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전
by 송화은율토끼전
(전략)
문득 전상(殿上, 대궐의 윗자리)에서 분부하되, 토끼를 잡아들이라 하거늘, 수족(水族) 물고기가 일시에 달려들어 토끼를 잡아닥 정전에 꿇리고,
용왕이 하교하여 말하기를
"과인이 병이 중한데 백약이 무효하더니, 하늘과 신령의 도우심으로 도사를 만나매 말하길 네 간을 얻어먹으면 살아나리라 하기로 너는 잡아 왔으니, 너는 죽기를 슬퍼 말라."
하고, 군졸을 명하여 간을 내라 하니, 군졸이 명을 받들고 일시에 칼을 들고 날쌔게 달려들어 배를 단번에 째려 하거늘, 토끼가 기가 막혀 달 첨지의 말을 돌이켜 생각하나 후회막급이라.
'대저 약 이름을 일러 주던 도사놈이 나와 무슨 원수런가? 소진의 구변인들 욕심 많은 저 늙은 용왕을 무슨 수로 꾀어내며, 관운장의 용맹인들 서리 같은 저 칼날을 무슨 수로 벗어나며, 요행 혹 벗어난다 한들 만경창파 너른 물에 무슨 수로 도망할까? 가련토다 이 내 목숨 속절없이 죽었구나. 백방으로 생각하여도 아무런 대책이 없으니 어이하리.'
하며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문득 한 꾀를 얻어 가지고 마음을 담대히 하여 고개를 번듯 들어 전상을 바라보며 말하기를
"이왕 죽을 목숨이오니 한 말씀이나 아뢰옵고 죽겠삽나이다."
하고 아뢰되,
"토끼 족속이란 것은 본시 곤륜산(황하강의 원류이며 불사의 선녀 서왕모가 산다는 산)의 정기로 태어나서, 일신을 달빝으로 환생하와 아침 이슬과 저녁 안개를 받아먹고, 고운 꽃과 풀, 그리고 좋은 물을 명산으로 다니면서 매양 오랫동안 먹었으므로, 오장육부와 심지어 똥집 오줌통까지라도 다 약이 된다 하여, 막걸리 오입장이들을 만나면 간 달라고 보채는 그 소리에 대답하기 괴롭사와, 간 붙은 염통 줄기채 모두 다 떼어 내어 청산유수 맑은 물에 설설이 흔들어서 고봉준령(높고 험한 산봉우리) 깊은 곳에 깊이깊이 감추어 두고 무심 중 왔사오니, 배 말고 온몸을 모두 다 발기발기 찢는다 할지라도 간이라 하는 것은 한 점도 얻어볼 수 없을 터이오니 어찌하면 좋을는지. 저 미련한 별주부가 거기 대하여 한마디 말하는 기색이 반 점도 없었으니, 아무리 내가 영웅인들 수부(水府)의 일이야 어찌 아오리까? 미리 알게 하였더라면 염통 줄기까지 가져다가 대왕께 바쳐 병환을 회춘하시게 하고, 일등 공신 너도 되고 나도 되어 부귀 공명하였으면 그 아니 좋았겠는가? 만경창파 멀고 먼 길을 두 번 왕래함이 별주부 네 탓이라. 그러나 병환은 시급하신데 언제 다시 다녀올런지 그 아니 딱하오리까?"
용왕은 듣고 어이없어 꾸짖어 말하기를,
"발칙 당돌하고 간사한 요놈. 네 내 말을 들어라. 천지 사이 만물 가운데에 사람으로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제 뱃속에 붙은 간을 무슨 수로 꺼냈다 집어 넣었다 하겠는고? 요놈 어찌 감히 무슨 마음을 먹고 어느 존전(尊前, 존엄한 자리의 앞)이라고 당돌히 없는 일을 꾸며서 아뢰느냐. 그 죄가 만 번 죽어도 남지 못하리라."
하고 바삐 배를 째고 간을 올리라 하거늘, 토끼 또한 어이없어 간장이 절로 녹으며, 정신이 아득하여 가슴이 막히고 진땀이 바짝바짝 나며, 아무리 생각하여도 죽을 밖에 다시 수가 없도다.
'이것이 참 독에 든 쥐요, 함정에 든 범이라. 그러하나 말이나 단단이 한 번 더 하여 보리라.'
하고, 우환 중이라도 기쁜 듯한 모양을 가지고 여쭈되
"옛말에 일렀으되 지혜로운 자가 천 번 생각하는데 한 번 실수할 때가 있다 하였는지라. 이러므로 미친 사람의 말도 성인이 가리어 들으시고 어린아이 말도 귀담아 들으라 하오니, 대왕의 지극히 밝으신 지감(知鑑, 사람을 알아보는 식견)으로 세세히 통촉(洞燭, 헤아려 살핌)하여 보시옵소서. 만일 소신의 배를 갈랐다가 간이 있으면 다행이어니와 정말 간이 없고 보면 물을 데 없이 누구를 대하여 간을 달라 하오리까. 후회막급 되실 터이오니 염라대왕의 아들이오 황건역사(黃巾力士, 힘이 굳세다는 神將의 하나)의 동생인들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황천길을 무슨 수로 면하오며, 또한 소신의 몽에 분명하온 표가 하나 있사오니 바라건대 밝히 살피사 의심을 풀으시옵소서."
용왕이 듣고 말하기를
"이 요망하고 간사스러운 놈, 네 무슨 표가 있단 말이냐?"
토끼 아뢰되,
"세상 만물의 생긴 것이 거의 다 같사오나 오직 소신은 밑구멍이 셋이오니 어찌 유(類)와 다른(무리와 구별되는) 표가 아니오리까?"
왕이 말하기를
" 네 말이 더욱 간사하도다. 어찌 밑구멍이 셋이 될리가 있느냐?"
토끼 말하기를
"그러하시면 소신의 밑구멍의 내력을 들어 보시옵소서. 하늘이 자시에 열려서 하늘이 되고, 땅이 축시에 열려서 축시가 되고, 사람이 인시에 나서 사람이 되고, 만물이 묘시에 나서 짐승이 되었으니, 묘라는 글자는 소토의 별명이다. 그 근본을 미루어 보면 생풀을 밟지 않는 저 기린도 유래한 곳이 내 몸이요, 주려도 곡식을 찍어 먹지 아니하는 봉황도 소종래(유래)가 내 몸이라. 천지간 만물 중에 오직 토처사가 근원이라. 이러므로 옥황상제께옵서 순순히 명하옵시되 '토처사는 나는 새 중에 조종이요, 기는 짐승 중에 본방이라. 만물 중에 제일 특별히 다르니 신체 만들기를 별도히 하여 표를 주자.'하시고 해와 달고 별의 세 가지 빛을 응하며 정직함과 굳셈과 부드러움이라는 세 가지 덕을 겸하여 세 구멍을 점지하셨사오니, 보시면 자연 자세히 알으시리이다."
용왕이 나졸을 명하여 사실 여부를 자세히 보라 하시니, 과연 세 구멍이 분명한지라. 왕이 의혹하여 주저하거늘, 토끼가 여쭈되
"대왕이 어찌 이다지 의심하시나이까. 소신같은 목숨은 하루 천만 명이 죽사와도 관계가 없삽거니와, 대왕은 만승(萬乘, 병거 일만 대를 거느리는 천자)의 귀하신 옥체로 동쪽 나라의 성군이시라. 가벼움과 무거움이 아주 다르오니, 만일 불행하시면 천 리 강토와 구중궁궐을 뉘게 전하시며, 종묘사직(왕실과 나라)과 억조창생(수많은 백성)을 뉘게 미루시려나이까?
하며 거침없이 잘 하는 말로 발림하며 용왕을 푹신 삶아 내는데, 언사가 또한 절절이 온당한지라.
이 고지식한 용왕은 폭 곧이듣고 자기 생각에 헤아리기를,
"만일 제 말과 같을진대 저 죽은 후에 누구에게 물을손가? 차라리 잘 달래어 간을 얻음만 같지 못하다."
하고 토끼를 궁중으로 불러 올려 상좌에 앉히고, 공경하여 가로되,
"과인의 망령됨을 허물치 말라."
하니 토끼가 무릎을 싹 쓰러뜨리고 단정히 앉아 공손히 대답하여 가로되,
"그는 다 예사올시다. 뜻밖에 일어난 근심과 낙미의 횡액(뜻밖에 닥친 액운)을 성현도 면치 못하였거든, 하물며 소신 같은 것이야 일러 무엇하오리까? 그러하오나 별주부의 자세치 못하고 충성치 못함이 가엽나이다."
문득 한 신하가 출반하여 가로되,
"신은 드사오니 옛 글에 일렀으되, '하늘이 주시는 것을 받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앙화를 받는다' 하오니, 토끼 본시 간사한 짐승이라, 흐지부지 하다가는 잃어버릴 염려가 있을 듯하오니, 원컨대 대왕은 잃어 버리지 마옵시고 어서 급히 잡아 간을 내어 지극히 위독하신 옥체를 보중하소서."
하거늘 모두 보니 이는 수천 년 묵은 거북이니 별호는 귀위선생이더라. 왕이 기뻐하지 않아 가로되,
"토 처사는 산중 은사(隱士,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지내는 선비)라 어찌 거짓말고 과인을 속이리오. 경은 물러나 있으라."
(하략)
(자료 출처 : 출전 : 세창 서관본<불로초(不老草)>)
요점 정리
지은이 : 미상
연대 : 미상
갈래 : 고전 소설, 우화 소설, 판소리계 소설
성격 : 해학적, 풍자적, 교훈적, 비현실적, 우연적, 우화적
문체 : 운문체, 낭송체, 문어체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배경
시간적 - 옛날 옛적
공간적 - 용궁
제재 : 토끼의 간
주제 : 무능한 집권층에 대한 비판과 집권층의 대립에 대한 비판 또는, 인간의 허영심에 대한 경계와 풍자, 위기에 빠지더라도 지혜롭게 해결해야 한다.
구성 : '발단-전개-절정-결말'의 4단구성
글의 특징 :
동물을 의인화한 성격의 소설로 속고 속이는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근원 설화 : 구토지설
등장 인물의 성격
토끼 : 허욕에 가득차 있으나 긴급할 때 기지를 발휘할 수 있는 재치가 있다.
별주부 : 임금에 대한 충성심은 강하나, 아둔한 편이다.
용왕 : 오래 살려고 하는 욕심이 많고, 어리석다.
줄거리 : 동해 용왕이 우연히 병이 들었는데, 어떤 약도 소용이 없었다. 그 때, 세 명의 도사가, 왕의 병은 주색(酒色)이 원인이라고 하며, 토끼의 생간을 먹어야 병이 났을 것이라고 처방했다. 문어와 자라(별주부)가 서로 토끼를 잡아 오겠다고 다툰 끝에 자라가 토끼를 잡아오기로 한다. 자라가 토끼의 그림을 가지고 육지로 나와 토끼를 찾는다. 자라가 토끼를 만나서 육지 생활이 위험하다고 강조하고, 용궁에 가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감언이설로 토끼를 유혹한다. 토끼는 자라의 유혹에 넘어가 자라 등에 업혀서 수궁(水宮)으로 들어간다. 용왕이 토끼를 잡아서 간을 내오라고 하니 토끼가 놀라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용왕은 토끼의 말을 믿고는 자라에게 토끼를 육지에 데려다 주라고 한다. 육지에 도달하자 토끼는 간을 빼어놓고 다니는 짐승이 어디 있느나며 자라를 놀리고는 달아난다. 자라(별주부)는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이후 용왕은 어찌 죄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수궁에서 겨우 살아온 토끼는 경망스럽게 행동하다가 독수리에게 잡혔으나 또다시 꾀를 내어 위기를 모면한다.(별주부전 줄거리)
내용 연구
만조백관 : 조정의 모든 벼슬아치.
하교 : 임금의 명령을 내림
신효 : 신통한 효험
일원대장 : 한 대장
출반 : 여러 신하들 가운데 홀로 나아감
두루주머니 : 아가리에 잔 주름을 잡고 끈을 좌우에 꿰어서 여닫는 작은 주머니
위풍 : 위엄 있는 풍채
형형색색 : 갖가지 모양과 빛깔
웃기 : 음식의 모양이 돋보이도록 위에 꾸미는 재료
재자가인 : 재주 있는 젊은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
공문거족 : 군왕의 가문과 문벌 좋은 집안
주물상 :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간략하게 차려 먼저 나오는 음식상
거둘상 : 미상
칠종칠금(七縱七擒) : 마음대로 잡았다 놓아 주었다 함을 이르는 말. 중국 촉나라의 제갈량이 맹획(孟獲)을 일곱 번이나 사로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 주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신출귀몰(神出鬼沒) : 귀신같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는 뜻으로, 그 움직임을 쉽게 알 수 없을 만큼 자유자재로 나타나고 사라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별호 : 별명
웅어눈 : 웅어처럼 가늘고 길게 찢어진 눈. 웅어는 멸치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칼 모양으로 길고 뾰족함
수레막는 쇠똥벌레 : 당랑거철(螳螂拒轍)을 이르는 말로 제 역량을 생각하지 않고, 강한 상대나 되지 않을 일에 덤벼드는 무모한 행동거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중국 제나라 장공(莊公)이 사냥을 나가는데 사마귀가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를 멈추려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장자'의 〈인간세편(人間世篇)〉에 나오는 말이다.
의사 : 생각. 지혜
동반서반 : 양반, 문관과 무관
지나 : 중국의 다른 이름 차이나를 음차한 것
해하성 : 초 패왕 항우가 한고조 유방의 군대에게 패한 곳
유로바 : 유럽
나파륜 : 나폴레옹
반석 : 넓고 편편한 큰돌
뚜쟁이 : 남녀의 야합을 중매하는 사람
패 : 남을 교묘히 속이는 꾀
시운 : 때의 운수.
언변 : 말재주
소진 장의 : 전국 시대의 모사. 말 잘하는 사람의 뜻
소강절 : 송나라 때의 학자. 신비적 우주관 자연 철학을 가졌음
영험하다 : 여기서는 '신령스럽고 기묘하다'는 뜻
횡액 : 뜻밖의 재액
초패왕 : 진나라 말의 무장인 항우
궁달 : 빈궁과 영달
천도, 반도 : 선가에서 하늘에 있다고 하는 신선 복숭아
천일주 감흥로 삼편주 : 천일주 빚은 지 천 일 만에 먹는다는 술. 감흥로는 평양 특산물인 붉은 술이며, 삼편주는 삼페인
오현금 : 순 임금이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다섯줄로 된 거문고
춘면곡 : 봄의 흥취를 노래한 작품
양양가 : 이백의 양양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악부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사
악양루 : 중국 호남성에 있는 성루로서 동정호를 조망하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
등왕각 : 당 고조의 아들 등왕이 세운 누각
황학루 : 중국 호북성에 있는 누각으로 양자강을 조망하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
팔자 : 사람의 한 평생 운수
외입 : 표준말은 오입. 외도와 동의어
만경창파(萬頃蒼波) : 한없이 넓고 넓은 바다
칠성 구멍 : 사람의 얼굴에 있는 눈귀코입의 일곱 구멍
창파 : 큰 바다의 푸른 물결
어하 : 물고기와 새우
굴원 :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사람.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었다함.
여선문 ; 송나라 문인으로 상량문을 잘 지었다함.
광묘궁 : 수부의 궁궐
삼장법사 : 당나라 법장.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다가 한역하였음
약수 : 신선이 살았다는 전설 속의 강으로 길이가 삼천리이고 기러기 털도 가라앉을 정도로 부력이 약했다고 함.
장건 : 후한의 외교가. 서역에 갔다가 흉노에게 붙잡혀 10여년 간 포로 생활을 했음
지기석(支機石) : 전설에서, 직녀가 베를 짤 때 베틀이 움직이지 않도록 괴었다는 돌.
서왕 세계 : 인도
아란존자 : 석가모니의 열여섯 제자 가운데 하나인 아난타
잔망 : 행동이 몹시 가벼움
방술 : 방법과 기술
바이 : 아주 전혀
천금상에 만호후를 봉하고 : 많은 재물에다 높은 벼슬을 주고
역하심정 : 대체 무슨 마음으로 그러는지 알기 어렵다는 뜻
전상 : 대궐의 윗자리
정전 : 왕이 나와서 조회를 하던 궁전
구변 : 말재주
후회막급(後悔莫及) : 이미 잘못된 뒤에 아무리 후회하여도 다시 어찌할 수가 없음
담대히 : 겁없이 용감하게
곤륜산 : 황하강의 원류로 옥이 많이 나오며, 불사의 선녀 서왕모가 산다는 산
고봉준령 : 높고 험한 산봉우리
회춘 : 중병에서 회복되어 건강을 되찾는 것
발칙 당돌하다 : 버릇이 없고 주제넘다
존전 : 존엄한 자리의 앞
우환 : 근심, 걱정
지감 : 사람을 잘 알아보는 식견
통촉 : 아랫사람의 형편 등을 헤아려 살핌
황건 역사 : 힘이 굳세다는 신장의 하나
유와 다른 : 무리와 구별되는
소종래 : 지내온 내력
순순히 : 다정스럽게 친절하게
조종 : 조상
본방 : 본국, 근원
만승 : 천자를 이르는 말. 중국 주나라 때 천자는 병거 1만 대를 출동시키던 제도에서 유래됨
종묘사직 ; 왕실과 나라를 함께 이르는 말
억조창생 : 수많은 백성
향수 : 오래 사는 복을 누림
어언간 :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덧
언사 : 말씨
낙미의 횡액 : 뜻밖에 닥친 액운
보중 : 몸을 아끼어 잘 보전함
은사 :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지내는 선비
이해와 감상
판소리로 불렸던 <수궁가(일명 토끼타령, 토별가)>가 고대소설로 정착된 판소리계 소설 작품이다. 설화 <구토지설>이 바탕이 된 이 작품에는 용왕에 대해 충성을 다하는 자라와, 이에 대립하는 문어,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토끼, 무능한 용왕의 모습이 드러나 있는데, 단순한 동물을 등장시킨 소설이 아니라, 집권층의 무능함과 권력계층의 상호 대립, 투쟁, 그리고 지배계층에 대한 비판적인 서민들의 의식이 반영된 우의적 작품이다.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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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 |
무능한 집권층 |
문어와 자라의 대립 |
집권층의 대립 |
토끼 |
위기 대처 능력, 집권층에 대한 비판 의식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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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별주부) |
우직한 충성심 |
토끼 |
부귀 영화에 대한 허영심 |
심화 자료
<토끼전>의 형성과 전승
이 작품은 <삼국사기>에 실린 '구토 설화' 및 이와 유사한 구전 설화가 판소리 사설을 거쳐 소설로 정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구토 설화'는 인도 설화 본생담(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의 용원(龍猿) 설화가 중국의 한역(漢譯) 경전을 거쳐 한국적으로 변용된 것이다. <토끼전>은 인물의 성격, 사건의 전개, 작가 의식 등이 이본에 따라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작품의 제목도 '별주부전(鼈主簿傳), 토공전(兎公傳), 토별전(兎鼈傳), 토생전'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며, 판소리 창본으로 '수궁가(水宮歌)'라는 제목도 있다.
작품의 구조
반복 구조와 대립 구조의 두 가지 측면으로 파악할 수 있다. 작품의 공간이 '수궁→육지→수궁→육지'로 반복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반복 구조이며, '수궁'과 '육지'를 대립적 세계로 설정했다는 점에서는 대립 구조이다. 반복 구조에서는 공간의 이동에 따라 위기와 그것을 극복하는 기지(機智)가 반복됨으로써 흥미의 유발과 함께 극적 효과를 증대시켜 준다. 대립 구조에서는 수궁을 강자의 세계로, 육지를 약자의 세계로 표현하고 있다. 육지의 토끼가 수궁의 용왕에게 희생될 뻔한 이야기이며, 용왕에 비하여 토끼는 아무 권력도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작가 의식과 사회적 배경
수궁과 육지의 대립 관계는 사회적 배경과 관련된다. 수궁의 자라는 조선 사회의 절대 가치인 충(忠)을 실현코자 신명(身命)을 바쳐 토끼를 사로잡아 온다. 반면에 토끼는 신분 상승의 욕심 때문에 자라의 유혹에 넘어간다. 여기에서 용왕과 자라는 지배층이고 토끼는 피지배층인 민중의 대표자임을 추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현실적 공간도 수궁계는 귀족 사회를, 육지는 서민들의 사회를 반영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용왕은 주색에 빠졌다가 병을 얻었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토끼의 교묘한 입담에 속아 넘어간다. 지배층의 무능과 용렬(庸劣)함을 드러낸 것이다. 처음에는 자라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아 넘어갔던 토끼가 기지를 발휘하여 지배층의 권위를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당대의 사회 구조는 민중들의 편이 아니었다. 민중들은 사회적 제약 속에 한정된 소극적 방법을 취할 수 없었다. 그 길이 바로 풍자와 해학의 길이다. 풍자와 해학은 이 작품 전체를 일관하는 중심적 요소이다. 작가는 지배 계층을 야유 비방하면서 웃음을 통하여 현실적 욕구 불만을 카타르시스하고자 했던 것이다.
주제의 양면성
<토끼전>의 주제는 중세적 절대 지배 논리에 의한 충성심과, 이 충에 대한 조선 후기 서민의 풍자와 비판이라는 양면성을 띠고 있다. 이것은 토끼와 자라가 서로 대립적 입장이면서도 둘 다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자라는 충신으로 끝까지 임금을 위해 목숨 걸고, 토끼는 자신을 곤경에 빠뜨린 용궁 지배층을 실컷 놀려 대고 육지로 돌아와서 독수리의 위협도 꾀로써 물리친다. 강자(지배층)에 억눌렸던 약자(서민층)의 마음을 통쾌하게 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용왕에 대한 자라의 충성심도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출처 : 정경섭, 조규빈, 염성엽 엮은 고전문학의 이해와 감상2. 문원각간행)
별주부전
(전략)
"과인의 병에는 아무러한 영약이 다 소용 없으되, 오직 토끼의 생간이 신효하다 하니 뉘가 능히 인간세상에 나가 토끼를 사로잡아 올 것인가?"
문득 한 대장이 출반하여 아뢰되,
"신이 비록 재주가 없아오나 한번 인간에 나가 토끼를 사로잡아 오리이다."
하거늘, 모다 보니 머리는 두루주머니 같고 꼬리는 여덟 갈래로 갈라진 수천년 묵은 문어라, 왕이 대희하여 가로되,
"경의 용맹은 과인이 아는 바라. 충성을 다해 급히 인간에 나가 토끼를 사로잡아 오면 그 공을 크게 갚으리라."
하고 장차 문성장군을 봉하려 할 즈음에 문득 한 장수 뛰어 내달으며, 크게 외어 문어를 꾸짖어 가로되
"문어야, 네 아무리 기골이 장대하고 위풍이 약간 있다하나 언변이 없고, 의사(意思)가 부족하니 네 무슨 공을 이루겠다 하며, 또한 인간 사람들이 너를 보면 영락없이 요리조리 오래 내어 국화송이, 매화송이 형형색색 아로새겨, 혼인잔치며 환갑잔치에 큰 상의 어물 접시 웃기로 긴요하고, 재가 가인의 놀음상과 남서의 한량 술안주에 구하노니, 네 고기라, 무섭고 두렵지 아니하냐? 나는 세상에 나아가면 칠종칠금하던 제갈량같이 신출귀몰한 꾀로 토끼를 사로잡아 오기 여반장(如反掌)이라."
하거늘, 모다 보니 이는 수천 년 묵은 자라니, 별호는 별주부라. 문어, 자라의 말을 듣고 분기충천하여 두 눈을 부릅뜨고 다리를 엉버티고 검붉은 대가리를 설설 흔들며 벽력같이 소래를 질러 꾸짖어 가로되,
"요망한 별주부야, 네 내말을 들으라. 강보에 싸인 아희가 감히 어른을 능멸하니, 이는 이른바 범 모르는 하로강아지로다. 네 죄를 의논하면 태산이 오히려 가볍고 하해 진실로 옅을지라. 또 네 모양을 볼작시면 괴괴망측(怪怪罔測) 가소롭다. 사면이 넓적하여 나무 접시 모양이라, 저토록 적은 속에 무슨 의사가 들었으랴? 세상인이 너를 보면 두 손으로 움켜다가 끓는 물에 솟구쳐 끓여 내니 자라탕이 별미로다. 세가 자세(勢家子弟) 즐기나니, 네 무슨 수로 다시 살아올꼬?"
자라 가로되,
"너는 우물 안 개고리라. 오직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도다. 자서(子胥)의 겸인지용도 검광에 죽어 있고, 초패왕의 기개세(氣蓋世)도 해하성에서 패하였나니, 우직한 네 용맹이 내 지혜를 당할쏘냐? 나의 재조(才操)를 들어보라. 만경창파 깊은 물에 청천에 구름 뜨듯, 광풍에 낙엽 뜨듯 기엄둥실 떠올라서, 사족을 바토 끼고 긴 목을 뒤옴치고, 넓죽이 엎디면은 둥글둥글 수박 같고 편편넓적 솥뚜깨라. 나무 베는 초동이며, 고기 낚는 어옹들이 무언지를 몰라보니 장구하기 태산이요, 평안하기 반석이라. 남모르게 변화 무궁 육지에 당도하여 토끼를 만나보면 잡을 묘계 신통하다. 광무군 이좌거(李左車)의 초패왕을 유인하던 수단으로 간사한 저 토끼를 잡아올 이 나뿐이라. 네 어이하여 나의 지모 모략을 따를쏘냐?"
문어 그 말을 들으니, 언즉시야(言卽是也)라. 하릴없이 뒤통수를 툭툭치며 흔들흔들 물러나더라.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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