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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뜨기 전(Vor Sonnenaufgang) / 하우프트만(Gerhart Hauptmann)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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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뜨기 전(Vor Sonnenaufgang) / 하우프트만(Gerhart Hauptmann) 

 

 작품의 아우트 라인

 

 슐레겐의 변경(邊境)에서 탄광(炭鑛)이 개발되자, 지가(地價)의 폭등으로 근방의 가난한 농민들은 벼락 부자가 되었는데, 그 때문에 주색에 빠져 신세를 망치는 자들도 속출하였다. 크라우제 일가(一家)도 그 중의 하나로서, 가장(家長)은 알코올 중독자가 된데다가 성격마저 난폭해지고, 후처(後妻)는 자기의 조카 아들 카알과 불륜의 관계을 맺는다. 역시 알코올 중독자인 장녀 마르타의 남편 호프만은 기사(技師)이지만, 우둔한 주민들의 토지를 사서 한몫 볼 것을 꾀하고 있다. 이렇게 타락한 가정에서 차녀인 헤레네만큼은, 엄격한 기숙 여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심신(心身)이 모두 순결하지만 카알과의 결혼을 강요당할 처지에 놓여 있다.


 이 마을에, 이상주의적인 사회개혁가(社會改革家)이자 금주주의자(禁酒主義者)인 젊은이 요제프 로드가, 학우(學友)였던 호프만을 찾아 실태 조사를 하러 온다. 그런데, 정의한(正義漢) 인 로드에게 자기의 야심이 들통난 호프만은 나중에는 이 귀찮은 손님을 쫓아 내려고 한다. 로드에게 한눈에 반한 순정의 헤레네는, 이 암흑에서 자기를 구출하여 함께 데리고 가 줄 것을 로드에게 애원한다. 호프만은, 이 두젊은 한쌍의 눈치를 보고, 이들을 이용하고자 로드와 화해를 하고, 두 젊은이들은 바야흐로 행복한 길로 들어서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날 밤 임신한 호프만의 아내 마르타가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심한 난산(難産)의 괴로움을 격는다.


 왕진을 온 의사 쉴메르뻬니히는 로드의 구우(舊友)였는데, 로드에게 이 집안의 내정(內情)을 알려 주고, 헤레네에게도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증세가 유전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결혼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고 귀띔해 준다. 심신 공히 건강한 여성과 결혼하기를 신조로 삼고 있던 로드는 이 귀띔에 충격을 받고, 무거운 마음으로 헤레네를 버리고 말없이 이 집을 떠나버린다. 새벽녘에 마르타는 사산(死産)하였다. 헤레네는 로드가 놓고 간 쪽지를 보고 절망한 나머지, 엽도(獵刀)를 들고 옆방으로 가서 자결을 한다. 식모가 그녀의 시체를 발견하였을 때, 만취하여 술집에서 돌아오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또 들려 온다.


 이 작품은 1889년에, 요토브람이 주재하는 베를린의 자유 극장에서 초연되었지만, 연극에 있어서의 자연주의 운동의 등장으로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자연주의는 예술에 자연 과학의 성과를 채택하여, 대사의 정밀한 관찰과 분석에 의하여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고, 또 사회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었는데, 이와 같은 새로운 운동의 세례를 받은 하우프트만의 처녀 희곡(處女戱曲)이 자유 극장에서의 제2회 공연으로 상연이 되자, 초일에는 찬성파와 반대파의 관객이 소동까지 벌여졌다. 그러나, 이것에 의하여 27살의 청년 하우프트만은, 자연주의 기수로서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하게 되었다.


 양식적(樣式的)인 면에서 말하면, 이 작품의 신선미는, 엄밀한 관찰이라는 요구에 부응하여 인물이나 배경을 정밀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점, 종래의 관습을 깨고 지방의 인물에는 방언(方言)을 사용케 하고, 당시의 관객에게는 악취미로 여겨지고 있던 적나라한 사건까지도 무대에 등장시켰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표면적인 것에 대한 정밀한 관찰이 때로는 지나치게 하찮은 것이 된다는 결함도 인정되며, 그 후의 자연주의 운동으로부터도 비판을 받고 있다.

 주인공 하이라이트

 

 자기의 뜻을 관철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로드는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이 부족하지만, 하우프트만적인 특색을 갖춘 연약한 주인공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 유리된 이상주의자라는 점에서는 어딘지 입센의 『들오리』에 등장하는 그레게르스를 연상케한다.

 작자의 생애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Gerhart Haupt-mann)독일의 극작가. 1862년에 실레지엔 지방의 여관집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직조공(織造工)이었다. 조각가가 되기를 바라고, 브레슬라우(현재의 브로크라우)의 미술 학교에 다니다가, 작가로서 유명한 형 카를과 로마에 체류하였다. 그 후, 예나나 베를린의 대학에거 공부를 하던 중 자연주의 운동의 세례을 받았고, 특히 입센이나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해 뜨기 전』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하였다. 신여성과 구식의 아내와의 삼각 관계로 파멸하는 인텔리 청년을 묘사한 『외로운 사람들』에 이어, 1892녕데 집필한 『직공(織工)』은 그의 조부(祖父)도 체험한 바 있는 실래지아 지방의 직공들의 폭동을 소재로 한 사회극(社會劇)인데, 주인공이 없는 군중극(群衆劇), 사회의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그린 환경극(環境劇)으로서도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작품의 주제(主題)는 사회의 변혁이 아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몽정이었다. 같은 해에 그린 희극(喜劇)『해리(海狸)의 모피』는 당시는 실패작이었지만, 오늘날에는 평가가 높다.


 자연주의의 대표자처럼 여겨지고 있던 하우프트만은『한넬레의 승천(昇天)』에서부터 상징적ㆍ낭만적인 경향을 띄기 시작하였다. 흥행면으로도 대성공을 거둔 『침종(浸種)』(1896년)은 개인적 사건의 반영이기도 한 삼각관계를 메르헨(동화)적(的) 배경하에서 그린 운문극(韻文劇)으로서 상징극(象徵劇)『그리고 피파는 춤춘다』와 같은 계열의 작품이고, 상징적 작품을 쓴 뒤에도 자연주의적인 수법으로 『마부 헨셀』이며 『로제베른트』와 같은 작품도 썼고, 특히 비희극(悲喜劇) 『쥐』(1911년)는 당시의 공동화(公同化) 한 사회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점에서 후년에 이르러 높이 평가되었다.
 1912년에는 노벨상을 수상하고 고전적인 주제(主題)에 대한 관심이 컸다. 이미 두 번째의 부인 마르가레테와 시도한 그리이스 여행의 기행문(紀行文) 『그리이스의 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에로스적·디오니스적인 그리이스 세계를 재발견한 그는 역사적·문화적인 주제를 즐겨 다루게 되었다.


고전적인 지향은 『오디세우스의 활』에서 비롯하지만, 파계승(破戒僧)을 긍정적으로 그린 소설『조아나의 이단자』(1918년)는 에로스를 테마로 하는 대표작이다. 그 후에도 모든 분야에 걸쳐 정력적으로 창작을 계속하여,『겨울 이야기』『드로테아 앙기만』『해지기 전』『황금의 하아프』『비텐베르크 햄르트』, 서사시(敍事詩) 『탈 오이렌슈피겔』,소설『정렬의 책』『신시집』등을 발표하였다. 나찌스가 정권을 장악한 후에도 노령의 그는 국내에 잔류할 수 밖에 없었다.


제2차 대전의 파괴의 양상이 짙어 가는 속에서, 41년부터 45년에 걸쳐 「아트레우스 4부작」을 집필하였다. 농도짙은 염세적인 절망감은 이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1946년에 유작(遺作) 『어두움』을 남기고, 소련군 점령하의 아그네텐도르프에서 세앙을 떠났다.


 이미 초기 작품에서 지적된 바 있지만, 하우프트만의 주인공은 수동적으로서 환경이나 운명이나 충동 등에 의하여 파멸되는 경우가 많고, 그것들을 극복하려는 행동성이 희박하다. 그 자신의 생애도 수난의 역사라고 할 만한 것들이 있다.

 명문구 낙수

 

 「독일의 불화의 한 가운데에서」(『프로리안』제 1장)
*이 자연주의적인 역사극(歷史劇) 중에서, 농민 전쟁의 영웅인 가이아가 내분이나 불화를 버리고 협력할 것을 주장하며, 독일의 불화를 나타내는 백묵으로 그린 동그라미 속에 단검을 던지게 하는 장면에서 유래하는 말인데, 독일의 지역성, 내부 분열화를 꼬집에 한 말로서, 예언적인 의미를 가진다.

 심화 자료

 

 『해 뜨기 전』의 초연(初演) 떄에, 무대 뒤에서 난산(難産)의 마르타가 신음 소리를 내는 장면에서는 반대파의 이지도어 가스탄이라는 의사는 준비해 온 수술용 감자(柑子)를 진료 가방에서 꺼내 무대에 내밀어 보였다고 한다.


 하우프트만은 젋었을 떄, 베데킨트한테서 그의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제2작 『평화 축제』에서 퇴폐하고 몰락한 가정의 모델로 이용하였다. 베데킨트는 『젋은세대』에서, 아무 것이나 관찰하는 자연주의자를 등장시킴으로써 그에게 보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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