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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내는 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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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내는 글

새해가 밝았구나. 남자라면 새해를 맞으면서 반드시 그 마음가짐이나 행동거지를 새롭게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젊은 날에는 새해를 맞을 때마다 꼭 한 해 공부 과정을 계획해 보았었다. 예를 들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글을 뽑아 적어 두어야겠다는 식으로 계획을 세워 놓고 꼭 그렇게 실천하곤 했다. 왕왕 몇 개월이 못 가서 착오가 생겨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아무튼 좋은 일을 행하고자 했던 생각이나 발전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지지 않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 공부에 대해서 무수히 많은 글과 편지를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너희는 아직 경전이나 예악(禮樂)에서 하나도 질문을 해 오지 않고 역사책에 관한 논리도 보여 주지 않고 있으니 어찌된 셈이냐? 너희들은 내 이야기를 그렇게까지 경시한단 말이냐? 내가 밤낮으로 초조하게 근심하며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너희들의 뼈가 점점 굳어지고 신체만 굳세어져 한두 해 더 지나 버리면 완전히 나의 뜻을 저버리고 야만적인 생활에 빠져 버리고 말 것이라는 초조감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그런 걱정 때문에 병이 나서 여름 내내 앓아 허송했고, 10월 이후에도 계속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마음 한가운데에 반 조각의 정성이라도 있다면 아무리 난리 속이라도 반드시 진보할 점이 있는 법인데 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 포기를 하려 드느냐, 영원히 폐족(廢族)으로 지내 버릴 작정이냐?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이 막혔다 하더라도 성인이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문장가가 되는 일이나 박식한 선비가 되는 일은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꺼릴 것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과거 공부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잘못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사고하는 능력을 개발해 인정이나 물태의 진실과 거짓을 옳게 판단할 수 있는 장점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선배로서 율곡과 같은 분은 어버이를 일찍 여의었음에도 그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 얼마 안 있다 마침내 지극한 도를 깨우쳤고, 우리 집안의 선조 우담 선생께서도 세상 사람들의 배척을 받고서 더욱 덕이 높아졌다. 성호 선생께서도 난리를 당한 집안에서 태어나 이름난 유학자가 되었으니, 이 분들 모두가 당대의 고관 대작 집안의 자제들이 미칠 수 없는 훌륭한 업적을 남겼음을 너희들도 일찍부터 들어오지 않았느냐?

폐족에서 재주 있고 걸출한 선비가 많이 나오는 것은, 하늘이 재주 있는 사람들을 폐족에서 태어나게 하여 그 집단에 모범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귀 영화를 얻으려는 마음이 근본 정신을 가리지 않아 깨끗한 마음으로 독서하고 궁리하여 진면목을 바르게 뼛속에다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유배 생활에서 풀려 몇 년 간이라도 너희들과 생활할 수만 있다면 너희들의 몸과 행실을 바르게 잡아 주어 효제를 숭상하고 화목하는 일에 습관 들게 하며 경사를 연구하고 시례를 담론하면서 책을 서가에 진열하고 먹을 만큼만 식량을 비축해 두고, 원포(園圃)에 상마, 소과, 화훼(花卉), 약초 등을 심어 제자리에 가지런히 해 놓고, 그것들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것을 볼 것이다. 마루에 오르고 방에 들면 거문고가 놓여 있고 조촐한 주안상이 차려져 있으며, 붓과 벼루, 책상, 도서들이 품위 있고 깨끗하게 갖추어져 있을 때 마침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 그와 더불어 작은 닭 한 마리에 개천의 생선을 안주 삼아 탁주 한 잔에 맛있는 풋나물을 입에 넣고, 가산의 어려움으로 넉넉치 않더라도 서로 어울려 고금의 일에 정신을 쏟고 흥겹게 산다면 비록 폐족이라 하더라도 판단력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그 삶을 부러워 할 것이다.

요점 정리

작자 : 정약용

형식 : 서간문

성격 : 예시적, 충고적이며 당부하는 글

주제 : 새해를 맞아 두 아들에게 주는 아버지의 당부

이해와 감상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새해를 맞아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벼슬을 할 수 없는 폐족 집안의 아버지로서 느끼는 착잡한 감정이 잘 드러나 있는데, 독서를 통해 집안을 일으키기를 당부하고 있고, 전반부의 글에서는 아들에 대한 질책과 격려가, 후반부에서는 미래의 삶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담고 있는 글로 당시의 시대상과 관련하여 글을 읽으면 훨씬 더 유익하리라 보고, 글쓴이는 학문의 실용적 측면보다는 윤리적·도덕적 수양 측면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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