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요로원 야화기(要路院夜話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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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로원 야화기(要路院夜話記)

객이 가로되

그대 나이 몇이며 장가를 들었는가. 내 대답하되 나는 스물 아홉살이오 장가 못 들었나이다. 객왈 그대 상등양반이면서 아직 장가를 못들었느뇨. 내 탄하여 가로되 상등양반인들 장가들기가 어려워 제구하는 데는 내 즐기지 아니하고 내구하는 데는 제 즐겨 아니니 좋은 바람이 불지 아니하여 지금 날과 같은 이를 만나지 못하였나이다. 객왈 그대 몸이 단단하여 자라지 못한 듯하고 택이판판아여 수염이 없으니 종내 장가들 때 없으리오. 내 답 왈 행차는 웃지 마소서. 옛날에 일렀으되 불효중 무후(無後) 크다 하니 삼십에 입장(入丈)을 못하였으니 어찌 민망치 아니하리잇까.

객왈 예좌수 모별감집으 구혼을 못하느뇨. 내 대답왈 이 이른바 내 구혼한 데 제즐겨 아니하는 데니이다. 객왈 그 대 얼굴이 단정하고 말씀이 민첩하니 헛되이 늙지 아니리니 예가 모가들이 허혼(許婚)을 아니리오. 내 그대를 위하여 다른 데 아름다운 배필을 구하리라. 내 거짓 곧이 듣는 체하고 기뻐하는 얼굴로 대답왈 그지없어이다. 아니 행차문장에 아가씨두어겨시잇가. 객이 부담하고 혼자 가로되 어린 것이 할일 중에는 아가씨 없으니 다른 데 구하여 지휘하리라. 내 짐짓 감사하여 왈 덕분이 가이없어어이다. 객이 이르되 그대 비록 가관을 하였어도 입장을 못하였으면 이는 노도령이라 하고 이후는 노도령이나 그대라고 하더라.

객이 그 말을 그칠 때면 잇다감 혼자 글을 읊으되 애강남 익주부자묘비와 고부 고시어늘 내 모르는 체하고 물으되 해차의 독하시는 글이 무슨 글이잇까. 답왈 이는 풍월이니라. 우왈 그대 형상을 보니 반드시 활을 쏘지 못할 것이니 능히 글을 하느냐. 내 답왈 문자는 배우지 못하고 글은 잠깐 배웠으되 다만 열 다섯 줄 중의 둘째줄 같은 줄이 외오기 어렵나이다. 객왈 이는 언문이라 진서에 이같은 글줄이 있으리오. 대답왈 우리 향곡에는 언문을 하는 이도 적으니 진서를 어이 바라리오. 진실로 진실로 진서를 하면 거룩기를 어이 측량하리오. 우리 향곡에는 한 사람이 천자를 읽어 서원이 되어 치부로 유명하고 또 한 사람은 사략을 읽어 교생이 되어 과거에 출입하나니 공서소지 쓰기를 나는듯이 하여 선물이 구름 뫃듯하며 가계 기특하니 이런 장한 일은 사람마다 못하려니와 우리 금곡중에도 김호주는 언문을 잘하여 결복(結卜)을 마련하며 고담(古談)을 박람(博覽)하기로 호수를 한 지 십여년에 가계 부어 비록 진서를 못하나 언문이나 잘하면 족히 일촌 중 횡행할지이라. 객왈 그대 그러면 호수를 하고자 하느냐. 내 답왈 호수도 상인의 소임(所任)이니 결복마련에 쓰고자 하나이다. 객이 차탄왈 사람이 어이 경향이 다르리오마는 서울 사람은 진서를 못할 리 없고 시골 사람은 언문도 못하는가 글을 못하면 어이 사람이라 하니 어찌 두 가지 아니라 옛사람이 공부자라 하신 이 있나니 그대 들었는가. 내 대답하되 듣지 못하였나이다. 또 문왈 고을 향교의 제사를 뉘게 하느뇨. 대답하되 공자께 하나이다. 객이 웃고 이르되 공부자는 공자를 이름이라. 내 답왈 향인이 무식한 지라 다만 공자 잊고 공부자라 말씀을 듣지 못하였나이다. 객이 대소(大笑)하고 이르되 네 도척이란 사람을 들었는가. 대답하되 들었나이다. 객이 도척과 공자와 뉘어지뇨. 답왈 공자는 성인(聖人)이오 도척은 사오나오니이다. 객이 가로되 진실로 옳도다. 청천(靑天)백일(白日)은 종놈도 그 밝은 줄을 알고 황혼(黃昏)은 금수도 어두운 줄 아나니 공자와 도척은 천지불모하니 어찌 모르리오. 슬프다. 글하는 사람은 성인이오. 글을 못하는 사람 이는 금수의 종류라 하거늘 내 답하되 행차는 글을 하시니 진실로 성인이시오 나는 언문을 하니 금수는 면하리소이다. 객이 웃고 이르되 도척이라타 언문이야 못하랴 하고 혼자 말하여 가로되 그러나 말같다하여늘 내 그 말을 몰라 듣는 체하고 거짓 가로되 행차에서 독하시는 풍월이 무슨 말이잇가. 객왈 그대 풍월을 배우고자 하느냐. 풍월이란 것이 다섯 자와 일곱 자를 모아 하나니 그대 날과 풍월을 화답함이 어떠하뇨. 내 크게 웃고 가로되 진서를 못하거든 어찌 풍월을 하리오. 객이 가로되 비록 진서를 못하여도 육담(肉談)으로 하여도 풍월이니라. 내 이르되 비록 육담을 하나 다섯 자 일곱 자를 모아 하리오. 객이 가로되 어벽(語癖)이 가장 좋으니 육담풍월을 잘 할 것이니 시험코자 하노라. 내 고소하여 왈 풍월이 내 할 일이 아니라 행차의에 혼자 하소서. 객왈 내 먼저 지으면 그대 배워 지으라 하고 한 귀를 읊어 왈,

내 시골나기를 보니 형상 가지기를 괴저히 하는도다.

내 그 사김을 듣고 거짓 노하여 가로되 행차 나를 희롱함이로다. 객왈 시골 사람이 그대뿐 아니라 시골 사람이 이러한 이를 많이 보았으매 이른 말이오. 그대를 희롱함이 아니라. 그대 같은 이는 가장 쉽지 아니하니라. 내 기꺼한대 객이 또 한 귀를 이르되,

언문 쓸 줄을 아지 못하니

어찌 진서 못함이 고이하리오.

인하여 나를 화하라 시기거늘 내 두어번 사양한대 거짓 노하다가 고쳐 웃고 이르되 내 이미 먼저 지었거든 그대 종시 화답(和答)치 아님이 나를 업수히 여김이라. 어찌 그대를 몰아내지 못하리오. 내 답왈 내치면 내치려니와 어찌 사람 저히기를 어린아이같이 하느뇨. 내 비록 시골 사람이오 글자를 못하나 저렇듯 저히는 말을 조금도 두려 아닛노라. 객이 웃고 가로되 그대는 가히 당돌타 이르리로다. 내 희롱함이라 하고 한 귀 화답함을 청하거늘 내 즉시 한 귀를 읊어 왈,

내 서울 것을 보니

과연 거동이 되도다.

객이 듣고 놀라 일어 앉아 내 손을 잡고 나를 익히 보며 이르되 불상타 그 사이 사람을 어찌 이렇듯 속이느뇨. 존의 휼중에 빠져 이렇듯 부끄러움을 몰라 평생의 가매한 적이 없더니 이제 존을 만나 이렇듯 부끄러움을 보니 내 탓이려니와 어찌 존이 날 욕함을 이렇듯 심하느뇨. 내 웃고 왈 서울 사람이 존뿐 아니라 이런 사람을 많이 본고로 이른 말이오. 존을 이른 말이 아니라. 존같은 이는 진실로 쉽지 안으리라. 객왈 이 말이 내 처음 하던 말이라 어찌 이 말 대답하기를 속히 하느뇨. 내 이르되 옛말에 내게서 난 말이 네게로 돌아온다 하니 이 말을 듣지 못하였는가. 내 매양 행차라 일컫다가 홀연 그대라 이르니 객이 참소왈 행차는 어디 가고 그대라 이르느뇨. 내 답하되 노도령은 어디가고 그대라 이르느뇨. 객왈 노도령이란 말듣기 좋아하느냐. 내 답왈 노도령을 위하야 혼인 지휘 속이지 말라. 내 본대 존의 문중의 아가씨게 장가들리라. 객이 대소왈 내 문중에 아가씨 있다한들 예좌수 모별감도 아닌 혼인을 어찌하리오. 인하여 나를 보며 웃고 왈 존의 궤휼이 불측하도다. 내 처음 마소들이란 말에 잠깐 업수히 여기고 두번째 김승과 호자하던 말에 더욱 경히 여기고 마침내 문자 모르노란 말에 전혀 만무하였더니 군이 글을 잘하며 못하노라 하여 나를 속임은 속였거니와 간사하기를 면치 못하리로다. 내 이르되 병법을 보지 못하였는가. 병법에 일렀으되 모진 새 장차려하매 그 발톱을 감추고 모진 범이 장차 뛰려하매 그 몸을 주리나니 처음에 그대에게 절할때 너무 남을 업수히 여김을 알지라 내 장차 그 어린 기운과 교만한 뜻을 속이려 하는 고로 내 마지 못하여 톱을 감추고 몸을 주리니 어찌 간사하리오. 네 양화 술(術)로써 하거늘 공자 술로써 대답하시고 양혜왕이 정성을 아니커늘 맹자 병을 탁하시니 공자 맹자도 또한 간사하랴.

 

요점 정리

연대 : 조선 숙종 때

작자 : 박두세

갈래 : 수필, 야담

성격 : 풍자적, 비판적, 해학적

제재 : 경향 풍속(京鄕風俗), 육담 풍월(肉談風月)

주제 : 양반들의 허세와 교만성 폭로

출전 : 연세대 소장본 '요로원야화기'

줄거리 :

작중의 '나'라는 주인공은 충청도에 사는 선비로, 과거에 낙방하고 귀향하던 도중, 소사(素砂)를 지나 요로원에 이르러 주막에 들게 된다. 거기서 만난 서울 양반은 고단하고 초라한 행색의 시골 선비인 그를 멸시한다. 그는 짐짓 무식한 체하면서 서울 양반을 놀리고, 서울과 시골의 풍속을 풍자함으로써 결국 서울 양반은 자신이 속은 것을 알고 자신의 교만을 부끄러워한다. 이어 두 사람은 여러 편의 시를 주고받으며 낙방한 선비로서 당대의 정치 제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고, 세태를 풍자하기도 한다. 이윽고 동창이 밝아 오자 서로는 성명도 모르는 채로 헤어진다.

두 인물의 대화를 통하여 양반층의 횡포와 사회의 부패를 보여 주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며, 향토 양반들의 실체와 그들의 교만성을 들추어 내는 풍자성은 이 작품이 문학적 형상화의 기법을 갖추었음을 보여 준다. 수필로 분류할 수 있는 단편 산문으로, 한글본에는 두 종류가 있다. 여기 실은 것은 연세대학교 소장본에서 뽑은 것으로 열세(劣勢)를 가장하던 향객(鄕客)인 '나'가 가시 있는 말로 경객(京客)을 몰아치다가 마침내 '육담 풍월(肉談風月)'로 결정적으로 당혹하게 만드는 대목까지이다.

내용 연구

 

이해와 감상

 

요로원야화기는 저자가 1678년(숙종 4) 과거를 보러 상경하였다가 돌아가는 길에 충청도 아산(牙山) 요로원의 어느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 서울 양반을 만나 스스로 천민인 체하며 양반·경향(京鄕)의 풍속·육담풍월(肉談風月)·작시경기(作詩競技)·사색편론(四色偏論)·도학(道學)과 수학(修學) 등을 기롱(譏弄)으로써 문답한 내용을 기록한 대화체의 기문만필(奇文漫筆)로, 당시의 국가제도와 사회정책을 날카롭게 풍자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때의 말씨나 사고방식 등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는 것이 이채롭다.

'야화(夜話)'란 원래 밤에 하는 이야기라는 뜻을 가진 말로서, 설화풍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단출한 산문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요로원야화기'도 그런 이야기의 하나로서 굳이 나눈다면 수필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식의 단출한 이야기가 널리 보편화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고려 때부터 패관 문학이라고 부를 만한 단편적 이야기가 널리 수집·기록되어 온 전통이 이를 말해 주며, 이는 사람들이 짤막한 이야기에서 그 함축적 의미를 즐기는 경향이 매우 뿌리 깊음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나'라는 주인공이 거드름을 부리는 서울 선비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상황을 역전시키는 데 초점이 있다. 이러한 역전을 통하여 양반들이 지닌 허세와 실상이 드러남은 물론, 그러한 반전이 주는 쾌감이 흥미를 높인다. 주고받는 대화에 포함된 저의와 함축적인 의미를 헤아려 가며 그 상황을 추리·상상하는 데서 그 궁극적 의미가 파악된다는 데 이해·감상의 핵심이 있다. 특히, 이처럼 문장력을 통한 상대방 공격이나 허상의 폭로는 일상 생활에서도 오랜 전통이 지녔던 것이라는 점도 이 작품을 읽는 데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해와 감상1

 

조선 숙종 때 박두세(朴斗世)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수필형식의 단편산문. 1책. 필사본. 1종의 국문본과 5종의 한문본이 있다. 작중의 ‘나’라는 주인공은 충청도에 사는 선비이다.

1678년(숙종 4)에 과거에 낙방하고 귀향하던 도중, 소사(素砂)를 지나 요로원에 이르러 주막에 들게 된다. 우연히 동숙하게 된 서울 양반이 고단하고 초라한 행색의 시골 선비인 그를 멸시한다.

그는 짐짓 무식한 체하면서 서울 양반을 은근히 놀리면서 서울과 시골의 풍속(風俗)을 풍자한다. 서울 양반의 제의로 육담풍월(肉談風月)을 읊게 되자 서울 양반은 자기가 속은 것을 알고 교만하였던 언행을 부끄러워한다.

사색편론(四色偏論)·학문·수양 등 대화로 두 사람은 밤을 샌다. 서로 주고받은 여러 편의 시를 통하여 낙방한 선비로서 당대의 정치제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세태를 풍자한다. 이윽고 동창이 밝아오자 서로는 성명도 모른 채 헤어진다.

두 인물의 대화를 통하여 양반층의 횡포와 사회의 부패를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향토 양반들의 실태와 그들의 교만성을 서울 양반에게 빗대어 지적한다거나 양반의 허세에 초라한 향인의 모습으로 도전하는 풍자성은 이 작품이 실기형태이면서도 문학적 기법을 갖추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세태묘사 부분은 사회사연구 측면에서 간접적 자료가 될 수 있다. 국문본 〈요로원야화긔〉는 서울대학교 도서관 가람문고에 있다. 그 밖에 한문본 〈요로원이객문답 要路院二客問答〉은 ≪동야휘집 東野彙輯≫에 수록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의 〈요로원기〉와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소장의 〈비평신증요로원기 批評新增要路院記〉가 현재 알려져 있으며 두루마리본으로 이양오(李養吾)가 필사한 〈요로원야화〉도 있다. 이외에 연세대학교 도서관 소장본 등이 전한다. 1949년 을유문화사에서 이병기(李秉岐)가 가람본을 주해하여 출판하였다.

≪참고문헌≫ 要路院夜話記硏究(李樹鳳, 太學社, 1984), 要路院野話記考(尹淑子, 國語國文學硏究 4, 梨花女子大學校, 1962).(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화 자료

박두세(朴斗世) [1654~?]

 

본관 울산(蔚山). 자 사앙(士仰). 충청도 대흥(大興) 출생.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목사(牧使)를 거쳐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에 올랐다. 문장에 능하여 수필집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를 저술하였다. 이 책에서 당시 사회의 정책·제도를 문답(問答)형식으로 신랄하게 풍자하였다. 또 '삼운통고보유(三韻通考補遺)'를 펴냈다.

고전 수필 종류

 

고전 수필은 한문 수필과 국문 수필로 크게 나뉜다.

한문 수필이라고 할 수 있는 글의 명칭은 다음과 같이 매우 다양하다.

기(記) : 잡기(雜記), 필기(筆記) 등 겪은 일의 경과를 중심으로 기록한 것

록(錄) : 야록, 쇄록 등 일의 전말에 대해 아는 바를 기록할 것

문(聞) : 전문, 야문 등 들으 내용을 중심으로 기록한 것

화(話) : 총화, 야화 등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

담(談) : 야담, 쇄담 등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것

필(筆) : 수필, 만필 등 자유로운 형식으로 생각을 기록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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