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치마와 스커트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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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와 스커트

 

어떤 동사에는 그 동사가 갖는 뜻말고도 그 동사로 연상되는 다른 무엇이 있다. 이를테면 감싼다라는 말을 들으면 대뜸 여자답다는 감각이 촉발되고 연상이 된다. 감싼다는 동사가 여자를 연상시킨다는 것은 내 또래 나이의 연대 감각인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면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감싼다는 동사에서 여자답다라는 감각이 떠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감싼다는 것은 내향적인데 요즈음 젊은 여자들은 온통 외향적이기 때문이요, 또 입고 다니는 옷만 해도 옛날 여자 옷은 온통 감싸는 옷인데, 요즈음 옷은 꿰매 입는 옷이기에 감싼다는 감각에 익숙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나라의 한 동사가 나타내는 이미지는 수천 년 동안 수천만 명의 그 나라 사람들이, 알고 모르는 사이에 체질화시킨 동일성이요, 감각 문화이기에 그렇게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감싼다는 여성 감각을 차근차근히 우리 생활 주변에서 찾아보려 하는 것이다.

맨 먼저 몸 가까이에서부터 찾아보자.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첼 소나타에서 등짝과 가슴팍을 드러낸 여자의 옷을 두고 부정적으로 논한 대목이 생각난다. 비단 소설 속에서뿐만 아니라 나이든 여자가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무릎과 허벅지를 노출시킨 것을 보았을 때, 아름답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까. 아직껏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여자의 미가 노출에서 우러난다는 현대적인 생각에 뒤진 그런 전근대적 생각을 가졌대서가 아니다. 비록 나이가 들었고 전근대적 가치 체계 속에서 잔뼈가 굵긴 했지만, 여자 옷의 노출 부위를 보면 나도 자율 신경이 움찍하곤 한다. 하지만 노출은 미나 색향을 현장에서 낭비해 버리는 행위요, 그것을 오래 간직하지 못하는 그런 즉석미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 옛 부녀자들은 행여나 그 미와 색향이 넘치거나 증발해 버릴까 봐, 억세게 옷으로 감싸 그것을 오래도록 간직하여 했던 것이다.

 

치마를 보자. 치마는 감싸는 옷이지 입는 옷이 아니다. 스커트는 그 속에 하체가 들어가는 구조인데 비해 치마는 하체를 감아 싸는 구조다. 펴 놓으면 하나의 평면일 뿐이다. 그러기에 스커트는 어느 사람이나 어느 체격에나 맞지는 않는 옷이요, 어느 시기의 그 사람밖에 입지 못하는 옷인 데 비해 치마는 더 감고 덜 감고에 따라 평생을 입을 수 있고 또 엄마도 언니도 아우도 입을 수 있는 포용력이 푼푼한 옷이다.

 

내 몸의 육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으면 느슨하게 감싸면 되고, 또 요염을 부리거나 육선을 드러내고 싶으면 바싹 죄어 감으면 된다. 옛날 평양 기생들은 치마를 다섯 단계의 조임새로 분간해서 입었다 한다.

 

(), (), (), (), ()이 그것이다. ‘은 육선이 전혀 드러나지 않게 감싸는 매무새요, ‘은 감을 때나 움직일 때 육선이 드러날 정도로 감싸는 매무새요, ‘는 움직이지 않아도 어른어른 육선이 드러나게 감싸는 매무새며, ‘은 하체의 모든 부분이 뚜렷하게 드러나게끔 감싸는 매무새이고, ‘은 호롱불 켠 방에서 보면 마치 하체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바싹 죄어 감싸는 매무새다.

 

그래서 으로 치마를 죄어 입으면 보폭이 좁아져 마치 오리걸음처럼 뒤뚱뒤뚱했다 하며, 평양 기생의 매력이 이 오리걸음에 있었다 함은 바로 으로 옷을 죄어 입었기 때문이다.

 

감싸는 문화의 농도를 실감케 해 주는 치마 조임이다.

치마는 몸만 감싸는 옷이 아니다. 두려우면 들어 올려 얼굴을 감싸는 장막이 되고, 슬프면 들어 올려 눈물을 닦는 수건이 되며, 아이를 안을 때는 들어 올려 감싸는 포대기가 되고, 곡식을 나를 때 들어 올려 움켜 쥐면 바구니가 되고, 물에 빠져 죽을 때 둘러 쓰면 수의가 되는 그런 치마다.

 

인생도 그렇게 감싸고 희비애락도 감싸며, 그 모든 것을 치마는 감싼다. 저고리도 입는 옷 같지만 면밀히 따져 보면 감싸는 옷이다. 소매만 입을 뿐 통은 속옷고름, 겉옷고름의 맺음새로 감싸는 옷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억세게 감싸 놓고도 보고 듣고 숨쉬고 먹는 그런 얼굴의 노출마저도 거북했던지 장옷으로 얼굴까지 감싸고 다녔던 우리 선조들이었던 것이다.

- 이규태, 한국학 에세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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