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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鶴) / 줄거리 및 해설 / 황순원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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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鶴) / 황순원


 지은이 : 황순원

 갈래 : 단편 소설

 성격 : 서정적, 인간주의적

 배경 : 6·25 전쟁 중 삼팔 접경의 북쪽 마을

 시점 :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부분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이 보임.

 문체 : 간결체

 경향 : 휴머니즘

 제재 : 어린 시절의 친구를 호송하는 성삼

 구성 : 역순행적 구성(이 소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행적으로 전개되지 않고, 현재의 상황을 먼저 제시하고, 회상의 내용을 제시한 다음, 다시 현재 이후의 사건을 제시하는 역행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덕재의 성삼에 대한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과 맞물려 있으며, 민족의 동질성과 동족애의 회복이라는 주제 의식과도 관련되어 있다.)

 

  발단 : 황폐해진 마을에 공포 분위기가 감돈다

  전개 : 임시 치안대에 끌려온 덕재를 보고 호송을 자처하는 성삼

  위기 : 덕재를 추궁하던 성삼은 덕재의 처지를 이해하게 됨

  절정 : 학 사냥을 하던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함

  결말 : 성삼이 학 사냥을 제의하며 덕재의 포승줄을 풀어줌

 

 주제 : 전쟁과 이념의 증오를 넘어서는 우정의 따뜻함, 사상과 이념의 대립을 넘어서는 따뜻한 인간애(이 소설의 주제는 민족의 동질성과 동족애의 회복이다. 즉, 이념적으로 적대 관계에 놓인 두 사람이 평화롭고 행복했던 과거의 체험을 떠올리면서 현실의 갈등을 해소하고 예전처럼 동질성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 전쟁과 삼팔선 부근의 마을 배경으로 삼은 점이라든지, 객관적인 위치에서 사건을 조망하고 관찰하는 서술자를 내세운 점 등도 이러한 주제 의식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인간애의 실현

 

 작품 개관 :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 전쟁과 삼팔선 부근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덕재와 성삼이라는 두 인물 간의 이념 대립과 그 해소 과정을 간결하면서도 집약적인 구조로 표현한 단편 소설이다. 단편 소설은 단일한 주제와 사건을 다루며, 인물의 성격이 분명하게 제시된다는 점, 서사 구조가 선명하며 일관된 시점을 유지한다는 점, 구성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통일적인 인상을 준다는 점 등에서 소설의 본질과 특성을 이해하는 데 효과적인 형식이다. 통일에 대한 기운이 고조되고 있는 민족적 상황과 관련하여 볼 때,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줄거리 : 한 마을에서 단짝동무로 지냈던 성삼이와 덕재는 6·25가 나면서 이념을 달리하는 적대 관계로 만나게 된다. 치안 대원이 된 성삼이는 덕재가 체포되어 온 것을 보고는 청단까지의 호송을 자청하여 덕재를 데리고 나선다.

호송 도중, 성삼이는 유년 시절 때 호박잎 담배를 나눠 피우던 생각과 혹부리 할아버지네 밤을 서리하다가 들켜 혼이 난 추억들을 떠올리며 내적 갈등을 느낀다.

 

농민 동맹 부위원장까지 지낸 덕재에 대한 심한 적대감을 품기도 했으나, 대화를 하는 사이에 점차 적대감이 누그러지면서 덕재의 몰(沒)이념성을 알게 된다. 즉, 덕재는 스스로 공산주의 이념에 동조한 것이 아니라 빈농(貧農)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용당했을 뿐으로 사실은 땅밖에 모르는 순박한 농민이었던 것이다.

 

덕재는 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있었고, 또 농사에 대한 고집스러운 애착으로 인해 피난하지 않고 마을에 남게 된 사실을 이야기한다. 성삼이는 자신이 피난 가던 때를 회상하면서 농사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피난하기를 끝까지 거부하시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덕재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어느덧 덕재에 대한 증오심이 점차 우정으로 바뀌면서 고갯마루를 넘는다.

 

성삼이는 고갯길을 내려오면서 전처럼 살고 있는 학 떼를 발견하고는 옛일을 회상하게 된다.

어린 시절, 학을 잡아 얽어매 놓고 괴롭히다가 사냥꾼이 학을 잡으러 왔다는 소문을 듣고 놀라서 학 발목의 올가미를 풀어준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에는 제대로 날지 못하다가 자유로워진 학이 푸른 하늘로 날아 갔던 일에 대한 추억이 그것이다.

 

성삼이는 덕재의 포승줄을 풀어 준다. 덕재는 처음에는 성삼이가 자기를 쏘아 죽이려고 이러나 보다고 멈칫거렸으나, "어이, 왜 맹추같이 게 섰는 게야?" 하는 성삼이의 재촉에 무엇을 깨달은 듯 잡풀 사이로 도망친다. 때마침 단정학(丹頂鶴) 두세 마리가 가을 하늘을 날고 있었다.

 

삼팔 접경의 이 북쪽 마을은 드높이 갠 가을 하늘 아래 한껏 고즈넉했다(잠잠하고 호젓했다).

주인 없는 집 봉당(封堂 : 재래식 한옥에서 안방과 건넌방 사이의 마루를 놓을 자리에 흙바닥을 그대로 둔 곳)에 흰 박통만이 흰 박통(타지 않은 박)을 의지하고 굴러 있었다.

 

어쩌다 만나는 늙은이는 담뱃대부터 뒤로 돌렸다(늙은이의 행동을 통해 전쟁이 가져다 준 불신감으로 가득 찬 마을 분위기를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아이들은 또 아이들대로 멀찍이서 미리 길을 비켰다. 모두 겁에 질린 얼굴들이었다(전쟁의 공포감이 표출됨).

 

동네 전체로는 이번 동란에 깨어진 자국이라곤 별로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자기가 어려서 자란 옛 마을은 아닌 성싶었다.

 

뒷산 밤나무 기슭에서 성삼이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거기 한 나무에 기어 올랐다. 귓속 멀리서, '요놈의 자식들이 또 남의 밤나무(회상의 매체로 다음에 나오는 담배 역시 회상의 매체임)에 올라가는구나.'하는 혹부리 할아버지의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성삼이의 추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건을 소개한 구절로 성삼이의 기억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고향에 대한 추억은 친구 덕재에 관한 것임을 추리할 수 있다). 그 혹부리 할아버지도 그새 세상을 떠났는가, 몇 사람 만난 동네 늙은이 가운데 뵈지 않았다.

 

성삼이는 밤나무를 안은 채 잠시 푸른 가을 하늘을 쳐다보았다. 흔들지도 않은 밤나무 가지에서 남은 밤송이가 저 혼자 아람이 벌어 떨어져 내렸다. 임시, 치안대(6·25 때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민간인 조직) 사무소로 쓰고 있는 집 앞에 이르니, 웬 청년 하나가 포승(捕繩 : 오랏줄)에 꽁꽁 묶이어 있다.

 

이 마을에서 처음 보다시피 하는 젊은이라, 가까이 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깜짝 놀랐다. 바로, 어려서 단짝동무였던 덕재가 아니냐.

 

천태(이 소설에는 '천태'와 '청단'이라는 지명이 제시된다. 이 두 지명은 황해도 해주에서 개성에 이르는 국도 상에 있는 곳들로, 둘 간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이곳은 북한의 곡창 지대로 알려진 연백 평야의 중심부를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간적 배경은 작품의 사실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에서 같이 온 치안대원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농민 동맹(6·25 때 북한군이 남침한 후에 만든 어용 농민 단체) 부위원장을 지낸 놈인데, 지금 자기 집에 잠복(드러나지 않게 숨음)해 있는 걸 붙들어 왔다는 것이다.

 

성삼이는 거기 봉당 위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덕재는 청단까지 호송하기로 되었다. 치안대원 청년 하나가 데리고 가기로 됐다.

성삼이는 다 탄 담배 꽁초에서 새로 담뱃불을 댕겨 가지고 일어섰다.

“이 자식은 내가 데리고 가지요.”

덕재는 한결같이 외면한 채 성삼이 쪽은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동구 밖을 벗어났다.

 

성삼이는 연거푸 담배만 피웠다. 담배 맛을 몰랐다(담배 맛도 모르면서 연거푸 담배를 피워 대는 성삼이의 행동은 그가 심리적 갈등을 겪고 있음을 암시한다. 담배는 성삼이의 내면을 간접적으로 암시할 뿐만 아니라, 호박잎 담배를 나누어 피우던 일과 밤서리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회상을 계기로 덕재와의 갈등이 점차 해소되어 간다). 그저 연기만 기껏 빨았다 내뿜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 덕재 녀석도 담배 생각이 나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 어른들 몰래 담 모퉁이에서 호박잎 담배를 나눠 피우던 생각이 났다. 그러나 오늘 이깟놈에게 담배를 권하다니 될 말이냐?(덕재가 안쓰러우면서도 적대감을 갖고자 애쓰는 성삼의 심리 상태가 드러난 부분으로 일종의 반어적 표현으로 담배를 권할까 생각한 것은 성삼에게 우정이 남아 있음을 말해 준다)

 

한번은 어려서 덕재와 같이 혹부리 할아버지네 밤을 훔치러 간일이 있었다. 성삼이가 나무에 올라갈 차례였다. 별안간 혹부리 할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나무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엉덩이가 밤송이에 찔렸다. 그러나 그냥 달렸다. 혹부리 할아버지가 못 따라올 만큼 멀리 가서야 덕재에게 엉덩이를 돌려 댔다. 밤가시 빼내는 게 더 따끔거리고 아팠다. 절로 눈물이 찔끔거려졌다. 덕재가 불쑥 자기 밤을 한줌 꺼내어 성삼이 호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성삼이는 새로 불을 댕겨 문 담배를 집어 내던졌다. 그리고는, 이 덕재 자식을 데리고 가는 동안 다시 담배를 붙여 물지 않으리라 마음먹는다.(덕재가 혹시나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이 들까 보아서, 또 그렇다면 담배를 줄 수도 없고 안 줄 수도 없는 상황이 될까 보아서 아예 자신도 담배를 안 피우기로 한 것이다.)

 

고갯길에 다다랐다. 이 고개는 해방 전전해, 성삼이가 삼팔이남 천태 부근으로 이사 가기까지 덕재와 더불어 늘 꼴 베러 넘나들던 고개다.

 

성삼이는 와락 저도 모를 화가 치밀어, 고함을 질렀다.

“이 자식아, 그 동안 사람을 몇이나 죽였냐?”

그제야 덕재가 힐끗 이쪽을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거둔다.

“이 자식아, 사람 몇이나 죽였어?”

덕재가 다시 이리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는, 성삼이를 쏘아본다. 그 눈이 점점 빛을 더해 가며, 제법 수염발 잡힌 입언저리가 실룩거리더니,

“그래, 너는 사람을 그렇게 죽여 봤니?”

이 자식아! 그러면서도 성삼이의 가슴 한복판이 환해짐을 느낀다(붙잡혀 가는 주제에 자기에게 대들다니 하는 생각과 덕재의 결백을 확인한 데서 오는 성삼의 안도감을 나타낸 것이다). 막혔던 무엇이 풀려 내리는 것만 같다. 그러나,

“농민 동맹 부위원장쯤 지낸 놈이 왜 피하지 않고 있었어? 필시 무슨 사명을 띠구 잠복해 있은 거지?”

덕재는 말이 없다.

“바른 대로 말해라. 무슨 사명을 띠구 숨어 있었냐?”

덕재는 그냥 잠잠히 걷기만 한다. 역시 이 자식 속이 꿀리는(마음속으로 좀 켕기는) 모양이구나. 이런 때 한 번 낯짝을 봤으면 좋겠는데, 외면한 채 다시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성삼이는 허리에 찬 권총을 잡으며,

“발명(변명을 말함)은 소용 없다, 영락없이 넌 총살감이니까. 그저 여기서 바른 대로 말이나 해 봐라.”

덕재는 그냥 외면한 채,

“발명은 하려구도 않는다. 내가 제일 빈농(貧農 : 가난한 농민)의 자식인데다가 근농군[勤農軍 : 부지런한 농사일을 하는 일꾼(농부)]이라구 해서 농민 동맹 부위원장이 됐던 게 죽을 죄라면 하는 수 없는 거구, 나는 예나 이제나 땅파먹는(농사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재주밖에 없는 사람이다.”["변명은 할려구두 않는다. - 예나 이제나 땅파먹는 재주밖에 없는 사람이다.”: 이념의 대립이라는 것이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무척 생소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구절이다. 이념의 문제를 바라보는 작자의 태도를 알 수 있다. 또한 이는 바로 성삼이와의 동질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잠시 사이를 두어,

“지금 집에 아버지가 앓아 누웠다. 벌써 한 반 년 된다.”

덕재 아버지는 홀아비로 덕재 하나만 데리고 늙어 오는 빈농군이었다. 칠 년 전에 벌써 허리가 굽고 검버섯(늙은이의 살갗에 생기는 검은 얼룩)이 돋은 얼굴이었다.

“장가 안 들었냐?(대화가 사적인 내용으로 전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덕재가 '아버지가 앓아 누웠다'고 이야기한데 따른 것으로, 성삼의 심리적 갈등이 많이 해소되었음을 암시)

잠시 후에,

“들었다.”

“누구와?”

“꼬맹이(키가 작은 사람을 깔보는 조로 이르는 말)와.”

아니, 꼬맹이와? 거 재미있다. 하늘 높은 줄은 모르고 땅 넓은 줄만 알아, 키가 작고 똥똥하기만 한 꼬맹이, 무던히 새침데기('새침데기'. 새침한 태도가 있는 사람)였다. 그것이 얄미워서 덕재와 자기가 번번히 놀려서 울려주곤 했다. 그 꼬맹이한테 덕재가 장가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 애가 몇이나 되나?”

“이 가을에 첫애를 낳는대나.”

 

성삼이는 그만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꼬맹이에 대한 대화는 두 사람의 사적인 관계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꼬맹이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상상하며 성삼이가 웃는 것은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점차 우정을 회복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 입으로 애가 몇이나 되느냐 묻고서도, 이 가을에 첫애를 낳게 됐다는 말을 듣고는 우스워 못 견디겠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작은 몸에 큰 배를 한 아름 안고 있을 꼬맹이, [성삼이는 그만 저도 모르게 - 작은 몸에 큰 배를 한 아름 안고 있을 꼬맹이, : 어려서 알고 지내던 똥똥한 꼬맹이가 어느덧 임신해 있음을 생각하고는 자연스레 우스워진 것이다. 성삼이에게도 이념 따위보다는 동심과 연결된 풋풋한 인정이 더 강함을 알 수 있다.]그러나 이런 때 그런 일로 웃거나 농담을 할 처지가 아니라는 걸 깨달으며,

 

“하여튼 네가 피하지 않구 남아 있는 건 수상하지 않아?”

“나두 피하려구 했었어. 이번에 이남서 쳐들어오믄 사내란 사낸 모조리 잡아 죽인다구, 열 일곱에서 마흔 살까지의 남자(전투력을 지닌 남자)는 강제루 북으루 이동하게 됐었어. 할 수 없이 나두 아버질 업구라두 피난 갈까 했지. 그랬더니, 아버지가 안 된다는 거야. 농사꾼이, 다 지어 놓은 농살 내버려 두구 어딜 간단 말이냐구[농사꾼이 다 지어 놓은 농살 내 버려 두구 어딜 간단 말이냐구. : 추상적인 이념보다 땅을 중시하는 농민의 태도가 확인되는 구절이다. 땅이야말로 농민들에겐 가장 확실한 삶의 근거임을 알 수 있다.]. 그래, 나만 믿구 농삿일루 늙으신 아버지의 마지막 눈이나마 내 손으로 감겨 드려야겠구, 사실 우리같이 땅이나 파먹는 것이 피난 간댔자 별수 있는 것두 아니구……[사실 우리같이 땅이나 파먹는 것이 피난 간댔자 별수 있는 것두 아니구 . : 농민이 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또한 이 역시 덕재와 성삼이의 동질성을 시사하는 구절이다.].”

 

지난 유월달에는 성삼이 편에서 피난을 갔었다. 밤에 몰래 아버지더러 피난 갈 이야기를 했다. 그 때, 성삼이 아버지도 같은 말을 했다. 농사꾼이 농삿일을 늘어놓구 어디루 피난 간단 말이냐. 성삼이 혼자서 피난을 갔다(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키느라고 피란을 가지 못한 덕재와 대조를 이룬다). 남쪽 어느 낯선 거리와 촌락을 헤매다니면서 언제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건 늙은 부모와 어린 처자에게 맡기고 나온 농삿일이었다. 다행히 그 때나 이제나 자기네 식구들은 몸성히들 있다.

 

고갯마루를 넘었다(이 소설의 배경은 삼팔선 접경 지역의 시골 마을이다. 이는 남북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당시 상황을 집약하여 보여 주는 상징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성삼의 내적 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음을 암시한다.). 어느 새 이번에는 성삼이 편에서 외면을 하고 걷고 있었다(친구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우정이 되살아 났음을 암시). 가을 햇볕이 자꾸 이마에 따가왔다. 참, 오늘같은 날은 타작하기에 꼭 알맞은 날이라고 생각했다.(성삼 역시 반공 이념에 사로잡히기보다는 본래의 농민 의식을 되살려 덕재를 대하려 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을, 날씨와 타작을 연관짓는 그의 생각을 통해 드러낸 부분이다)

 

고개를 다 내려온 곳에서 성삼이는 주춤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 쪽 벌 한가운데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고 섰는 것 같은 것은 틀림없는 학 떼였다('학'은 깨끗함. 결백함, 순수함 등의 이미지를 지닌 존재로, '백의 민족'인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 정치적 현실과 상관없이 예전처럼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학'의 모습을 통해 이념 갈등에서 벗어나 예전처럼 평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작가의 주제 의식을 암시하는 구절이다). 소위 삼팔선 완충지대(緩衝地帶 : 양 편의 충돌을 막기 위해 두 세력 사이에 설정한 중간 지대)가 되었던 이 곳(이 작품에서 전쟁 직후 38선 접경 지역 마을을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한 것은 당대 역사의 문제를 비유적으로 집약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이 마을은 어떤 구체적인 마을을 가리키는 단순한 배경에 그치지 않고 남북으로 갈린 민족의 상처를 상징하는 것이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그 동안에도 이들 학들만은 전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 것이었다. : 여기서 학은 상징적으로도 읽힌다. 전쟁으로 남북한 사람들이 갈라졌어도 우리 민족은 동일한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삼팔선이란 임시적인 경계선에 불과하며, 우리 민족도 학들처럼 얼마든지 분열을 극복하고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날, 성삼이와 덕재가 아직 열 두어 살쯤 났을 때 일이었다. 어른들 몰래 둘이서 올가미(새끼나 노끈 따위로 고를 내어 짐승을 옭아서 잡는 장치)를 놓아 여기 학 한 마리를 잡은 일이 있었다. 단정학[丹頂鶴 : 정수리에 붉은 점이 있는 학. (백)두루미를 달리 일컫는 말, 여기서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의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학은 농촌에 기반한 우리 민족의 공동체 정신을 상징한다.]이었다. 새끼로 날개까지 얽어매 놓고는 매일같이 둘이서 나와 학의 목을 쓸어안는다. 등에 올라탄다, 야단을 했다(떠들석한 일을 벌이다). 그러한 어느 날이었다. 동네 어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서울서 누가 학을 쏘러 왔다는 것이다. 무슨 표본((標本 : 사생이나 자연 같은 것의 학습에 쓰이는 실물 견본)인가를 만들기 위해서 총독부(총독이 정무를 보는 관청.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 허가까지 맡아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그 길로 둘이는 벌로 내달렸다. 이제는 어른들한테 들켜 꾸지람 듣는 것 같은 건 문제가 아니었다.[동네 어른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 꾸지람 듣는 것 같은 건 문제가 아니었다. : 자기들이 잡아 놓은 학이 잘못하면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어른들에게 들켜 야단을 맞을 거라는 걱정보다 컸다. 또한, 사람들이 수군거린다든지, 학을 잡을 허가를 맡아왔다는 부분을 통해 동네 전체에서 학을 보호하고 아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저 자기네의 학이 죽는다는 생각뿐이었다.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잡풀 새를 기어 학 발목의 올가미를 풀고 날개의 새끼를 끌렀다. 그런데 학은 잘 걷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 동안 얽매여 시달린 탓이리라. 둘이서 학을 마주 안아 공중에 후쳤다[투(投)치다 : 멀리 가 버리도록 던져 쫓다]별안간 총 소리가 들렸다. 학이 두서너 번 날개짓을 하다가 그대로 내려왔다. 맞았구나. 그러나 다음 순간, 바로 옆 풀숲에서 펄럭 단정학 한 마리가 날개를 펴자, 땅에 내려앉았던 자기네 학도 긴 목을 뽑아 한 번 울음을 울더니 그대로 공중에 날아 올라, 두 소년의 머리 위에 둥그러미를 그리며 저 쪽 멀리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두 소년은 언제까지나 자기네 학이 사라진 푸른 하늘(자유의 상징)에서 눈을 뗄 줄을 몰랐다.

 

“얘, 우리 학 사냥이나 한 번 하구 가자.”(성삼이가 학 사냥을 제안한 것은 덕재에게 도망칠 기회를 주겠다는 암시이다)

성삼이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덕재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내 이걸루 올가미를 만들어 놀께, 너 학을 몰아 오너라.”

포승(죄인을 잡아 묶는 노끈으로 이데올로기가 민족의 공동체 의식, 또는 구체적으로 농민의 순박한 의식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것을 상징한다)을 풀어 쥐더니, 어느 새 성삼이는 잡풀 새로 기는 걸음을 쳤다.

대번 덕재의 얼굴에서 핏기가 걷혔다[친구인 성삼이가 저를 차마 직접 마주보고 쏠 수 없기에 자신을 풀어 주고는 잡풀 속으로 들어가 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좀 전에, 너는 총살감이라던 말이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성삼이가 기어가는 쪽 어디서 총알이 날아오리라.[성삼이의 의도에 대한 덕재의 오해]

 

저만치서 성삼이가 홱 고개를 돌렸다.

“어이, 왜 멍추(기억력이 부족하고 흐리멍덩한 사람으로 작은 말은 '맹추'임)이 섰는 거야? 어서 학이나 몰아 오너라.”["어이, 왜 멍추같이 게 섰는 게야? 어서 학이나 몰아 오너라." : 기회를 주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덕재에게 어서 도망가라고 일러 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제서야 덕재도 무엇을 깨달은 듯(자유를 찾아 도망치라는 뜻), 잡풀 새를 기기 시작했다.

때마침 단정학 두세 마리가 높푸른 가을 하늘에 큰 날개를 펴고 유유히 날고 있었다.[자유의 몸이 된 덕재를 상징하면서 민족적 상흔(傷痕)의 치유책을 암시하고 있다.]


1. 위 소설의 시점은 무엇인지 말해 보자.

예시 답안 :  3인칭 작가 관찰자 시점. 부분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보이고 있다.

 

2. 위 작품의 주제를 이념을 초월한 우정(友情)’이라고 할 때, 이와 같은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해 다음의 요소들은 어떻게 이바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예시 답안 -

배경 :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625 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이다. 제시된 자료의 포승줄’, ‘총살감이라는 말을 통해 덕재와 성삼이 이념적으로 대립적인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은 친구였던 두 사람의 평화로운 유년 시절과 대립되어 극적 효과를 높임으로써, ‘이념을 초월한 우정이라는 주제 형상화에 기여한다.

상징적 소재 : 이 작품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소재는 이다. ‘자유 평화’,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은 성삼과 덕재의 우정 회복과 함께 덕재의 자유를 의미한다. 덕재를 끌고 가던 성삼은 어린 시절의 학 사냥을 떠올리고, 덕재를 풀어 주기로 결심한다. 마지막에 학 두세 마리가 하늘을 유유히 날아오르는 장면은 두 사람의 우정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결국 이념보다도 우정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이 자체가 작품의 주제 의식이 된다.

 

작품 개관

 

1. 작품 선정의 취지

 '학'은 소설의 구성 요소 중 특히 배경을 공부할 수 있도록 선정된 작품이다. 배경은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인물, 인물들의 행동, 사건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보이게 하며, 주제를 뚜렷하게 드러내 주고, 인물의 심리와 사건의 전개에 대하여 암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다양한 소설적 장치를 이용하여 그 의도를 십분 성취하고 있는데, 삼팔선 접경 지역 마을의 전쟁 직후 상황이라는 시, 공간적 배경의 설정은 당대 역사의 문제를 비유적으로 집약하기 위한 작가 의도의 소산이다. 작품 속에서 이 마을은 구체적인 마을에 그치지 않고 남북으로 갈린 민족적 상처의 상징이 된다. 이 작품을 통해, 배경은 사건의 전개와 인물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며, 또 사실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지도의 핵심

 이 작품은 6·25 전쟁이 가져다 준 비극적 상황과 인간애를 소설화한 것이다. 동족 상잔이라는 민족적 비극 속에서도 찬연히 빛나는 순수한 우정을 통하여 이념을 초월한 따뜻한 인간애를 서정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는데, 이를 통해 순수한 인간의 본성(학)과 진정한 의미의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3. 작품연구

 '학'은 1953년 5월 (신천지)52호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 유년의 통과 제의나 전쟁의 비극을 강조하지 않고, 유년 시절의 천진무구한 절대성을 전쟁이나 이념의 적대 관계로부터의 초탈과 연결지음으로써 운학(雲鶴)이 그려진 수묵화(水墨畵)처럼 담담하게 그려졌으면서도 진한 호소력을 지닌 작품이다. 주인공 성삼은 농민 동맹 부위원장을 지낸 덕재(한 마을의 단짝 친구)가 치안대에 잡혀 오자 그를 단독으로 호송하기로 한다. 처음에는 이념의 대립을 느끼나 덕재의 사정(빈농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제로 농민 동맹 부위원장이 되고, 늙으신 아버지와 농사일 때문에 피난을 못 간 것)을 듣게 되면서 갈등이 점차 해소되어 옛날의 따뜻했던 우정을 다시 느끼게 된다. 삼팔선 완충 지대에 이르러 학 떼를 본 순간 성삼은 어린 시절 학 사냥의 기억을 떠올리며 덕재의 포승줄을 풀어 준다. 우리 민족이 특별히 애착을 갖는 길조인 '학'을 중심으로, 이념의 분단이 빚은 인간성의 파괴와 상실을 사랑의 관계로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이다. 이념의 분열이 우정이나 순수한 인간애를 궁극적으로 파괴 할 수 없다는 작가의 휴머니즘이 밀도 있게 그려져 있는 이 작품은 미국의 계간지 <프레리 스쿠너(Prairie Schooner)>에도 게재되었다.

 

학습활동

 

친해지기

1. 이 작품에서 성삼과 덕재가 서로 갈등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지도방법: 이 활동은 소설에 나타난 갈등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활동이다. 학생들에게 갈등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알아보게 하고 이 작품의 갈등은 어디에 속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단서로는, 단순하게 성삼과 덕재 사이의 이념의 대립, 혹은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사이의 체제의 대립으로 나타나는 외적인 갈등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꼼꼼히 읽기

1. 다음구절에 드러난 인물의 심리에 대해 생각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인물 묘사를 통해 그 인물의 심리를 나타낼 수 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활동이다. 학생들에게 성삼과 덕재의 대화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를 발표하게 하고 그 속에 나타나는 심리의 변화를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풀이 : 지금까지 덕재가 외면해 왔는데 이번에는 성삼이가 외면하는 것이다. 덕재의 소박함과 진실성에 감복되어 우정이 되살아난 성삼의 심리가 드러나는 행동으로, 단짝 동무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 나타나 있다.

2. 이 작품에서 '학'이 상징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작품의 제목인 '학'의 상징성을 이해하기 위한 활동이다. '학'의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되는 상징성을 자유롭게 발표하도록 하고 그 발표 중에서 공통되는 것이 무엇인가 찾게 하여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교사의 고정 관념으로 단정지어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학생들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풀이 : 이 작품에서 학이 등장하는 것은 주로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부분이다. 어린 시절에 성삼과 덕재는 학을 잡아 놓고 있었다. 그러나 사냥꾼이 온다는 말을 듣자 학을 놓아 주게 된다. 여기에서 학은 '자유'를 상징한다. 또한 학은 덕재와 성삼이의 우정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린 시절 자신들이 잡았던 학을 다시 풀어 준 것은 두 사람의 따뜻한 인간성을 보여 주는 기능을 한다. 학은 이 인간성을 환기시킴으로써 두 사람이 어렸을 적에 지니고 있던 우정을 환기시켜 주는 것이다.

탐구 : '학'의 공간적 배경과 사건 전개의 관계

 

배경의 기능

 

1. 인물과 행동의 신빙성(reality의 부여)을 높여 준다

2. 작품의 분위기나 무드를 만들어 낸다.

3. 주인공의 의식과 사상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4. 배경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5.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6. 독자로 하여금 현장감을 지니도록 한다

공간적 배경의 변화 : 인물들 간의 갈등의 변화 양상과 긴밀하게 대응

'학'의 공간적 배경의 변화 : 마을안 - 동구 밖 - 고갯길 - 고갯마루 - 벌판

낮은 곳 - 높은 곳(갈등의 고조) - 낮은 곳(갈등의 해소)

넓은 곳 - 좁은 곳(갈등의 고조) - 넓은 곳(갈등의 해소)

지도방법: 소설에서 인물의 행위와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 배경이다. 따라서 배경은 소설 전편에 나타나는 요소이다. 학생들에게 한 편의 작품을 제시하고 배경이 상황의 변화나 사건의 전개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파악하여 발표하도록 한다. 학생들이 발표한 내용을 종합하여 스스로 배경과 사건 전개와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3. 이 작품에서 공간적 배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성삼과 덕재 간의 갈등의 크기를 수치화하여 아래 표에 점을 찍고, 그 점들을 서로 연결해 보자.(단, 갈등이 가장 클 때를 '5', 없을 때를 '0'으로 한다.)지도방법 : 이 활동은 구성 단계에 따른 갈등의 변화 양상을 알기 위한 활동이다. 사건의 전개 과정을 이해하고, 배경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두 사람의 심리 변화를 파악하도록 해야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확인하고 서로의 견해를 교환해 봄으로써 더 능동적이고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예시 답안 : 마을안(2) - 동구 밖(3) - 고갯길(4) - 고갯마루(5) - 벌판(0)

 

시야 넓히기

다음은 영화 '공동 경비 구역 JSA'의 줄거리이다. 이 영화와 '학'의 주인공은 모두 서로 적대적인 체제에 속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나누게 된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서 두 작품의 작가가 공통적으로 강조하려는 바는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지도방법 : 이 활동은 서로 다른 이야기인 작품의 분석을 통해 공통된 주제를 파악하기 위한 활동이다. 학생들이 영화 '공동 경비 구역 JSA'를 직접 보고 난 후 두 작품에 대한 느낌을 자유롭게 이 야기하는 과정에서 작품에서 받은 정서적 체험을 공유할 수 있는 점이 무엇인가를 파악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영화를 보지 않은 경우에는 교사가 영화에 대한 배경 지식을 제시해 주되 핵심 내용으로 유도해서는 안 된다.

 

풀이 : '학'에서는 삼팔선 접경의 북쪽 마을, 단짝 동무였던 성삼과 덕재가 6·25전쟁 중 연행자와 피연행자의 처지로 만난다. 그러나 성삼은 덕재가 지금 이용당하고 있는 것일 뿐,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음을 깨닫는 순간, 어린 시절 학 사냥의 기억을 되살리며 포승줄을 풀어 준다. '공동 경비 구역 JSA'에서는 비무장 지대 수색 중 지뢰를 밟아 대열에서 낙오된 이수혁 병장이 뜻하지 않게 만난 북한군 중사 오경필과 전사 정우진의 도움으로 다행이 목숨을 건진다. 남과 북은 그렇게 인간적으로 처음 만난다. 군사 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 초소에서 경비를 서던 그들은 서로 감사와 안부의 편지를 교환하다가, 급기야 '선'을 넘어 만나기 시작한다. 인간적이고 따뜻한 오경필 중사, 그림 잘 그리고 착한 정우진 전사, 호기심 많고 속사수인 이수혁 병장, 그들은 냉전의 최전선에서 팽팽하게 대치한 남북의 병사가 아닌 형과 동생으로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아간다. 포르노 잡지에 열광하고, 서로의 지갑에 꽂아 둔 애인의 사진을 보며 즐거워하는, 그저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한 젊은 남자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지속되지 못하고 북한군 초소에서 총격전이 일어나게 되고, 이 사건 수사를 맡은 여군 소령이 사건의 실체와 부딪치고 목격하면서 분단이 '개인'과 '인간'에게 주는 상처를 공감하고 이해하게 된다. 이 두 작품은 모두 이념의 장벽이 우정이나 순수한 인간애를 파괴할 수 없다는 작가의 휴머니즘이 밀도 있게 그려져 있다.

 

 

표현하기

 

 만약 자신이 다음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짤막한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

 

지도방법 : 이 활동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하나의 짤막한 이야기를 창작하기 위한 활동이다. 학생들은 이야기를 만들 때 자신의 경험이나 고정 관념을 완전히 배제하고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도록 한다.

예시 답안 : 나는 어려서부터 경찰인 아버지를 이상으로 생각했다. 내가 경찰 대학을 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여자가 감당하기는 힘든 일이라고 만류하셨다. 그러나 나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고 아버지를 설득하여 경찰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벌써 20년이 흘렀다. 며칠 전 동료와 함께 관내를 순찰하던 중이었다. 저녁 무렵이라 해가 어스름하고 가로등이 하나 둘씩 들어오고 있었다. 123번지 막다른 골목 끝에 희미한 그림자가 벽에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긴장하고 동료와 함께 길게 호루라기를 불며 뛰어갔다. 그 그림자는 순간 당황하더니 담을 기어오르고 있었는데 그 품이 여간 어수룩하지 않았다. 이내 잡히고 만 그 사람은 내 동료가 그의 어깨를 잡고 돌려 세우려고 해도 별로 반항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의 품에는 훔친 물건으로 보이는 조그만 상자가 안겨 있었다. 그 골목을 나와 가로등 아래 다다랐을 때, 순간 나는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대학을 간 뒤 소식을 알 수 없었던 어릴 적 소꿉동무인 영철이가 아닌가. 파출소까지 오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를 쳐다 볼 수도 없었다. 그도 나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파출소에 와서 나는 그를 동료에게 맡기고 관여하지 않을려고 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를 외면 할 수 없었다. 왜 도둑질을 했느냐고 다그쳐 묻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동료가 조서를 받는 동안 나는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얼마나 흘렀을까, 동료가 조서를 들고 왔을 때는 꽤나 시간이 지났다. 내가 동료에게 다그치듯이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다는 거야?" 동료의 말에 의하면 IMF때 회사가 부도가 나서 모든 재산을 잃어버리고 살기가 힘들어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이 도둑질이며 나중에 재기하면 꼭 갚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나에게 절대 비밀로 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알려 준 주소대로 그의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소꿉놀이를 할 때면 으레 내 남편이 되어 내가 바가지라도 긁으면 그는 이내 "내가 잘못했어."라며 나의 기분을 맞춰 주었다. 내가 아프다고 하면 자신이 밥 짓고, 시장 보고, 또 약도 지어 오는 자상한 남편 역할을 곧잘 했었다. 지난 일이지만 그런 그가 도둑질을 했을 리가 없으며 만약 진짜 범인이라면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는 병들어 누워 있는 그의 아내밖에 없었다, 나는 그의 먼 친척이 되는 누나라고 하고 그의 아내에게 그동안의 일에 대해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부도가 난 후, 어려움이라고는 하나도 모르고 살던 아내는 그 충격에 병을 앓게 되었고 빨리 손을 쓰지 못해 이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였다. 아이들은 친척집에 맡겼다고 했다. 나는 병이 심한 그의 아내를 그대로 두고 올 수 없었다. 나는 급히 응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옮겼다. 머리가 복잡했다. 그러나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비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병원을 나오는데 동쪽 하늘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더 읽을거리

 

홍태식 편, '한국현대소설의 이해와 감상', 문음사, 1994.

김윤식, '한국현대문학사', 일지사, 1985.

이태동 편, '황순원', 서강대학교출판부, 1997

 

1. 이 작품의 내용을 생각하며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이 작품에 나타난 사건을 나열해 보자.

이끌어주기 : 이 활동은 1-(2)의 예비 활동적 성격을 지닌 것이다. 소설을 꼼꼼히 읽고, 소설 속의 주요 사건을 현재와 과거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한다.

 

예시답안 :

현재의 사건 : 성삼과 덕재의 재회 -> 성삼이 덕재를 호송함. -> 성삼이 덕재를 풀어 줌.

과거의 사건 : 성삼과 덕재는 어린 시절의 친구이며, 밤나무, 호박잎 담배, 꼬맹이, 학사냥에 얽힌 추억이 있음. -> 성삼이네의 이사와 이별 -> 전쟁 발발과 성삼의 피난 -> 덕제이 농민동맹 부위원장 피선 -> 인민군의 패주와 성삼의 귀향

 

(2) 이 사건들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다시 배열해 보고, 이 작품의 사건 전개 과정과 비교해 보자. 그리고 이렇게 배열한 작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이끌어주기 : 소설에서 사건은 시간 순서가 아니라 인과 관계에 따라 배치된다. 이 점이 바로 줄거리와 플롯의 차이이다. 줄거리는 시간 순서에 의한 것이지만, 소설에서 플롯은 제재가 되는 사건을 인과 관계에 따라 배치한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소설은 갈등이 해소 과정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재구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갈등의 해소 과정은 곧, 작품의 주제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므로 소설의 구성은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줄거리를 엮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소설의 플롯을 이해하는 것은 주제에 접근하는 길이며, 작자의 숨은 의도를 추리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행적으로 전개되지 않고, 현재-과거-현재의 역행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를 인물들 간의 갈등 해소 과정이나 작품의 주제와 관련하여 생각해 보도록 지도한다.

 

예시답안 :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들을 시간 순서에 따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 성삼과 덕재는 어린 시절의 친구이며, 밤나무, 호박잎 담배, 꼬맹이, 학사냥에 얽힌 추억이 있음.

2. 성삼이네의 이사와 이별

3. 전쟁 발발과 성삼의 피난

4. 덕재의 농민 동맹 부위원장 피선

5. 인민군의 패주와 성삼의 귀향

6. 성삼과 덕재의 재회

7. 성삼이 덕재를 호송함

8. 성삼이 덕재를 풀어 줌.

 

 작자는 이러한 사건들을 시간 순서에 따라 순행적으로 구성하지 않고, 6-7 (1, 2, 3, 4, 5)-8 의 순서로 제시하고 있다. 즉 현재의 상황(6-7)을 먼저 제시하고, 회상의 내용(1, 2, 3, 4, 5)을 제시한 다음, 다시 현재 이후의 사건(8)을 제시하는 역행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성삼에 대한 덕재의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이념적으로 적대 관계에 놓인 두 사람이 평화롭고 행복했던 과거의 체험을 떠올리면서 현실의 갈등이 해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과거의 이야기는 현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작자가 의도적으로 끼어 넣은 것이며, 덕재의 갈등이 해소되는 필연적인 동기로 작용한다.

 

2. 이 작품의 갈등 구조를 중심으로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이 작품의 궁극적인 갈등은 무엇인지 말해 보자.

이끌어주기 : 갈등은 작중 인물이 겪는 내·외적인 대립 관계로, 정서나 욕망, 성격이나 이념 등의 분열과 불일치로 인해 생긴다, 갈등이 없으면 사건이 일어날 수 없다. 갈등을 소설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갈등 양상에는 한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내적 갈등 등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운명과의 갈등, 자연 환경과의 갈등 등이 있다. 이 작품의 궁극적인 갈등 양성은 무엇인지 작품의 주제와 관련하여 생각해 보도록 한다.

 

예시답안 :

 이 작품은 성삼과 덕재라는 두 인물 사이에서 빚어진 갈등과 화해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이 작품의 갈등 양상은 이념 문제로 인한 개인 간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념은 두 인물의 의지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황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의 갈등 양상은 개인과 사회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2) 갈등이 해소되었음을 암시하는 내용을 찾아보자.

이끌어주기 : 이 소설의 구조는 이념 대립으로 인해 적대적 관계에 놓인 두 인물의 갈등과 그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이러한 구조에 따라 갈등의 해소 과정을 정리해 보고, 결말부에서 갈등이 해소되었음을 암시하는 부분을 찾아보도록 한다. 아울러 생략과 암시의 방법으로 결말을 처리함으로써 얻게 되는 효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도록 한다.

 

예시답안 :

 성삼과 덕재의 현실적인 갈등은 평화롭고 행복했던 과거의 체험, 특히 결말부의 학사냥에 대한 추억을 환기하면서 해소되고 있다. 학을 몰아오라며 덕재의 포승줄을 풀어 주는 성삼의 태도에서 인물 간의 갈등이 해소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부분의 `학의 비상`은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 대신 생략과 암시의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성삼과 덕재의 갈등이 해소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신비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3. 이 작품의 서술자를 찾아보고, 이러한 서술자를 내세워 얻게 되는 효과에 대해 말해 보자.

이끌어주기 : 소설에는 사건을 목격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하는데, 그를 화자 혹은 서술자라고 한다, 서술자가 누구인가, 어떤 관점으로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작품의 효과는 달라진다. 학생들은 10학년 과정에서 윤홍길의 `장마`를 통해 시점의 효과에 대해 학습하였다. `장마`는 어린이의 순진한 눈으로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 어린이 서술자를 내세움으로써 남북한 이데올로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도 그것의 부정적인 실상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으며, 좌우익의 어느 한쪽에 치우친 입장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그 실상을 균형 있게 드러내는 데 이바지하였다. 이러한 학습내용을 상기하면서 이 활동의 취지와 방안을 설명하도록 한다.

 

예시답안 :

 서술자는 작중 인물로 나타나는 `극화된 화자`와 작중 인물로 등장하지 않고 작품 외부에 등장하는 `극화되지 않는 화자`로 나눌 수 있다. 이 작품은 얼핏 성삼이라는 작중 인물에 의해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나, 자세히 분석해 보면 작품 외부에서 성삼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존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바로 이 작품의 서술자이다. 그는 작중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할 뿐, 사건이나 인물의 심리에는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이 소설은 작중 상황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서술자를 내세움으로써 이념 갈등이라는 미묘한 문제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결말 부분의 극적인 갈등 해소 장면 역시 이러한 시점을 유지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4. 이 작품의 시 공간적 배경에 담긴 의미를 분석해 보자.

이끌어주기 : 소설에서 배경은 단순히 소설이 전개되는 시·공간적 환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작자가 어떤 배경을 설정할 때는 이미 그 배경과 긴밀하게 연관된 전형적인 사건이나 인물, 사회 역사적 상황을 전제하게 된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을 알면 인물이 유형이나 사건의 전개 방향, 작자의 주제 의식 등에 대한 암시를 얻을 수 있다. 이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 역시 이러한 배경 효과와 관련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활동하도록 지도한다.

 

예시답안 :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동족 상장의 비극이 전개되던 한국 전쟁 당시이며, 공간적 배경은 남북한이 대치하던 삼팔선 부근의 작은 마을이다. 이러한 배경 설정은 이념 대립과 그로 인한 갈등 상황을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민족의 화해와 동질성의 회복이라는 작자의 주제 의식과도 밀집하게 연관된다.


1. 소설의 인물(人物, character)

 

(1) 인물과 성격

 

① 인물 :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

② 성격(性格) : 인물을 특징짓는 흥미·욕망·정서·도덕·윤리 등의 혼합

③ 인물과 성격의 관계 : 소설에서 인물은 단순한 한 사람의 등장 인물이 아니라 그 나름의 고유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어야 한다. 인물을 영어로 캐릭터(character)라 하듯 인물이 곧 성격이다.

 

(2) 인물의 유형

 

① 역할에 따른 분류

 

 주동 인물 : 작품의 주인공, 주동적 역할을 수행하는 긍정적 성격의 인물

예 : '춘향전'에서 '이 도령'이나 '춘향'과 같은 인물

 반동 인물 : 주인공에 대립되는 반대자, 적대자, 갈등을 일으키는 부정적 성격의 인물

예 : '충향전'에서 '변 사또' 같은 인물

 

② 성격에 따른 분류

 

 전형적 인물 : 어떤 특정 부류나 계층의 보편적인 성격을 대표하는 인물로 공시적 보편성을 지닌다.

예 : '흥부전'에서 '흥부'는 선인(善人)의 전형

 개성적 인물 : 어떤 특정 사회의 부류나 계층에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성격의 인물

예 김동인의 '감자'에 나오는 '복녀'

 

③ 성격 변화 여부에 따른 분류

 

 평명적 인물(정적 인물, 2차원적 인물) : 한 작품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성격 변화를 보이지 않는 인물 예 '심청전'에서 '심청'과 같은 인물

 입체적 인물(동적, 발전적, 3차원적, 원형적 인물) : 환경, 상황 등의 영향으로 사건의 진전에 따라 성격의 변화를 보이는 인물

예 : 박경리의 '토지'에 나오는 '서희'

 

④ 인생의 어떤 면을 보여 주는가에 따른 분류

 

 비극적 인물 : 제도나 인습, 인간의 탐욕 등에 의해 희생되는 비극적인 면을 보여 주는 인물

예 :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 나오는 '어머니'

 희극적 인물 : 인생의 희극적인 면을 보여 주는 인물로서 성격적으로 해학적·회화적인 면모를 보이며 시대나 사회 현실에 대해 풍자적인 태도를 보이는 인물

예 : 김유정의 '봄봄'에 나오는 '나'

 현대 소설의 인물 : 입체적 + 개성적 인물

 

(3) 인물의 제시 방법

 

 작가가 소설 속에서 인물을 제시하는 방법을 '성격화'라고 한다. 성격화의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초보적인 것은 명명(命名)이나 외양 묘사를 통해 그 인물의 특색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소설에서는 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심리와 행동을 묘사함으로써 인물의 성격을 제시하는 방법이 많이 사용된다.

① 직접적 방법(분석적, 해설적, 편집자적, 논평적 제시) : 작가(서술자)가 직접적으로 인물의 특색, 특성을 요약해서 설명하는 방법 → 보여주기(showing)

 

 

2. 소설의 배경

 

(1) 배경의 개념 : 인물이 활동하고 사건이 벌어지는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

 

(2) 배경의 역할

 

①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② 인물, 인물들의 행동, 사건을 생성하고 사실적으로 보이게 한다.

③ 주제를 뚜렷하게 드러내 준다.

④ 인물의 심리와 사건의 전개에 대하여 암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3) 배경의 종류

 

① 자연적 배경 : 자연 형상이나 자연 환경으로 된 배경

예 :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달밤의 산길

② 인위적 배경 : 인간에 의해 이루어진 사회적 환경, 역사적 시대 등으로 된 배경

예 : 김동인의 '감자'에서 복녀가 처한 사회적 환경, 이상의 '날개'에서의 골방

 

 한국 전쟁 당시 삼팔선 부근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의 한 장면이 간결하게 서술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전쟁의 상처를 우정으로 극복하는 과정이다. 주인공이 보여 주고 있는 인간미와 그 깊은 우정은 이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극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사건은 아주 단순하다. 그러나 이 단순한 사건의 배경에는 이념의 공허성과 전쟁의 비인간적인 속성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다. 작가는 이러한 주제 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인간적인 이해와 우정을 통해서 갈등을 극복하도록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단편 소설이 추구하는 인상의 단일성과 그 효과를 충분히 살리고 있으며, 간결한 문체와 치밀한 심리 묘사가 더욱 돋보이고 있다.

 

이해와 감상1

삼팔선 접경의 북쪽 마을. 단짝동무였던 성삼과 덕재는 6·25 동란 중 연행자와 피연행자의 처지로 만난다. 그러나 성삼이는 덕재가 지금 이용당하고 있는 것일 뿐,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음을 깨닫는 순간, 어린 시절 학 사냥의 기억을 되살리며 포승줄을 풀어 준다. 이념의 장벽이 우정이나 순수한 인간애를 파괴할 수 없다는 작가의 휴머니즘이 밀도 있게 그려져 있다.

 

황순원의 초기 작품들이 대부분 시간이나 공간 의식이 뚜렷하지 않았음에 비하여 <학(鶴)>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시간적·공간적 배경 즉, 6·25로 인해 쓸쓸하고 삭막한 분위기로 변해 버린 마을을 작품의 발단부에 설정했다. 이것은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국토 분단과 동족 상잔의 참화를 겪은 비극의 현장으로서 '마을'은 이 나라 강토를 대유(代喩)하고 있다. 여기에 6·25라는 비극의 시대가 무한한 자유를 동경하던 유년 시절과 대립되어 극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구성면에서 보면, 현재의 순차적인 진행 속에 몇 개의 과거를 삽입시키는 역전(逆轉)의 질서로 되어 있어서 결말을 위한 예시·주제의 암시·현실과의 대조 등의 기능을 하고 있다. 또, 고개를 중심으로 한 공간의 변화에 따라 갈등이 고조되고 이완되는 구조도 독특한 발상이다. 그리고 성삼과 덕재의 성격을 해설하거나 논평하지 않고 압축적인 서술과 간결한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제시한 것도 구성의 긴밀성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황순원의 문체상의 특질이 잘 드러난다. 각 문장이 짧고 수식어가 적으며 사실적인 세부 묘사를 대담하게 생략하는 등 상황이 주는 이미지 전달에 주력하고 있다. 생각하는 부분이나 대화 부분에 따옴표를 생략한 곳이 있고 자유 간접 화법으로 처리한 곳이 많다.

 

학(鶴)은 주제적 사물로서 절정 부분에 나타난다. 소년들이 학(鶴)을 풀어 주었던 과거의 에피소드는 [이데올로기에 왜곡된 인간을 구원하는 힘은 인간의 순수한 마음 외에는 없다]는 작가 의식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즉, 학(鶴)은 우정 회복의 매체가 되어 손상된 우정을 치유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은 고결함 때문에 길조(吉鳥)로서 우리 나라 사람들의 특별한 애착을 받는 '학(鶴)'을 중심으로, 이념적 갈등이 빚은 인간성의 파괴와 상실을 사랑의 힘으로 회복하고자 하는데 주제 의식을 두고 있다 하겠다.

 

이해와 감상2

 이 작품은 동족 상잔의 비극인 한국 전쟁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팔선 부근의 작은 마을을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설정은 이념 대립과 그로 인한 갈등 상황을 집약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작자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자는 어릴 때 단짝 친구였던 성삼과 덕재가 이념으로 인한 갈등을 극복하고 우정을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민족의 동질성과 동족애를 회복해 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있다. 구성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행적으로 전개되지 않고, '현재-과거-현재'의 역행적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주제 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즉, 이념적으로 적대 관계에 놓인 두 사람이 평화롭고 행복했던 과거의 체험을 확인하면서 현실의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결말 부분의 학의 비상은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 대신 생략과 암시의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덕재와 성삼의 갈등이 해소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신비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출처 : 한계전 외 4인 공저 문학교과서)

 

이해와 감상3

 황순원(黃順元)이 지은 단편소설. 1953년 5월 ≪신천지 新天地≫ 52호에 발표되었고, 1956년 중앙문화사(中央文化社)에서 간행한 단편집 ≪학≫에 〈소나기〉·〈매〉 등과 함께 수록되었다. 미국의 계간지 ≪프레리 스쿠너 Prairie Schooner≫에도 게재되었다.


 유년의 통과제의나 전쟁의 상황악을 강조하지 않고 유년시절의 천진무구한 절대성을 전쟁이나 이념의 적대관계로부터 벗어나게 함으로써 운학(雲鶴)이 그려진 수묵화와 같이 담담하게 그려졌으면서도 진한 호소력을 가진 작품이다. 성삼과 덕재는 한 마을의 단짝 친구였다.


삼팔선 접경의 이북 마을, 농민동맹 부위원장을 지낸 덕재가 치안대에 잡혀왔고, 성삼이 그를 단독으로 호송하게 되었다. 호송 도중 성삼은 덕재가 옛날 같이 놀려주었던 꼬맹이와 혼인한 일을 알게 되었고, 같이 혹부리 할아버지의 밤을 훔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강제로 북으로 이동하는 데서 빠져 농사를 버리고 떠나지 않으려는 아버지 때문에 죽을 줄 알면서도 떠나지 못하였다는 이야기를 덕재에게서 듣는다. 성삼과 덕재가 삼팔선 완충지대에 이르렀을 때 옛날과 같이 살고 있는 학의 떼를 만난다.


 그곳에서 열두어 살 때 같이 학을 잡던 일을 생각해낸 성삼은 “얘, 우리 학사냥이나 한번 하구 가자.”고 하며 덕재의 포승줄을 풀어준다.


 덕재는 성삼이 자기를 쏘아죽이려나 보다고 생각하나, “어이, 왜 맹추같이 게 섰는게야? 어서 학이나 몰아오너라.”는 성삼의 재촉에 무엇을 깨달은 듯 잡풀 사이를 기기 시작하였다. 때마침 단정학(丹頂鶴) 두세 마리가 높푸른 가을하늘에 유유히 날고 있었다.


 고결함 때문에 우리 나라 사람들의 특별한 애착을 받는 길조인 ‘학’을 중심으로, 이념의 분단이 빚은 인간성의 파괴와 상실을 사랑의 관계로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이다. 유년을 함께 보낸, 결코 적대관계일 수 없는 단짝인 성삼과 덕재는 한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연행해가는 처지로 만난다.


 그러나 연행 도중 덕재가 전혀 이념의 동조 없이 빈농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용당한 것일 뿐 예전의 친구에서 달라진 것이 없음을 깨닫는 순간, 어린 시절 학사냥의 기억을 되살리며 포승줄을 풀어준다는 간략한 이야기이다. 이념의 분열이 우정이나 순수한 인간애를 궁극적으로 파괴할 수 없다는 작가의 휴머니즘이 밀도 있게 그려져 있다. ≪참고문헌≫ 우리문학은 어디에서 왔는가(李在銑, 小說文學社, 1986).(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학"의 특징

내용 : 6·25 직후 서로 적대적인 위치로 만난 옛 친구들 사이의 우정과 인간애를 통해 이념의 갈등을 치유할 방법을 상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구성 : 시간 진행에 따른 단순한 전개 속에 과거의 회상을 삽화적으로 끼워 넣음으로써, 성삼이의 심리적 갈등이 해소되어 덕재를 풀어 주게 되는 전개를 보인다.

 

표현 : 불필요한 대화나 작자의 직접적인 개입을 억제한 채 생략과 암시로써 심리의 변화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절제에 힘입어 신비로울 정도의 서정적 분위기가 확보된다.

 

 '학(鶴)'의 의미

 '학'은 이념의 대립이 빚어낸 전쟁의 파괴력 앞에서 흔히 허물어지거나 상실되어 버리기 쉬운 인간성의 회복을 의미한다. 성삼이와 덕재는 이념을 제각기 달리하는 '이쪽'과 '저쪽'의 적대 관계로 만나게 된다. 이쪽 편인 성삼이는 농민 동맹 부위원장이란 직책까지 지낸 저쪽 편의 덕재를 호송해가야 한다. 호송만 해 가게 되면 덕재는 총살감으로 처리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성삼이의 눈에 덕재는 그런 이념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소박한 농민임이 확인될 뿐이다. 그래서 상삼이는 지난날 서로의 천진스러웠던 동심의 세월을 기억하면서 덕재를 동여매였던 포승줄을 풀어 준다. 포승을 푼다는 것은 이념에 속박된 경직된 상황으로부터 인간애를 회복하여 감을 뜻한다.

 

 황순원의 '학(鶴)'

 이 작품은 짤막한 단편으로서 자신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적대 세력으로 갈라섰던 두 친구가 화해를 하게 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한국 전쟁으로 되어 있다. 전쟁이 남기는 상처로서 가장 큰 것은 인간성의 상실, 인간 존엄성의 포기, 상호 불신 등이라고 한다면 이들 두 사람의 해후는 일단 그런 부정적 입장에서의 만남이 될 수밖에 없다. 옛모습을 잃은 마을, 적대적인 위치에 있는 친구와의 만남 등이 안타까운 현실로서 제시되는데, 이것은 하나의 갈등이자 비극이다. 한국 전쟁이라는 민족 상잔의 비극이 몰고 온 인간 관계의 상실은 가장 소중한 것의 상실을 의미하며,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제기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열어 가고 있다. 자주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오는 데서 우린 두 사람이 화해하게 되리라는 예감을 갖게 되는데, 성삼과 덕재 사이의 인간 관계는 곧 우정이므로 그 둘 사이의 화해는 우정의 회복을 의미한다. 나아가서 그들의 우정의 회복은 인간 상호 신뢰의 회복으로 연장되고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단계로 확대된다.

 

 작자는 두 사람의 우정이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민족적인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 소설은 인간성과 인간 존엄성의 회복, 인간 관계의 회복을 통해서 민족적인 비극을 극복해 보고자 하는, 일종의 역사 의식에 바탕을 둔 작품이라 할수 있다. 전체적으로 서정적 분위기가 감돌고 있으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묻어나는 민족의 비극성이 짙게 느껴지는 문체적 특성을 보여 주기도 한다.(출처 : 홍태식 편, [한국 현대 소설의 이해와 감상])

 

 "학(鶴)" 비평

 1953년 전쟁이 휴전으로 치닫던 즈음에 "신천지"에 발표된, 황순원의 대표작이다. 민족의 비극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우정을 바탕으로 탈이데올로기를 통한 인간성의 회복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학"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성향을 띠고 있다는 지적이 있으나, 작품의 내용이 좌우 이데올로기적 문제를 초월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덕재가 농민 동맹 부위원장을 지낸 것이 자기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으로써 덕재가 좌익이념에 대한 개념이 없다고 볼 때, 탈이데올로기적 경향을 띤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이 작품에서 "학"이 두 인물 간의 갈등을 해소시켜 주는 매개물로 작용한다. 덕재의 손을 묶는 포승줄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야 할 학을 잡는 올가미 역할을 하지만 결국은 구속이 아닌 자유를 표상하는 반어적 이미지를 나타내게 된다. 어린 시절 사냥꾼의 올가미에 걸린 자기네 학을 몰래 풀어 푸른 하늘로 날려 보냈던 두 인물의 따뜻한 인간성은 이미 이데올로기가 빚어낸 동족 간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서 잉태되어 있었던 것이다.

 

저만치서 성삼이가 홱 고개를 돌렸다.

"어이, 왜 멍추같이 게 섰는 게야? 어서 학이나 몰아 오너라!"

그제서야 덕재도 무엇을 깨달은 듯 잡풀 새를 기기 시작했다.

때마침 단정학 두세 마리가 높푸른 가을 하늘에 큰 날개를 펴고 유유히 날고 있었다.

이처럼 어릴 적 그들이 놓아 두었던 '단정학'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그대로 우정이 상징으로소, 두 인물의 갈등을 극복하게 하는 자유와 평화의 새로 작용하는 것이다. 또한 고향의 밤나무 담배 고갯길 아버지 꼬맹이 학 등에 대한 깊은 정을 암시한다.

 

송하섭은 황순원 소설의 "학"에 나타난 서정성에 관해 '사회 체제라는 이데올로기적 의식을 넘어서는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나아가 그의 소설 속에서는 현실 의식과 역사 의식이 포용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이런 뜻에서 황순원 소설의 서정성은 효석(孝石)과 유정(裕貞)을 함께 수용한 것으로 소설의 서사성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구성 면에서, 현재의 순차적인 진행 속에 몇 개의 과거사를 삽입시키는 역전적 질서로 되어 있다. 결말을 위한 예시, 주제의 암시, 현실과의 대조 등의 기능을 하고 있다. 또 고갯마루를 중심으로 한 공간의 변화에 따라 갈등이 고조되고 이완하는 치밀한 구조도 돋보인다. 성삼과 덕재의 성격을 직접 해설하거나 논평하지 않고 압축된 서술과 간결한 대화로써 제시하여 구성의 긴밀성을 가져 왔다.

 

"학"은 6 25 전쟁의 비극이 낳은 불가피한 상황의 순간적이고 가변적인 것이지만, 우정은 영원 불변의 것임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학을 통해 형상화했다. 또 전쟁으로 파괴된 자유를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속에서 회복하려는 작품인 것이다.

 

 황순원의 작품 세계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 소설 미학의 전범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법적 장치들, 소박하면서도 치열한 휴머니즘의 정신,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에 대한 애정 등을 고루 갖춤으로써, 황순원의 작품들은 한국 현대 소설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그의 소설들이 예외 없이 보여주고 있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은 소설 문학이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성과의 한 극치를 시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소설 문학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주력할 경우 자칫하면 역사적 차원에 대한 관심의 결여라는 문제점이 동반될 수 있지만 황순원의 문학은 이러한 위험도 잘 극복하고 있다. 그의 여러 장편 소설들을 보면,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충실하게 살려놓으면서 일제 강점기로부터 이른바 근대화가 제창되는 시기에까지 이르는 긴 기간 동안의 우리 정신사에 대한 적절한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서술자와 서사 구조

 서사 갈래는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공통된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곧 서사에는 반드시 서술되는 사건이 있어야 하며, 이 사건은 다시 배열되고 재구성된 형태의 재구조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이야기하는 서술자가 존재한다.

 

 보여주기와 말하기

 인물의 성격을 제시하는 방법에는 '보여주기(showing)'와 '말하기(telling)'의 방법이 있다. '보여주기'는 인물의 외양과 행동을 묘사하거나 그가 다른 인물과 주고받는 대화에 의해서 성격을 제시한다. '말하기'는 서술자의 직접적인 설명이나 논평에 의해 인물의 성격을 제시한다. '보여주기'는 작가나 작중 화자가 인물과 사건을 그려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인물의 성격을 추리하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하는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이해에 시간이 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독자가 정확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는 단점도 지니고 있다. 반면에 '말하기' 방법은 독자의 상상력과 흥미를 제한하는 단점이 있지만 사건을 빨리 전개시킬 수 있으며 작중 상황이나 인물에 대한 이해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작가는 필요에 따라 두 방법을 적절히 섞어서 사용한다.

 

 소설의 주제와 구성

 소설에서 구성이란 제재가 되는 사건을 인과관계에 따라 재배열하는 일을 말하낟. 사건의 시간적 순서를 변형할 수도 있고, 사건의 원인을 변형할 수도 있으며, 배경을 인위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작가의 창작 의도가 곧 작품의 주제에 귀결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소설의 구성은 다름 아닌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줄거리를 엮어 나가는 과정 자체라고 하겠다. 따라서 소설의 주제를 알기 위해서는 그 작품이 어떤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서술자와 시점

 시점(point of view)이란 누구의 관점으로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는가 하는 것이다. 시점은 서술자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냐 아니냐에 따라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으로 나누고, 다시 서술자가 등장 인물의 내부를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관찰자 시점과 주인공(전지적) 시점으로 나눈다.

 

 1인칭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은 작중 인물인 '나'가 주인공인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취한다. 그런데 이 방식은 이야기 전달에 제약이 많이 따른다. 왜냐하면 작중 화자가 체험하지 않은 것은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관찰자의 대상인 주인공의 내면 심리도 이야기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은 작중인물인 '나'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1인칭 관찰자 시점에 비해 주인공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데는 용이하다. 그러나 이야기의 내용이 '나'라는 주인공 화자의 체험을 넘어설 수 없다는 점에서는 역시 동일한 제약이 따른다. 1인칭 시점은 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소설에 흔히 사용되며,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실제로 믿게 하거나 흥미를 강하게 유발하는 힘을 갖고 있다.

 

 3인칭 시점

 3인칭 시점은 작품 속에 등장하지 않는 제3의 인물이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이 중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은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서술자가 인물의 심리까지 서술하는가 하면, 이야기의 전개에 개입하거나 논평까지도 한다. 이 시점은 서술자가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 주기 때문에, 독자의 상상력이 상대적으로 제한된다. 그렇지만 사건이 복잡하게 얽히는 장편 소설에 유용한 방법이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은 전지적 시점보다는 서술자의 시점이 제한된다. 서술자는 인물과 행동을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묘사할 뿐, 인물의 심리를 직접 묘사·논평하거나 작품 속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객관성을 확보하는 데는 더 유리한 방식이며, 독자의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주제와 갈등

 소설의 주제란 작품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난 중심 사상 혹은 소재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석이라고 정의된다. 더 쉽게 말하면, 작품에 그려진 구체적인 사건을 통하여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주제다. 문학 작품을 통해서 보게 될 소설의 모든 요소들은 궁극적으로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작가는 결국 무엇인가를 독자에게 말하기 위해서 특정한 인물, 사건, 배경 따위를 의도적으로 설정하는데, 이것이 작품 전개를 통제하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제는 원자의 핵과도 같다. 작품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 않으면 주제를 논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모든 요소를 결국 주제로 수렴되기 때문에 각 요소에 관한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기 위해서도 주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여기서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주제와 무관한 문제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독자가 문학 작품을 읽는 행위는 세계를 더욱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때 독자는 백지의 상태에서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경험과 체험을 바탕으로 이를 받아들인다. 즉 독자는 작품을 매개로 작가의 체험에 자신의 경험을 결합시킴으로써 작품 해석의 주체자가 되어 작품의 의미를 새롭게 생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 단원에서는 「광장(廣場)」과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을 통해, 소설의 주제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주제가 갈등의 새호 과정과 어떤 과계가 있는지에 대해 학습하게 될 것이다.

 

 

습의 주안점

 

소설의 주제가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는지를 안다.

소설을 통해서 주제와 주인공의 갈등 해소 과정의 상관관계를 안다.

소설의 요소들이 주제를 형상화하는 데 어떻게 작용하는지 안다.

 

핵심정리

1. 소설의 주제(主題, theme)

 주제의 개념 : 작가가 작품에서 나타내려고 한, 인생에 대한 태도나 관점이며, 작품 속에 용해되어 있는 중심사상으로서 소설의 의미 내용에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이다.

 주제의 표현 방법

① 직접적(명시적) 방법 : 작가가 작품 속에 개입하여 주제를 직접 제시하는 방법. 작가의 의도를 독자에게 명백히 제시하여 일정한 도덕적 교훈을 주겠다는 공리적 자세에서 비롯된 방법으로 고전 소설, 계몽 소설에서 흔히 나타난다.

 간접적(암시적) 방법 : 인물, 사건, 배경, 분위기, 플롯의 진행, 갈등 구조와 그 해소 등 전체의 구조를 통해 암시적으로 제시하는 방법. 독자는 정확한 인식으로 작품을 읽어가며 주제를 파악한다. 현대 소설, 특히 예술 소설에서 나타나는 방법이다.

⑶ 주제의 형상화 과정 : 수설의 주제는 인물의 대립과 갈등에 의한 선악의 대립과 그 결과에 따라 형상화되나 이는 작가의 개성과 기법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⑷ 우리나라 소설 주제의 변천

: 소설의 주제는 시대와 사회의 변천에 따라 달라진다.

 고전 소설의 주제 : 일반적으로 조선 시대의 지배적 이념인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권선징악의 주제를 보인다.

 신소설의 주제 :갑오경장(1895) 이후의 개화 시대에 형성되었으므로 신문화 운동의 일익을 담당한 계몽 문학 경향의 주제를 보인다.

 현대 소설의 주제 : 작가 개개인의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시기별로 나누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2. 소설의 갈등

⑴ 갈등의 개념 : 소설이나 희곡 등에서 인물의 심리나 인물 간에 서로 의견이 얽혀 있는 것을 말한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개인과 운명이 서로 대립되어 전개될 사건에 필연성을 부여한다.

 갈등의 양상

 한 개인 내면에서의 갈등 : 개인 내부의 심리적 모순 대립에 의한 내적(內的)갈등

(예) 김만중의「구운몽」

수동승인 성진이 팔선녀를 만난 후, 속세의 부귀공명과 불도의 적막함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음.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갈등 : 소설 속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긍정적 인물과 그에 반대하는 부정적 인물 사이의 갈등

(예) 김유정의「동백꽃」

주인공인 ‘나’와 점순이가 닭을 사이에 두고 갈등/대립 함

 개인과 사회의 갈등 : 개인이 살아가면서 겪는 사회 윤리나 제도와의 갈등

(예) 채만식의 「레디 메이드 인생」

인텔리인 등장 인물과 인텔리를 긍정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사회사이의 갈등이 나타남.

 개인과 운명의 갈등 :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주로 사용되던것으로, 개인의 삶이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의해 좌우되는 데에서 오는 갈등

(예) 김동리의 「역마」

주인공은 역마살이라는 운명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운명에 순종함으로써 인간의 고뇌를 극복하고 구원됨.

⑤ 개인과 자연과의 갈등 : 등장인물과 이들의 행동을 제한하는 자연 현상과의 갈등

(예) 김정한의 「사하촌」

극심한 가뭄이라는 자연현상과 이에 시달리는 인간과의 갈등이 나타남.

 

활동안내

(가) 놀보 양주, 흥보 양주, 조카들 자식이며, 여러 사촌들 놀보집을 저버리고 흥보집으로 돌아와 고대 광실(高臺廣室) 높은 집에 형제가 쌍쌍(雙雙)이라, 이 아니 좋을소냐? 사람이 누구나 그저 죄 없는 자(者) 뉘 있으랴. 고치면은 되느니라. 그저 태평 성대(太平聖代) 세상(世上) 모든 것 중 아으, 좋은 것은 형제밖에 또 있느냐? 더질더질 놀아 보자.

- 판소리 ?흥보가?에서

 

(나) 그러고 나서, 그 결혼이란 게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해 주려고 하고 있을 무렵에, 나는 무엇인가 싸늘하고 보드라운 것이 살며시 내 어깨에 눌리는 감촉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아가씨가 졸음에 겨워 무거운 머리를, 리본과 레이스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앙증스럽게 비비대며, 가만히 기대 온 것이었습니다.

 

아가씨는 훤하게 먼동이 터 올라 별들이 해쓱하게 빛을 잃을 때까지 꼼짝 않고 그대로 기대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잠든 얼굴을 지켜 보며 꼬박 밤을 새웠습니다. 가슴이 셀렘을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오직 아름다운 것만을 생각하게 해 주는 그 맑은 밤 하늘의 비호를 받아, 어디까지나 성스럽고 순결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총총한 별들이, 마치 헤아릴 수 없이 가대한 양 떼처럼 고분고분하게 고요히 그들의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곤 했습니다. ―― 저 숱한 별들 중에서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 앉아 고이 잠들고 있노라고.

 

- 알퐁스 도데, '별'에서

 

1. (가)에서 주제는 어떤 방식으로 제시 되고 있는가?

<예시답안> 서술자가 주제를 뚜렷하게 말해 주는 직접적(명시적)방법이다.

 

2. (나)의 주제를 ‘성스럽고 순결한 사랑’이라고 할 때, 이와 같은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해 다음의 요소들은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배경 : 공간적 배경인 뤼브롱 산은 아름답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순수한 마음을 갖게 하는 장소이다. 또 시간적 배경인 칠월 밤은 밝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시간으로서 성스럽고 순결한 사랑이라는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구실을 한다.

인물의 성격 : ‘나’는 연모의 정과 윤리 의식 사이에 갈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 구조 때문에 아가씨에 대한 목동이 본능적인 갈등을 극복하고 사랑을 승화시킴으로써 주제를 완성하고 있다.

어조 : 경어체를 통하여 따뜻한 인정의 아름다움과 상대에 대한 배려를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함으로써 순수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상징적 소재 : 별은 높고 신비롭고 아름다운 속성을 가진 대상이다. 이러한 별의 속성을 통해 주제인 ‘성스럽고 순결한 사랑’을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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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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