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해바라기 3 - 설정식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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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3 - 설정식

 

 

해바라기는 차라리 견디기 위하야

해바라기는 차라리 믿음을 위하야

너희들의 미래(未來)를 건지기 위하야

 

무심(無心)한 태양(太陽)

사슴의 목을 말리고

수풀에 불을 질르고

바다 천심(千尋)을 짜게 하여도

 

해바라기는 호올로

너의들의 타락(墮落)을 거부(拒否)하였다

 

모든 꽃이 아름다운 십자가(十字架)에 죽은 날

모든 열매가 여지(餘地)없이 유린을 당한 날

그들이 모다 원죄(原罪)로 돌아간 날

 

무도(無道)한 태양(太陽)

인간(人間) 우에 군림(君臨)하고

인간(人間)은 또 인간(人間) 우에 개가(凱歌)를 부르고

이기랴든 멍에냐 어깨마저 꺼저도

 

해바라기는 호올로

태양(太陽)에 필적(匹敵)하였다

(시집 , 1947.4)


<감상의 길잡이>

해방 직후 소설가, 시인, 번역가로 활동한 설정식은 우리 문학사에서 매우 이채롭고 문제적인 존재이다. 일찍이 광주학생운동에 가담하여 퇴학을 당한 후, 중국 체험을 하고, 다시 연희전문에 입학하여 미국문학 전공자로서 수석을 다투던 설정식은 매우 드물게 직접 미국 유학을 하고 돌아온 신세대 지식인에 해당한다. 해방 직후 미군정청 공보처 여론국장으로 활동하게 된 사실을 두고, 스스로 나는 미국인이 나를 쌍수로 들어 받아들인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할 정도로 자부심이 가득하였던 설정식은, 그러나 문학인으로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 있는 의문의 존재이기도 하다.

 

미군정청에 근무를 하고 있으면서도 남로당 지하 조직에 관여하고 조선문학가동맹에 적극 가담하여 외국문학부 위원장의 지위에 오른 그는, 해방 이후에만 3권의 시집을 상재(上梓)하고, 6편의 소설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친다. 공산당에 대한 탄압이 격심해지자 그는 창작을 중단, 세익스피어 연구에 몰두하고, 한때 사상 전환 기관인 보도연맹에 가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625 전쟁 중 자진하여 인민군에 입대하여, 소좌의 계급으로 판문점 회담 통역관으로 활동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1953년 남로당 일파 숙청시에 미제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사형당한다. 이러한 설정식의 매우 이채로운 삶은 해방공간에 처한 지식인의 문제를 가장 여실히 보여 주는 전형적인 경우라 할 만하다. , 스스로 선택한 미국 유학의 길과 그로 인한 미군정청 근무, 그리고는 다시 “(미국이) 자기네 군사 기지를 가진 나라에 대한 관심보다 군사 기지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았다.”고 하여 스스로 사직, 반미친공의 길을 선택하지만, 결국 그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해방공간의 지식인의 비극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해방 이후 1946년까지 창작한 그의 시는 제1시집 󰡔󰡕 속에 전부 수록되어 있고, 1947년에 쓴 것은 󰡔포도󰡕, 그리고 1948년 초기 발표분은 󰡔제신의 분노󰡕에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그의 시작(詩作)은 대략 세 단계로 설명된다. 그 첫째는 시집 󰡔󰡕󰡔포도󰡕에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태양의 이미지와 관련된 <해바라기> 연작이고, 둘째는 <해바라기> 연작에서 보이는 새 역사 창조의 이념이 한 단계 높은 상징성을 획득하고 있는 <>의 세계, 세 번째는 시인의 목소리를 작중 화자의 목소리로 일치시켜 민족사적 과제를 직접 제시하는 예언자적 목소리의 <제신의 분노>의 세계이다.

 

<해바라기 3>, 그의 <해바라기> 연작 중에서도 새 역사의 이념으로서의 해바라기와 천도(天道)의 표상으로서의 태양과의 갈등을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 <해바라기 1><해바라기 2>에서는 해바라기가 곧 태양의 표상으로서 새 역사의 초석을 세울 수 있는 일차적인 힘을 상징한다고 본다면, <해바라기 3>에서는 호올로 / 태양에 필적하여 역사적 전망과 의지를 담고 있는 상징적 주체로 자리잡는다고 볼 수 있다.

 

태양사슴의 목을 말리고 / 수풀에 불을 지르고/ 바다 천심을 짜게만드는 무도한존재로서 인간 우에 군림한다. 이러한 태양 아래에서 인간은 또 인간 우에 개가를 부르는 타락의 삶을 살아간다. 그것을 시적 화자는 모든 꽃이 아름다운 십자가에 속은 날 / 모든 열매가 여지없이 유린을 당한 날 / 그들이 보다 원죄로 돌아간 날로 규정한다. 이러한 현실 아래에서, 종래 태양을 따라 돌면서 태양을 향하는 바로 그 속성으로 인하여 태양의 표상으로 상징되던 해바라기, ‘차라리 견디기 위하야’, ‘차라리 믿음을 위하야’, 그리고 민족의 미래를 건지기 위하야’ ‘호올로 / 태양에 필적하는 존재로 전환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바라기의 이미지의 전환은 어디까지나 관념적이다. , ‘태양에 호올로 / 필적하는’ ‘해바라기를 통해서 시인은, 새 역사 창조, 새 나라 창조에 대한 의지와 사랑을 강조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그 비유와 언어감각은 낯설고 거칠다. 그만큼 그의 시작(詩作) 행위는 극히 단순한 이념의 열정적 표출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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