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 한흑구
by 송화은율흙 / 한흑구
흙은 지구의 겉껍데기다.
흙은 지구의 피부요. 또한 살덩어리다.
흙은 지구의 피부와 살덩어리가 되기에는 몇 억년의 많은 세월이 흘러갔을 것이다.
지심(地心)의 불덩이 속으로부터 튀어나어는 용암(熔岩)들이 식어서 바위가 되고, 돌조각들이 되고, 모래가 되고 또한 보드라운 흙이 되기까지에는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풍화 작용이 있었을 것이다.
흙은 또한 모든 생물의 바탕이기도 하다. 모든 생물은 흙에서 나오고, 흙에서 살고, 흙에서 나오는 것으로써 생존하고 있다.
성서(聖書)에서 보면, 하느님은 사람을 흙으로 빚어서 콧구멍속으로 생명을 불어넣어 창조하였다면, 그 중에서 사람은 가장 으뜸가는 흙의 창조물인 것이다.
사람은 토굴(土窟) 속에서 살다가, 또한 흙으로 벽을 쌓고 흙으로 만든 집 속에서 살기도 하였다. 사람은 흙을 빚어서 그릇을 만들기도 하였고, 흙을 쌓아서 토성(土城)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렇게 사람은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흙을 이용하는 슬기를 배워야 했다.
또한 흙을 이용해서 먹을 양식을 구하는 진리를 얻어야 했다.
흙은 모든 생명의 살이 되고, 피가 되고, 뼈가 되는 원천(源泉)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이 지상에 많이 늘어나고, 또한 근대 문명의 시설이 늘어남에 좇아서 흙의 면적은 자꾸만 좁아져 가고 있다.
산에서 무덤이 늘어나고, 마을과 도시에는 건물이 늘어나고, 공장이 자꾸 들어서고 있다.
도시와 마을 사이에는 넓은 포장도로가 거미줄과 같이 얽히어 가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살고 있는 큰 도시에는 붐비는 사람의 떼에 길이 좁아서 땅 속에 길을 뚫고 지하철을 달려야 할 지경이다.
흙의 면적이 모자라서 물 속에다 씨를 심고 채소를 재배하는 공부도 해야 한다.
무덤이 차지하는 흙의 면적을 좁히기 위해서 아파트식 무덤을 고안해 내기도 한다.
시체를 화장을 해서 공중에 연기로 사라지게 하는 방법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에서 나오는 것을 먹으면서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다른 모든 생물들이 하는 것과 같이 하나의 본연의 자세인 것이다.
또한 우리는 흙으로 해서 살아왔으므로 늘 흙을 사랑하는 마음이 본능과 같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쇼팽은 고국을 떠나서 외국으로 망명을 하였을 때, 고국의 한 줌 흙을 봉투에 넣어 갖고 출국을 하였다.
이국의 땅에 묻히는 한이 있어도 고국의 한 줌 흙과 함께 묻히고 싶은 그의 심정이었던 것이다.
자유를 빼앗긴 헝가리 피난민의 한 가족이 뉴요크의 공항에 도착하였을 때, 그의 온 가족이 모두 땅 위에 엎드려 자유의 땅 위에 맞추는 사진을 <<Life>>잡지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들의 자유를 애인과 같이 생명과 같이, 그렇게도 애타게 동경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이제 사람은 흙에 대한 애정을 잃어가고 있다. 지구위 피부와 살을 다 뜯어먹고, 긁어먹고 자기 한 몸뚱이를 영원히 담아서 쉬일 곳되 없는 슬픈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새 움과, 새 싹과, 푸른 잎새와 고운 꽃과, 싱싱한 열매를 이루어 주는 흙의 거룩하고, 싱싱한 내음을 나는 가슴 속 깊이 마셔 보고 싶다.
비료에 산성화되지 않은 처녀지의 덩어리를 나는 열 손가락으로 주물러 보고 싶다.
송아지 뒷다리 살과 같이 그 선명하고, 기름지고, 보드라운 흙을 나는 만져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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