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과 관련된 작품들 / 추천사, 춘향유문, 춘향 등
by 송화은율춘향전과 관련된 작품
추천사(鞦韆詞)
- 춘향(春香)의 말․1 -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벼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데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 서정주 시선, 1956
이 시는 ‘춘향(春香)의 말’이라는 부제가 붙은 3편의 연작시 중, 첫 번째 작품으로 나머지 두 작품은 다시 밝은 날에와 춘향 유문(春香遺文)이다.
이 시는 대수롭지 않은 소재를 이용하여 그것을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세계로 끌어 올려 차원 높은 이미지로 승화시키는 미당의 시작 능력(詩作能力)이 발휘된 작품으로 시적 화자는 바로 춘향이다. 이 시에서의 ‘춘향’은 시인에 의해 새로이 성격화된 인물로서, 소설 춘향전의 중심 테마인 ‘춘향의 정절(貞節)’이라는 측면에 국한해서 이 시를 감상한다면, 시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면으로 이해하게 되는 실수를 범하게 될 수 있다.
‘춘향’은 낮은 신분에서 오는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답답한 심경으로 그네를 타며 ‘향단’에게 자신의 괴로움을 고백, 토로하는 삶의 고뇌를 갖고 있는 여인이다. 물론 춘향전에 의하면 이 장면은 춘향과 이몽룡이 만나기 이전으로 소설에서는 ‘춘향’이 그네를 타면서 하는 생각이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시인은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았다. 현실적 고뇌를 가진 ‘춘향’은 그네를 타는 행위를 단순한 유희가 아닌 땅 위의 현실적 인연을 끊어 버리고, 높은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상징적 행동으로 생각한다. 현실을 떠나고 싶은 욕망과 의지는 ‘머언 바다로 / 배를 내어 밀듯이’ 그넷줄을 밀어 달라는 ‘춘향’의 말로 나타난다. 그러나 아주 내어 밀듯 그네를 밀어 달라고 하지만, ‘수양버들’, ‘풀꽃데미’, ‘나비’, ‘꾀꼬리’들로 표상된 아름다운 현실 세계에 대한 강한 집착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하는 번뇌가 있다. 현실이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굳이 떠나려 하는 것은 자신의 소망을 이룰 수 없는 현실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춘향’은 좌초와 충돌, 곧 어떠한 제약도 없는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인 동경의 세계에 도달하고 싶어하는 욕망에 견딜 수 없어 이 고뇌에 찬 세상을 ‘채색한 구름같이’ 벗어나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초월적 세계 속의 존재가 되도록 ‘밀어 올려’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춘향’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현실적 깨달음을 얻고는 이내 ‘서으로 가는 달같이는 /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라는 독백을 한다. 그네가 아무리 하늘 높이 올라가더라도 다시 땅으로 떨어지게 마련인 것처럼 자신의 소망도 결국은 이룰 수 없다는 자각(自覺), 이것이 바로 춘향의 간절한 초월의 의지와 그것의 필연적 좌절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소망을 끝내 버릴 수 없어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밀어 달라고 한다. 파도가 어쩔 수 없이 다시 떨어져 내려오듯이 자신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깨닫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이 현실적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욕망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는 ‘춘향’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실을 초극하려는 의지와 현실에 대한 애착, 그리고 현실적 불가능 사이에 놓인 인간의 심리적 비극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통한 초월에의 의지와 현실적 존재 조건에 의해 그 꿈을 포기, 좌절해야 하는 ‘춘향’의 상황을 통해 인간의 의식 구조를 해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밝은 날에
- 춘향(春香)의 말․2 -
신령님,
처음 내 마음은 수천만 마리
노고지리 우는 날의 아지랭이 같았습니다.
번쩍이는 비늘을 단 고기들이 헤엄치는
초록의 강 물결
어우러져 날으는 아기구름 같았습니다.
신령님,
그러나 그의 모습으로 어느 날 당신이 내게 오셨을 때
나는 미친 회오리바람이 되었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벼랑의 폭포,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령님,
바닷물이 작은 여울을 마시듯
당신이 다시 그를 데려가시고
그 훠 ― 遁한 내 마음에
마지막 타는 저녁 노을을 두셨습니다.
신령님,
그리하여 또 한번 내 위에 밝는 날
이제
산골에 피어나는 도라지꽃 같은
내 마음의 빛깔은 당신의 사랑입니다.
▷ 서정주 시선, 1956
이 시는 춘향이가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뒤에 재회의 날을 간절히 소망하며 자신의 사랑을 굳게 지키겠다는 의지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기‧승‧전‧결의 전통적 구성 방식에 향토적 색채의 시어와 높임법의 문장을 구사함으로써 더욱 절절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1연은 춘향이가 ‘그’를 만나기 이전의 심리 상태를 보여 주고 있다. ‘처음 내 마음은 수천만 마리 / 노고지리 우는 날의 아지랭이’였으며, ‘번쩍이는 비늘을 단 고기들이 헤엄치는 / 초록의 강 물결 / 어우러져 날으는 아기구름’ 같다고 함으로써 사랑의 격정에 휩싸이기 이전의 평화롭던 마음을 보여 주고 있다. 2연은 ‘그’를 만난 이후, ‘미친 회오리바람’과 ‘벼랑의 폭포’와 ‘소나기비’와 같은 열정에 빠진 자신의 심리를 나타내고 있다. 3연은 이별의 아픔을 겪은 후의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 ‘그 훠 ― 遁한 내 마음에’는 아직 ‘마지막 타는 노을’같이 뜨거운 사랑이 타오르고 있지만, 재회를 기다리는 그 하루하루는 마치 ‘기인 밤’과 같다는 화자의 애절한 고백을 통해 이별을 겪은 후의 아픔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가 떠나간 것은 단순히 ‘그’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바닷물이 작은 여울을 마시듯’ 신령님께서 데리고 간 것이라는 구절은, 화자가 운명론적 인생관을 가진 존재임을 알게 해 준다. 4연은, 화자가 ‘도라지꽃 같은 사랑’을 지키며 ‘또 한번 내 위에 밝는 날’로 표상된 재회의 날을 기다리겠다는 화자의 굳은 결의를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이 결의는 ‘정절(貞節)’이나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와 같은 봉건적 윤리관의 반영이 아닌,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는 춘향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춘향 유문(春香遺文)
- 춘향(春香)의 말․3 -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兜率天)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어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불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여요.
▷ 서정주 시선, 1956
이 시는 죽음을 앞둔 ‘춘향’이가 옥에 갇혀 학수 고대(鶴首苦待)하는 이몽룡에게 남기는 유서 형식의 작품으로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부드러운 독백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여성적인 섬세함과 부드러움 속에 강렬한 영상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연은 임에게 하는 체념적 인사이고, 2연은 행복했던 지난날에 대한 회상과 함께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 같은 열렬한 애정을 표현한 부분이다. 3연은 멀고 먼 저승도 자신의 사랑보다는 가까이 존재한다고 하며 죽음의 세계까지도 그녀의 사랑 속에 있음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4연은 생사(生死)와 시공을 초월하는 자신의 사랑을, 지옥에 떨어져 썩은 물로 흐르거나 극락에 올라 구름으로 떠 있다 해도 결국은 도련님 곁이 아니겠느냐는 반어적 의문 형식으로 극대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5연에서는 하늘에 뜬 구름이 소나기가 되어 내려올 때, 자신도 함께 그 곳에 있을 것이라는 영원 불변의 사랑을 다시금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이 시는 윤회 전생(輪廻轉生)에 의해 ‘검은 물’ → ‘구름’ → ‘소나기’로 춘향을 변신시켜 결코 소멸하거나 중단되지 않는 그녀의 영원한 사랑을 불교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춘 향(春香)
큰 칼 쓰고 옥(獄)에 든 춘향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그 옛날 성학사(成學士) 박팽년(朴彭年)이
오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았었니라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獄房) 첫날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서름이 사무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南江)의 외론 혼(魂)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論介)! 어린 춘향을 꼭 안아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貞節)이 무엇이기
그 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獄死)한단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卞學徒)의
흉칙한 얼굴에 까무러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상하고 멍든 자리 마디마디 문지르며
눈물은 타고 남은 간을 젖어 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三更)을 세오다가 그는 고만 단장(斷腸)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南原) 고을도 깨어지고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 문장 18호, 1940. 7
영랑이 그 동안 일관되게 고집해 오던 ‘내 마음’의 서정 세계를 버리고 현실 세계로 방향을 돌리게 된 때는 1930년대 말엽으로서 일제의 한민족 말살 정책이 극에 달했던 시기이다. 이 시는 독을 차고와 함께 그 같은 영랑의 변화를 한눈에 알게 해 주는 작품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일편 단심을 지키는 춘향의 애틋한 정절을 세조의 불의(不義)에 맞서 죽음으로 충절을 지킨 사육신과, 촉석루에서 순국(殉國)한 의기(義妓) 논개의 우국(憂國)에 대응시켜 노래하고 있다. 작품의 발표 시기가 1940년인 것을 고려하면, 이 시의 창작 의도가 단순히 춘향의 사랑과 정절만을 예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잊혀진 역사와 문화를 노래함으로써 식민지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적극적 의미가 숨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와 함께 가사나 민요에 바탕을 둔 정형적 운율로써 순수 서정 세계만을 펼쳐 보인 초기시에 비해, 이 작품은 자유율을 구사하여 시의 산문화(散文化)라는 표현의 변화뿐 아니라, 제재면에서도 개인적인 문제로 국한되었던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 역사와 문화로 확대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http://210.180.181.11/paejong/kyo/kuk/chasu/index/time.html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