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꽃 / 동화 / 전문 / 연성흠
by 송화은율희망의 꽃 / 연성흠
수길이 아버지는 소반을 만들어 파는 것으로 생계를 삼으시는 가난한 사람
이었습니다. 그의 집은 서울에서도 가난한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동촌 어느
구석 어느 집 줄 행랑채였습니다. 사방 한 칸밖에 되지 않는 공장과 이 공장
과 맞붙어 있는 한 칸 방이 수길이 집 다섯 식구의 침실이요, 식당이었습니
다. 또 어느 때는 이 방이 사랑으로도 쓰여질 때가 있었습니다.
이같이 좁다란 공장 속에서 그 아버지는 아침부터 밤까지 죽을 애를 써가
며 일을 하시는 것만도 거기서 생기는 것을 가지고는 다섯 식구가 굶지 않
고 먹어가기조차 퍽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수길이가 학교에서 돌아
오기만 하면 붙잡아 앉아 놓고 일을 조금이라도 더 하실 생각에 시중을 들
도록 하십니다. 시중을 시키시기만 할 뿐 아니라 잔심부름을 모조리 시키셨
습니다.
동무 애들은 연을 날린다, 팽이를 돌린다, 공을 찬다, 하건만 수길이는 대패
질도 하고 못도 박고 심부름도 하여 조금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
음이 착하고 부모님께 퍽 효성스런 수길이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말씀을 한
번도 거스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일을 하였습니다. 아버지 하시는 일을 도
와드릴 게 없으면 어린 동생을 보아주어 어머니의 일을 덜어드렸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수길이의 이 효성스런 태도를 보고는 모두들 감동하여 누구
하나 칭찬 안 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의 공부 성적도 번번이 우
등이므로 담임 선생님까지 장래에 유망한 소년이라고 칭찬하시며 퍽 사랑하
였습니다.
“수길아!”
하고 선생님이 부르시는 바람에 수길이는 깜짝 놀라면서 얼떨결에 “네!” 하
고 큰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지금 내가 읽은 것이 무슨 뜻인지 말해 보거라.”
책을 읽고 나신 선생님은 정신없이 등신 모양으로 멀거니 천장을 쳐다보고
있던 수길이에게 이같이 물으셨습니다.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모르다니? 지금 내가 읽은 것을 듣고 있었느냐, 그렇지 않으면 한눈을 팔
았느냐?”
“자세히 듣지 못했습니다.”
전에는 그렇지 않더니 요새는 선생님과 수길 사이에 이 같은 문답이 하루
에도 두서너 차례씩 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선생님이 물으시는 것
이면 무엇이나 서슴지 않고 대답하던 수길이의 태도가 요즈음 갑자기 변한
것을 볼 때에 선생님은 무슨 까닭인가 하고 의심을 하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까닭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공부 성적은 점점 전만 못 해가고 멍하니 앉았다가 선생님께 꾸지람을 듣
는 때가 잦아졌습니다.
4학년 진급 시험을 거의 보게 될 3월이 되었습니다. 이때는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들까지 마음이 어수선해지실 때이건만 수길이는 여전히 수길이대로
얼빠진 사람 노릇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수길이가 이같이 얼빠진 애가 된
그 이유를 알아가지고 다시 전과 같이 공부 잘하는 건실한 수길이를 만들어
주실 생각에 하학 시간이 되자 수길이를 사무실로 불러들이셔서 집안 형편
과 몸에 병이 있고 없는 것을 알아보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로 선생님이 물어보셨건만 몸에 아무 병도 없고 또 집
안에도 별로 전과 다른 일이 생기지 않은 것 같으므로 선생님은 그 원인을
아시려 해야 아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생각다 못하여 그 이튿
날 수길이 집에까지 친히 찾아오셔서 수길이 아버지와 어머니께 자세한 말
씀을 하기도 하시고 듣기도 하셨으나 여전히 전과 다름이 없으므로 선생님
은 수길이 아버지 어머니와 걱정을 무수히 하시다가 돌아가 버리셨습니다.
선생님이 수길이 집에까지 찾아가셨던 날부터 나흘이 지난 뒤- 이날 아침에
수길이 아버지가 무엇인지 네모 진 물건 하나를 들고 담임 선생님을 찾아서
학교로 오셨습니다.
“선생님! 이것이 무엇인지 집에 있기에 가지고 왔습니다. 제 자식놈이 혹시
어디서 집어오지나 않았는지 답답해서 좀 알아보려고 가져왔습니다.”
그 네모 진 물건은 다른 게 아니라 건전지였습니다. 선생니도 이 건전지를
받아들자마자 더한층 이상한 생각이 나셨습니다. 먹을 것이나 장난감 같으면
별문제 없겠지만 건전지를 집 안에 감추어 두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왜 이런 것을 얻어다 두었을까? 얼빠진 것과 같은 수길이와 건전지- 여기
에는 큰 이유가 숨어 있을 것이다.’
이같이 생각하신 선생님은 하학 시간 뒤에 수길이를 다시 사무실로 불러들
이셨습니다.
선생님 앞에 불려 들어온 수길이는 들어오다가 여태까지 남에게 보이지도
않고 이야기도 안 하면서 곱게곱게 집 안에 숨겨두었던 건전지가 선생님 책
상 위에 놓인 것을 보자마자 몹시 놀라는 모양이더니 금세 침착한 태도로
변하였습니다.
“수길아! 이게 네 게냐?”
“네…… 제 것이올시다.”
“이게 무어냐?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지?”
“그것은 장난감이 아닙니다. 건전지입니다.”
“그래, 이 건전지는 무엇에 쓰려고 가졌으며 어디서 났느냐?”
“전기 시험을 해보려고 저금했던 돈으로 산 것입니다.”
“그래, 시험을 해보았느냐?”
“해보기는 했습니다만 잘 되질 않아요.”
“시험을 어떻게 해보았단 말이냐?”
“밤에 전구를 빼어가지고 건전지에다 붙여보기를 여러 번 했지만 불이 도무
지 켜지지 않았습니다.”
“너 언제부터 이 시험을 해보았니?”
“2학기 중간부터 해보았습니다만 도무지 되지를 않습니다. 혹시 아버지한테
들키거나 하면 꾸지람을 듣겠기에 몰래몰래 숨어가면서 해보았습니다.”
“실험이 잘 안 되는데도 나한테 왜 묻지를 않았느냐?”
“6학년이 되기 전에는 전기에 대한 이야기를 배우지 않는다기에 못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너희들이 알아들을 만한 정도의 것을 물으면 가르쳐줄 텐
데...... 그런 생각만 했단 말이냐?”
“저는 전기 발명을 꼭 하고야 말겠어요. 선생님, 그럼 좀! 가르쳐 주세요.”
오늘까지 혼자 고민을 해오던 수길이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희망
의 새 빛을 본 듯이 무척 기뻐하였습니다. 이제야 선생님이 풀지 못해 애쓰
시던 수수께끼도 어렵지 않게 풀렸습니다. 선생님은 새삼스레 반년이나 가깝
도록 전기로 불을 켜 보려고 애를 써 오던 수길이의 특별한 재주에 놀라셨
습니다.
그 이튿날 선생님은 다시 수길의 집을 찾아가셔서 그 어머니와 아버지께
자세한 이야기를 다 하시고 집에 있을 때 될 수 있는 대로 틈을 줄 것이요,
학교에서도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도 안에서 정성껏 전기에 대한 것을
가르쳐주기로 약속하고 돌아오셨습니다. 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들은 같은 반
학생들은 수길이의 열심과 재주에 크게 탄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수
길이를 이름 대신에 소년 발명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2년 동안 선생님은 틈만 있으면 설명을 해주고 가르쳐주시어 6학년 졸업하
게 될 때에는 선생님으로도 따를 수 없을 만치 전기에 대한 지식이 부쩍 늘
었습니다.
수길이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이 15살에 전기 조절기를 발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같이 전기에 대한 연구를 열심히 하는 한편에 아버지 일을 부지런
히 도와드린 까닭에 16살 때에는 자기 혼자 연장을 가지고 가구를 만들어
낼 줄 아는 기능공까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안 살림살이도 풍족해지기 때
문에 집을 옮기어 종로통 큰길에다 가게까지 차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동생을 시켜 가구점을 하도록 하고 수길이는 건전지를 만들어
팔기에 골몰 중입니다. 그 어머니는 작년에 세상을 떠나셨으나 그 아버지는
아직까지 살아계셔서 아들 형제의 일터로 돌아다니시면서 편안한 날을 보내
고 계신답니다.
저작물명 : 희망의 꽃
저작자 : 연성흠
출처 : 공유마당
이용조건 :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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