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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전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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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전

 

자라가 토끼를 업고 기슭을 내려가니, 물결이 워리렁 출렁출렁하는구나.

“아이고, 내가 저 물 무서워 어찌 간단 말이오?”

“수궁 천 리 멀다 마시오. 유명한 선비며 장군들이 물길 따라 군주를 찾지 않았소? 맹자도 천 리를 멀다 않고 가 양 혜왕을 보았고, 강태공도 문왕 따라 주나라에 가 공 세웠고, 한신이도 소하 따라 한나라 땅에 들어서 그리 귀해졌다오. 토생원도 나를 따라 수궁에 들면 단번에 대장을 할 것이요, 고운 여인들과 밤낮 없이 더불어 만세토록 즐거움을 누릴 것이니, 나를 따라 수궁으로 가실 테요, 아니 가실 테요?”

“어서 가십시다.”

 

물가에 가 서니 농짝 같은 물이 들입다 때리는 걸 토끼가 딱 보고서는,

“아이고, 죽어도 못 가겠소. 내 적이나 뭣하면 따라가서 좀 보려고 했더니, 아 여보, 이리 가다가 용궁 문턱도 못 가 보고 죽것소. 나 아니 갈라오. 별주부나 평안히 가시오.”

 

(중략)

 

“아이고, 이거 좀 놔라! 아이고, 나 똥 좀 누고 가자. 똥 좀 누고 가, 이놈아. 똥 누고 가!”

“아 이놈아, 물에다 누어!”

“아이고, 물에다 똥 누면 벼락 맞는다면서, 이놈아.”

“아 이놈아, 사공은 벼락 맞느라고 볼일을 못 보겠구나.”

“아이구 이놈아, 그러면 그건 그렇다 하고 뒤지는 뭣으로 헐 것이냐?”

“아, 시방 뒤지가 어디 있어! 물에다 훌렁훌렁해 버려라. 야 이놈아, 아가리 벌리지 마라. 짠물 입에 들어가면 벙어리 된다. 이놈아, 인제 할 수 없으니 내 등에 업혀라.”

 

이리하여 만경창파 거센 파도를 타고 남해를 바라고 길을 떠나는구나.

 

토끼가 경망하여 자라의 낚시에 걸리기는 하였으되, 오죽이나 고생이 심했으면 정든 제 고장을 떠나 낯선 고장으로 갈 생각을 하였으랴.

 

가면 갈수록 뭍도 산도 멀리 물러나고 사방에서 파도만이 출렁출렁 덮쳤다 물러났다 할 뿐이다. 어찌 보면 무시무시하나

 

토끼는 지금 오히려 기쁘기 그지없다.

‘하늘이 나를 도우사 우연히 자라를 만나 세상살이 어려움과 산중 고생을 면하게 되다니, 암 다행이고말고. 용궁에 들어가서 부귀와 공명도 누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랴. 어서 수궁 가서 새로이 시작해 보세나.’

토끼는 덮쳐드는 파도도 저를 반겨 달려오는 용궁 벼슬아치들로 보이고 제 마음도 파도처럼 덩실덩실 춤추고 싶어지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이 풍진 세상 하직하고 떠나가노라.

물나라가 푸른 산보다 크고 좋으리.

자라 타고 이내 몸은 가고 또 가네.

오고 가는 흰 구름아 부러워하려무나.

이제 가면 붓을 잡고 역사를 써서

용궁 안 모두가 무릎을 꿇리로다.

지체 높고 재물 많은 몸이 되리니

백 년 천 년 길이길이 복을 누리리라.

 

토끼가 노래를 마치고 작은 배를 벌름거리면서 크게 웃자, 자라는 피식 웃는다.

‘이놈이 내 등에 앉아서 웃기까지 해? 교만하기 짝이 없군. 이제 네가 어떻게 될지 조금만 더 있어 보아라.’

자라는 토끼의 노랫소리를 받아서 한 곡 읊는다.

 

한 조각 붉은 마음을 품음이여

얼마나 바쁘게 청산에 다녔던고.

이 몸이 수고를 아끼지 않음이여

파도를 박차고 갔다 돌아오도다.

간사한 토끼를 얻어 공을 이룸이여

한갓 용왕님 기쁜 빛을 보려 하도다.

우리 임금님 병환 나으심이여

왕궁이 편안함을 기리도다.

 

토끼는 자라 노래를 무심히 듣다가, 제가 간사하다는 대목에서 더럭 의심이 나,

“그대 노래 속에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어인 곡절이오?”

하고 물으니, 자라 대꾸한다.

“내 흥이 나서 그저 부른 것인데 무슨 사연이 있으리오.”

 

토끼는 그래도 의심이 풀리지 아니하여 곱씹어 물었다.

“간사한 토끼를 얻어 공을 이루는 게 다 무엇이며, 우리 임금 병이 나으리라 하는 게 또 무슨 말이오?”

자라가 토끼의 말을 듣고 나서,

‘이미 뭍이 보이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까지 왔으니 내 말 뜻을 안다 해도 제 놈이 어찌할 수 없으렷다.’

하고, 토끼의 물음에는 대꾸 않고 갈 길을 다그친다.

 

토끼 이때까지 살갑게 굴던 자라가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 불안하다. 그래도 더더욱 빨리 내닫는 자라의 등에서 떨어질까 봐 딴딴한 등껍질만 잔뜩 붙들고 안절부절못하더라.

 

 

요점 정리

 

지은이 : 미상

연대 : 미상

갈래 : 고전 소설, 우화 소설, 판소리계 소설

형성 : 근원설화(구토지설)→ 판소리(수궁가)→ 고소설(토끼전)→ 신소설(토의간)

인도본생설화

중국불전설화

한국구토설화

수궁가

토끼전

근원설화

구전설화 - 판소리계

고전 소설

성격 : 해학적, 풍자적, 교훈적, 비현실적, 우연적, 우화적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배경 : 시간적(옛날 옛적). 공간적(용궁, 바닷가, 산 속), 사회적 (유교적 사상인 충忠이 강조되던 사회)

구성발단 : 동해 용왕이 병이 들었는데, 토끼의 생간이 약이 된다고 하여 자라가 토끼를 잡으러 육지로 나감.

전개 : 토끼를 만난 자라는 온갖 감언이설로 토끼를 유혹하고, 자라의 유혹에 넘어간 토끼는 수궁으로 들어감.

절정 : 용왕이 토끼를 잡아 간을 내오라고 하자, 토끼는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하여 위기를 넘긴다. 토끼의 말을 믿은 용왕은 자라를 시켜 토끼를 육지에 데려다 주고 간을 가져오게 함.

결말 : 육지에 다다른 토끼는 자라를 조롱하며 달아나고, 자라는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경망스럽게 행동하던 토끼는 또다시 독수리에게 잡히지만 기지를 써서 위기를 모면함. 제재 : 토끼의 간 주제 :

표면적 주제 : 토끼의 허욕에 대한 경계와 고난을 극복하는 지혜 그리고 자라의 왕에 대한 충성심

이면적 주제 : 조선 후기 상류 계층의 무능 비판 및 풍자, 서민계층의 속물적 근성을 풍자

줄거리 : 동해 용왕이 병이 들었지만, 어떤 약도 소용이 없었다. 세 명의 도사가 왕의 병은 주색(酒色)이 원인이라고 하며, 토끼의 생간을 먹어야 병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어와 자라가 서로 토끼를 잡아 오겠다고 강한 의지를 보이다 결국 자라가 토끼를 잡아오기로 한다. 자라는 토끼의 그림을 가지고 육지로 나와 토끼를 찾던 중, 토끼를 만나서 육지 생활이 매우 위험함을 강조하고 용궁에 가서 함께 행복하게 살자고 유혹한다. 토끼는 자라의 유혹에 넘어가 자라 등에 업혀서 수궁(水宮)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용왕이 토끼를 잡아서 간을 내오라고 하는 말에 놀라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용왕은 토끼의 말을 믿고는 자라에게 토끼를 육지에 데려다 주라고 한다. 육지에 도달하자 토끼는 간을 빼어 놓고 다니는 짐승이 어디 있느냐며 자라를 놀리고는 자라에게 자기의 똥을 약이라며 준다. 수궁에서 겨우 살아온 토끼는 경망스럽게 행동하다가 독수리에게 잡혔으나 또다시 꾀를 내어 위기를 모면한다. 한편 자라는 토끼 똥을 가지고 용궁에 돌아가 용왕의 병을 낫게 하고, 토끼는 월궁에 가 약을 찧으며 산다.

 

특징 : 동물을 의인화하여 우의적[寓意的 : 다른 사물에 빗대어 비유적인 뜻을 나타내거나 풍자함. 또는 그런 의미] 기법으로 인간 사회의 세태를 풍자하고 있으며, 중국의 고사와 속담, 한자어 등을 많이 사용했고, 대화의 내용을 다채롭게 표현하였다.

의의 : 전래 설화가 먼저 판소리로 형성된 후 소설로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물의 성격토끼 - 궁핍한 서민상을 대변하며, 허욕과 공명심에 들떠 있는 인물. 신분 상승에의 욕망도 갖고 있다. 지혜가 있고 영악하며 임기응변에 뛰어난 인물. 위기에 처해서도 당황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는 배짱도 있다. 같은 처지에 있는 민중을 대변하며, 오랜 생활 과정에서 축적된 슬기와 기지로써 무지막지한 처사로 일관하는 지배층에 대항하여 결국 승리하고 만다는 민중들의 의식세계를 보여주는 인물.자라 - 우직하고 충성스러운 신하의 전형. 언변이 뛰어나 영리한 토끼를 용궁으로 유혹해 데려오는 임무를 충실히 완수한다. 그러나 뭍에 도착한 토끼로부터 속은 것을 알고 그것이 자기의 전적인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면목이 없어 용궁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명분론에 사로잡혀 있는 관료의 모습이다.용왕 - 자신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지혜도 없는 데다 탐욕이 지나쳐 토끼의 꾀에 넘어 가는 부당한 권력을 상징하며 봉건 왕조의 지배층을 대변

등장인물

성격

상징성

용왕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남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함 - 이기적임

욕심에 눈이 멀어 토끼의 꾀에 속아 넘어감 - 어리석음

탐욕스런 통치자

토끼

세속적인 부귀 영화를 추구함 - 속물적임

죽을 위기에 처했으나 상대를 속여 극복함 - 지혜로움

지혜로운 백성

자라

(별주부)

용왕에 대한 충성을 보람으로 여기며 명령에 무조건 복종함 - 우직하며 어리석은 충성심을 지님.

우직한 신하, 관료

작품의 배경이 바뀜과 인물의 행동 비교

배경변화

용 궁(수 궁) - 지배 관료층의 세계

(귀족 사회)

땅 위(산 속) - 피지배 서민층의 세계

(서민 사회)

인물변화

토끼 : 공손, 자라 : 거만

토끼 : 의기 양양, 자라 : 풀이 죽음

사건변화

토끼는 살아남기 위해 갖은 꾀를 생각해 내고 용왕에게 정성을 다하는 듯이 보임

토끼는 위기를 면하여 크게 웃고 자라를 준엄히 꾸짖으며 의기양양해 보임

 

토끼전의 교훈성 :

첫째, 자기의 분수(分數)에 넘치는 헛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교훈(敎訓)을 담고 있다. 즉, 산중(山中)에 사는 토끼가 자기를 높이 평가(評價)하는 자라의 말에 현혹(眩惑)되어 용궁(龍宮)으로 들어가는데 이것은 우리 인간들 세계에 있어서는 흔히 볼 수가 있는 광경이다. 작자는 이 대목에서 풍자의 극치미(極致美)를 보여 주고 있다.

 

둘째, 무슨 일이든지 경솔(輕率)하게 행하지 말 것이며 비밀(秘密)을 함부로 미리 말하지 말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만약 용왕과 그의 신하들이 조금만 깊이 생각하고, 토끼의 말을 분석했다면 절대 속아 넘어 가지 않았을 것이다. '토끼전'과 같은 동물들을 의인화한 소설로는 '두껍전', '장끼전', '서동지전' 등이 있는데 모두가 세상 사람들을 풍자적으로 충고하기 위한 것들이다. 이것은 마치 서양의 '이솝 우화'에 나오는 짐승들의 이야기와 비슷하면서도 좀 더 사실적인 면이 두드러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용 연구

 

자라가 토끼를 업고 기슭을 내려가니, 물결이 워리렁 출렁출렁하는구나.[물결이 거세게 치는 모양과 소리를 함께 나타내는 말]

“아이고, 내[토끼]가 저 물 무서워 어찌 간단 말이오?”[산짐승인 토끼는 물을 무서워하고 있음]

“수궁[용궁] 천 리 멀다 마시오. 유명한 선비며 장군들이 물길 따라 군주를 찾지 않았소? 맹자도 천 리를 멀다 않고 가 양 혜왕을 보았고, 강태공도 문왕 따라 주나라에 가 공 세웠고, 한신이도 소하 따라 한나라 땅에 들어서 그리 귀해졌다오. 토생원도 나를 따라 수궁에 들면 단번에 대장을 할 것이요, 고운 여인들과 밤낮 없이 더불어 만세토록 즐거움을 누릴 것이니, 나를 따라 수궁으로 가실 테요, 아니 가실 테요?”[토끼를 유혹하는 자라 / 고사 속의 인물들을 인용하여 토끼를 설득하고 있음.]

“어서 가십시다.”

물가에 가 서니 농짝 같은 물이 들입다 때리는 걸 토끼가 딱 보고서는,

“아이고, 죽어도 못 가겠소. 내 적이나 뭣하면 따라가서 좀 보려고 했더니, 아 여보, 이리 가다가 용궁 문턱도 못 가 보고 죽것소. 나 아니 갈라오. 별주부나 평안히 가시오.”[토끼가 겁을 먹음]

(중략)

“아이고, 이거 좀 놔라! 아이고, 나 똥 좀 누고 가자. 똥 좀 누고 가, 이놈아. 똥 누고 가!”

“아 이놈아, 물에다 누어!”

“아이고, 물에다 똥 누면 벼락 맞는다면서, 이놈아.”

“아 이놈아, 사공은 벼락 맞느라고 볼일을 못 보겠구나.”

“아이구 이놈아, 그러면 그건 그렇다 하고 뒤지[화장지]는 뭣으로 헐 것이냐?”

“아, 시방 뒤지가 어디 있어! 물에다 훌렁훌렁해 버려라.야 이놈아, 아가리 벌리지 마라. 짠물 입에 들어가면 벙어리 된다. 이놈아, 인제 할 수 없으니 내 등에 업혀라.”[해학적 표현]

이리하여 만경창파[(萬頃蒼波) : 한없이 넓고 푸른 바다나 호수의 물결.] 거센 파도를 타고 남해를 바라고 길을 떠나는구나.

토끼가 경망[행동이나 말이 가볍고 방정맞음]하여 자라의 낚시[감언이설 : (甘言利說) : 남의 비위에 맞게 꾸민 달콤한 말과 이로운 조건을 내세워 꾀는 말.]에 걸리기는 하였으되, 오죽이나 고생이 심했으면[육지에서의 고달픈 삶] 정든 제 고장을 떠나 낯선 고장으로 갈 생각을 하였으랴.

가면 갈수록 뭍도 산도 멀리 물러나고 사방에서 파도만이 출렁출렁 덮쳤다 물러났다 할 뿐이다. 어찌 보면 무시무시하나 토끼는 지금 오히려 기쁘기 그지없다.

‘하늘이 나를 도우사 우연히 자라를 만나 세상살이 어려움과 산중 고생을 면하게 되다니, 암 다행이고말고. 용궁에 들어가서 부귀와 공명도 누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랴. 어서 수궁 가서 새로이 시작해 보세나.’[허욕으로 인한 죽음의 길로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기분은 최고조에 도달함. ]

토끼는 덮쳐드는 파도도 저를 반겨 달려오는 용궁 벼슬아치들로 보이고 제 마음도 파도처럼 덩실덩실 춤추고 싶어지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마음은 만물의 본체로서, 오직 단 하나의 실재(實在)라는 화엄경의 중심 사상. 모든 존재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마음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봄.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음.]

이 풍진 세상[육지에서의 삶 / 속뜻은 ‘탐관오리들의 수탈’] 하직하고 떠나가노라.

물나라가 푸른 산보다 크고 좋으리.

자라 타고 이내 몸은 가고 또 가네.

오고 가는 흰 구름아 부러워하려무나.

이제 가면 붓을 잡고 역사를 써서

용궁 안 모두가 무릎을 꿇리로다.[자만심]

지체 높고 재물 많은 몸이 되리니[입신양명(立身揚名)과 부귀영화(富貴榮華)를 생각함.]

백 년 천 년 길이길이 복을 누리리라.[ '시'는 대체적으로 주인공의 비판적 현실에 대비되는 낙관적 서정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등장인물의 심리를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부귀영화를 꿈꾸는 마음을 시로 표현하여, 정서를 극대화하고 있다 /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의 처지에 동화될 수 있도록 유도하며, 사건의 흐름을 잠시 중지시켜서 흐름이 단조롭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음]

토끼가 노래를 마치고 작은 배를 벌름거리면서 크게 웃자[숙맥불변 (菽麥不辨) :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리 분별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의 비유하는 말로 여기서는 토끼를 말함. 숙맥.], 자라는 피식 웃는다.[복선 : 소설·희곡 따위에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해 미리 넌지시 암시하는 서술로 토끼는 나중에 죽음의 위험에 빠짐.]

‘이놈이 내 등에 앉아서 웃기까지 해? 교만하기 짝이 없군. 이제 네가 어떻게 될지 조금만 더 있어 보아라.’[자신의 임무 수행을 위해 감정을 숨김]

자라는 토끼의 노랫소리를 받아서 한 곡 읊는다.

한 조각 붉은 마음[일편단심(一片丹心) : 한 조각 붉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변치 않는 마음을 이르는 말 / 용왕에 대한 충성심]을 품음이여

얼마나 바쁘게 청산에 다녔던고.

이 몸이 수고를 아끼지 않음이여[토끼를 용궁으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던 일]

파도를 박차고 갔다 돌아오도다.

간사한[나중에 위기에 빠진 토끼가 감언이설로 용궁을 빠져 나옴 / 지혜로움] 토끼를 얻어 공을 이룸이여

한갓 용왕님 기쁜 빛을 보려 하도다.

우리 임금님 병환 나으심이여[용왕의 병을 낫게 하려는 목적]

왕궁이 편안함을 기리도다.

토끼는 자라 노래를 무심히 듣다가, 제가 간사하다는 대목에서 더럭 의심이 나,

“그대 노래 속에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어인 곡절이오?”

하고 물으니, 자라 대꾸한다.

“내 흥이 나서 그저 부른 것인데 무슨 사연이 있으리오.”[용궁으로 안전하게 데려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진실된 말을 회피함]

토끼는 그래도 의심이 풀리지 아니하여 곱씹어[말이나 생각 따위를 곰곰이 되풀이하다] 물었다.

“간사한 토끼를 얻어 공을 이루는 게 다 무엇이며, 우리 임금 병이 나으리라 하는 게 또 무슨 말이오?”

자라가 토끼의 말을 듣고 나서,

‘이미 뭍이 보이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까지 왔으니 내 말 뜻을 안다 해도 제 놈이 어찌할 수 없으렷다.’[그물에 든 고기 : 이미 잡힌 몸이 되어 벗어날 수 없는 신세]

하고, 토끼의 물음에는 대꾸 않고 갈 길을 다그친다.

토끼 이때까지 살갑게[마음씨가 너그럽고 다정스럽다] 굴던 자라가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 불안하다. 그래도 더더욱 빨리 내닫는 자라의 등에서 떨어질까 봐 딴딴한 등껍질만 잔뜩 붙들고 안절부절못하더라.[불안한 예감으로 나중에 용궁에 들어가서 토끼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됨.]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구전 설화가 판소리 사설을 거쳐 소설로 정착된 판소리계 소설이다. ‘토끼전’은 특정한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전승과 전파에 따라 여러 작가들에 의해 변개, 착색되어 온 소설로, 서민 의식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풍자와 익살스러운 해학이 잘 드러나 있다. 이본(異本)에 따라서 내용이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우화적이며, 다양한 고사와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하여 해학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인 양상을 보인다. 작품의 배경은 용왕을 정점으로 한 자라 및 수궁 대신들의 용궁 세계와, 토끼를 중심으로 한 여러 짐승들의 육지 세계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세계의 대립 축을 중심으로 전자는 지배 계층인 귀족 사회를, 후자는 피지배 계층인 서민 사회를 각각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자라’는 부귀영화를 바라며 임금에게 절대적 충성심을 바치는 봉건 사회의 충신의 모습을, ‘토끼’는 허욕에 눈이 멀어 일시적으로 유혹에 넘어가 위기에 처했다가 살아남은 서민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글 전체의 주제는 ‘인간의 지나친 허욕과 명예, 부귀를 따르는 세태에 대한 비판ㆍ풍자’가 된다. 따라서 ‘토끼전’은 우화적 기법을 통해 17~18세기의 서민 계층의 비판적 의식과 당시의 지배 계층의 정치ㆍ사회적인 부패상을 동물 세계에 비유하여 풍자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해와 감상2

 

이 작품은 판소리계 소설로, 이본에 따라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작품의 제목도 ‘별주부전(鼈主簿傳)’, ‘토공전(兎公傳)’, ‘토별전(兎鼈傳)’, ‘토생전’ 등으로 다양하다. 이 작품은 수궁과 육지가 대립되면서 작품의 공간이 ‘수궁 → 육지 → 수궁 → 육지’로 반복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공간의 이동에 따라 위기와 그것을 극복하는 기지(機智)가 반복됨으로써 흥미의 유발과 함께 극적 효과를 증대시켜 준다. 수궁과 육지의 대립 관계는 사회적 배경과 관련되어 설명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 수궁의 자라는 조선 사회의 절대 가치인 충(忠)을 실현하고자 자신의 목숨을 바쳐 토끼를 잡아 오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반면에 토끼는 신분 상승의 욕망 때문에 자라의 유혹에 넘어간다. 이러한 점에서 용왕과 자라는 지배층이고 토끼는 피지배층인 민중의 상징임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용왕이 주색에 빠졌다가 병을 얻었다든가, 이치에도 맞지 않는 토끼의 말에 속아 넘어간다는 것은 지배층의 무능과 용렬함을 드러낸 것이다. 이처럼 이 작품을 당시 집권층의 무능이나 집권층 간의 대립을 풍자한 작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이 인간의 본성과 세태를 우화적인 수법으로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화 자료

 

▣‘토끼전’의 작가 의식과 사회적 배경

 

이 작품의 형성 시기로 추정되는 17, 18세기는 귀족 지배 관료층의 부패와 무능으로 서민들의 사회적 불만이 쌓여 가던 때였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은 지적 능력의 결여와 사회적 신분의 제약으로 표출할 방도가 없었고, 다만 민란(民亂)이라는 폭력적 수단과 민속극 ․ 판소리 ․ 민요 등 서민 예술을 통한 간접적 배설의 길만이 있었다. 우화적 이야기로서의 ‘토끼전’은 그러한 사회적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주색에 빠져 병이 들고 어리석게도 토끼에게 속아 넘어가는 용왕과 어전에서 싸움만 하고 있는 수궁 대신들은 당시의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 사회의 인물들을 투영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토끼는 서민의 입장을 취한다. 수궁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과 높은 벼슬을 할 수 있다는 자라의 말에 일시 속아 죽을 지경에 이르지만, 끝내 용왕을 속이고 수궁의 충신 자라를 우롱하면서 최후의 승리를 얻는 작품의 귀결은 토끼가 작자군을 대변하는 존재임을 잘 보여 준다. 결국 ‘토끼전’을 통해 민중들은 풍자와 해학이라는 한정된 소극적 방법을 통해 지배 계층을 야유 ․ 비방하면서 현실적 욕구 불만을 해소하고자 했던 것이다.

▣‘토끼전’의 구조

 

반복 구조와 대립 구조의 두 가지 측면으로 파악할 수 있다. 작품의 공간이 ‘수궁→육지→수궁→육지’로 반복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반복 구조이며, ‘수궁’과 ‘육지’를 대립적 세계로 설정했다는 점에서는 대립 구조이다. 반복 구조에서는 공간의 이동에 따라 위기와 그것을 극복하는 기지(機智)가 반복됨으로써 흥미의 유발과 함께 극적 효과를 증대시켜 준다. 대립 구조에서는 수궁을 강자의 세계로, 육지를 약자의 세계로 표현하고 있다. 육지의 토끼가 수궁의 용왕에게 희생될 뻔한 이야기이며, 용왕에 비하여 토끼는 아무 권력도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판소리계 소설의 특징

 

판소리계 소설이란 판소리로 불렸던 소설을 포함하여 판소리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는 소설을 함께 부르는 명칭이다. 판소리계 소설은 평민 계층의 발랄함과 진취성을 바탕으로 하여 전승, 재창작, 개작되었고, 그들의 체험과 원망을 투영하고 있다. 판소리계 소설에서는 전대(前代) 소설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던 초경험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을 대폭 축소하고, 현실적인 경험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소설의 독자가 양적(量的), 계층적으로 확대되면서 군담 소설(軍談小說)의 인기를 판소리계 소설이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판소리계 소설은 판소리가 지닌 개방적 면모와 향유층들의 다양한 관심사, 자유로운 수용 태도, 해학과 풍자를 기본으로 하는 평민 계층의 문화적 역동성 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판소리계 소설은 작가를 알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판소리는 설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판소리계 소설은 판소리의 사설을 소설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그만큼 이본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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