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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 봄이 드니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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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 봄이 드니

 

강호(자연)에 봄이 찾아오니 깊은 흥이 절로 일어난다.

막걸리를 마시며 노는 시냇가에 싱싱한 물고기가 안주로다.

이 몸이 이렇듯 한가하게 노니는 것도 역시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

강호에 여름이 찾아오니 초당에 있는 이 몸은 할 일이 없다.

신의가 있는 강물결은 보내는 것이 시원한 바람이로다.

이 몸이 이렇듯 시원하게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

강호에 가을이 찾아오니 물고기마다 살이 올라 있다.

작은배에 그물을 싣고 가 물결 따라 흐르게 던져 놓고

이 몸이 이렇듯 소일하며 지내는 것도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

강호에 겨울이 찾아오니 쌓인 눈의 깊이가 한 자가 넘는다.

삿갓을 비스듬히 쓰고 도롱이를 둘러 덧옷을 삼으니

이 몸이 이렇듯 춥지 않게 지내는 것도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

요점 정리

작자 : 맹사성(孟思誠;1360-1438)

연대 : 세종 때

성격 : 풍류적, 낭만적

갈래 : 평시조, 연시조(連時調)

명칭 : 강호가(江湖歌),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사시한정가(四時閒情歌)

구성 : 계절에 따라 한 수씩 노래하였고, 각 수는 '江湖'로 시작하여 '亦君恩이샷다'로 끝을 맺는다.

제재 : 사시(四時)의 강호 생활(江湖生活)

주제 : 유유자적한 강호에서의 삶, 강호에서 자연을즐기며, 임금의 은혜에 감사함.

의의 : 우리 나라 최초의 연시조로 꼽히는 작품이며, 강호가도의 선구로 이후에 이황, 이이의 연시조 작품에 영향을 미쳤고, 조선 건국의 정치적 안정에 대한 찬양과 충의를 고취하는 당시의 시조풍을 따르고 있으며, 매 수마다 반복되고 있는 것이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다.

출전 : 청구영언

내용 연구

 

강호(은사(隱士)가 숨어 사는 시골. 강과 호수. 자연의 대유법)에 봄이 찾아오니 깊은 흥이 절로 일어난다.

막걸리[濁료(탁료) : 막걸리.탁주]를 마시며 노는 시냇가[탁료계변은 막걸리를 마시며 노는 시냇가]에 싱싱한 물고기[錦鱗魚(금린어)가 : 싱싱한 물고기가, 금린어는 쏘가리]가 안주로다.

이 몸이 이렇듯 한가하게 노니는 것도 역시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 - 춘사 - 강호에서 즐기는 봄의 흥취

강호에 여름이 찾아오니 초당[草堂(초당): 은사들이 즐겨 지내던 별채, 초가]에 있는 이 몸은 할 일이 없다.

신의가 있는[有信(유신)한 : 신의가 있는] 강물결[江波(강파) : 강의 물결]은 보내는 것이 시원한 바람이로다.

이 몸이 이렇듯 시원하게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 - 하사 - 초당에서 한가로이 보내는 생활

강호에 가을이 찾아오니 물고기마다 살이 올라 있다.

작은배[ 小挺(소정) :작은 배]에 그물을 싣고 가 물결 따라 흐르게 던져 놓고[흘리띄여 더져 두고 : 흐르게 띄워 던져 두고][小艇(소정)에 그물 시러 흘리 띄여 더뎌 두고, : 작은 배에 그물을 흘려 띄워 던져 두고. 즉, 화자가 어부로 설정되어 있지만,그물을 던져 두는 것은 고기를 잡고자 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종장 둘째 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소일(消日)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으므로 이는 자연과 혼연 일체를 이루고자 하는 심정의 발로로 볼 수 있다]

 

이 몸이 이렇듯 소일하며[소일해옴도 : 소일하게 됨도] 지내는 것도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이 몸이 閒暇(한가)해옴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 이 몸이 한가함도 역시 임금님의 은혜이시도다. 즉, 자연과 더불어 안빈낙도(安貧樂道)와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가운데 임금님의 은혜를 잊지 못하는 신하의 정(情)을 읊은 것이다.이처럼 자연의 찬미와 함께 충의(忠義) 이념을 가미(加味)한 노래를 '강호가도(江湖歌道)'라고 한다.'역(亦)'이란 '전에나 다름없이'라는 의미를 간직하는 것으로 시적 자아는 강호에서 한가롭게 자연을 즐기기 전에도 임금의 은혜를 입었음을 알 수 있다.]. - 추사 - 고기잡이의 한가로운 즐거움

강호에 겨울이 찾아오니 쌓인 눈의 깊이가 한 자[자히 : 한 자가]가 넘는다[남다 : 넘는다. 더 된다].

삿갓을 비스듬히[빗기 : 비스듬히] 쓰고 도롱이[누역 : 도롱이, 띠풀 등으로 엮어 만든 비옷]를 둘러 덧옷을 삼으니

이 몸이 이렇듯 춥지 않게 지내는[칩지 아니해옴도 : 춥지 아니해옴도. 칩다>춥다로 경상도 지방 방언에 아직 남아 있다] 것도 임금님의 은덕이시도다. - 동사 - 눈 쌓인 가운데 안분지족하는 생활

두 작품(강호사시가, 도산12곡)에서 공통으로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서로 다른 시대에 살던 작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점을 발견함으로써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보편적인 가치관을 탐색해 보기 위한 활동이다. '강호(江湖)'라는 것이 자연을 대유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점을 본문의 학습 과정에서 미리 설명해 주어야 한다.

풀이 : 자연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는 연시조의 효시로 알려진 작품으로, 춘하추동 계절별로 한 수씩 모두 4수로 이루어졌다. 자연을 벗삼아 사는 흥취와 함께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내용을 노래했다.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퇴계 이황의 작품이다. 모두 12수로 이루어진 연시조로, 전 육곡의 ‘언지(言志)’와 후 육곡의 ‘언학(言學)’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을 벗삼아 사는 즐거움과 함께 후학(後學)들에게 학문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을 노래했다.

1. 본문에 수록된 '강호사시가'의 두 수에서 각각 읊고 있는 계절은 무엇인지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강호사시가'의 형식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활동이다. 교과서에 인용된 두 수가 모두 '강호에 ∼이 드니'로 시작하여 '역군은이샷다'로 끝난다는 점에 유의하여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한다.

풀이 : 가을과 겨울

2. '도산십이곡'의 [언지 1]에 드러난 화자(話者)의 삶의 태도를 정리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작품에 형상화된 작가의 삶의 태도를 파악해 봄으로써 문학의 가치 지향적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활동이다. 특히 '초야 우생', '천석 고황'이 의미하는 바를 중심으로 삶의 태도를 정리해 보도록 지도한다.

풀이 : 번잡한 속세의 명리(名利)를 떠나 자연을 벗삼아 사는 삶

도우미

- 초야 우생 :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

- 천석 고황 : 자연 속에 살고 싶은 절실한 마음

- 탐구 / 시조의 시대적 가치

시조는 고려 시대에 유교적 이념을 신봉하던 신흥 사대부들에 의해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유교적 가치관은 물론, 남녀간의 사랑, 자연의 아름다움, 소박한 생활의 여유와 멋 등의 다양한 가치관을 다룬 작품들이 지어짐으로써 양반과 평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학 갈래로 폭넓은 사랑을 받아왔다.

- 시조의 내용과 형식의 시대별 변천

시대

작가계층

내용

형식

고려시대

신흥사대부

유교적 이념

평시조

조선전기

양반사대부

유교적 이념, 강호한정

평시조

조선후기,

평민, 여류

남녀간의 사랑, 소박 생활의 여유와 멋

엇시조, 사설시조

현대

다양함

다양한 주제의식

다양한 형식

지도 방법 : 물론 무수히 많은 시조들을 항목화하여 개괄적으로 소개한다는 것 자체에 무리가 따르기는 하지만 반드시 각 시대별로 시조의 내용과 형식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를 개략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이러한 개략적 고찰은 시조가 비록 짧은 형식의 노래이지만, 우리 민족의 가치관을 담아 내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고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사랑받아 온 갈래였다는 점을 확인해 보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강호사시가'와 '도산십이곡'이 조선 전기 양반 사대부들의 가치관을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점도 확인해 보도록 유도한다.

3. '강호사시가'에 드러난 유교적 가치관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파악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작품에 형상화된 가치관을 파악함으로써 문학의 가치 지향적 성격을 확인해 보는 활동이다. '삿갓'과 '누역'으로 표현된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지도하고, '역군은(亦君恩)'에 담겨 있는 가치관에 주목해 보도록 유도한다.

풀이 : 안빈낙도, 군신(君臣)간의 의리

4. '도산십이곡'의 [언학 3]에서 오늘날에도 본받을 만한 가치로 어떤 것이 표현되어 있는지 찾아보자.

지도 방법 : 역시 앞의 활동과 같이 작품 속에 형상화된 가치관을 확인해 보기 위한 활동이다. '언학 3'에서 화자는 '고인(古人)이 녀던 길'을 걷고자 한다. 여기서 '고인이 녀던 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도록 지도한다.

풀이 : 학문에 정진하려는 자세

이해와 감상

 

우리 나라 최초의 연시조로,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이이의 '고산구곡가'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강호에서 자연을 즐기며 임금의 은혜를 생각하는 내용을 춘(春),하(夏),추(秋),동(冬) 4계절로 나누어 각 한 수씩 노래한 연시조로,우리 나라 연시조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다.자연을 즐기며 살아가는 풍류 속에서도 임금의 은혜를 잊지 않는 유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 나라 강호 가도의 줄기를 이루고 있는 내용이며,이 '강호사시가'는 그 전형적인 작품의 하나라 할 것이다.

이해와 감상1

 

국문학사상 최초의 연시조로 알려져 잇는 이 작품은 작가가 만년에 벼슬을 내놓고 고향에 돌아가 한가한 세월을 보내며 자연을 즐기고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내용을 계절에 따라 한 수씩 노래한 작품이다. 각 수는 '江湖(강호)에 ∼이 드니'로 시작하여 '亦君恩(역군은)이샷다'로 끝을 맺고 있으며, 특히 종장 첫 구 둘째 음보에 작가의 생활이 집약되어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적 통일성은 자연의 변함 없는 조화와 임금의 끝없는 은혜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1연에서는 강호에 봄이 찾아와 시냇가에서 싱싱한 물고기를 안주 삼아 탁주를 마시는 흥겹고 한가로운 풍류 생활을, 2연에서는 여름날 한가로운 초당에서 시원한 강 바람을 쐬며 지내는 유유자적한 생활을 노래하고 있다. 3연에서는 가을날 강에 배를 띄어 고기를 잡으며 즐기는 생활을, 4연에서는 눈 내린 겨울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강촌 생활을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즐기고 있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며 유유자적하는 선비의 생활을 읊은 강호가도(江湖歌道)를 수립한 작품으로, 강호에서 자연을 즐기면서도 항상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은 것은 조선 시대의 유교 사상, 충의 사상의 반영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조선조 사대부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이이의 '고산구곡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김윤식외 4인 공저 '문학교과서')

심화 자료

맹사성(孟思誠)

 

1360(공민왕 9)∼1438(세종 20).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자명(自明)·성지(誠之), 호는 동포(東浦)·고불(古佛). 아버지는 고려 수문전제학(修文殿提學) 희도(希道)이며, 최영(崔瑩)의 손서(孫淚)이다. 온양 출신.

1386년(우왕 12)에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춘추관검열(春秋館檢閱)이 되었다. 이어 전의시승(典儀寺丞)·기거랑(起居郎)·사인(舍人)·우헌납(右獻納) 등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수원판관이 되었다가 다시 내직으로 내사사인(內史舍人)이 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뒤 태조 때 예조의랑(禮曹議郎)이 된 이래, 정종 때 간의우산기상시(諫議右散騎常侍)·간의좌산기상시가 되었다. 태종 초에 좌사간의대부(左司諫議大夫)·동부대언(同副代言)·이조참의를 두루 역임하였다. 1407년(태종 7)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이 되어, 진표사(進表使)로 명나라에 가는 세자를 시종관(侍從官)으로서 수행하여 다녀왔다.

1408년 사헌부대사헌이 되어 지평(持平) 박안신(朴安信)과 함께 평양군(平壤君) 조대림(趙大臨:太宗의 딸 慶貞公主의 夫君)을 왕에게 보고하지 않고 잡아다가 고문하였다. 이 일로 태종의 큰 노여움을 사 처형될 뻔했으나 영의정 성석린(成石璘)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하였다.

1411년 다시 기용되어 판충주목사로 임명되었다. 그러자 예조에서 관습도감제조(慣習都監提調)인 그가 음률(音律)에 정통하므로 선왕(先王)의 음악을 복구하기 위하여 서울에 머물게 하여 바른 음악을 가르치도록 건의하였다. 그 이듬해에도 그가 풍해도도관찰사(淵海道都觀察使)에 임명되자, 영의정 하륜(河崙)이 음악에 밝은 그를 서울에 머물게 하여 악공(樂工)을 가르치도록 아뢰었다.

 

1416년 이조참판에 이어 예조판서가 되었다. 이듬해 생원시에 시관(試官)이 되어 권채(權採) 등 100인을 뽑았으며, 왕이 친림한 문과 복시에 독권관(讀卷官)이 되었다. 그 해 노부(老父)의 병간호를 위해 사직을 원했으나 윤허되지 않고, 역마(驛馬)와 약을 하사받았다.

이어 호조판서가 되어서도 고향의 노부를 위해 다시 사직을 원했다. 그러나 왕은 그를 충청도도관찰사로 삼아 노부를 봉양하게 하였다. 1418년 공조판서가 되어 또다시 노부의 병간호를 위해 사직하려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419년(세종 1) 이조판서와 예문관대제학이 되고, 이듬해에 다시 이조판서가 되었다. 1421년 의정부찬성사(議政府贊成事)를 역임하고 1427년에 우의정이 되었다. 그는 우의정 재임시에 ≪태종실록 太宗實錄≫ 편찬 감관사(監館事)로서 감수하였다.

≪태종실록≫의 편찬이 완료되자 세종이 한번 보고자 하였다. 그러자 그가 “왕이 실록을 보고 고치면 반드시 후세에 이를 본받게 되어 사관(史官)이 두려워서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 하고 반대하니 세종이 이에 따랐다.

1432년 좌의정에 오르고 1435년 나이가 많아서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나라에 중요한 정사(政事)가 있으면 반드시 그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사람됨이 소탈하고 조용하며 엄하지 않았다. 비록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반드시 공복(公服)을 갖추고 대문 밖에 나아가 맞아들여 윗자리에 앉히고, 돌아갈 때에도 공손하게 배웅하여 손님이 말을 탄 뒤에야 들어왔다.

효성이 지극하고 청백하여 살림살이를 일삼지 않고 식량은 늘 녹미(祿米 : 봉급으로 받은 쌀)로 하였다. 출입할 때에는 소〔牛〕 타기를 좋아하여 보는 이들이 그가 재상인 줄을 알지 못하였다. 영의정 성석린은 선배로서 그의 집 가까이에 살았는데, 매 번 그의 집을 오고 갈 때는 그 집 앞에서 말을 내려 지나갔다.

그는 음악에 조예가 있어 스스로 악기를 만들어 즐겼다. 품성이 어질고 부드러웠으나, 조정의 중요한 정사를 논의할 때에는 과단성이 있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太祖實錄, 太宗實錄, 世宗實錄, 國朝榜目, 海東名臣錄, 國朝名臣錄, 燃藜室記述, 海東雜錄, 大東奇聞.(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호가도

시가문학에서는 자연을 예찬하고 자연에 귀의하여 생활하는 것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사대부들이 창작하였다.

이러한 특징적인 현상을 조윤제(趙潤濟)는 강호가도로 규정하면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삶의 방식에서 그 형성 원인을 찾았다. 사화와 당쟁의 와중에서 벼슬길로 나서 자칫 거기에 휩쓸려 일신과 가문을 위기로 몰고 가기보다는 고향의 자연에 귀의하여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는 것이 보다 안전한 삶의 방식이었다. 이들에게는 사유지가 이미 확보되어 있었고, 향리에서도 토지나 명망을 기초로 한 독점적 지위가 가능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는 해결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을 예찬하는 강호가도의 구현은 도학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문학관 ·세계관과도 합치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영남출신의 문인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현보(李賢輔)를 꼽을 수 있다. 이현보는 영남사림으로서는 비교적 일찍 환로에 나서서 경상감사 ·형조참판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는데, 줄곧 자연으로 귀의할 것을 꿈꾸다가 마침내 귀향하여 그 기쁨을 《농암가(聾巖歌)》와 같은 시조로 노래하였다.

그 후 이황(李滉)이 여러 편의 시조를 통하여 이현보가 표명한 자연에의 귀의를 이어갔고, 나아가 도학적인 이념과 교화 의도까지 노래에 포함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권호문(權好文)을 비롯한 퇴계 문하의 제자들에게 이어져 영남가단을 형성하였다. 그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 벼슬을 사직한 치사한객(致仕閑客)이 그 유유자적한 심정을 자연에 담아 노래한 작품들도 강호가도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맹사성(孟思誠)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가 대표적인데, 이 작품은 강호자연마저도 군주의 통치가 행해지는 공간으로 규정함으로써 세계와의 단절이 아닌 화합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현보의 《농암가》와는 차이가 있다.(출처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연시조(連時調)

시조 형태의 하나로 '연형(連形) 시조'라고도 하며 한 제목 아래 두 수 이상이 엮어진 시조를 말한다.맹사성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박인로(朴仁老)의 '입암가(立巖歌)',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등이 연시조에 속한다. 이 연시조는 현대에 와서 더욱 많아졌다.

도롱이

도롱이 : 짚, 띠 따위로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 예전에 주로 농촌에서 일할 때 비가 오면 사용하던 것으로 안쪽은 엮고 겉은 줄거리로 드리워 끝이 너털너털하게 만든다. 비슷한 말로 녹사의, 발석, 사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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