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교육
by 송화은율밥상 교육
나는 소학교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할아버지와 겸상을 해서 밥을 먹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조손 간의 겸상은, 멀어지기 쉬운 조손 간의 정을 가깝게 하려는 뜻에서가 아니라 실생활의 버릇을 가르치는 가정 교육의 한 교과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들기 전에 숟가락을 들어서는 안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놓기 전에 숟가락을 놓아서도 안 되었다. 숟가락을 먼저 들지 않는 것은 지키기에 수월한 법도이지만 밥을 다 먹고도 숟가락을 놓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지키기 괴롭고 고달픈 법도가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이가 약하셔서 느리게 잡숫기 일쑤이고 이에 비해 아이들의 식사 속도는 반비례하여 빠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식사 속도를 가늠하여 조절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고 밥을 먹었어도 먹은 것 같지 않았던 기억이 선하다.
뿐만 아니라 무슨 반찬이든 할아버지가 먼저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댄 다음에야 먹을 수 있었던 것이 식사 예법이었다. 할아버지가 먹기 싫은 반찬이면 나도 먹지 않는다든지 너나 먹으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젓가락을 댈 수 있었다. 또 김치나 나물을 집을 때 집힌 대로 먹어야지 집은 분량이 많든 적든 간에 다시 두 번 젓가락질을 하는 것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다. 맛있게 먹고 싶어서 계속해서 두 번 숟가락이니 젓가락을 해서도 안 되었다. 상추같이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부라려야 하는 음식을 먹을 때는 할아버지로부터 고개를 돌려 옆을 보고 먹어야 했다.
드물게 상에 오르는 육류성 반찬은 할아버지가 아무리 먹으라고 해도 손을 대서는 안 된다. 할아버지가 집어서 밥 위에 놓아 주었을 때만 먹도록 법도가 돼 있었다. 그래서 손을 대서는 안되는 육류성 반찬이 오르는 날이면 밥상이 들어오기 직전에 어머니가 문틈으로 손을 넣어 손가락으로 나를 불러냈다. 그리고 밥상 머리에 세워 놓고 이것 저것은 손대지 말라는 통고를 미리 받게 마련이었다.
우리 집은 6대 판서가 난 양반 가문도 아니다. 가까운 선대에는 종 9품의 말단직인 참봉 벼슬을 한 사람도 없던 평범한 상민의 가문이다. 이 상민의 가문에까지 이만한 가정 교육의 법도가 전승돼 내려 갔다면 한국에 있어 가정 교육의 보편성과 그 엄격성은 알고도 남음이 있다.
전통적 가정 교육의 교본인 《곡례》에서 지켜야 할 어릴 적 버릇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모두 다 함께 음식을 먹을 때에는 혼자서만 배불리 먹지 않으며, 또 여럿이 어울려 함께 밥을 먹을 때에는 불결하게 손으로 먹어서는 안 된다. 혼자서만 한 움쿰씩 집어다 먹지 말아야 하며, 먹던 밥을 밥통에 다시 쏟아 넣지도 말 것이다. 훌쩍훌쩍 소리를 내며 들이마시지 말 것이며, 쩝쩝 소리를 내며 먹지 말 것이며, 뼈까지 아삭거리며 갉아 먹지 말 것이다. 먹던 어육도 도로 그릇에 담지 말며, 먹고 난 뼈다귀일망정 함부로 개에게 던져 주지도 말 것이다. 구태여 음식을 더 먹으려고 억지를 부리지 말 것이며, 밥이 뜨겁다 하여 후후 불어서 먹지 말 것이며, 기장밥을 먹을 때는 젓가락으로 먹지 않는다. 국을 먹을 때에는 건더기째 들이마시지 말며, 주인의 면전에서 국그릇에 간을 맞추지 말며, 이를 쑤시지 말며, 젓국을 들이마시지 말 것이다.
‘자녀들을 가르치는 데서 먼저 음식 탐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 딸의 경우는 조금도 용서해 주어서는 안 된다. 음식을 탐내게 되면 팔다리와 목이 가늘어지는 병이 생길 뿐 아니라 그 탐욕으로 인하여 사치한 마음이 생기고 사치로 인하여 도둑의 마음이 생긴다. 음식을 탐내는 부녀가 남의 집을 망치지 않은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어린 욕심을 정 때문에 이겨 내지 못하겠으면 법도가 엄한 남의 집에 일정 기간 동안 기탁하여 기르는 의탁 가정 교육 풍습도 있었다. 연산군은 어릴 때부터 포악했는지 당시 장안에서 법도와 기품이 엄하기로 소문났던 남대문 밖 강희맹(姜希孟)의 집에 의탁하여 양육시켰었다.
현대 사회가 상실한 전통 유산이 하나둘이 아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상실물 가운데 하나가 이 같은 전통적 가정 교육이 아닐까 싶다.
- 이규태, 『한국학 에세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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