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 최시한
작가 : 최시한
갈래 : 단편 소설, 교육소설
성격 : 사회 비판적, 성찰적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과 1인칭 주인공 시점이 혼재
문체 : 일기 형식을 차용한 고백체
배경 : 1980년대의 한 고등학교 교실
구성 : 일기 형식 - 시간에 의한 순차식 구성
발단·전개 : 7월 1일부터 7월 8일까지
위기 : 7월 9일부터 7월 10일까지
절정 : 7월 11일부터 7월 13일까지
결말 : 7월 14일
주제 : 사춘기 자아의 고뇌와 정신적 성장, 현실에 대해 인식해 가는 사춘기 소년들의 정신적 성장, '허생전'을 해석하는 두 가지 관점을 통한 삶과 사회 읽기
등장인물 :
나 : 책을 많이 읽고 글쓰기를 잘 하는 학생으로, 매일 일기를 쓰면서 현실에 대한 고민과 회의를 한다. 현실의 문제점을 인식하나 적극적으로 행동하지는 못하는 소시민적 인물을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마지막에 윤수에게 달려가는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윤수 : 말을 더듬고 소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 '왜냐선생님'의 영향으로 자기 주관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성격으로 바뀐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권위와 압박의 상징인 책상 위에 올라가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는 '토드'와 비슷한 인물이다. 또한, 허생이 숨어버린 이유는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마찬가지로 '왜냐선생님'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철 : 당대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 기준에 순응하는 학생으로 '행동'을 강조하는 '왜냐 선생님'과 대립한다. 동철은 산업화 시대 경제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당대의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인물로, 고전소설 '허생전'의 허생의 매점매석 행위에 중점을 두고 허생을 자본주의적인 인물로 평가하며, '왜냐 선생님'에 대해서도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므로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왜냐선생님 : 학생들에게 자율적인 판단과 창의적인 해석을 강조하는 교육관을 지닌 인물로 경제 논리에 의해 억압되어 왔던 가치들을 복원하고 부조리한 사회에 당당히 맞서 싸우려는 민주화 인사들을 상징하는 인물로 지식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전교조에 가입했다가 학교에서 해직된다.
줄거리 : '나'는 고등 학생이다. 글쓰기를 좋아하여 문예반에도 들었다. 사춘기 소년답게 옆 반의 이경미라는 여학생을 K라고 제멋대로 명명(命名)하여 이상화시켜 놓고 짝사랑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입시 체제로 학생들을 몰아가며 '자율 학습'을 시키는 학교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또 말을 더듬고 몸이 약해 곧잘 놀림감이 되는 윤수를 이해하고 돕는 따뜻한 마음씨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국어 시간에 '허생전'을 배우게 되어, '왜냐 선생님'은 줄거리를 잡아오라는 숙제를 내준다. 그런데 다음 국어 시간에 왜냐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과 싸우느라고 못 들어온다. 또 다음 시간에 왜냐 선생님은 '왜냐'고 캐묻는 특유의 방식으로 학생들을 생각하게 만들면서 '허생전'의 내용을 분석한다. 그 다음 시간에 왜냐 선생님은 또 못 들어온다. 전교조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서 왜냐 선생님을 비난하거나 옹호하고, '나'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옹호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 다음 시간에는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오셔서 또 수업이 계속된다. 허생의 성격을 분석하면서 뛰어난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선비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지적이다. 수업 중에 낯선 사람들이 왜냐 선생님의 수업을 감시한다. 그 다음 국어 시간, 왜냐 선생님은 수업에 들어오지 못한다. 낯선 사람들이 교문을 지키면서 전교조에 가입한 선생님들의 출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 감독 하에 자습을 하던 우리는 운동장에서 왜냐 선생님을 옹호하는 종이쪽지를 들고 무언의 시위를 하다가 땅바닥에 누워버리는 윤수를 발견한다. 무력감을 느끼는 중에 운동장에서 혼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윤수가 있는 운동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특징 : 일기 형식을 취하고 있음
의의 : 박지원의 고전 소설 '허생전'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당대의 전교조 문제를 조명하면서 한 사회에서의 지식들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인간의 존재는 개인의 창조적 행동을 통해 극복되고 구성되는 것임을 밝히고 있는 점에서 성장하는 자아로서의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삶의 지혜를 보여주고 있다.
출전 : 문예중앙(1992)
일기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주인공 선재, 말을 심하게 더듬어 급우들로부터 놀림을 당하는 윤수, 성적은 상위권이지만 기성 세대의 논리를 마치 자신의 생각인 양 늘어놓는 동철, 교원 노조 가담 교사이면서 수업 시간에 '왜냐?'라는 질문을 자주 하는 왜냐 선생님 등이 있다. 국어 시간에 박지원의 '허생전'을 배우면서 선재와 친구들은 문학 작품의 의미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능동적인 참여에 의해서 재구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이 작품에는 토론식 수업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 만큼, 주입식 교육이나 암기식 교육과는 달리 문학 작품을 다양하게 읽고 즐겁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아울러 전교조 문제로 인한 교사들의 해직이라는 사회적 사건을 다루고도 있다. 다만 교사나 교육 당국자 등의 전교조 문제 관계 당사자들의 시각에서가 아니라 자의식이 강하고 주변 상황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심각하게 고민할 줄도 아는, 한 고등학교 학생의 시각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해와 감상1
최시한은 인간과 제도 사이에서 발생하는 권력의 문제에 좀더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5편의 연작소설이 실려 있는 최시한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문학과지성사)에서는 '나'(선재)를 중심으로 학교 자체의 권력이 학생들에게 작동하는 모양들이 주로 직조되고 있다. 이런 권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이가 바로 “철학자”라는 별명이 붙은 '나'이다. 이 별명은 시험에도 안 나오는 문제에 골몰하는 아이라는 의미도 된다. 그래서 '나'는 노트 필기는 하지 않으면서도 편지나 일기만큼은 반드시 쓴다. 고백은 곧 성찰이고, 성찰이 곧 철학이니까. 하지만 ‘질서를 지키자’라는 종류의 글은 쓰기 싫어한다. “학생들한테 그렇게 시키라고 하면 물불 안 가리고 그래도 시키는 질서. 글을 짓는 건 수업이 아니고 교과서의 글을 읽어 외우는 것만이 수업인 질서. 아니 오는 대답이 아니고 예만이 대답인 질서. 그런 질서들의 질서. 그런 질서의 질서의 질서”("구름 그림자", 26쪽)만 강요하는 것이 그런 글이기 때문이다.
이런 질서만 강요하는 것은 학교에 ‘왜냐 선생’ 같은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인물이 있어도 학교가 그 밖으로 내쫓기 때문이다. ‘왜냐’라는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면서 주체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요하는 왜냐 선생의 수업방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교재는 ‘허생전’이다.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에서 허생전 읽기는 책 읽기가 인간의 마음 읽기이며, 시대나 사회 읽기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왜냐 선생이 허생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허생이 살았던 과거의 삶이 아닌 현재의 삶이다. 허생은 자기가 선비 또는 사대부라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리고 그런 의식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은 패배하고 만 인물이었다. 당시의 사회를 비판했지만 그런 사회를 바로잡으려는 적극적인 실천의지가 결여되었던 인물이 바로 허생이라는 것이 왜냐 선생의 해석이다. 이를 통해 왜냐 선생은 전교조에 가입한 자신의 의지를 다시 확인함과 동시에 학생들에게도 실천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강조한다.
그러나 허생을 통해 당시의 사회 상황에 대해 접근하려던 왜냐 선생의 수업시간은 계속되지 못한다.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보수적이고 순응적인 교사가 이끄는 주입식 수업이기 때문이다. 이런 학교는 학교가 아니라 병원이나 군대, 국가와 같다. 보호나 질서라는 미명 하에 억압이나 폭력이 저질러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학교가 “꼭두각시놀음하는 극장”("허생전을 배우는 시간", 46쪽)이거나 “수용소나 경마장”("섬에서 지낸 여름", 203쪽)과 같다. 그곳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라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를 가르쳐주는 곳이다. 그래서 학교의 권력은 부정이나 금지에서 발생한다.
이때의 학교의 모습은 푸코 식으로 말하자면 한 지점에서 모든 내부가 환히 보이는 원형 감옥인 파놉티콘(Panopticon)과 유사하다. 보이지 않는 규율에 의해 감시 받고 있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스스로 규율을 지키게 되는 곳이 바로 학교이기 때문이다. 이런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해방을 가져오는 수단이 아니라 감시나 구속, 처벌의 도구에 해당한다. 비이성적이거나 눈에 보이는 권력은 차라리 덜 무섭다. 이성적이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해 조정당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권력을 싸워야 할 적이 아니라 믿음직한 동지로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모두 본래부터 아름다운 존재이기에 이런 폭력에 대해 작은 반란이나 반항을 시도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가장 강하게 연상시키는 "반성문을 쓰는 시간"에서 ‘나’를 비롯한 친구들이 경찰의 감시를 받는 반체제 인사의 집에서 축제 혹은 놀이판을 벌임으로써 얻고 싶었던 것은 음악과 춤, 명상이나 만남 등을 통해 서로 하나가 되는 체험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온집회로 규정되면서 무기정학이나 반성문 쓰기라는 통제나 제재를 부른다. 복종이나 순응만을 원하는 학교 사회의 권력에 도전하면서 그 권력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런 권력의 대표적인 희생자가 반란 때문에 학교로부터 쫓겨난 윤수이다. 왜냐 선생이 학교에서 쫓겨날 때 유일하게 침묵 시위를 했던 윤수에게는 생물 시간에 배우는 적자생존의 원리가 자연의 조화가 아닌 이기고 지는 살벌한 경쟁의 문제로 파악된다. 그래서 그가 고3 선배들의 대입 합격을 기원하는 기원의 밤에서 더듬거리며 한 말, “우, 우, 우리는 마, 마라톤 선수, 선수가 아닙니다. 모, 모두 승리, 승리하면 누가, 패, 패배합니까?”("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151쪽)는 아름다웠던 아이들이 모두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경쟁과 이기심, 규율의 문제를 흠집 내는 도발적인 언어에 속한다.
이런 상황이기에 "섬에서 지낸 여름"에서 윤수가 찾아 떠나는 “두레학교”라는 곳이 의미 깊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윤수가 “대망 아카데미”라는 스파르타식 교육을 내세우는 학원에서 뛰쳐나와 자유와 상호 이해가 존중되는 곳을 향해 떠나는 결말이 절실하게 느껴지면서도 위험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왜 모든 좋은 것은 그토록 요원하게만 느껴질까. 왜 결국에는 그런 이상의 실현 가능성이나 희망에 대해 의심하거나 회의를 품어야만 할까. 그것이 이 시대의 소설들을 읽는 독자의 슬픔이다. 진부하고도 원론적일 수도 있는 이 이야기가 지금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학교 자체가 여전히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학교에는 학생이 없다. <김미현 /'고착의 글쓰기와 내출혈의 문학'(문학동네 1997년 봄호) 에서>
최시한 :
1982년 <우리 세대의 문학> 1집에 <낙타의 겨울>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음.1952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서강대 국어국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경상대 사범대학 국어국문교육과 교수를 역임하고, 2006년 현재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낙타의 겨울>,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고치고 더한 수필로 배우는 글읽기>, <가정소설연구>, <소설의 해석과 교육> 등이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 -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의 후속편으로 전편의 일기 기록자인 '나'가 '시위사건' 이후의 윤수의 행적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전편과 구별되는 것은 전편에서 동조적 방관자였던 '나'가 관찰자의 입장을 탈피하고 윤수의 고뇌와 행위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 이는 둘의 관계를 더 이상 관찰자와 관찰 대상으로서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융화적인 일체의 관계로 관계의 질을 전환시킨다는 점에서 전작과는 달리 우리 사회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허생전
조선 후기에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한문 단편소설. 작자의 문집인 ≪연암집 燕巖集≫ 별집(朴榮喆本, 1932)의 ≪열하일기 熱河日記≫ 중 〈옥갑야화 玉匣夜話〉에 수록되어 있다. 이가원(李家源) 소장의 일재본(一齋本) 필사본에는 〈진덕재야화 進德齋夜話〉에 들어 있다. 두 이본의 내용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후지(後識)는 전혀 다르다.
〈옥갑야화〉는 작자 박지원이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옥갑에 들러 여러 비장(裨將)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적은 것이다. 〈허생전〉은 변승업(卞承業)의 할아버지인 윤영(尹映)에게서 들은 변승업의 치부 유래를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삽입되어 있다. 본디 제목 없이 편의상 〈허생〉 또는 〈허생전〉이라 부른다. 〈옥갑야화〉 전체를 한 편의 작품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허생전〉을 지은 연대는 분명하지 않다. 박지원이가 중국에 다녀온 것이 1780년(정조 4)이고, ≪열하일기≫를 다시 기술한 것이 1793년이므로 그 사이에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덕재야화〉의 후지로 미루어 1780년 이전의 4, 5년 사이에 쓰여졌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허생은 남산 아래 묵적골의 오막살이집에 살고 있었다. 그는 독서를 좋아하였으나 몹시 가난하였다. 아내가 삯바느질을 하여 살림을 꾸려나갔다. 굶주리다 못한 아내가 푸념을 하며 과거도 보지 않으면서 책은 무엇 때문에 읽으며, 장사 밑천이 없으면 도둑질이라도 못하느냐고 대든다. 허생은 책을 덮고 탄식하며 문을 나선다.
허생은 한양에서 제일 부자라는 변씨를 찾아가 돈 만 냥을 꾸어 가지고 안성에 내려가 과일장사를 하여 폭리를 얻는다. 그리고 제주도에 들어가 말총장사를 하여 많은 돈을 번다. 그 뒤에 어느 사공의 안내를 받아 무인도 하나를 얻었다.
허생은 변산에 있는 도둑들을 설득하여 각기 소 한 필, 여자 한 사람씩을 데려오게 하고 그들과 무인도에 들어가 농사를 짓는다. 3년 동안 거두어들인 농산물을 흉년이 든 나가사키(長崎 장기)에 팔아 백만 금을 얻게 된다.
그는 외부로 통행할 배를 불태우고 50만금은 바다에 던져버린 뒤에 글 아는 사람을 가려 함께 본토로 돌아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남은 돈 십만 금을 변씨에게 갚는다.
변씨로부터 허생의 이야기를 들은 이완(李浣)대장이 변씨를 데리고 허생을 찾는다. 이완이 나라에서 인재를 구하는 뜻을 이야기하자 허생은 “내가 와룡선생을 천거할 테니 임금께 아뢰어 삼고초려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종실의 딸들을 명나라 후손에게 시집보내고 훈척(勳戚 : 나라에 훈공이 있는 임금의 친척) 귀가의 세력을 빼앗겠느냐?”, “우수한 자제들을 가려 머리를 깎고 호복을 입혀, 선비들은 유학하게 하고 소인들은 강남에 장사하게 하여 그들의 허실을 정탐하고 그곳의 호걸들과 결탁하여 천하를 뒤엎고 국치를 설욕할 계책을 꾸미겠느냐?”고 묻는다.
이완은 이 세 가지 물음에 모두 어렵다고 한다. 허생은 “나라의 신신(信臣)이라는 게 고작 이 꼴이냐!”고 분을 참지 못하여 칼을 찾아 찌르려 하니 이완은 달아난다. 이튿날에 이완이 다시 그를 찾아갔으나 이미 자취를 감추고 집은 비어 있었다.
〈허생전〉은 박지원의 실학적 경륜을 볼 수 있다. ‘남한설치(南漢雪恥)’라는 국민감정을 부채질하여 ‘북벌’이란 허울좋은 구호를 내걸고, 국민 모두의 관심을 이에 집중시켜, 자체 안의 병리에 눈감아 버리게 한 당대 위정자의 무능과 허위를 꼬집어 풍자한 문제작이다.
허생이 이완에게 제시한 인재등용, 훈척들의 추방 및 명나라 후예와의 결탁, 유학(留學)과 무역 등의 시사삼난(時事三難)의 단편적인 내용을 묶어 작품의 절정을 삼고 있다. 그럼으로써 무능한 북벌론자를 통매(몹시 꾸짖음)하고, 북학론(北學論)을 주장한 수법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허생전〉은 박지원 스스로가 윤영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옮긴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민담(民譚)을 소설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희준(李羲準)의 ≪계서야담 溪西野譚≫에도 이 작품과 흡사한 내용의 허생 이야기가 실려 있다. 또 실존하였던 인물 허호(許鎬)의 일이 허생과 비슷하다.
그러나 〈허생전〉의 후지 두 편의 내용이 서로 다르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윤영이라는 인물의 정체가 애매하다. 심지어는 허생의 성인 허(許)조차 부인되고 있다. 박지원이 자신의 작품임을 숨겨서 당대의 사람들의 비난을 모면하려 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허생전〉은 지난날의 전기소설(傳奇小說)과는 달리 이 소설은 사회의 병리를 통찰하고 그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할 열정을 가졌던 이상주의자 허생을 창조하였다는 점에서 한국소설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燕巖集, 燕巖小說硏究(李家源, 乙酉文化社, 1965), 韓國小說硏究(李在秀, 宣明文化社, 1969), 許生傳의 所謂 時事三難硏究(金鉉龍, 국어국문학 58·59·60합집호, 1972), 實學의 社會觀과 漢文學(李佑成, 韓國思想大系, 成均館大學校 大東文化硏究院, 1973), 許生傳小考(黃浿江, 국어국문학 62·63호, 1973).[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