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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뒤에 있는 것 / 본문 일부 및 해설 / 이어령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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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뒤에 있는 것 / 이어령

 본문

<전략>

 

거기에는 백로의 날개짓과도 같고, 웅덩이의 잔물결과도 같고, 시든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 같고, 그늘진 골짜기와도 같고, 웅덩이의 잔물결과도 같고, 시든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 같고, 그늘진 골짜기와도 같은 그러한 고요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폐허의 고요에 가까운 것이다. 향수만으로는 깊이 이해할 수도 또 설명될 수도 없는 정적함이다. 아름답기보다는 어떤 고통이, 나태한 슬픔이, 졸린 정체(停滯)가 크나큰 상처처럼, 공동(空洞)처럼 열려져 있다.

 

그 상처와 공동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거기 그렇게 펼쳐져 있는 여린 색채의 풍경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위 확장에 걸린 시골 아이들의 불룩한 그 배를 보지 않고서는, 광대뼈가 나온 시골 여인네들의 땀내를 맡아 보지 않고서는,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무심히 지껄이는 말솜씨를 듣지 않고서는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지프가 사태진 언덕길을 꺾어, 내리받이 길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그러한 모든 것을 보았다. 사건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소한 일,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 가장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사람들은 늙은 부부였다. 경적 소리에 놀란 그들은 곧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너무나도 놀라 경황이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갑자기 서로 손을 부둥켜 쥐고 뒤뚱거리며, 곧장 앞으로만 뛰어 달아나는 것이었다. 고무신이 벗겨지자, 그것을 집으려고 뒷걸음을 쳤다. 하마터면 그 때 차는 그들을 칠 뻔했다.

 

이것이 그 때 일어난 이야기의 전부다. 불과 수십 초 동안의 광경이었다. 그들을 뒤에 두고, 차는 다시 달리고 있었다. 운전수는 처음에 그들의 서툰 몸짓을 보고 웃었고, 다음에는 화를 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었다. 운전수는 아무 표정도 없이 차를 몰았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뚜렷이 기억할 수 있었다. 그 모습 - 검버섯이 누렇게 들뜬 얼굴, 공포와 당혹한 표정, 마치 가축처럼 뒤뚱거리며 쫓기던 뒷모습, 그 위급 속에서도 서로 놓지 않으려고 꼭 부여잡은 메마른 두 손, 북어 대가리가 꿰져 나온 남루한 봇짐을 틀어잡은 또 하나의 손, 고무신짝을 집던 또 하나의 떨리던 손이 좀처럼 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한국인을 보았다. 천 년을 그렇게 살아 온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뒷모습, 쫓기는 이의 뒷모습을 본 것이다. 그들은 여유 있게 차를 비키는 이방인처럼 세련되어 있지 않다. 운전수가 뜻 없이 웃었던 것처럼, 그들의 도망치는 모습은, 차가 달려 왔을 때, 길가에서 놀던 닭이나 오리 떼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그 많은 가난과 횡포와 재난과 악운이 닥칠 때마다, 왜 그들은 언제나 가축 같은 몸짓으로 쫓겨야만 했던가? 그러한 표정으로, 그러한 손길로, 몸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우리의 피부빛과 똑같은 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우리의 비밀, 우리의 마음이 있다 .살빛 같은 저 흙 속에서 저 바람 속에 우리의 비밀이 있다.

 

 요점 정리

 

 지은이 : 이어령

 갈래 : 수필

 성격 : 개성적, 비판적, 주관적, 체험적

 제재 : 시골 마을의 풍경과 노부부

 주제 : 폐허의 시골 풍경 속에 감추어진 피폐한 한국인의 정서

 출전 :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내용 연구

그것은 지도에도 없는 시골길['시골길'에서 '슬픈 곡선', '폐허의 고요'를 발견하고 '나의 조국'으로 일반화하고 있다.]이었다. 국도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한국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길이었다. 황토와 자갈과 그리고 이따금 하얀 질경이꽃[질경잇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90cm 정도이며, 잎은 뿌리에서 모여나고 긴 타원형이다. 6~8월에 깔때기 모양의 흰 꽃이 수상(穗狀) 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삭과(삭果)를 맺는다. 어린잎은 식용하며 씨는 이뇨제로 쓴다. 들이나 길가에서 자라는데 한국, 일본, 사할린, 대만, 중국, 시베리아 동부, 말레이시아 등지에 분포한다.]들이 피어 있었다. 붉은 산모퉁이를 끼고 굽어 돌아가는 그 길목은 인적도 없이 그렇게 슬픈 곡선을 그리며 뻗어 있었다[주관적 묘사로 글쓴이의 어두운 시각이 반영됨]. 시골 사람들은 보통 그러한 길을 '마차길'이라고 부른다. 그 때 나는 그 길을 지프로 달리고 있었다. 두 뼘 남짓한 운전대의 유리창 너머로 내다본 나의 조국['시골길'이 '나의 조국'으로 일반화(개별적인 것이나 특수한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됨. 또는 그렇게 되게 )됨]은, 그리고 그 고향은 한결같이 평범하고 좁고 쓸쓸하고 가난한 것이었다. 많은 해를 망각의 여백 속에서 그냥 묻어 두었던 풍경들이다[반성적 진술로 대상을 낭만적으로만 인식한 채 현실을 바로 보지 못했음/ 정지용의 '향수'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사철 발 벗은 아내가/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과 같은 낭만적일 수 있지만 그 속에서 노동하는 아내의 고통이 간과되어 있음.]. 이지러진 초가의 지붕, 돌담과 깨어진 비석, 미루나무가 서 있는 냇가, 서낭당, 버려진 무덤들, 그리고 잔디, 아카시아, 말풀, 보리밭, 정적하고 단조한 풍경이다.[글쓴이에게 '폐허의 고요'로 느껴지게 만든 풍경들]

 

거기에는 백로의 날개짓과도 같고, 웅덩이의 잔물결과도 같고, 시든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 같고, 그늘진 골짜기와도 같고, 웅덩이의 잔물결과도 같고, 시든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 같고, 그늘진 골짜기와도 같은 그러한 고요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폐허의 고요[시골길 풍경을 바라보는 글쓴이의 어두운 시각이 드러남]에 가까운 것이다. 향수만으로는 깊이 이해할 수도 또 설명될 수도 없는 정적함이다. 아름답기보다는 어떤 고통이, 나태한 슬픔이, 졸린 정체(停滯)가 크나큰 상처처럼, 공동(空洞 :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구멍)처럼 열려져 있다.[조국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담겨 있음]

 

그 상처와 공동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거기 그렇게 펼쳐져 있는 여린 색채의 풍경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위 확장에 걸린 시골 아이들의 불룩한 그 배를 보지 않고서는, 광대뼈가 나온 시골 여인네들의 땀내를 맡아 보지 않고서는,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무심히 지껄이는 말솜씨를 듣지 않고서는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지프가 사태[토사가 무너짐]진 언덕길을 꺾어, 내리받이 길[내리막길]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그러한 모든 것을 보았다. 사건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소한 일,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 가장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사람들은 늙은 부부였다. 경적 소리에 놀란 그들은 곧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너무나도 놀라 경황[정신적 여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갑자기 서로 손을 부둥켜 쥐고 뒤뚱거리며, 곧장 앞으로만 뛰어 달아나는 것이었다. 고무신이 벗겨지자, 그것을 집으려고 뒷걸음을 쳤다. 하마터면 그 때 차는 그들을 칠 뻔했다. 이것이 그 때 일어난 이야기의 전부다.[경험한 사건의 요약적 제시] 불과 수십 초 동안의 광경이었다. 그들을 뒤에 두고, 차는 다시 달리고 있었다. 운전수는 처음에 그들의 서툰 몸짓을 보고 웃었고, 다음에는 화를 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었다. 운전수는 아무 표정도 없이 차를 몰았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뚜렷이 기억할 수 있었다. 그 모습 - 검버섯이 누렇게 들뜬 얼굴, 공포와 당혹한 표정, 마치 가축처럼 뒤뚱거리며 쫓기던 뒷모습, 그 위급 속에서도 서로 놓지 않으려고 꼭 부여잡은 메마른 두 손, 북어 대가리가 꿰져 나온 남루한 봇짐을 틀어잡은 또 하나의 손, 고무신짝을 집던 또 하나의 떨리던 손이 좀처럼 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한국인을 보았다. 천 년을 그렇게 살아 온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뒷모습[억눌린 역사 속에서 피폐해진 심성을 지닌 한국인의 모습], 쫓기는 이의 뒷모습을 본 것이다. 그들은 여유 있게 차를 비키는 이방인처럼 세련되어 있지 않다. 운전수가 뜻 없이 웃었던 것처럼, 그들의 도망치는 모습은, 차가 달려 왔을 때, 길가에서 놀던 닭이나 오리 떼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차에 쫓기는 노부부를 오리에 비유하여 글쓴이의 부정적 인식이 반영됨]. 그 많은 가난과 횡포와 재난과 악운이 닥칠 때마다, 왜 그들은 언제나 가축 같은 몸짓으로 쫓겨야만 했던가? 그러한 표정으로, 그러한 손길로, 몸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우리의 피부빛과 똑같은 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우리의 비밀, 우리의 마음이 있다 .살빛 같은 저 흙 속에서 저 바람 속에 우리의 비밀이 있다.[쫓기는 노부부의 모습에서 피해와 압박에 시달려온 피폐한 한국인의 정서를 느낌]

 

 이해와 감상

 이 수필은 보통 아름답고 낭만적인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시골길의 풍경에서 폐허의 고요와 더불어 피폐한 조국의 현실을 발견하며, 지프에 쫓겨 허둥지둥 도망가는 노부부의 모습에서 굴곡의 역사를 살아오는 동안 피폐해진 한국인의 심성을 발견해 내는 글쓴이의 개성적인 안목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대상을 감각적이고, 개성적으로 날카롭게 포착하고 개인적 체험을 민족의 보편적 체험으로 일반화한 것이 특징이나, 대상의 어두운 면에만 지나치게 치중하여 인식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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