투 차량과 기마대, 수많은 대포와 북을 가지고서도. 강물 소리의 요란스럽고 굉장함을 열거법, 과장법, 비교법을 써서 표현하였다.] 그 퉁탕거리며 무너져 쓰러지는 소리를 충분히 형용(形容)할 수 없을 것이다. 모래 위엔 엄청난 큰 돌이 우뚝 솟아 있고, 강 언덕엔 버드나무가 어둡고 컴컴한 가운데 서 있어서, 마치 물귀신과 하수(河水 : 냇물. 강물. 황하(黃河)의 옛 이름)의 귀신(鬼神) 들이 서로 다투어 사람을 엄포(실속 없이 호령이나 위협으로 으르는 짓.)하는 듯한데, 좌우의 이무기들이 솜씨를 시험(試驗)하여 사람을 붙들고 할퀴려고 애를 쓰는 듯하다.[좌우의 이무기들이 솜씨를 시험하여 사람을 붙들고 할퀴려고 애를 쓰는 듯하다. : 물결이 몹시 사나워 마치 여기저기서 이무기들이 꿈틀거리며 사람을 붙들고 할퀴려고 애를 쓰는 듯한 형상이다. '이무기'의 원관념은 '큰 강물'. 직유법, 과장법 사용되었다.]

어느 누구는 이 곳이 전쟁(戰爭)터였기 때문에 강물이 그렇게 운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때문이 아니다. 강물 소리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강물 소리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 강물 소리란,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의 심정이나 그 때의 태도에 따라 각각 다르게 들리는 것이다. 이 문단의 중심구로, 필자의 생각이 직서(直敍)된 곳이다.]

나의 거처(居處)는 산중(山中)에 있었는데, 바로 문앞에 큰 시내가 있었다. 해마다 여름철이 되어 큰 비가 한 번 지나가면, 시냇물이 갑자기 불어서 마냥 전차(戰車)와 기마(騎馬), 대포(大砲)와 북소리를 듣게 되어, 그것이 이미 귀에 젖어 버렸다.

나는 옛날에, 문을 닫고 누운 채 그 소리들을 구분(區分)해 본적이 있었다. 깊은 소나무에서 나오는 바람 같은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청아(淸雅 : 맑고 우아하여 속되지 않음)한 까닭이며,[깊은 소나무에서 나오는 바람 같은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청아한 까닭이며, :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마치 솔바람 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그 듣는 사람이 맑고 아름다운 성품을 지닌 까닭이며. 이 같은 진술은 감정 이입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구절뿐만 아니라, 이 문단의 진술이 대체로 이 같은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흥분(興奮)한 까닭이며[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흥분한 까닭이며, : 시냇물 소리가 마치 산과 언덕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듣는 사람의 감정이 북받쳐 있기 때문이며], 뭇 개구리들이 다투어 우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교만(驕慢)한 까닭이며[뭇 개구리들이 다투어 우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교만한 까닭이며, : 큰 시냇물 소리가 개구리가 우는 듯 와글거리는 소리로 들릴 때에는 듣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겸손하지 못해서 모든 것을 다투어 경쟁하는 것으로 여기는 까닭이며], 수많은 축(筑 : 거문고 비슷한 현악기)의 격한 가락인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노한 까닭이다.[수많은 축의 격한 가락인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노한 까닭이다. : 큰 시냇물 소리가 거문고 같은 많은 현악기들이 격렬한 음(音)으로 우는 듯이 구슬프게 들리는 것은, 듣는 사람 자신의 마음이 그와 같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의인법(시냇물 소리 → 축의 격한 가락)과 직유법 사용되었다.] 그리고, 우르릉쾅쾅 하는 천둥과 벼락 같은 소리는 듣는 사람이 놀란 까닭이고, 찻물이 보글보글 끓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운치(韻致 : 고아한 품위를 갖춘 멋) 있는 성격(性格)인 까닭이고[찻물이 보글보글 끓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운치 있는 성격인 까닭이고, : 시냇물 소리가 마치 찻물이 보글보글 끓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듣는 사람이 여유를 가지고 인생을 담담하게 음미할 수 있는 운치를 가졌기 때문이고], 거문고가 궁우[宮羽 : 옛날의 음계 이름. '궁(宮)'은 저화음(低和音)으로서 굴 속에서 우는 소 울음 같은 소리. '우(羽)'는 적료감을 주는 음으로서 들에서 우는 말 울음소리와 같음]에 맞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슬픈 까닭이고[거문고가 궁우에 맞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슬픈 까닭이고, : 거문고의 곡조가 전아(典雅)하고 침중(沈重)한 궁성(宮聲)과 곡조가 용장(勇壯)한 우성(羽聲)을 연주하여 조화를 이루는 것같이 들리는 것은 듣는 이의 마음이 슬픈 까닭이고], 종이창에 바람이 우는 듯한 소리는 사람이 의심(疑心)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소리는, 올바른 소리가 아니라 다만 자기 흉중(胸中 : 마음 속.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뜻대로 귀에 들리는 소리를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어제 하룻밤 사이에 한 강(江)을 아홉 번이나 건넜다. 강은 새외(塞外 : 요새의 바깥. 여기서는 중국의 만리장성 바깥)로부터 나와서 장성(長城)을 뚫고 유하(楡河), 조하(潮河), 황하(黃河), 진천(鎭川) (백하(白河)의 지류(支流)를 이루는 강들)등의 여러 줄기와 어울려 밀운성[密雲城 : 중국 열하성(熱河省)의 경조윤(京兆尹)에 있는 지명] 밑을 지나 백하(白河 : 중국의 발해만으로 흐르는 강의 이름)가 되었다. 내가 어제 두 번째로 백하를 건넜는데, 이것은 바로 이 강의 하류(下流)였다. [내가 어제 두 번째 배로 백하를 건넜는데, 이것은 바로 이 강의 하류였다. : 필자가 밤에 건넌 강의 위치가 낮에 배로 건넜던 백하의 하류임을 밝힌 것이다.]

내가 아직 요동(遼東) 땅에 들어오지 못했을 무렵, 바야흐로 한여름의 뙤약볕 밑을 지척지척 걸었는데, 홀연(忽然 : 갑자기. 뜻밖에)히 큰 강이 앞을 가로막아 붉은 물결이 산같이 일어나서 끝을 알 수 없었다[홀연히 큰 강이 앞을 가로막아 붉은 물결이 산같이 일어나서 끝을 볼 수 없었다. : 갑자기 큰 강이 앞에 나타났는데, 그 강은 홍수로 말미암아 황톳빛의 큰 물결이 일어나서 끝 닿은 곳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산더미 같은 물결을 일으키며 무섭게 흘러가는 강물을 직유법과 과장법을 써서 효과적으로 나타내었다.]. 아마 천 리 밖에서 폭우(暴雨)로 홍수(洪水)가 났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을 건널 때에는 사람들이 모두들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기에, 나는 그들이 모두 하늘을 향하여 묵도(默禱 : 마음 속으로 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으려니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랜 뒤에야 비로소 알았지만, 그 때 내 생각은 틀린 생각이었다. 물을 건너는 사람들이 탕탕(蕩蕩 : 힘차게. 수세(水勢)가 힘차게)히 돌아 흐르는 물을 보면, 굼실거리고(작은 벌레 같은 것이 굼뜨게 움직이고) 으르렁거리는 물결에 몸이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아서 갑자기 현기(眩氣 : 눈이 아찔하고 어지러운 기운)가 일면서 물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그 얼굴을 젖힌 것은 하늘에 기도(祈禱)하는 것이 아니라, 숫제(무엇을 하기 전에 차라리. 아예) 물을 피하여 보지 않기 위함이었다. 사실, 어느 겨를에 그 잠깐 동안의 목숨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으랴![사실, 어느 겨를에 그 잠깐 동안의 목숨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으랴! : 사실, 어느 틈에 그 위기에 처한 목숨이 기도할 여유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 자칫 잘못하면 금세 위험한 물결에 휩쓸려 죽을 판국인데, 어느 겨를에 기도인들 할 수 있겠는가? 너무나 위급한 지경이라서 기도할 틈도 없다는 것인데,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위급할수록 더욱 더 간절하게 기도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잠깐 동안의 목숨'은 한자 숙어인 '명재경각(命在頃刻)'과 뜻이 통한다. 설의법을 써서 필자의 판단이 옳음을 강조했다.]

그건 그렇고, 그 위험(危險)이 이와 같은데도, 이상스럽게 물이 성나 울어 대진 않았다.[그건 그렇고, 그 위험이 이와 같은데도, 이상스럽게 물이 성나 울어 대진 않았다. : (사람들이 물을 건널 때 얼굴을 젖힌 것은 하늘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물을 보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황톳물이 굼실거리는 홍수 때 요하를 건너는 위험이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것과 같은데도, 눈에 보이는 물결의 무서움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물이 성내어 울부짖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요동의 들이 넓고 평평해서 물이 크게 성나 울어 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물을 잘 알지 못하는 까닭에서 나온 오해(誤解)인 것이다. 요하(遼河)가 어찌하여 울지 않았을 것인가? 그건 밤에 건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낮에는 눈으로 물을 볼 수 있으므로 그 위험한 곳을 보고 있는 눈에만 온 정신이 팔려 오히려 눈이 있는 것을 걱정해야 할 판에, 무슨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는 말인가? 그런데, 이젠 전과는 반대로 밤중에 물을 건너니, 눈엔 위험한 광경(光景)이 보이지 않고, 오직 귀로만 위험한 느낌이 쏠려, 귀로 듣는 것이 무서워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아, 나는 이제야 도(道)를 깨달았다. 마음을 잠잠하게 하는 자는 귀와 눈이 누(累 : 정신적인 괴로움이나 물질적인 손해)가 되지 않고[마음을 잠잠하게 하는 자는 귀와 눈이 누가 되지 않고 : 자기의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혀서 사물을 관조하여 사리를 판단하는 사람은 보고 듣는 것에 그르치는 일이 없고. 마음이 고요한 자는 귀로 듣는 것이나 눈으로 보는 것이 감정에 사로잡혀 사리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밝아져서 큰 병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밝아져서 큰 병이 된다. : 마음의 평정을 잃고 들리는 대로 보이는 대로 사물을 판단하는 사람은 그 외계(外界)의 현상에 사로잡혀 사리를 그릇 판단하게 된다.]

이제까지 나를 시중해 주던 마부(馬夫)가 말한테 발을 밟혔기 때문에, 그를 뒷수레에 실어 놓고, 이젠 내 손수 고삐를 붙들고 강 위에 떠 안장(鞍裝) 위에 무릎을 구부리고 발을 모아 앉았는데, 한 번 말에서 떨어지면 곧 물인 것이다. 거기로 떨어지는 경우에는 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을 삼고, 물로 몸을 삼고, 물로 성정(性情 : 성질과 심정, 또는 타고 난 본성)을 삼을 것이리라.[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을 삼고, 물로 몸을 삼고, 물로 성정을 삼을 것이리라. : 물, 곧 자연과 나를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고 물(자연)과 내가 하나임을 깨달아, 물에 빠짐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생사(生死)에 초연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나타내었다. 열거법, 역설법, 점층법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마음의 판단(判斷)이 한번 내려지자, 내 귓속에선 강물 소리가 마침내 그치고 말았다. 그리하여, 무려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는데도 두려움이 없고 태연(泰然)할 수 있어, 마치 방안의 의자 위에서 좌와(坐臥 : 앉음과 누움)하고 기거(起居 : 일정한 곳에서 일상생활을 함)하는 것 같았다.

옛적에 우(禹 : 중국의 고대 전설상의 왕으로 하(夏)왕조의 시조. 치수 설화(治水說話)의 주인공임)가 강을 건너는데, 누런 용(龍)이 배를 등으로 져서[누런 용이 배를 등으로 져서 : '누런 용' → '누런 강물'을 신비롭게 표현한 것임] 지극(至極)히 위험(危險)했다 한다. 그러나, 생사(生死)의 판단(判斷)이 일단 마음 속에 정해지자, 용이거나 지렁이거나, 혹은 그것이 크거나 작거나 간에 아무런 관계(關係)도 될 바가 없었다 한다.[옛날 우는 강을 건너는데 ~ 관계될 바 없었다 한다 : 우는 중국 하왕조의 시조, 치수 설화나 지덕 상징 설화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 예화도 마음 먹기에 따라 사물을 대하는 태도를 달리할 수 있으며, 밝은 판단을 갖고 살아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소리와 빛은 모두 외물(外物 : 마음에 접촉되는 객관적 세계의 모든 대상)이다. 이 외물이 항상 사람의 이목(耳目 : 귀와 눈. 보고 들음)에 누(累)가 되어, 보고 듣는 기능(機能)을 마비(痲痺)시켜 버린다.[이 외물이 항상 사람의 이목에 누가 되어 보고 듣는 기능을 마비시켜 버린다. : 소리와 빛과 같은 외계(外界)의 현상이 사람의 이목을 현혹시켜서 참모습과 참소리를 가려 내지 못하게 한다.] 그것이 이와 같은데, 하물며 강물보다 훨씬 더 험하고 위태(危殆)한 인생의 길을 건너갈 적에 보고 듣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치명적(致命的 : 생사나 흥망에 관계될 만큼 결정적인)인 병이 될 것인가?[보고 듣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치명적인 병이 될 것인가? : 외물(外物)에 마음을 빼앗겨 보고 듣는 판단이 올바르지 못하면, 얼마나 큰 오류(誤謬)에 빠질 것인가? ]

나는 또 나의 산중으로 돌아가 앞내의 물소리를 다시 들으면서 이것을 경험(經驗)해 볼 것이려니와, 몸 가지는 데 교묘(巧妙 : 솜씨나 재치가 있고 약삭빠름)하고, 스스로 총명(聰明 : 정신이 밝고 예민함)한 것을 자신(自信)하는 자에게 이를 경계(警戒 : 타일러 주의시킴. 조심함)하고자 하는 것이다.[나는 또 ~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스스로의 삶에 적용하면서 자신하는 자는 내적 진실성이 없고 남을 현혹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해와 감상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는 박지원의 중국 여행기인 '열하일기(熱河日記)' 중 '산장잡기(山莊雜記)'에 들어 있는 글로, '하룻밤 사이에 아홉 번 강을 건넌 기록'이라는 뜻으로, 시냇물 소리를 통하여 감각기관과 마음의 상관관계를 설명한 글로, '연암집(燕巖集)' 권14 '열하일기'의 '심세편(審勢篇)'에 수록되어 있다.

박지원은 시내를 건너며 귀에 들려오는 물소리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인지하고, 이를 통하여 인식의 허실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사물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도달하는 방법은 외계의 영향을 배제한 순수한 이성적 판단에 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끝에서, 인생은 시내를 건너는 것보다 더 크고 더 험한 강을 건너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닦고 자신의 총명함에 의거하여야 한다고 하여, 이러한 감정을 배제한 이성적인 인식을 궁극적으로는 삶을 영위하는 데까지 확충하여 이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작자는 이 글에서 자신의 도강(渡江) 체험과 평소 관찰을 바탕으로 깊은 인생의 진리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고 있다. 묘사와 서사를 이용하여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 그것을 인간의 내적 세계와 연결짓는 방식은 주제를 매우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일상 생활에서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가운데 현상에만 얽매여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현대인에게 귀감이 될 만한 글이다. '마음을 잠잠히 가지면 외물에 현혹이 없다'는 진리를 분석적·명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격조 높은 글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다 보면 지은이의 사고는 무척 주도면밀하고 폭이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사고는 사물이나 현상을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관찰, 해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삶의 진실된 의미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고 있다. 이 글에서는 큰 강물을 건너면서 누구나 겁을 먹게 마련인데, 그것은 강물의 흐름이나 소리만을 염두에 두기 때문임을 깨닫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진실한 삶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지은이 나름의 답도 구하고 있다. 아울러 구체적인 경험이 있기에 가능했고 설득력을 얻고 있음도 보여 준다. 이 같은 사실을 통해 우리는 수필이라는 양식이 발견과 사고의 과정을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화 자료

이 글에 드러난 지은이의 개성

 

첫째, 어휘 구사 등으로 보아 지식이 해박하고,

둘째, 물과 사람의 묘사나 서술로 보아 관찰이 예민하며,

셋째, 일단 믿는 바라도 다시 증험해 보겠다는 것으로 보아 대단히 신중하고 실용적이며, '몸 가지는 데 교묘하고 스스로 총명한 것을 자신하는 자'를 경계하겠다는 것으로 보아 퍽 강직, 비판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이 글이 보여 주는 인간의 모습

 

이 글에는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인간의 모습이 대조를 보이고 있다. 첫째의 인간형은 외물(外物)에 매인 사람이다. 이들은 외적인 것에 팔려 본질적인 것을 알지 못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몸 가는 데 교묘하고 스스로 총명한 것을 자신하는 자'이다. 이들과 대조를 이루는 둘째의 인간형은 외물에 초연한 사람이다. 이들은 외물에 구애받지 않고 본질적인 자리에 선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우(禹)'이다. 글 속의 '나'도 그러한 사람이다.

박지원(朴趾源/1737~1805)

 

조선 후기의 실학자·소설가. 본관 반남(潘南). 자 중미(仲美). 호 연암(燕巖).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돈령부지사(敦寧府知事)를 지낸 조부 슬하에서 자라다가 16세에 조부가 죽자 결혼, 처숙(妻叔) 이군문(李君文)에게 수학, 학문 전반을 연구하다가 30세부터 실학자 홍대용(洪大容)과 사귀고 서양의 신학문에 접하였다.

1777년(정조 1) 권신 홍국영(洪國榮)에 의해 벽파(僻派)로 몰려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황해도 금천(金川)의 연암협(燕巖峽)으로 이사, 독서에 전념하다가 80년(정조 4) 친족형 박명원(朴明源)이 진하사 겸 사은사(進賀使兼謝恩使)가 되어 청나라에 갈 때 동행, 랴오둥[遼東]·러허[熱河]·베이징[北京] 등지를 지나는 동안 특히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도움이 되는 청나라의 실제적인 생활과 기술을 눈여겨 보고 귀국, 기행문 《열하일기(熱河日記)》를 통하여 청나라의 문화를 소개하고 당시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방면에 걸쳐 비판과 개혁을 논하였다.

86년 왕의 특명으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이 되고 89년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 이듬해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제릉령(齊陵令), 91년(정조 15) 한성부판관을 거쳐 안의현감(安義縣監)을 역임한 뒤 사퇴했다가 97년 면천군수(沔川郡守)가 되었다. 이듬해 왕명을 받아 농서(農書) 2권을 찬진(撰進)하고 1800년(순조 즉위) 양양부사(襄陽府使)에 승진,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났다. 당시 홍대용·박제가 등과 함께 청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이른바 북학파(北學派)의 영수로 이용후생의 실학을 강조하였으며, 특히 자유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발표, 당시의 양반계층 타락상을 고발하고 근대사회를 예견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함으로써 많은 파문과 영향을 끼쳤다.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서구(李書九) 등이 그의 제자들이며 정경대부(正卿大夫)가 추증되었다. 저서에 《연암집(燕巖集)》 《과농소초(課農小抄)》 《한민명전의(限民名田義)》 등이 있고, 작품에 《허생전(許生傳)》 《호질(虎叱)》 《마장전(馬傳)》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민옹전(閔翁傳)》 《양반전(兩班傳)》 등이 있다.

열하일기(熱河日記)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중국 기행문집(紀行文集). 26권 10책. 규장각도서. 1780년(정조 4) 그의 종형인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을 따라 청(淸)나라 고종(高宗)의 칠순연(七旬宴)에 가는 도중 열하(熱河)의 문인들과 사귀고, 연경(燕京)의 명사들과 교유하며 그곳 문물제도를 목격하고 견문한 바를 각 분야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이해 6월 24일 압록강 국경을 건너는 데에서부터 시작하여 요동(遼東)·성경(盛京)·산하이관[山海關]을 거쳐 베이징[北京]에 도착하고, 열하로 가서, 8월 20일 다시 베이징에 돌아오기까지 약 2개월 동안 겪은 일을 날짜 순서에 따라 항목별로 적었다.

연암의 대표작인 이 《열하일기》는 발표 당시 보수파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나, 중국의 신문물(新文物)을 망라한 서술, 그곳 실학사상의 소개로 수많은 조선시대 연경 기행문학의 정수(精髓)로 꼽힌다. 이 책은 당초부터 명확한 정본(正本)이나 판본(版本)도 없었고, 여러 전사본(轉寫本)이 유행되어 이본(異本)에 따라 그 편제(編制)의 이동이 심하다. 이 책에는 중국의 역사·지리·풍속·습상(習尙)·고거(攷據)·토목·건축·선박·의학·인물·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문학·예술·고동(古董)·지리·천문·병사 등에 걸쳐 수록되지 않은 분야가 없을 만큼 광범위하고 상세히 기술되었는데, 경치나 풍물 등을 단순히 묘사한 데 그치지 않고 이용후생(利用厚生) 면에 중점을 두어 수많은 《연행록(燕行錄)》 중에서도 백미(白眉)로 꼽힌다. 충남대학 도서관 소장 연암 수택본(手澤本) 26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1 <열하일기서(熱河日記序)> <도강록(渡江錄)>:서문은 필자 미상이나, 풍습 및 관습이 치란(治亂)에 관계되고, 성곽·건물·경목(耕牧)·도야(陶冶) 등 이용후생에 관계되는 일체의 방법을 거짓없이 기술하였다고 설명하였다. 또 <도강록>은 압록강에서 랴오양[遼陽]까지 15일간(1780.6.24∼7.9)의 기행문으로 중국인이 이용후생적인 건설에 심취하고 있음을 서술하였다.

 

권2 <성경잡지(盛京雜識)>:십리하(十里河)에서 소흑산(小黑山)까지 5일간의 기록으로, 특히 <속재필담(粟齋筆譚)> <상루필담(商樓筆譚)> <고동록(古董錄)>은 흥미 있는 내용이다.

 

권3 <일신수필(馹隨筆)>:신광녕(新廣寧)에서 산하이관까지 9일간의 기록으로, 그 서문 중의 이용후생학에 대한 논술이 독특하다.

 

권4 <관내정사(關內程史)>:산하이관에서 연경까지 11일간의 기록으로, 여기 수록된 한문 고대소설 <호질(虎叱)>은 연암의 소설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작품의 하나이다.

 

권5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연경에서 열하까지 5일간의 기록으로, 열하에 대하여 소상히 기록하였고, 그곳을 떠날 때의 아쉬운 심경을 그렸다.

 

권6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열하에 있는 태학(太學)에서 6일간 지낸 기록으로 당시 중국의 명망 있는 학자들과 더불어 나눈 한·중 두 나라 문물제도에 관한 논평 및 지동설(地動說)·달세계 등에 관한 토론이다.

 

권7 <구외이문(口外異聞)>:구베이커우[古北口] 밖의 기문이담(奇聞異談)을 적은 것으로, 반양(盤羊)에서 천불사(千佛寺)에 이르는 60여 종의 이야기이다.

 

권8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열하에서 다시 연경으로 돌아오는 도중 6일간의 기록으로, 대개 교량·도로·방호(防湖)·방하(防河)·탁타(駝:庭園師)·선제(船制) 등에 관한 논평이다.

 

권9 <금료소초(金蓼小)>:주로 의술(醫術)에 관한 기록으로 《연암집(燕巖集)》에서는 이를 <보유(補遺)>라 한다.

 

권10 <옥갑야화(玉匣夜話)>:이본(異本)에 따라서는 <진덕재야화(進德齋夜話)>로 된 것도 있다. 여기 수록된 <허생전(許生傳)>은 연암 소설뿐만 아니라 한국 소설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권11 <황도기략(黃圖紀略)>:황성(皇城)의 구문(九門)에서 화조포(花鳥鋪)까지 38종의 문관(門館)·전각(殿閣)·도지(島池)·점포(店鋪)·기물(器物) 등에 관한 기록이다.

 

권12 <알성퇴술(謁聖退述)>:순천부학(順天府學)으로부터 조선관(朝鮮館)에 이르기까지 역람한 기록이다.

 

권13 <앙엽기(葉記)>:홍인사(弘仁寺)에서 이마두총(利瑪竇塚)에 이르는 20개의 명소(名所)를 두루 구경한 기록이다.

 

권14 <경개록(傾蓋錄)>:열하의 태학(太學)에서 6일간 머물며, 그곳 학자들과 응수한 기록이다.

 

권15 <황교문답(黃敎問答)>:황교와 서학자(西學者)의 지옥(地獄)에 관한 논평이다. 끝에는 세계의 이민종(異民種)을 열거하는 가운데 특히 몽골과 아라사 종족의 강맹(强猛)함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권16 <행재잡록(行在雜錄)>:청나라 황제의 행재소(行在所)에서의 자세한 견문록이다. 여기서 특히 청나라의 친선정책(親鮮政策)의 연유를 밝혔다.

 

권17 <반선시말(班禪始末)>:청 황제의 반선(班禪)에 대한 정책을 논하고, 또 황교(黃敎)와 불교가 근본적으로 같지 않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권18 <희본명목(戱本名目)>.

 

권19 <찰습륜포(札什倫布)>:찰습륜포란 티베트어(語)로 ‘대승(大僧)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열하에 있을 때의 반선에 대한 기록이다.

 

권20 <망양록(忘羊錄)>:음악에 관하여 중국 학자들과 서로의 견해를 피력한 기록이다.

 

권21 <심세편(審勢編)>:당시 조선 사람의 오망(五妄)과 중국 사람의 삼난(三難)을 역설한 기록이다. 북학(北學)에 대한 예리한 이론을 펼쳤다.

 

권22 <곡정필담(鵠汀筆譚)>:중국 학자 윤가전(尹嘉銓)과 더불어 전날 태학(太學)에서 미진하였던 토론을 계속한 기록이다. 즉, <태학유관록> 중에서 미흡하였던 이야기인 월세계·지전(地轉)·역법(曆法)·천주(天主) 등에 대한 논술이다.

 

권23 <동란섭필(銅蘭涉筆)>:동란재(銅蘭齋)에 머물 때 쓴 수필이다. 주로 가사·향시(鄕試)·서적·언해(諺解)·양금(洋琴) 등에 대하여 쓴 것이다.

 

권24 <산장잡기(山莊雜記)>:열하산장에서의 여러 가지 견문기이다. 특히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상기(象記)> 등은 가장 비장하고 기괴하게 묘사되었다.

 

권25 <환희기(幻戱記)>:광피사표패루(光被四表牌樓) 아래서 중국 요술쟁이의 여러 가지 연기를 구경한 소감을 적은 이야기이다.

 

권26 <피서록(避暑錄)>:열하의 피서 산장에서 지낸 기록이다. 주로 조선과 중국 두 나라의 시문(詩文)에 대한 논평이다.

한편 연암의 후손에 의하여 최근 <양매시화(楊梅詩話)>가 새로 발견되었는데, 이는 양매서가(楊梅書街)에서 중국의 학자들과 주고받은 한시화(漢詩話)로서, 당시 옮겨 쓰려다가 우연히 누락된 것으로 짐작된다. 1911년 광문회(光文會)에서 국판 286면 활자본으로, 32년 박영철(朴榮喆)이 6책 활자본으로, 48년 김성칠(金聖七) 국역본이 정음사(正音社)에서 각각 나왔으며, 56년 타이완[臺灣]대학 도서관에 소장된 사본(寫本)을 영인(影印) 출판하였다. 또 최근 민족문화추진회의 《고전국역총서(古典國譯叢書)》 18∼19책으로 간행된 26권 2책의 이가원(李家源) 국역본이 있다. (자료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열하일기

 

조선 정조 때에 박지원(朴趾源)이 청나라를 다녀온 연행일기(燕行日記). 26권 10책. 필사본.

[간행경위]

간본(刊本)으로는 1901년 김택영(金澤榮)이 ≪연암집 燕巖集≫ 원집에 이어 간행한 동 속집 권1·2(고활자본)에 들어 있고, 1911년 광문회(光文會)에서 A5판 286면의 활판본으로 간행하였다.

1932년 박영철(朴榮喆)이 간행한 신활자본 ≪연암집≫ 별집 권11∼15에도 전편이 수록되어 있다. 보유편도 있고 1956년 자유중국의 대만대학(臺灣大學)에서 동 대학 소장본을 영인한 것도 있다.

[내 용]

1780년(정조 4) 저자가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연(七旬宴)을 축하하기 위하여 사행하는 삼종형 박명원(朴明源)을 수행하여 청나라 고종의 피서지인 열하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청조치하의 북중국과 남만주일대를 견문하고 그 곳 문인·명사들과의 교유 및 문물제도를 접한 결과를 소상하게 기록한 연행일기이다.

각 권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도강록〉은 압록강으로부터 랴오양(遼陽)에 이르는 15일간의 기록으로 성제(城制)와 벽돌 사용 등의 이용후생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잡지〉는 십리하(十里河)에서 소흑산(小黑山)에 이르는 5일간에 겪은 일을 필담(筆談) 중심으로 엮고 있다.

〈일신수필〉은 신광녕(新廣寧)으로부터 산하이관(山海關)에 이르는 병참지(兵站地)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관내정사〉는 산하이관에서 연경(燕京)에 이르는 기록이다. 특히 백이(伯夷)·숙제(叔齊)에 대한 이야기와 〈호질 虎叱〉이 실려 있는 것이 특색이다.

〈막북행정록〉은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5일간의 기록이다. 〈태학유관록〉은 열하의 태학(太學)에서 머무르며 중국학자들과 지전설(地轉說)에 관하여 토론한 내용이 들어 있다. 〈구외이문〉은 고북구(古北口) 밖에서 들은 60여 종의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환연도중록〉은 열하에서 연경으로 다시 돌아오는 6일간의 기록으로 교통제도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금료소초〉는 의술(醫術)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옥갑야화〉는 역관들의 신용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허생(許生)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다. 뒷날에 이 이야기를 〈허생전〉이라 하여 독립적인 작품으로 거론하였다.

〈황도기략〉은 황성(皇城)의 문물·제도 약 38종을 기록한 것이다. 〈알성퇴술〉은 순천부학(順天府學)에서 조선관(朝鮮館)에 이르는 동안의 견문을 기록하고 있다. 〈앙엽기〉는 홍인사(弘仁寺)에서 이마두총(利瑪竇塚)에 이르는 주요명소 20군데를 기술한 것이다.

〈경개록〉은 열하의 태학에서 6일간 있으면서 중국학자와 대화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황교문답〉은 당시 세계정세를 논하면서 각 종족과 종교에 대하여 소견을 밝혀놓은 기록이다. 〈행재잡록〉은 당시 청나라 고종의 행재소(行在所)에서 견문한 바를 적은 것이다. 그 중 청나라가 조선에 대하여 취한 정책을 부분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반선시말〉은 청나라 고종이 반선(班禪)에게 취한 정책을 논한 글이다. 〈희본명목〉은 다른 본에서는 〈산장잡기〉 끝부분에 있는 것으로 청나라 고종의 만수절(萬壽節)에 행하는 연극놀이의 대본과 종류를 기록한 것이다. 〈찰십륜포〉는 열하에서 본 반선에 대한 기록이다.

〈망양록〉과 〈심세편〉은 각각 중국학자와의 음악에 대한 토론내용과 조선의 오망(五妄), 중국의 삼난(三難)에 대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곡정필담〉은 주로 천문에 대한 기록이다. 〈동란섭필〉은 가악(歌樂)에 대한 잡록이며, 〈산장잡기〉는 열하산장에서의 견문을 적은 것이다.

〈환희기〉와 〈피서록〉은 각각 중국 요술과 열하산장에서 주로 시문비평을 가한 것이 주요내용이다. ≪열하일기≫는 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 北學議≫와 함께 “한 솜씨에서 나온 것 같다(如出一手).”고 한 평을 들었다.

주로 북학을 주장하는 내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고, 당시에 정조로부터 이 책의 문체가 순정(醇正)하지 못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였으나 많은 지식층에게 회자된 듯하다.

[의 의]

종래의 연행록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열하일기≫는 박지원의 기묘한 문장력으로 여러 방면에 걸쳐 당시의 사회문제를 신랄하게 풍자한 조선 후기 문학과 사상을 대표하는 걸작이라 하겠다.

≪참고문헌≫ 熱河日記解題(민족문화추진회, 1983), 熱河日記의 敍述原理(李鐘周, 韓國學大學院碩士學位論文, 1982), 熱河日記의 文學的硏究(姜東燁, 建國大學校博士學位論文, 1982).(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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