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목넘이 마을의 개 / 해설/ 황순원

by 송화은율
반응형

목넘이 마을의 개 / 황순원


 지은이 : 황순원

 갈래 : 단편소설

 배경 : 시간(일제 강점기). 공간(평안도 어느 산간 목넘이 마을, 여기서 '목'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중요한 통로의 좁은 곳), 사상적 배경 : 휴머니즘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결말 - 에필로그 : 액자의 바깥 부분은 '나'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주인공격인 신둥이와 간난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일인칭 관찰자 시점)

 문체 : 간결체. 담화체. 설화체(서술적 진술의 이야기체)

 성격 : 암시적, 설화적, 사실적, 우화적

 표현 : 묘사나 대화의 사용을 절제하고 사실 전달에 충실하며, 지방 사투리의 사용은 지역적 특성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작품의 사실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진다.

 구성 : 액자 구성(내화는 순행적 구성, 단순 구성)

도입(프롤로그) 액자 - 배경 : 목넘이 마을에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적잖은 서북간도 이사꾼들이 들러 지나가는 시공간적 배경이 나타남.

액자부 - 주제와 관계된 중심 이야기

발단 : 목넘이 마을에 신둥이가 나타남.

전개 : 신둥이가 큰 동장네 검둥이와 작은 동장네 바둑이의 구유를 핥음.

위기 : 마을 사람들이 신둥이를 미친개로 생각하고 잡아 죽이려고 함.

절정 : 신둥이가 홀몸이 아닌 것을 알고 간난이 할아버지가 신둥이를 도와줌.

결말 : 간난이 할아버지가 신둥이의 새끼들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줌.

결말(에필로그) 액자 - 구비(口碑) 전승되어 온 이야기를 소설화하였음을 밝힘, '나'가 중학 2, 3년 시절 여름 때 외가에 있는 목넘이 마을에 갔을 때 전해 들었다는 점과 구비(口碑) 전승되어 온 이야기를 소설화하였음을 밝힘.

 대립 구도 의미 : '신둥이'와 '마을 사람들'의 대립 구도를 통해 마을 사람들의 박해를 피해 가면서 끝까지 생명력을 이어가는 '신둥이'를 통해 우리 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제재 : 마을에 흘러 들어온 암캐 신둥이

 주제 : 생명의 강인함과 생명에 대한 외경심(畏敬心). 한민족의 강인한 생명력과 끈기

 

 등장 인물 :

나 : 액자 외부의 화자로 간난이 할아버지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전해 주는 서술자이다.

간난이 할아버지 : 따뜻한 인간성을 지닌 인물로, 신둥이를 이해하는 유일한 인물로서 생명에 대한 외경감을 보여 준다. 사건의 전달자이기도 하지만, 화해와 조화를 이끄는 인물이다.

큰 동장, 작은 동장 : 신둥이를 핍박하고 죽이려 하는 인물. 민족에게 고난을 주는 요인으로 폭압적 존재의 상징으로 시대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일제의 폭력성을 상징한다.

신둥이 개 : 주인을 잃고 마을에 흘러 들어와 모진 박해를 받지만 자신의 몸을 보호하여 종족을 남겨 대를 이음으로써 한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암시하고, 생명의 외경성(畏敬性)을 보여주는 존재이자, 백의민족의 상징으로 황토에 물들고 있는 모습은 백의 민족의 순수함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을 암시함.

 

 신둥이와 우리의 역사

 의의 : 마을 사람들에 의해 죽을 위기에 처한 개 '신둥이'와 그 개를 도망치게 도와준 한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민족의 수난(受難)을 암시하는 한편, 휴머니즘을 통해서 고난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를 다시 '나'가 전해주는 액자식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줄거리 : 어디를 가려도 목을 넘어야 했다. 남쪽만은 꽤 길게 굽이 돈 골짜기를 이루고 있지만, 결국 동서남북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어디를 가려도 산목을 넘어야만 했다. 그래 이름지어 목넘이 마을이라 불렀다. 이 목넘이 마을에 한 시절 이른봄으로부터 늦가을까지 적잖은 서북간도 이사꾼이 들러 지나갔다. 목넘이 마을이란, 어느 곳으로 가려 해도 건너야 하는 마을의 이름이다. 서북간도로 유랑 가는 이사꾼들이 들러 물도 마시고 발도 씻고 가는 목넘이 마을에, 어느 날, 황토에 물들어 누렇게 되다시피 한 신둥이(흰둥이) 한 마리가 흘러 들어온다.

 

신둥이는 몸이 지저분하고 다리까지 절었으며 유랑인들이 끌고 가다가 버린 것으로 보인다. 이 개는 마을 방앗간과 동장네 집을 돌아다니며 겨와 먹다 남긴 밥을 얻어먹으며 힘을 추스른다. 사람들에 의해 신둥이는 더 이상 마을에 있지 못하고 산에 숨었다가 밤에만 내려왔다.

 

새벽에 신둥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미친개라 하여 잡으려 하나 도망친다. 신둥이가 마을에서 자치를 감춘 것과 함께 동장네 개 세 마리가 사라졌다가 며칠 뒤에 마을로 돌아온다. 후에 동장 형제들은 동네 개들이 그 신둥이 개와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잡아먹는다. 얼마 뒤 새끼를 밴 신둥이가 마을 방앗간에서 잤다는 소문이 퍼진다. 다시 신둥이가 나타나자 마을사람들이 신둥이를 잡으려 하나 간난이 할아버지가 신둥이가 굶기는 하였으나 미친개가 아니라고 믿고 살려준다. 할아버지는 이 개가 새끼를 밴 것을 알고 차마 죽이지 못하고 종아리 사이로 빠져나가게 한 것이다.

 

얼마 후, 간난이 할아버지는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신둥이의 새끼들을 만나 보살펴 주고, 먹이도 갖다가 주고 하면서 기른다. 어느 정도 자라게 되자 강아지들을 동네 사람들 모르게 하나하나 데려와 이웃에 나누어준다. 그래서 마을의 개들은 신둥이의 피를 이어받게 된다. 이 이야기는 내가 중학 이삼 학년 때 목넘이 마을에 가서 들은 이야기이다. 그 때는 아주 흰 서릿발이 내린 그 텁석부리 속에서 미소를 띄우는 것이었다. 내가, 그 신둥이 개는 그 뒤에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간난이 할아버지는 금세 미소를 거두며 그 해 첫 겨울 어느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실 그 후로는 통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연한 것을 물어 보았구나 했다.(교과서 수록분 : 신둥이가 고난을 겪고 후손을 잇게 된 사연을 정리한 '결말' 부분.)

 

 줄거리 1 : 만주 이주의 길목인 목넘이 마을에 어느 날 신둥이 한 마리가 흘러 들어온다. 마을 사람들이 이 개를 미친개라고 여겨 잡으려 하자 신둥이는 도망쳐 산에 숨고 밤에만 먹이를 찾아 내려온다. 간난이 할아버지만은 신둥이가 굶주리긴 했으나 미친개는 아니라고 믿는다. 마을 사람들은 동네 개들이 신둥이를 따라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자 동네 개들이 미친개와 어울려 미쳤다며, 초복날 다 잡아 먹어 버린다. 신둥이가 다시 마을에 나타나자 마을 사람들이 잡아서 보양제로 먹으려 하는데, 간난이 할아버지는 개가 새끼를 밴 것을 알고 차마 죽이지 못하고 틈을 내어 살려 보낸다. 얼마 후에 간난이 할아버지는 산에서 신둥이와 새끼 다섯 마리를 발견한다. 강아지들이 밥을 먹을 정도쯤 크자 한 마리씩 가지고 와서, 다른 동네에서 얻어 온 것이라면서 이웃에 주고 옆 마을에도 나누어 준다. 그리하여 목넘이 마을에서 기르는 개들은 거의 다 신둥이의 피를 이어가게 된다. 이것은 내가 중학 시절에 외가가 있는 목넘이 마을에 가서 그 간난이 할아버지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출전 : 개벽(開闢)(1948)

 


 

 두 달이 지나도 누렁이는 미쳐나가지 않았다. 서쪽 산 밑 사람들은 오조[일찍 수확하는 좁쌀] 갈[가을의 준말. 농산물을 거두어 들이는 일. 추수(秋收)]을 해 들였다. 방아를 찧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일년 중에 이 오조밥 해먹는 일이 큰 즐거움의 하나였다. 어떻게 그렇게 밥맛이 고소하고 단 것일까.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오조밥을 먹으면서 옛말[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말이나 이야기라는 뜻]에, 오조밥에 열무[어린 무] 김치를 먹으면 처녀가 젖이 난다[오조밥에 열무김치를 먹으면 처녀가 젖이 난다. : 오조밥을 먹을 시기는 추수 이전이므로 식량이 다 떨어진 절량기이다. 그럴 때 먹는 것이기에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즐겁고 맛있는 것이다. 처녀가 젖이 난다는 것 같은 불가능한 일에다 비유할 만큼 먹을 것이 없었다는 뜻이다. / 가난한 집 신주 굶듯 한다. / 서발 막대 거칠 것이 없다 : 가난한 집에 아무 세간이 없다는 말 ]는 말이 있는 것도 딴은 그럴만 하다고들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즈음 신둥이[흰둥이의 사투리]는 밤 틈을 타서 먹을 것을 찾아 먹고는 이 서산 밑 방앗간에 와 자곤 했다. 그 동안 누구한테도 눈에 띄지 않아 얼만큼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은 사뭇 일찍이 그곳을 나와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그러나 다음 날은 사뭇 일찍이 그 곳을 나와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 사람들이 자신을 미친 개로 취급하여 처치하려는 것을 눈치 채고 지금까지와는 달리 일찍 산으로 올라간 것이다.]. 간난이 할아버지의 눈에도 띄지 않게스레.[신중한 신둥이]

 

 이러한 어떤 날, 동네에는 이전의 그 미친개가 서산 밑 방앗간에 와 잔다는 소문이 났다. 차손이 아버지가 보았다는 것이다. 아직 어두운 새벽에 달구지[마소가 끄는 집수레] 걸댓감[물건을 걸 때 쓰는 장대로 쓸 재료]을 하나 꺾으러 서산에를 가는 길[가는 도중]에 방앗간에서 무엇이 나와 달아나기에 유심히 보니 그게 이전의 미친개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미친개는 어두운 속에서도 홀몸이 아니더라는 것이다[신둥이의 피가 이어질 것임을 암시]. 밤눈이 밝은 차손이 아버지의 말이라 모두 곧이 들었다.

 

 언덕 위 크고 작은 동장이 이 말을 듣고 서산 및 동네로 내려왔다. 오늘 밤에 그 산개[산에 사는 야생성의 개](지금에 와서는 크고 작은 동자도 그 개를 미친개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 개가 정말 미친개였더라면 벌써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나중에 제가 제 다리를 물어뜯고 죽었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 연역적 추론)를 지켰다가 때려 잡자는 것이었다. 홀몸이 아니고 새끼를 뱄다면 그게 승냥이와 붙어서 된 것일테니 그렇다면 그 이상 없는 보양제[(補陽劑) : 사람의 몸에 양기를 돕는 약재]라고 하며 때려잡아 가지고는 새끼만 자기네가 차지하고 다른 고길랑 전부 동네에서 나눠 먹으라는 것이었다.

 

 밤이 되기를 기다려 크고 작은 동장[비정한 일에 앞장 서는 냉혈한 인물]은 서쪽 산 밑 동네로와 장손네 마당에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제각기 몽둥이 하나씩을 장만[필요한 것을 갖추어 준비함]해 들게 했다. 그 속에 간난이 할아버지도 끼여 있었다. 간난이 할아버지는 물로 그 신둥이 개가 미친개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나, 이 개가 그 동안도 자기네 집 옆 방앗간에 와 자곤 했으며 으레 자기네 귀한 거름을 축냈을[일정한 수효에서 부족이 생기다. 축가다] 것만은 틀림없는 일이니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이 기회에 때려잡아 버리라는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귀한 거름을 축냈을 것만은 틀림없는 일이니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이 기회에 때려 잡아 버리라는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 농사일을 소중히 여기는 농부의 단순하고 소박한 성격을 표출한 부분이다.]. 한편 동네 사람 누구나가 그렇듯이 이런 때 비린 것[비린내가 나는 음식을 말함. 생선이나 육류 등]이라도 좀 입에 대어 보리라는 생각도 없지 않아서[이런 때 비린 것이라도 좀 입에 대어 보리라는 생각도 없지 않아서. : 고기 맛을 본 지도 오래되어, 이번 기회에 고기 맛을 보겠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서. 인간의 탐욕스러운 면].

 

 밤이 퍽 깊어 망[(望) : 바라보아 동정을 살핌]을 보러 갔던 차손이 아버지가 지금 막 미친개가 방앗간으로 들어왔다는 걸 알렸다[신둥이가 시련을 겪게 되는 계기]. 동네 사람들은 벌써 제각기 입 안에 비린내 맛까지 느끼며 발소리를 죽여 방앗간으로 갔다. 크고 작은 동장은 이 동네 사람들과는 꽤 먼 사이를 두고 떨어져 서서 방앗간 쪽을 지켰다.

 

 동네 사람들[신둥이를 박해하는 존재들로, 우리 민족에게 고난을 준 많은 요인들을 상징한다.]이 방앗간의 터진 두 면을 둘러쌌다. 그리고 방앗간 속을 들여다 보았다. 과연 어둠 속에 움직이는 게 있었다. 그리고 그게 어둠 속에서도 흰 짐승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분명히 그놈의 신둥이 개다. 동네 사람들은 한 걸음 한 걸음 죄어들었다[신둥이의 처지에서는 사면초가임]. 점점 뒤로 움직여 쫓기는 짐승의 어느 한 부분에 불이 켜졌다[점점 뒤로 움직여 쫓기는 짐승의 어느 부분에 불이 켜졌다. : 생명의 위협을 느낀 동물의 본능적인 행동을 묘사한 것이다.]. 저게 산 개의 눈이다[다른 부분들과는 달리 현재형 시제를 사용하여 상황의 급박함을 나타내고 현장감을 높이고 있다.]. 동네 사람들은 몽둥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 속에서 간난이 할아버지도 몽둥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한 걸음 더 죄어들었다. 눈 앞의 새파란 불[신둥이의 눈을 의미하며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이 빠져 나갈 틈을 엿보듯이 휙 한 바퀴 돌았다. 별나게 새파란 불이었다. 문득 간난이 할아버지는 이런 새파란 불이란 눈 앞에 있는 신둥이 개 한 마리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여럿의 몸에서 나오는 불이 합쳐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지금 이 신둥이 개의 뱃속에 든 새끼의 불까지 합쳐진 것이라는. 그러자 간난이 할아버지의 가슴 속을 흘러 지나가는 게 있었다. 짐승도 새끼 밴 것을 차마?[생명에 대한 외경심으로 신둥이를 구해줌] [이때 간난이 할아버지가 신둥이에게 해줄 수 있는 한자성어는? 주위상책(走爲上策) : 피해를 입지 아니하려면 달아나는 것이 제일 나은 꾀임을 이르는 말. 주여도반.]

 

 이 때에 누구의 입에선가, 때려라! 하는 고함 소리가 나왔다. 다음 순간 간난이 할아버지의 양 옆 사람들이 욱 개를 향해 달려들며 몽둥이를 내리쳤0다. 그와 동시에 간난이 할아버지는 푸른 불꽃이 자기 종아리 곁을 새어 나가는 것을 느꼈다.

 뒤이어 누구의 입에선가, 누가 빈 틈을 냈어? 하는 흥분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저마다 거 누구야? 거 누구야? 하고 못마땅해 하는 말소리 속에 간난이 할아버지 턱 밑으로 디미는 얼굴이 있어.

 

"아주반이웨다레.[아주버님이시군요. '아주버니'란 시숙(媤叔), 아저씨를 뜻함 / 비난과 조소가 담겨 있음]"

하는 것은 동장네 절가[머슴]였다.

 그러자 저편 어둠 속에서 궁금한 듯 큰 동장의,

"어떻게들 됐노?"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투웨다."[파투(破鬪)다. 즉 실패했다는 뜻. '파투(破鬪)'란 화투놀이에서 잘못되어 그 판이 무효가 됨을 이름]

 절가의 말에 크고 작은 동장이 한꺼번에 지리는 목소리로,

"파투라니?"

하는 소리에 이어 큰 동장의 이리로 걸어오는 목소리로,

"틈새를 낸 놈이 누구야?"

하는 결난[결기가 일어나다. '결기'란 참지 못해 발끈 성을 내는 성미를 일컬음] 소리가 들려왔다.

 간난이 할아버지는 옆의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좀 뒤에 역시 큰 동장의 결난 목소리로,

"늙은 것은 뒈데야['뒈지다'의 사투리. '뒈지다'는 '죽다'의 낮은 말] 해, 뒈데야 해." [큰동장이 노인에게 예의를 차릴 줄도 모르는 안하무인의 성격임을 알 수 있음, 분노와 비난의 감정이 담겨 있음]

 

하는 소리가 집 안에까지 들려왔다.

 이런 일[간난이 할아버지가 신둥이를 구해 준 일]이 있은 지 한 달쯤 뒤, 가을도 다 끝나고 이제는 겨울 나무 준비로 바쁜 어느 날, 간난이 할아버지는 서산 너머의 옛날부터 험한 곳이라고 해서 좀처럼 나무꾼들이 드나들지 않는, 따라서 거기만 가면 쉽게 나무 한 짐을 해올 수 있는 여웃골로 나무를 하러 갔다. 손쉽게 나무 한 짐을 해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뜻 없이 길 한 옆에 눈을 준[시선을 옮기어 보다.] 간난이 할아버지는 거기 웬 짐승의 새끼가 몽켜[여럿이 한데 엉키어 덩어리가 되다] 있는 걸 보았다. 이게 범의 새끼가 아닌가 하고 놀라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다른 것 아닌 잠든 강아지들이었다. 그리고 저만큼에 바로 신둥이개가 이쪽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이었다. 앙상하니 뼈만 남아 가지고. [저만큼에 바로 신둥이 개가 이쪽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이었다. 앙상하니 뼈만 남아 가지고. : 신둥이와 해후를 나타내고, 새끼를 낳은 신둥이의 외형과 모성 본능을 묘사한 구절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신둥이의 모습은 곧 일제 강점기의 핍박과 고난을 극복한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

 

 간난이 할아버지가 강아지께로 가까이 갔다. 다섯 마린가 되는 강아지는 벌써 한 스무 날은 넉넉히 됐을 성싶었다. 그러자 간난이 할아버지는 다시 한번 속으로 놀라고 말았다. 잠이 들어 있는 다섯 마리 강아지 속에는 틀림없는 누렁이가 검둥이가 바둑이가 섞여 있는 게 아닌가[새끼를 기르고 있는 것에 대해 생명의 외경심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건 놀랄 일이 아니라 응당 그럴 일이라고[신둥이가 목넘이 마을의 누렁이, 검둥이, 바둑이 등과 어울렸기 때문에], 그 일견[언뜻] 험상궂어 뵈는 반백의 텁석부리[짧고 더부룩한 수염이 많이 난 사람을 놀려 말함] 속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었다. 좀만에 그 곳을 떠나는 간난이 할아버지는 오늘 예서[여기서] 본 일은 아무한테나, 집안 사람한테도 이야기 말리라 마음먹었다.[마을 사람들로부터 신둥이와 그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것은 내 중학 이삼 년 시절 여름 방학 때 내 외가가 있는 목넘이 마을에 가서 들은 이야기로, 그 때 간난이 할아버지니 김선달이니 차손이 아버지가 서산 앞 우물가 능수버들 아래에 일손을 쉬며 와 앉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끝에 한 이야기다. 간난이 할아버지가 주가 되어 이야기를 해 나가는 도중 벌써 수삼 년 전 일이라 이야기의 앞뒤가 바뀐다든가 착오가 있으면 여럿이 서로 바로 잡고, 빠뜨리는 대목은 서로 보태 가며 하는 것이었다.[이것은 내 ~ 하는 것이었다 : 지금까지의 신둥이 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의 외가가 있는 목넘이 마을에서 전해들은 이야기임을 밝힘으로써 액자 형식을 취함과 동시에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환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방법은 독자에게 신빙성을 주고, 이야기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간난이 할아버지[갈등을 중재하고, 화합을 유도하며, 신둥이를 보호하고 그 새끼를 퍼지게 함]는 여웃골에서 강아지를 본 뒤부터는 한층 조심해서, 누가 눈치채지 못하게 나무하러 가서는 이 강아지들을 보는 게 한 재미였다. 사람이 먹기에도 부족한 보리범벅[보리 가루에 호박 등속을 섞이어 풀같이 되게 쑨 음식]이었으나, 그 부스러기를 집안 사람 몰래 가져다 주기도 했다[강아지들에 대한 간난이 할아버지의 애정]. 아주 강아지가 밥을 먹게쯤 됐을 때, 간난이 할아버지는 집안 사람들보고도 아무 곳 아무개한테서 얻어 오는 것이라고 하며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내려왔다. 한 동네 곱단이네도 어디서 얻어다 준다고 하고 한 마리 안아다 주었다. 그리고 여웃골에서 그냥 갈 수 있는 절골 사는 아무개네도 한 마리, 서젯골 사는 아무개네도 한 마리, 이렇게 한 마리씩 다섯 마리를 다 안아다 주었다.[신둥이가 지켜낸 생명을 간난이 할아버지가 마을에 퍼뜨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를 통해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 끝에, 간난이 할아버지는 지금 자기네 집에 기르는 개가 그 신둥이의 증손자딸이라는 말과 원체[워낙. 본디부터 원래가] 종자가 좋아서 지금 목넘이 마을에서 기르는 개란 개는 거의 다 이 신둥이의 증손자가 아니면 고손자들이라고 했다[지금 목넘이 마을에서 기르는 개란 개는 거의 다 이 신둥이의 증손자가 아니면 고손자들이라고 했다. : 신둥이의 강인한 생명력과 그 후손들을 통해 피의 동질성을 강변하고 있다. 이는 작품이 발표된 해방 직후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피의 동질성의 강조는 곧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극복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강조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동장네 두 집에서까지도 요새 자기네 개가 낳은 신둥이 개의 고손자를 얻어 갔다는 말도 했다[신둥이의 씨가 마을로 퍼져 나감은 광복 이후 번영할 우리 민족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음]. 이런 말을 하는 간난이 할아버지는 그 때는 아주 흰 서릿밭이 내린 그 텁석부리 속에서 미소를 띄우는 것이었다.

 

 내가, 이 신둥이 개는 그 뒤에 어떻게 됐는냐고 물었더니 간난이 할아버지는 금새 미소를 거두며[신둥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작가의 생명 존중 의식이 엿보임], 그 해 첫 겨울 어느 사냥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실 그 후로는 통 보지를 못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연한 것을 물어 보았구나 했다.

 

(1) 이 작품의 내용과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가?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문학이 개연성 있는 허구의 성격을 띠게 된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활동이다. 물론 인용된 작품의 내용과 같은 일들은 실제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일어날 수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소재들이 있을 수 있는 일들을 허구화한 점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풀이 : 물론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2) 작가가 이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서 형상화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문학이 현실 세계를 재구성하여 허구화함으로써 전달하려는 바가 무엇인가를 직접 생각해 볼 기회를 갖기 위한 활동이다. 우선 학생들로 하여금 교과서에 수록된 부분의 내용을 바탕으로 알아낸 바를 정리해 보게 한 다음, 교사가 작품의 전체 줄거리를 소개해 주고 작가의 의도라든지 역사적 상황과 관련하여 심층적인 주제 의식을 설명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풀이 :

1. 개(강아지)의 강인한 생명력
2. 우리 민족의 강인한 생명력

 

 이 작품의 내용상 핵심은 간난이 할아버지가 신둥이에게 보이는 생명에의 외경감(畏敬感)이다. 사람들에게 쫓기는 신둥이는 원시적 생명력을 표상하며 일체의 모진 수탈과 압박을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삶을 지속하는 우리 민족의 강인함과 그 밑바닥에 흐르는 생명력 회복의 의지를 상징한다. 이 작품의 특징은 설화체(說話體) 문장에 있다. 묘사나 대화보다 이야기로만 서술하는 방법은 우리 고전 소설(古典小說)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작품 끝에 덧붙여 놓은 부분에서, 신둥이 이야기를 자기 외가가 있는 목넘이 마을에서 들었다고 했다. 전승되어 오던 신둥이 이야기를 소설로 전환시킨 것이다. 이 점에서도 이 작품은 우리 서사 문학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해와 감상1

 일종의 우화(寓話) 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전편에 걸쳐 '휴머니즘'이 주조를 이루고 있으며, 당대의 혼란한 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전망을 어느 정도 제시해 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제하의 비참한 삶 속에서도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신둥이'라는 개를 통해 확인하고 있는 점은 이념적 갈등이 가져온 민족의 비극을 치유하기 위해 작가가 보여준 하나의 비전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신둥이를 통해 드러나는 '간난이 할아버지'가 보여 주는 생명에의 외경심(畏敬心)이다.

 형식적 특징도 무시할 수 없는데, 서두에는 배경을 제시하는 '프롤로그(prologue)'가 있으며 역사적 사실과 결부시켜 사실성을 더해 주고 있다. 또한 결미 부분에는 '내'가 직접 들은 이야기라고 말함으로써 허구성(虛構性)을 슬쩍 비켜나고 있다. 이러한 구성 방식은 이야기의 신뢰성을 확보하려는 문학적 고려일 것이다. 이 작품 역시 황순원 소설의 문체가 그러하듯이 '섬세한 묘사나 직접적 대화의 사용이 절제'되고 '서술적 진술'이 주류를 이룬다. 그리하여 액자 양식과 담화적 문체가 어우러져 이 소설에 '설화적 분위기'를 제공한다.

 

 이 작품 서두에 배경을 제시하는 프롤로그가 있고, 결미 부분에는 외가에서 들은 이야기라고 함으로써 전승되어 온 이야기를 소설화하였음을 밝힌 에필로그가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의 소설을 '액자 소설(額子小說)'이라고 한다. 이 액자 소설은 주제와 관련된 내부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상황을 제시하여, 내부 이야기가 허구가 아님을 보여줌으로써 신뢰성을 부여하도록 하는 액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신둥이 개의 상징성을 본다면 다음과 같다.

 작품의 주인공은 주인을 잃고 마을로 흘러 돌아와 모진 박해를 받는 신둥이라는 개다. 이 개는 사람들의 핍박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종족을 남겨 대를 잇는 강인한 삶의 형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신둥이의 불굴의 삶은 곧 생명의 외경스러움을 표출하고 있으며, 나아가 한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목넘이 마을의 개' 특징

내용 :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신둥이라는 개의 이야기를 통해 단일한 핏줄을 지니고 있는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보여 줌으로써, 민족 분단의 극복 의지를 짙게 암시하고 있다.

 

구성 : 서두에 배경을 제시하는 프롤로그를 두고, 말미에는 작품의 본 이야기[내화(內話)]를 현재적 상황에 결부시키는 에필로그를 둔 액자 구성을 통해 서술의 신뢰성을 확보한다.

 

표현 : 묘사나 대화의 사용이 극히 제한된 설화식 문체를 통해 사실의 충실한 전달을 꾀하고 있다.

 

 

 "목넘이 마을의 개"의 주제

 이 작품은 단순한 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유는 이 작품 전반부가 개와 간난이 할아버지의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작가 자신의 나레이터로 구성되어 있는 구조의 이원성(二元性)에서 연유된다. 일제 시대의 한민족의 고난과 삶을 사람들에게 쫓기는 신둥이라는 암캐로서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제는 이 상징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주제는 후반부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즉, 해방 직후 한민족이 좌우익 이데올로기의 혼란 속에 처해 갈팡질팡할 때 민족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보여 주기 위해 씌어진 것이다. 한 마디로 민족의 의미는 피의 동질성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면면히 어떠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이어 오는 생명력의 존재 방식인 것이다. 이 존재 방식이 시류적(時流的)인 이데올로기를 초월한다는 데 이 작품의 특출함이 있다.

 

 

 황순원의 작품 특징

 그의 작품 세계는, 초기에는 단편 소설의 완결성과 단일성에 걸맞는 개인의 문제에, 장편 소설을 발표하면서부터는 삶의 총체적 인식에 주력하여 많은 문제작을 남겼다. 그리고, 시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문체와 스토리의 조직적인 전개를 그 특징으로 삼았으며, 그의 문체는 설화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는 인간의 본연적인 심리를 미세하게 묘사하는가 하면, 비극적인 현실을 심원한 사상이나 종교로서 감싸고 이해하려는 주제 의식의 확대를 보여 주고 있다.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 소설 미학의 전범을 보여 주는 다양한 기법적 장치들, 소박하면서도 치열한 휴머니즘의 정신,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에 대한 애정 등을 고루 갖춤으로써, 황순원의 작품들은 한국 현대 소설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그의 소설들이 예외 없이 보여주고 있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은 소설 문학이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성과의 한 극치를 시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소설 문학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주력할 경우 자칫하면 역사적 차원에 대한 관심의 결여라는 문제점이 동반될 수 있지만 황순원의 문학은 이러한 위험도 잘 극복하고 있다. 그의 여러 장편 소설들을 보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충실하게 살려놓으면서 일제 강점기로부터 이른바 근대화가 제창되는 시기에까지 이르는 긴 기간 동안의 우리 정신사에 대한 적절한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황순원(黃順元 1915-2000) :

 소설가. 시인. 평남 대동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경희대학 교수. 예술원 회원을 역임함. 1930년부터 동요와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여 1934년 첫 시집 <방가(放歌)>를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활동함. 1935년 <삼사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와 소설을 함께 발표하고, 1940년 단편 소설집 <늪>을 간행하면서 소설에 전념하였다. 해방 후에는 교직에 몸담으면서 "독짓는 늙은이"(1950), "곡예사", "학", 등의 단편 소설과 "별과 같이 살다"(1947), "카인의 후예"(1953), "인간접목"(1955) 등 장편 소설을 발표함. 그의 작품 세계는, 초기에는 단편 소설의 완결성과 단일성에 걸맞는 개인의 문제에, 장편 소설을 발표하면서부터는 삶의 총체적 인식에 주력하여 많은 문제작을 남겼다. 그리고, 시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문체와 스토리의 조직적인 전개를 그 특징으로 삼았으며, 그의 문체는 설화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는 인간의 본연적인 심리를 미세하게 묘사하는가 하면, 비극적인 현실을 심원한 사상이나 종교로서 감싸고 이해하려는 주제 의식의 확대를 보여 주고 있다.

 

 

 1. 문학의 소재

문학은 인간의 가치 있는 체험을 소재로 한다.

 

(1) 체험(경험) : 인간(자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세계)과 관계를 맺는 것 일체

 

(2) 인간과 환경의 관계

 

1. 인간과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경우

2. 인간이 환경과 대결하는 경우

 

(3) 가치 있는 체험 : 독자에게 깨달음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체험

 

2. 문학의 허구성과 개연성

 

흔히 문학을 개연성 있는 허구로 정의하기도 한다.

 

(1) 개연성(蓋然性) :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확실성이나 가능성의 정도

(2) 허구성(虛構性) : 작가의 상상적 해석과 재구성을 통해 현실적 체험을 대신하는 것

 

3. 문학과 현실

(1) 문학의 현실 인식 : 사람은 누구나 현실 속에서 많은 문제들에 부딪혀 그것을 해결하고 극복하거나 그것에 좌절하면서 살아간다. 문학은 그때그때의 삶을 제약하는 현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다루면서, 현실의 수많은 문제들이 지닌 의미는 무엇이며, 그 문제들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지, 그리고 이러한 현실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2) 문학의 항구성과 보편성 : 문학이 반영하는 현실은 그 당대만의 특수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어느 시대에나 인간의 삶에서 늘 부딪히게 되는 항구적이고 보편적인 조건일 수도 있다. 특정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 나타난 삶의 모습이 오늘날과 달라도 지금의 독자에게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인간 보편의 현실적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과 현실

 문학은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 주된 대상으로 한다. 그것은 문학이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상적(日常的)인 삶의 모습들과, 거기에서 야기되는 복잡 다단한 문제들을 작가의 미적 태도(美的態度)에 의해 보다 의미 있는 것으로 부각시키고, 예술적 형상화의 과정을 통해 작품으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현실(現實)과 동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고, 작품 역시 그러한 작가적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든 매개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문학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 다시 말해 현실을 바라보는 안목(眼目)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현실이라는 말 자체는 매우 추상적(抽象的)인 개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삶의 공간이 다름 아닌 현실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구체적인 모습들이 제시되고, 우리가 그것을 느낄 수 있어야 비로소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 이해에는 반드시 어떤 시대사적(時代史的) 배경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시대사적 배경 속에서 현실은 구체성을 띠게 되며, 그 구체성에 대한 개인적 이해를 우리는 경험이라고 부른다. 문학은 이러한 현실에서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문학이 그 경험을 기술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무작위적(無作爲的)으로 선택(選擇)한 것의 표현이라기보다는 현실 속의 가능성의 선택이며, 이 가능성은 현실 속에 이미 내포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현실은 우리의 일상적 삶의 공간이자, 구체적으로 모든 행위와 가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문학은 작가의 현실에 대한 안목을 통해 삶을 재구성(再構成)하는 보다 나은 방법을 모색(摸索)하고, 좀더 의미 있는 의미 있는 해석을 내려보고자 하는 행위인 셈이다. 우리는 작가가 현실에서 무엇을 드러내려고 하는가를 설렘 속에 기대해 보는 것이다.

 

(중략)

 

 실상, 문학은 우리가 흔히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양상(樣相)으로 전재한다. 그런 면에서, 문학과 현실의 관계는 그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양상을 여실히 보여 주는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훌륭한 문학은 시대를 초월(超越)하는 것이지만, 그 문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토양은 당대의 현실임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어느 시대,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삶과 동떨어진 가치란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문학은 그 시대적 상황을 수렴한다. 다라서 작가는 현실에 대한 바른 안목과, 그 속에 용해되어 있는 삶의 모습들을 예술적으로 형상화시키는 데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일상적 사건들을 단순히 기록하는 차원이나 미적, 정서적 차원의 여과 과정(濾過過程)을 거치지 않은 현실 이해는 우리에게 감흥(感興)을 주기 어려우며, 자칫 펴고자 하는 이념(理念)에 압도되어 생경한 구호의 나열에 그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실적 상황이 제시하고 만들어 내는 여러 요소들을 깊이 있게 통찰하고, 이를 진지한 안목에서 분석하여 의미를 부여할 때, 문학은 그 존재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성을 구현하는데 있는 것이라면, 이를 효과적(效果的)으로 드러낼 수 있는 현실의 가능성을 찾아내고, 거기에 사람의 옷을 입혀 살아 숨쉬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현실에 뿌리를 두지 않은 채, 현실적 가능성과는 동떨어진 추상적이고 단순한 허구적 사실들만으로는, 문학이 우리에게 추구하는 예술적 감동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문학은 삶을 새롭게 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그 삶의 현실을 재창조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 이상섭,‘문학과 현실’ [김윤식 외 4인 공저 '문학교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