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사일구) 문학
by 송화은율사일구(4.19) 문학
4.19 관련 소설들
1. 김용운 <끝없는 합창>
2. 윤후명 <동래시집>
3. 김원일 <마음의 감옥>
4. 신상웅 <불타는 도시>
5. 박태순 <무너진 극장>
6. 송원희 <혈흔(血痕)>
7. 김만옥 <흔적>, <천공>, <예행연습>, <계단과 날개>
8. 현길언 <불과 재>
9. 오탁번 <굴뚝과 천장>
詩 --- 김수영, 신동엽 시류
--- <참여시>
--- <신동엽>, <김수영>, <광장>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김수영과 4.19묘지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조용히 개굴창에 넣고/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그놈의 동상이선 곳에는/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쓰러진 성스러운 학생들의 웅장한/기념탑을 세우자/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김수영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첫 연).
김수영(1921~68)의 이 시는 그의 가장 좋은 시도 아니며 4․19를 노래한 가장 빼어난 시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1960년 4월26일 이른 아침에 쓴 이 시는 4․19의 순수 절정의 순간을 직접 호흡하고 있다는 미덕을 안고 있다. 이날 나온 이승만 대통령의 사의 표명은 2백명 가까운 젊은 목숨을 바쳐가면서 학생과 시민들이 갈구하던 바의 최대치는 아니더라도 그 최소치에는 가까웠던 것이다.
1960년 3월15일의 제5대 정부통령선거는 `국부' 이승만의 본질과 한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기회와도 같았다. 노욕과 망상으로 똘똘 뭉친 우남이 입 안의 혀 같은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고자 저지른 미증유의 선거부정은 당장 그날로부터 민중의 거센 저항에 부닥친다. 마산에서 터져나온 항의시위는 8명의 사망자와 72명의 부상자를 냈지만, 그보다는 그날 실종된 한사람이 결과적으로 더 큰 파장을 몰고 오게 된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4월11일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몰골로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마산상고생 김주열이 그였다.
김주열의 주검에 다시 십여명의 사상자로 대답한 마산의 2차 시위는 남한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간다. 4월18일 고려대학생 3천여명이 국회의사당 앞 시위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정치깡패들에게 테러를 당한 사건은 그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피의 화요일'로 불리는 19일 성난 학생과 시민들은 종로와 광화문을 거쳐 경무대 앞까지 치달아 독재타도를 외쳤으며 경찰은 발포로써 응답했다.
비상계엄령이라는 채찍과 자유당 총재직 사임이라는 당근으로써도 우남은 돌아선 민심을 되잡을 수 없었다. 4월25일 대학교수단이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거리로 나섰을 때 그의 운명의 나침반은 이미 하와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남에게는 정치적․인간적 실패, 나아가 역사적 죽음으로까지 다가왔을 4․19는 한국문학으로서는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았다. 그것은 4․19가 열어놓은 해방의 공간이 자유로운 문학적 표현을 가능케 했다는 의미와, 4․19 자체가 두고두고 한국문학의 가물지 않는 수원(水源)이 됐다는 두가지 의미에서 그러하다.
시에 있어서 4․19의 적자는 김수영과 신동엽이었다.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에서 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며 4월혁명을 동학혁명에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하면서도 그 성과와 한계, 장점과 단점을 냉정하게 가리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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