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대하여
by 송화은율
데미안 / 헤르만 헤세
옛 시절에 대한 향수와 함께 젊은이의 번민, 현대 문명의 위기를 나타내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강력히 시사
<데미안>은 1차 대전 직후에 발표된 것으로서 2년 동안은 본명을 밝히지 않았다. 즉 <에밀 싱클레어 작 데미안, 어느 소년 시설의 이야기>로 되어 있으며, 그 후 그것이 헤세의 작품이라고 알려지자 9판부터 <데미안, 에밀 싱클레어의 소년 시절의 이야기>로 제목을 바꾸고 본명을 밝힌 것이다. 그의 작품 경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인다.
전기에 해당하는 대표작은 <페터 카멘찐트> <수레바퀴 밑에서> <게르트루트> 등으로서, 소년 시절의 동경, 청춘 시절의 꿈과 방황 등을 그리며, 현대 문명을 비판하고 서정적인 감각으로 향수를 짙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후기작 역시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정신이 짙게 나타나고 있지만, 자아의 탐구가 철학적 방법으로 전개되어 약간의 난해성을 띄게 된다.
데미안은 바로 이 두 가지의 경향의 과도기적 작품으로서, 앞머리는 싱클레어의 소년 시절의 이야기가 서정적인 분위기에서 묘사되고, 후반부는 묘사가 아닌 철학적 자아 탐구 형태로 나타내고 있다. 전반부는 이 같은 자아의 탐구를 위한 도입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작자는 우선 두 개의 세계를 설정하고 있다. 하나는 싱클레어의 밝은 세계요 다른 하나는 크래머의 어두운 세계다. 소년 싱클레어는 훌륭한 전통적 가문의 부잣집에서 신앙과 지성을 갖춘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행복하게 자라다가 어둠의 세계에 부딪친다. 그 어둠의 세계 속에 있는 크래머는 가난하며 천대받고 살아 온 계층으로서 잘 사는 계층, 밝은 세계에 대해서는 도전적이다.
싱클레어는 어느 날 드디어 크래머의 무서운 함정에 말려들고 만다. 영웅적인 심리로 어느 집 과일밭에서 많은 과일을 따먹었다는 거짓말을 했다가 크래머에게 위협을 받는 것이다. 과일밭 주인이나 당국에 고발하겠다는 위협을 받는다. 할 수 없이 크래머의 요구대로 그에게 2마르크의 큰돈을 주겠다고 약속한 후,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기 집의 돈을 여러 차례 훔치게 되고, 크래머가 시키는 대로 무슨 짓이든 해 나가며 꿈속에서마저 이 악마에게 시달린다.
작자는 이 같은 어둠의 세계를 싱클레어에게 실감하게 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눈을 뜨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그렇지만 작자는 싱클레어를 언제까지나 그 같은 고통 속에 몰아 넣는 것이 아니라 데미안을 등장시켜서 싱클레어를 구원해 주고, 그로 하여금 세계에 대하여 좀더 깊고 올바른 성찰의 기회를 만들어 주며, 자아 탐구의 과정을 다그치게 해 준다. 데미안은 강한 의지의 소유자이며 같은 급우이면서도 이미 성숙한 지성과 함께 남들의 내면까지도 꿰뚫어보는 독심술마저 익히고 있다. 그는 싱클레어가 크래머에게 부당하게 구속당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크래머를 쫓아 버린다. 그래서 싱클레어는 구원을 얻고 다시 행복한 소년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데미안은 단순한 급우나 자연인이기보다는 선의 세계에 속해 있는 인간을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 구원해 주고 그를 키워 주는 특수한 존재로서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같은 데미안의 역할은 특히 대화를 통해서 싱클레어로 하여금 자아 탐구의 길에 들어서고 세계에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특히 카인의 세계와 아벨의 세계를 알고 독보적인 자아의 세계를 걷고 있는 데미안의 여러 가지 암시는 싱클레어의 각성에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이다.
전반부가 끝날 무렵에 가서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이런 쪽지를 남겨 준다. 「새는 알에서 벗어나려고 바둥거리는 것이며 알은 곧 세계요 새가 새로 탄생하기를 원한다면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새는 신을 향해 날개를 펼친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 한다」고 쪽지에 적고 있다. 아프락사스는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존재이며, 싱클레어는 이 수수께끼 같은 쪽지의 의미를 간신히 터득함으로써 비로소 방황과 번민을 벗어나 앞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하여 술이나 마시던 퇴폐한 대학 생활을 청산하고 비판하며 책을 읽고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곧 전쟁이 터지지만 그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파괴 현상이 새 역사를 향한 몸부림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싱클레어는 부상당하고 데미안은 다시 그의 곁을 떠나 전쟁터에서 죽어 가지만 그들은 절망하지 않는다.
헤세는 이런 스토리를 통해서 옛 시절에 대한 향수와 함께 젊은이의 번민, 현대 문명의 위기를 나타내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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