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린 사람 / 해설 / 기형도
by 송화은율홀린 사람 - 기형도
사회자가 외쳤다
여기 일생 동안 이웃을 위해 산 분이 계시다
이웃의 슬픔은 이분의 슬픔이었고
이분의 슬픔은 이글거리는 빛이었다
사회자는 하늘을 걸고 맹세했다
이분은 자신을 위해 푸성귀 하나 심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도 자신을 위해 흘리지 않았다
사회자는 흐느꼈다
보라, 이분은 당신들을 위해 청춘을 버렸다
당신들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그분은 일어서서 흐느끼는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때 누군가 그분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인가
그분은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유령인가, 목소리가 물었다.
저 미치광이를 끌어내, 사회자가 소리쳤다
<후략>
요점 정리
지은이 : 기형도
성격 : 비판적, 풍자적, 현실 참여적, 극적
구성 :
사회자 | 부정적인 권력에 대해 미화하고 은폐함 | |
이분(그분) | 누군가의 목소리 | |
‘신’처럼 완벽한 인물로 미화되고, 실체가 불분명한 권력층 | 부정적 권력의 실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인물 | |
군중들 | 비판적 사고를 상실한 채 맹목적으로 추종함 |
1행~4행 : 권력가에 대한 옹호
5행~7행 : 권력가에 대한 찬양
8~10행 : 권력가에 대한 아부
11행~13행 : 군중의 환영을 받는 권력가
14행~ 16행 : 권력가의 실체 확인을 요구하는 ‘목소리’
17행~22행 : 비판 정신의 실종과 우매한 대중의 소리
주제 : 지배층의 기만적 정치 형태와 대중들의 우매한 추종에 대한 비판
표현 : 극적 상황을 제시하여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으며, 우의적 방식으로 모순되고 부정적인 현실을 비판하고 고발함.
출전 : 입속의 검은 잎(1989)
내용 연구
사회자[군중들을 홀리는 사람 / 지배자를 찬양하는 선동가]가 외쳤다[사회자의 ‘그분(이분)’에 대한 예찬의 정도가 점층적으로 심화됨]
여기 일생 동안 이웃을 위해 산 분[선동가를 이용해 대중을 속이는 지배자]이 계시다
이웃의 슬픔은 이분의 슬픔이었고
이분의 슬픔은 이글거리는 빛[이웃의 슬픔에 대한 깊은 공감 – 선동가의 미사여구]이었다
사회자는 하늘[권위의 상징]을 걸고 맹세했다[거짓 맹세에 악용됨]
이분은 자신을 위해 푸성귀[사소한 것 / 대유법] 하나 심지 않았다[사리사욕(私利私慾)에 관심을 두지 않음]
눈물 한 방울도[지극히 적은 양] 자신을 위해 흘리지 않았다[이타적(利他的)인 삶의 자세 – 속뜻은 위선적임]
사회자[군중들을 홀리는 인물이면서 ‘그분(이분)’에게 홀린 인물]는 흐느꼈다[군중들의 공감을 유도하기 위한 거짓 울음]
보라, 이분은 당신들을 위해 청춘을 버렸다[희생적인 자세]
당신들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 그분(이분)을 찬양하는 사회자
그분은 일어서서 흐느끼는 사회자를 제지했다[겸손한 척 위선적 행동을 하는 그분(이분)의 모습 / 선동가를 이용하여 군중을 속이는 지배자]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사회자의 말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군중들 = 홀린 사람]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 선동에 넘어간 군중들의 환호
그때 누군가[깨어 있는 민중, 비판적인 지식인] 그분[‘신’처럼 완벽한 인물로 미화됨, ‘유령’처럼 실체가 불분명한 권력층을 상징]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인가[지배자에 대한 의심의 목소리]
그분은 목소리[사회자에게 홀려 ‘그분’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군중들과는 달리 ‘그분’의 실체에 대해 의구심을 지니는 인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그분(이분)’을 의심하는 ‘누군가’의 질문
당신은 유령인가[지배자에 대한 의심의 목소리], 목소리가 물었다.
저 미치광이[비판적 목소리를 미친 소리로 매도함]를 끌어내, 사회자가 소리쳤다[우매한 군중들의 분노 / 무비판적 태도]
사내들은 달려갔고 분노한 여인들은 날뛰었다[이성을 상실]
그분은 성난 사회자를 제지했다[관용적인 척하는 모습으로 가장함]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그분(이분)’의 위선적인 행동에 기만당하는 어리석은 대중]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이미 홀린 사내들과 여인들은 비판 의식을 상실한 채 사회자의 말을 맹목적으로 추종함]
그분의 답변은 군중[fandom]들의 아우성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비판력을 상실한 무지한 대중들에 의해 권력의 실체가 은폐되는 현실] - ‘그분(이분)’의 제자와 군중들의 감동
이해와 감상
화자가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채, 연설회장의 상황을 관찰하여 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제목인 ‘홀린 사람’이라는 건 지배층의 기만적 행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우매한 군중을 말하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를 반복적으로 진술하면서 군중의 행동에 주목하여 그들을 향한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 속에서 화자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권력층인 ‘이 분(그분)’과 이에 대한 ‘사회자’, ‘군중들’, ‘목소리’ 등의 행동과 태도를 관찰하여 전달하면서 권력과 이에 아부하는 세력, 무비판적인 대중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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